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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1

       황궁의 중앙 회의실. 황제 레제프를 중심으로 주요 관료들이 빠짐없이 전부 소집되었다.

         

       안건은 최근 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데카르트 공작 암살 미수 사건.

         

       전대 황제, 황후가 돌연 사망한 건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고 판단해 다시 안건에 오르게 되었다.

         

       “우선,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데카르트 공작님께서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계신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이제 진척된 조사 현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국의 재상, 재스앙 하기시른이 원탁의 모두에게 자료가 담긴 서류를 건넸다.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이번 사건은 전대 황제 폐하께서 돌연 서거하신 일과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동시 조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대륙에서 두 명밖에 없는 초월 마법사 중 하나인 레이디 유플레인이 조사한 보고서 내용이었다.

         

       “범인에게는 오러와 마력을 지울 수 있는, 혹은 감출 수 있는 특수한 신비가 있다고 합니다.”

         

       재상은 또한, 하면서 말을 이었다.

         

       “레이디 유플레인의 말에 의하면 데카르트 공작님은 흑마법 하나만으로 대마법사에 도달하신 분입니다. 그런 분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지요.”

         

       대신이 말했다.

         

       “그래서 레이디 유플레인이 한 주장이 범인은 일반적인 암살자가 아닌, 강력한 신성 마법을 사용하면서 평범한 인간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신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까?”

         

       재상은 “그렇습니다.”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레제프가 얼굴을 잔뜩 구기며 반발했다.

         

       “데카르트 공작이 잠든 사이 기습을 받아 그런 것이 아니오? 당사자가 깨어나지도 않은 마당에 범인과 공작이 충돌했다는 증거는 없지 않소!”

         

       현재 대화와 조사의 흐름은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밖에 없다. 모든 이들이 의심이 소미레에게 향하고 있다.

         

       지금껏 해온 일과 성녀라는 직책이 있어 신뢰가 두텁기에 쉽게 깨지진 않지만, 이대로 가면 시간 문제. 그 누구보다 소미레를 사랑하는 레제프는 그녀를 보호하고 싶었다.

         

       “폐하, 송구하오나 그에 대해선 이미 증거까지 나온 상황입니다.”

         

       얼굴이 구겨진 레제프가 “증거?”하면서 대신을 노려봤다.

         

       “기사들의 보고에 의하면 데카르트 공작님께서는 침대가 아닌 문 앞에 쓰러져 계셨습니다. 그리고 공작님과 범인의 충돌이 있었다는 증거는 많습니다.”

         

       팔락. 대신은 자료를 넘기며 말을 이었다.

         

       “데카르트 공작님께서 당하신 상처는 단검에 찔린 복부 대정맥. 그리고 접질려진 발목입니다.”

         

       암살을 목적으로 한 기습이라면 당연히 목을 노린다. 그편이 생존 가능성이 적고 간편하니 말이다. 그러나 단검에 찔린 부위는 복부 대정맥.

         

       마찬가지로 죽음에 이르는 급소에 포함되지만, 암살에는 적합하지 않다.

         

       “발목이 접질렸다는 건 충돌 과정에서 공격을 피하거나 도망치는 과정에서 당한 부상이겠군요. 복부의 상처는 저항 도중에 일어난 일이겠고요.”

         

       중앙 회의실, 원탁에 앉은 관료 중 그 누구도 다른 의견은 내지 않았다. 카자르 유플레인이 제출한 자료가 너무나도 타당했기 때문이다.

         

       “…다음 자료입니다.”

         

       재상은 관료들에게 또 한 번 서류를 건넸다.

         

       “이번에 초월 마법사, 레이디 유플레인이 제출한 수사 보고서입니다. 타당한 근거도 포함되어 있으니 천천히 읽어보시길.”

         

       관료들은 숨죽이고 수사 보고서를 천천히 읽었다. 이를 보며 그들이 느끼는 심정은 표정의 변화로 드러났다.

         

       “…?”

         

       눈치를 살피던 레제프는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서둘러 수사 보고서를 읽었다.

         

       ────────────────

       데카르트 공작 암살 미수 수사 보고서.

       작성자 – 카자르 유플레인.

         

       범인은 ‘이면 결계’라는 특수한 마법을 사용했음.

         

       ‘이면 결계’ 특성상 전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데카르트 공작이 입은 상처로 보아 범인과 한 차례 충돌이 있었던 거로 판단됨.

         

       데카르트 공작의 경지는 대마법사.

         

       흑마법에 치중되어 다양한 마법을 사용하진 못하지만, 궁정 마법사단 이상의 강함을 보유 중.

         

       이로써 수사망을 좁힐 수 있음.

         

       범인은 대마법사를 가뿐히 제압 가능한 제국의 손꼽히는 강자거나, 상성으로 대마법사 공작을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신성 마법 사용자.

         

       추가로 오러와 마력을 지우는 특이한 신비를 가지고 있음.

         

       상처의 흔적을 보아 오러 사용자는 아님.

         

       초월 마법사, 카자르 유플레인의 명예를 걸고 이를 객관적으로 수사했음을 알립니다.

       ────────────────

         

       레제프의 미간이 한없이 구겨졌다. 이는 누가 봐도 소미레를 콕 집어서 지칭하는 거잖나.

         

       “…….”

       “…….”

       “…….”

         

       황실 관료들의 표정을 본 레제프는 애써 침착을 유지한 채 조용히 말했다.

         

       “그대들이 생각하는 바는 잘 알겠소. 허나 아직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니 섣부른 판단은 그만 두시오.”

         

       관료들의 표정이 매우 어둡다. 제국의 혼란을 몰고 온 용의자를 당장 수사해도 모자란 데, 황후와 성녀라는 입지 때문에 쉽게 건들지 못하고 있으니.

         

       “…쓸데없는 말만 이어질 거 같으니 중앙 회의는 이만하도록 하지. 모두 해산하세.”

         

       어수선한 분위기에 보다 못한 레제프가 강제로 회의를 중단시켰다.

         

       “…황제 폐하의 명에 따라 이만 황실 중앙 회의를 끝내겠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장관 여러분들게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재상의 마무리까지 끝나고.

         

       “그럼 폐하,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관료들은 차례대로 자리를 비웠다. 재상은 잠시 레제프를 지켜보다 살며시 고개를 휘젓곤 회의실을 나갔다.

         

       “후우…….”

         

       홀로 남은 레제프는 머리를 쥐어 싸맨 채 고개를 숙였다.

         

       추후 범인이 소미레라는 건 밝혀질 거다. 비록 결정적인 증거가 아직 나오지 않았고 추측만이 난무할 뿐이라지만, 데카르트 공작이 깨어나는 날 모든 일이 마무리될 테니.

         

       ‘나는 대체 어찌해야…….’

         

       마침내 레제프는 아니라고, 그럴 리 없다며 외면하고 또 외면해왔던 일과 마주하게 되었다.

         

       정말 부모님을 죽이고 공작을 암살 시도한 범인이 소미레인 것일까? 레제프는 자신이 지금 어떤 얼굴을 짓고 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소미레…….”

         

       그녀를 생각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자니 문득 과거의 향수가 지나갔다.

         

       소미레는 10살이 되던 해. 여신에게 성녀로 간택 받아 황궁으로 오게 되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녀와의 첫 만남.

         

       악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순결하고 자애로운 미소를 짓던 그녀. 소미레를 보고 있으면 시기와 질투가 가득했던 자신마저 옳은 길을 걷는 것 같아 좋았다.

         

       그러나 1년 전. 바렌베르크와의 전쟁 이후부터 무언가 달라졌다.

         

       그래,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 * *

         

         

       고요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침실.

         

       프란체는 여유롭게 침대에 누워 마법서를 보고 있었다. 이전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다른 속성도 익혀두자는 이유였다.

         

       “공작님, 오늘은 홍차로 하실래요?”

         

       헬레나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그래, 최근엔 홍차를 안 마셨으니.”

       “디저트도 준비할게요!”

         

       문제없이 건강해 보이는 프란체의 모습에 헬레나는 잔뜩 신이 나 저택의 주방으로 향했다.

         

       “라데아, 좋아하는 디저트는 있니?”

       “…갑자기요?”

       “나는 디저트를 별로 안 좋아해서.”

         

       프란체는 차에 곁들이는 디저트가 싫었다. 어린 시절부터 안 좋은 기억밖에 없으니 말이다.

         

       라데아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눈을 끔뻑이다 대답했다.

         

       “음, 디저트처럼 달달한 음식은 많이 먹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값도 비쌌고 로아크 남작령은 많이 척박했으니까요.”

         

       그녀의 배경을 생각하지 못해 아차 싶은 프란체. 당연히 디저트 같은 음식은 먹어봤을 줄 알았다.

         

       “그러니? 그럼 이번 기회에 많이 먹어보고 마음에 들면 라이아에게도 가져다주렴. 디저트 정도야 얼마든지 내어줄 테니까.”

         

       라데아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정말요?”

       “그래.”

       “감사해요!”

         

       다행히 잘 넘긴 거 같다.

         

       흐뭇하게 웃으며 라데아가 싱글벙글하게 콧노래를 부르는 걸 바라보고 있자니 침실의 문이 열렸다.

         

       헬레나가 돌아온 건가 싶었는데…….

         

       “공작님?”

         

       카자르였다.

         

       “무슨 일 있니?”

       “황실에 수사 보고서를 보냈어요.”

         

       프란체의 눈이 얇아졌다.

         

       “답변은 있었니?”

       “돌아온 답은 없었어요.”

         

       하지만, 하며 말을 잇는 카자르.

         

       “황실의 주요 관료들은 꽤나 흔들렸을 거예요. 그 사람들은 현 황권에 불만이 많으니까요.”

         

       레제프의 행보는 데카르트 공작가를 건드린 것부터 잘못되었다.

         

       안 그래도 권위가 하늘을 찔러 눈치를 봐도 모자랄 판에 권력의 균형을 되찾겠다며 가만히 있는 공작가를 건드렸으니 말이다.

         

       황실의 주요 관료들은 레제프가 못마땅했을 터.

         

       “잘 하면 성녀뿐만이 아닌 황제까지 끌어내릴 수도 있겠어요.”

         

       프란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근거는?” 하고 물었다.

         

       “그 황제는 공작님이 쓰러지셨던 당일에도 성녀를 변호하려고 화살을 이쪽으로 돌렸거든요. 그 정도로 애석한 사람이 성녀의 몰락을 지켜보고만 있진 않겠죠.”

         

       과연, 하면서 천천히 주억이는 프란체.

         

       “그 멍청한 황제라면 그럴 만도 해. 아마 제국보다 성녀를 중요시할 거야.”

         

       좋게 말하면 일편단심 사랑꾼이고, 나쁘게 말하면 여자한테 홀려 제 앞길 가로막는 놈이다.

         

       “아무튼. 우선 이렇게 의심의 씨앗을 심어뒀어요. 이제 다음은 갑작스러운 황권 교체, 새로운 황제의 데카르트 견제, 암살 미수. 이 세 가지를 엮어서 심어뒀던 씨앗을 발아해야죠.”

         

       그 멍청한 황제와 망할 성녀가 몰락하는 건 좋다. 하지만 다음은? 프란체가 물었다.

         

       “계획은 더 있는 거니?”

       “네?”

       “차기 황제 말이야.”

         

       레제프 말고도 황족은 있다. 하지만 그들이 황위를 이어받느냐가 문제다.

         

       “그건 아직 잘 모르겠네요. 직접 만나서 협상을 해보거나 강제로 황위를 받으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연신 눈을 끔뻑이는 프란체.

         

       “…그러고 보니 너는 마법에 관한 거 말고는 다 몰랐지.”

         

       이내 고개를 휘젓곤 미간을 주물렀다.

         

       “그에 대해선 내가 알아서 할게.”

         

       막강한 권력을 얻은 건 좋지만 이런 면에서 매우 불편하다. 힘이 강한 만큼 책임도 늘어나니 말이다.

         

       앞으로 어찌 할까 하며 생각을 하던 사이.

         

       “디저트 가져왔어요!”

         

       헬레나가 웨건에 디저트를 가득 담은 채 들어왔다. 어쩐지 좀 늦더라 싶더니만.

         

       “…너무 많이 가져온 거 아니니?”

         

       3단으로 이루어진 트레이. 종류를 불문하고 설탕으로 이루어진 디저트들로 가득하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기력을 회복할 때는 단 게 최고예요!”

         

       주먹을 가슴에 모으며 힘찬 웃음을 짓는 헬레나. 프란체는 조심스레 포크를 라데아 쪽으로 밀었다.

         

       “헬레나도 먹으렴…….”

       “네? 저도요?”

       “이 많은 걸 혼자 다 먹을 수는 없잖니.”

         

       망설이는 헬레나에 프란체는 손짓으로 의자를 두드렸다.

         

       “어서.”

       “…네.”

         

       얼떨떨하게 애프터눈 티에 함께하게 된 헬레나. 카자르와 라데아는 귀신처럼 디저트를 흡입했다.

         

       이 모습을 보며 프란체는 씁쓸히 웃곤 홍차를 홀짝였다.

         

       ‘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가 떠나고 안 좋은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 심리적으로 힘들어서 그런 것일까? 유독 진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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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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