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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1

       “그러니, 신소희 씨에게는 몹시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학교로 가는 와중에, 양혜인은 조금 주저하며 말했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이라는 표현은, 이제는 쓸 수도 없겠다.

        

       인형 같고, 무기질적이고, 기계스럽고, 자기 할 일만 하는, 감정 없는 사람, 이라는 이미지는 요즘 들어서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정확한 기점을 따지자면, 이 사람이 나에게 제대로 사과를 한 뒤부터였다.

        

       그 후부터 나에게 어떤 빚이 생겼다고 생각하는지, 양혜인은 나름대로 신중하게 나를 대했다.

        

       그래, 별일 없을 때는 여전히 표정 변화가 별로 없긴 했다. 그런 것을 보면, 사실 이 일을 하기 전부터 원래 성격이 저랬던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어머님께서는 양혜인의 저런 면을 보고 나를 감시하기에 좋을 거라고 판단하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 관련된 일, 특히 나와 회장이 엮일 일만 나오면, 이 사람은 이렇게 표정이 무너졌다. 소희나 하늘이처럼 표정이 풍부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요즘은 ‘이 사람이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표정이 자주 바뀌었다.

        

       하긴, 원래도 인형 같은 사람이긴 해도, 찔러서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수준까지는 또 아니었지만.

        

       “어머님을 만나기 싫어서 장소를 옮긴 거잖아요.”

        

       “하지만, 신소희 씨의 집은 그만큼 알아내기도 쉬운 장소입니다.”

        

       “…….”

        

       음.

        

       뭐, 양혜인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긴, 소희가 나에게 고용되어있긴 해도, 소희의 신상정보를 알아내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소희가 일하기 위해서는 소희 아버지의 동의가 필요하고, 그 동의서나 소희 인적 사항이 적힌 서류나…… 전부 저택에 있을 테니까.

        

       아무리 양혜인이 잘 숨겨두었다고 해도, 어머님은 돈이 많지 않은가. 양혜인 혼자서 저택 전체를 돌아다니며 조사할 수는 없다.

        

       그리고, 굳이 저택 안에서 찾지 않더라도 방법은 무수히 많을 것이고. 그런 게 불가능했으면 보이스피싱같은 범죄 같은 건 있을 수 없었겠지.

        

       “하지만 그럴 거면 처음에 동의했던 이유가 뭔가요?”

        

       “그건…….”

        

       양혜인은 또 한 번 조금 망설이다가 말했다.

        

       “아가씨께서 그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하.”

        

       그 말대로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였다. 하늘이, 수아, 소희, 이렇게 세 사람 말고도 몇 명 정도 사람이 더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 목숨을 맡기더라도 절대로 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 명뿐이다.

        

       내 안의 그 사람은, 나와 같은 몸을 쓰고 있으니 이런 상황에서는 도움을 줄 방법이 없었고.

        

       “이수아 양께서 아가씨께 방을 제공하겠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구나.

        

       하늘이도 ‘부자’라고 할 수 있는 가정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내가 개인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존재는 수아 정도밖에 없었다.

        

       유진그룹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사실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유진그룹과 비교가 불가능하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친구 중에선 가장 여유가 있는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수아의 부모님은 동의 하셨나요?”

        

       “이수아 양 본인의 말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래요?”

        

       나는 내 옆에서 걷고 있는 소희 쪽을 흘끗 보았다.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리 옆을 걷고 있던 소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어 보였다.

        

       “선배 말대로 하는 쪽이 더 안전할 거야. 확실히, 내가 사는 집은 그냥 평범한 아파트일 뿐이고. 수아네가 훨씬 더 넓고 지내기 편할 거고.”

        

       “…….”

        

       나는 다시 양혜인 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들어가는 건 저 혼자겠죠?”

        

       “예,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신세 지는 몸으로 군식구를 더 데리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숙박비를 내겠다고 하는 것도 웃기고. 재산 대 재산으로 비교하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수아 집안이 방을 내어주고 돈을 받겠다고 할 정도로 빈궁한 것은 또 아니었다.

        

       ……그래, 뭐, 어차피 계속 지낼 것도 아니니까.

        

       “그럼, 그렇게 진행해 주세요. 아, 그리고.”

        

       “예.”

        

       “……저택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른 시일 안에 모두 교체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니, 교체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이른 시일 내에 모두 정리해주세요. 저택 내에서 허튼일을 할 사람이 있으면 안 되니까요.”

        

       “그렇게 되면 저택을 관리하는 인원이 많이 줄어들 텐데요.”

        

       “그럼 관리하는 방을 줄이죠. 어차피 쓰지도 않는 방들은 걸어 잠그고, 가구 위에 천을 씌우고…… 집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만 관리하면 되지 않겠어요?”

        

       “하지만, 혹시 그렇게 하다가 폐건물처럼 보이게 되면 주변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요?”

        

       “응. 방치된 건물에 귀신이 나온다느니 하는 소문이 돌고 그걸 찍어보겠다고 멋대로 들어가는 애들이 종종 나오기도 하니까.”

        

       “…….”

        

       불과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던 집인데도 그런 헛소문이 돌 수 있다는 걸까?

        

       하긴, 나를 따라다니던 소문을 생각해보면 당연히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나쁜 것도 없죠.”

        

       내가 그곳에 없다.

        

       다시는 그곳에 돌아갈 생각이 없다.

        

       그걸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니.

        

       아니, 오히려 그곳에 살던 내가 죽었다는 소문이 도는 것은 어떨까?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그래도 문은 확실하게 걸어 잠그고, 기왕이면 방 안으로 사람이 들어올 수 없을 정도의 관리는 되었으면 좋겠네요. 사설 경비업체에 연락해서 시간별로 순찰만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나의 말에, 양혜인은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대화가 끝날 때 쯤, 저 멀리 학교 교문이 보였다.

        

       교문 앞에 하늘이와 수아가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학교로 가는 동안에 학교 앞에 서서 어머님께서 오시는지 아닌지 확인하느라 그랬을 것이다.

        

       ……아니지.

        

       평소에도 내가 학교에 올 때까지 교문 앞에서 기다리곤 했으니까, 별로 달라진 것도 없으려나?

        

       “얘들아!”

        

       소희가 그 아이들을 향해 힘차게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다. 하늘이와 수아가 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녕!”

        

       하늘이가 환하게 웃으며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

        

       “…….”

        

       수업 내내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평생 이어온 마음을 완전히 정리하기에는, 몇 개월이라는 기간은 아직 너무 짧았다.

        

       어머님에게 복수하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전히 그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는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존재들이 더 생겼고, 그 존재들은 앞으로 나의 삶에서 어머님을 대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여전히 내 깊은 내면에선, 어머님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으로서.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소중한 어머니로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나를 찾는 어머님의 존재를 자각할 때마다, 나는 어머님의 웃는 얼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님을 증오한다.

        

       하지만 동시에 사랑하고 있다.

        

       이 마음은, 그 사람을 향한 마음과는 방향성이 묘하게 달랐기에,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교문 너머에 차가 오는 일은 없었다.

        

       어쩌면, 어머님은 나를 찾는 것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냥 버리는 패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쿡쿡 쑤셨다.

        

       그렇게 증오하는데도.

        

       볼 때마다 그 목을 조르고, 얼굴을 난도질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잃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에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다.

        

       결국 내가 편지를 쓰게 된 것도, 어머님이 앞에 없을 때였으니까.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누군가가 그런 근거 없는 소리를 했다.

        

       시선을 돌려보니, 소희와 하늘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누구 목소리였는지는, 제대로 듣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둘 중 누가 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말이기는 했다.

        

       “그래.”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그래야지.”

        

       근거 없는 말에, 근거를 댄다.

        

       나에게는 그럴 힘이 있었다. 그 사람이 증명해 보였던 것처럼.

        

       다시 한번, 스스로 최면이라도 걸듯 속으로 되뇐다.

        

       나는 어머님이 가진 것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절대로 물러서고 싶지 않은 선이 생겼고,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도 생겼다.

        

       그러니, 그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움직여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양쪽 중 한쪽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큰 회사를 운영하던 사람의 딸로서.

        

       그 그룹의 진짜 소유주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나에게 ‘이득’이 될 방향을 선택할 것이다.

        

       나에게 올 손해를 최대한 계산해서, 최소한의 손해로.

        

       어머님, 안타깝지만 당신은 ‘최소한의 손해’가 되어줘야겠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했던 그 선택은 너무 성급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저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했던 당신이니, 저도 당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주겠습니다.

        

       그리고 당신 하나만큼은, 포기해주겠어.

        

       ……기왕이면, 어머님께서 나를 정말로 사랑하셨기를.

        

       그리고 내가 어머님을 포기했을 때, 어머님도 절망하실 수 있기를.

        

       꼭, 나만큼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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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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