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51

     성장기.

     

     대부분의 어린 남자아이가 그러하듯, 누아르 지브롤터 또한 지난 몇 개월 사이에 엄청난 성장을 보였다.

     -키만 따지고 보면 이제는 다른 17살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굳이 ‘키’만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면, 당장 눈으로 보이는 부분인 키의 변화가 가장 눈에 띄기 때문.

     -벌써 이렇게 커지시다니. 이제는 제가 올려다봐야겠군요.

     제국 그림자 중 키가 제법 큰 웬즈데이 45조차 지금의 누아르 지브롤터를 향해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누아르 지브롤터를 따르는 검술 동아리 [마스터 소드]의 동아리원들도 누아르의 성장에 박수를 보냈다.

     키만 따지고 보면 약 5cm.

     14살 청소년이 3월에 입학한 날로부터 약 ‘4개월 ‘정도가 지나 어느덧 ‘학기말’이 되었고, 그동안 보인 성장은 키가 대표적이었다.

     키만 성장하였는가?

     아니다.

     검술 실력은 중급 기사 중에서 감히 따라 올 사람이 없고, 개인 생활 또한 정숙하고 엄숙한 기사로서 타의 모범을 보였다.

     

     정신적 성장.

     남들이 보면 ‘이제 좀 철이 들었구나’라고 말하는 그런 경우처럼, 그 웬즈데이도 ‘함부로 여자들에게 웃어주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이제는 하는 빈도가 제법 줄어들었을 정도로 누아르 지브롤터는 자신이 약간은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그런 건 자신의 생각이었을 뿐.

     키가 좀 자라고, 근육도 좀 붙어서 체격도 좀 커지고, 지브롤터에서 하던 것처럼 행동하지 않고 최대한 예의와 격식을 갖춰서 과거 사람들이 바라마지않는 ‘수호자’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중이라고 하더라도.

     “또다시 나를 실망시키는 구나.”

     눈앞의 청년에게는 아직 멀었다.

     여긴 누구.

     나는 어디.

     “누아르 지브롤터.”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워진 정신은 금방 누아르 지브롤터 자신을 부르는 고저 없는 목소리에 곧장 답을 내어놓았다.

     여긴, 오로솔 아카데미 협곡재단 이사장실.

     눈앞에 있는 협곡재단 이사장, 그레이 지브롤터 1명을 상대로 독대하고 있는 상황.

     이사장실로 불려 온 이유는-

     “그래. 이번 학기 종합 성적이 어떻다고?”

     “4.4입니다, 이사장님.”

     누아르 지브롤터.

     오로솔 아카데미의 제국식 학점제에 따른 1학기 종합 점수, 평균 학점 4.4.

     왕국의 다른 아카데미나 귀족들이 들으면 ‘고작 4.4?’라고 코웃음을 치겠지만, 오로솔 학생들이 1학기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 점수는 4.5다.

     4.4 / 4.5.

     비교하려면 역시 이 소수점 점수 사이에 다른 이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 알아봐야겠지.

     그래. 학점이다.

     학점, 그러니까 1학기 동안 다닌 아카데미에서의 학업 결과 때문에 불렸다.

     “축하는 하마. 너는 1학기 차석이다.”

     “…….”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평균 학점 4.5로 수석이지.”

     입학식 때와는 달라졌다.

     평가 내용 중에 ‘검술 대련’이 들어있었기에 누아르 지브롤터가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을 상대로 이겨 점수를 1점이라도 더 따냈던 때와 달리, 1학기 시험은 그렇지 않았다.

     “검술 수업은 둘 다 A+. 최대 학점을 받았지. 물론 그 안에서의 점수는 네가 높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따지면 제국어 수업에서는 너도 할 말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윽….”

     제국어 수업뿐이랴.

     A+로 도배된 모든 과목에서 누아르는 나리아에게 밀렸다.

     “다른 모든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검술 이외에는 전부 밀렸지. 인정하느냐?”

     “예.”

     학생회장이라거나 동아리 회장, 심지어 공주라는 것과 별개로 순수한 실력에서 종이 한 장 차이로 밀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점은 학점에서 ‘+’가 떨어질 정도의 차이는 아니었기에, 최종적으로 그 과목에서 얻은 둘의 학점은 같다는 것.

     “네가 학점이 깎인 부분은 어디에 있었지?”

     “기초군사학입니다.”

     “기초군사학에서 A+가 아닌 A 학점을 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나?”

     “…출석 점수에서 만점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아르는 주먹을 움켜쥐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 출석 점수. 눈앞의 시험은 어떻게 할 수 있어도, 그 시간에 충실하지 못했던 것은 어쩔 수 없지.”

     

     누아르는 직접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그레이 지브롤터가 자신을 향해 빤히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으니까.

     “부끄럽느냐?”

     “아닙니다.”

     부끄럽지 않다.

     “수치스럽느냐?”

     “그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억울하느냐?”

     “…억울하지 않습니다.”

     수치스럽지도 억울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할 말이 있느냐?”

     “기초군사학 교수님인 에드먼드 듀렉카스 교수님의 수업을 하루 들어가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 수업을 들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누아르가 고개를 들었다.

     “아니, 수업은 들어가더라도 수업에 들어가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막았을 것입니다.”

     “네가, 어떻게?”

     “…최소한 그 근처를 걷던 웬즈데이가 나가지 못하게 막았거나, 아니면 아예 그 ‘마도차량’을….”

     “틀렸다.”

     그레이 지브롤터는 단언했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 후회하는 것도 소용없고, 모래시계를 되돌릴 수 있는 기적은 오직 노스트럼 왕가의 혈통에게만 있지.”

     특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런 특권에 따른 폭거를 저지르는 자에 대해서도 ‘수호’를 외쳐야 한다고 하는 걸까.

     “내가 네게 실망했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수석을 놓쳤기 때문입니까?”

     “틀렸다.”

     그레이 지브롤터는 탁자 위에 올린 손 중 새끼손가락을 접었다.

     “수석이나 차석이나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 수석을 했다면 재단 이사장으로서 성적 우수 장학금을 줬겠지만, 그건 차석에게도 얼마든지 줄 수 있지. 차등은 있겠지만.”

     성적 때문에 실망했던 게 아니었던 걸까.

     누아르 지브롤터는 머리를 쥐어짜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사장님.”

     “모르겠다?”

     “예. 제가 결석한 건 제 사람을 지키기 위함이었고, 부득이한 일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제가 피해를 보기는 했지만, 적어도 그로 인해 부끄럽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

     누아르로서, 웬즈데이의 주인으로서 적어도 이 말 만큼은 분명히 할 수 있다.

     “저를 따르는 이가 위험에 빠졌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누아르 지브롤터이기 이전에 왕국의 기사이자 한 명의 사내로서, 그건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저는 제 사람을 지키려고 할 겁니다.”

     “그로 인해 수석을 놓치게 되더라도?”

     “수석이 아니라 차석을 놓치게 되더라도.”

     “흐음.”

     누군가는 기개라고 생각할 수 있고, 만용이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레이 지브롤터를 대하는 모든 이들이 다 비슷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레이 지브롤터 이사장은 하나의 방면 외에는 그 속내를 짐작하거나 알 수 없기에, 무언가 함부로 속단해서는 안 될 복잡한 인간이라고.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

     

     그 한 명에 대한 논리 이외의 모든 것은 비틀리고 꼬여있는 존재이며, 설령 친동생이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존재.

     “말은 청산유수로군. 좋다. 그렇다면 알려주지. 네가 나를 실망시킨 이유를.”

     그레이 지브롤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는 지브롤터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 모든 이들에게 ‘좋은 사람’으로서 대하고 있고, 역대 지브롤터가 그러했던 것처럼 ‘수호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마냥 ‘수호자라서’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 저기….”

     “그래. 간단히 이야기해주마. 힌트만 내어줄 테니, 다음에 다시 올 때는 부디 내가 실망할 일이 없도록 해라.”

     그레이 지브롤터는 서랍 안에서 종이 세 장을 꺼냈다.

     “교수처에 제출된 기초군사학 강의 계획서 사본. 학생 대상으로 분배된 강의 계획서 중 하나. 그리고 아카데미 학생들을 대상으로 배분된 아카데미 길라잡이 336쪽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저기, 이건.”

     “누아르.”

     그레이 지브롤터가 담담한 목소리로 강의 계획서를 가리켰다.

     “여기 어디에 출석이 점수가 들어간다고 적혀있느냐.”

     “……어?”

     

     순간, 누아르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점수에는 들어가겠지. 하지만 3번의 결석을 하면 ‘F 학점’을 준다고 되어 있지, 지각이나 결석으로 인한 감점은 미리 고지되어 있지 않았다.”

     “…….”

     “이만하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

     “몰랐으니까, 라는 답은 한 번이면 족하지. 가봐.”

     “…해도 되는 겁니까?”

     “나에게 물을 건 아니지. 나는 재단의 이사장이고, 선택하는 건 너다.”

     그레이 지브롤터가 지팡이를 들어 그 끝으로 방문을 가리켰다.

     “가만히 점수를 받는 것도 네 선택이지만….”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누아르는 바로 허리를 숙였다.

     “기숙사에 공지된 학사일정에 따르면, 닷새 안으로는 학점 정정 요청이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

     “수석에 욕심이 없는가.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마냥 지브롤터라고 해서 당한 거라면, 당당히 나서서 권리를 되찾겠습니다.”

     “음.”

     “자신들이 지켜지고 싶다면, 그에 맞는 대우를 보여야 할 테니까…!”

     누아르는 나름의 대답과 결론을 내린 채, 그대로 이사장실을 떠났다.

     “훗.”

     떠나는 순간, 어딘가 낮은 웃음소리가 귀에 들렸다.

     그것이 만족인지 아니면 비웃음인지는 누아르로서는 알 수 없으나.

     “…형이 뭐라고 생각하든 말든.”

     누아르는 이사장실 복도 창문 아래에 보이는 여러 동기들을 슬쩍 바라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지브롤터에 부끄럽지만 않다면.”

     그 가운데.

     한쪽 얼굴을 긴 앞머리로 가린 백발의 여인이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눈가에 상처를 가진 채.

     * * *

     오로솔 아카데미가 시작된 것도 어느덧 4개월.

     

     1학기가 끝났고, 성적이 나왔다.

     제국식 학점제도에 따라 받은 성적표는 노스트럼 왕국 학생들에게 생소한 방식이었지만, 일장일단이 있는 만큼 반응은 각자 다 달랐다.

     그러나 그 어떤 학생도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권위에 대한 도전.

     자신의 점수에 대한 분개.

     학생으로서 주어진 권위를 가지고 직접 움직이느냐 마느냐.

     “그래. 그거다, 누아르 지브롤터.”

     간단히 말하자면.

     “교수가 머저리라면 학생이라도 지랄하는 게 정답이지.”

     교수가 규정을 가지고 장난질을 쳤다면, 학생은 그 규정을 바탕으로 따지고 들어야 비로소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찾을 수 있다.

     “참으로 귀찮지만, 누아르 지브롤터가 먼저 움직여야 다른 학생들도 움직이기 시작할 테니.”

     지금 이 경우에는 점수일 터.

     “정당하게 점수를 책정한 교수도 있으나, 정치적이거나 개인적인 이유로 점수를 책정한 교수도 있으니.”

     학점은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그 학점을 책정하는 건 기본적으로 각 교수의 권한이다.

     그리고 주어진 학점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수 있는 권한은 그 수업을 듣고 학점을 받은 학생에게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나는 책상 아래로 물었다.

     “단지 지브롤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

     책상 아래에 설치된 금빛의 마석으로부터 미약한 빛이 흘러나왔다.

     “차기 왕위 계승자가 생각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떻게든 점수를 깎아서 기어이 차석을 만들어 내는 파벌에 대하여, 노스트럼을 이끌어나가실 우리의 왕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사형은 없습니까?]

     금빛 마석으로부터 흘러나온 목소리는 그 높낮이는 없었으나, 내용은 살벌하기 그지 없었다.

     [이런 자들이 교수라니. 방학이 끝난 뒤에 다시 교단에 세워서는 안 될 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시죠?”

     [예. 무엇보다, 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학생들에게 일괄적으로 낮은 점수를 교묘히 부여했죠.]

     “…….”

     나는 묵묵히 솜누스 차를 홀짝였다.

     [황손녀께서는 방에 있습니까?]

     “예. 생전 처음 받아보는 학점이라면서 침대에 누워있습니다.”

     [다른 그림자들은?]

     “…그들은 딱히 신경이 쓰이지는 않지만, 평균 학점 4.0이 되지 않으면 그들은 목숨이 위태롭죠.”

     뭐, 별일은 아니다.

     “오로솔 아카데미는 교육의 장. 신분과 국적, 재산과 관계없이, 학생들은 그저 자신들이 노력한 결과에 따라 정당한 결과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한 줄로 요약하자면.

     노스트럼이 노스트럼이 했다.

     [시발…점은 누아르가 되는 거군요.]

     “…예?”

     [멍청한 교수들을 솎아내기 딱 좋은 때입니다, 경.]

     ‘경’이라고 말했다.

     “예, 왕녀님. 준비하겠습니다.”

     [숙청을 시작하죠.]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망국의 공주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 근간은 바뀌지 않으니.

     [세인트 엉덩이나 빨아제끼는 쓰레기들을.]

     “…….”

     철혈의 왕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