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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1

   “왜 안 된다는 거죠?”

   

   조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놓고 기분이 나쁘단 티를 내자 문 앞을 가로막고 있던 사제가 식은땀을 흘렸다.

   

   루시나 아서에게야 얼빵 영애라는 소리를 들으며 놀리기 좋은 대상으로 통하는 조이이지만 그 둘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는 다르다.

   

   차가운 눈동자. 고압적인 목소리. 기품과 품위가 넘치는 몸짓.

   

   겉으로만 보면 귀족영애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조이를 편안히 대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대 파트란 공작 가문의 영애이니 말이다.

   

   말 한 마디로 가문을 무너트릴 수 있다는 소문이 도는 파트란 가문의 귀하신 따님이다. 그 앞에서 어찌 사제 나부랭이가 강하게 나갈 수 있을까.

   

   사제는 조이의 표정이 안 좋아질 때마다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지만 그렇다 한들 그는 발을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그가 지키는 문의 뒤편에는 성녀님께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까.

   

   아무리 파트란 가문의 영애라 할지라도 얼마 전에 커다란 일을 겪은 성녀님의 휴식을 방해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파트련 영애님. 내일 다시.”

   “당신. 제 말이 이해가 안 되시나요?”

   

   페이비의 친구로써 너무도 걱정이 되어 견딜 수 없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었지만 사제에게는 전혀 다르게 들렸다.

   

   그의 입장에서 조이의 말은 감히 내게 대역하다니. 목이 날아가고 싶은 거냐? 는 협박이었던 것이다.

   

   “괜찮아요.”

   

   사제의 이마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던 때에 문 너머에서 부드럽고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여보내주세요. 사제님.”

   “허나 성녀님.”

   “저 정말 괜찮아요.”

   

   페이비가 재차 이야기를 하자 사제는 느릿하게 고갤 끄덕이고는 방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간 조이는 침대에 앉아 있는 페이비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조이. 어서 와요.”

   

   따스한 웃음을 짓는 페이비의 얼굴은 여느 때와 같았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한 부분이 달랐다.

   

   그녀의 눈가가 부어있었던 것이다. 저것은 분명 눈물을 흘린 흔적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페이비는 조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강한 정신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성녀라는 직함 때문에 여러 험하고 불행한 지역을 돌아다니면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던 그녀가 눈물을 흘리다니?!

   

   “괜찮나요?”

   “보시다시피 멀쩡해요.”

   “정말요?”

   “물론이에요. 조이.”

   

   캐묻고 싶은 것들이 차고 넘치는 조이였지만 그녀는 물음을 던지는 대신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익숙한 듯 방 한 쪽에서 의자를 끌고 와 페이비의 옆에 앉았다.

   

   “많이 걱정했습니다.”

   

   이 말은 자그마한 가감도 없는 조이의 감정 그 자체였다.

   

   루시가 떠나간 뒤에도 프레이와 함께 단련을 거듭하던 조이는 훈련장에 다급히 달려온 영애로부터 페이비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그녀가 괴한에게 습격을 당해 정신을 잃었으며 교회로 실려갔다는 것을.

   

   조이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다급히 교회로 내달렸다.

   

   훈련을 거듭하느라 흐트러진 상태라거나, 복장의 우아하지 않다거나 하는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새겨진 것은 오롯이 친구의 위험뿐이었다.

   

   “알른 영애께서 구해주셨다면서요?”

   

   조이가 교회에 도착했을 무렵은 이미 상황이 끝난 뒤였다.

   

   사제 중 하나에게 이야기를 듣기로 페이비가 쓰러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루시가 찾아와 페이비를 구원해주었다고 했었지.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조이는 루시가 왜 그리 갑작스럽게 훈련장을 떠났는지 이해했다.

   

   루시는 다른 사람의 위기를 파악했던 것이다.

   

   과거 아카데미의 골목에서 조이가 습격을 당했을 때처럼.

   

   어떤 방식으로 그를 알아차린 것인지는 몰라도 이번에도 루시는 그를 눈치챘고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을 움직였다.

   

   …말씀을 해주셨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도와드렸을 텐데. 정말이지 그 분은.

   

   “네. 그 분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무척이나 위험했을 거에요.”

   “알른 영애께 감사를 드려야겠네요.”

   “네.”

   

   페이비의 대답이 흘러나온 후 방 안에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지금도 조이는 꺼내고 싶은 말들이 한없이 많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왜 울게 된 것이냐? 정말 괜찮은 게 맞느냐?

   

   몇 안 되는 진짜 친구인 페이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소심한 속마음을 지닌 조이가 진정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혼란스러운 머릿속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겉으로 침착한 체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페이비에게 괜한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생긴 것만 보면 남들이 뭐라하는 제 할 말을 다 할 것 같은 조이지만 결국 그 속은 친구의 눈치를 보는 여린 여자아이였으니까.

   

   “조이. 듣고 싶은 게 많은 거란 걸 알아요. 천천히 말씀을 드릴게요.”

   

   조이와 오랫동안 알고 지낸 페이비는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사자가 자기 눈치를 보는 상황에 웃음을 터트리고는 목소리를 냈다.

   

   “고마워요.”

   “그런데 그 전에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뭐죠?”

   “알른 영애께서는 무얼 좋아하시나요?”

   “감사인사를 전할 때 함께 할 선물에 대해서인가요.”

   

   단번에 페이비의 의도를 파악한 조이는 품 안에서 꺼낸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머리를 굴렸다.

   

   알른 영애께서 좋아하시는 거라.

   

   과거의 루시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라면 조이는 손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녀는 화려한 것을 좋아했다.

   

   비싼 드레스. 화려한 장신구. 커다란 보석. 아카데미의 입학하기 전의 루시는 사치와 허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영애였다.

   

   허나 최근의 루시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꾸미는 데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화장품도 거의 바르지 않고. 화려한 반지나 목걸이 머리띠도 거의 착용하지 않았으니까.

   

   거기에 일상 속에서도 교복 이외에 다른 복장은 입지도 않으시니.

   

   요즈음의 알른 영애라면 미용을 할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메이스를 휘두르려고 하지 않을까.

   

   그러니 화려한 부류를 제외하고 최근의 알른 영애께서 좋아하는 건… 으음…

   

   “조이?”

   “…잠시만요.”

   

   최근 들어서 루시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조이였지만 그 활동은 대개 수련의 연속이었다.

   

   바닥에 널부러질 때까지 달리기를 하고,

   

   그런 후에는 대련을 하며 움직임을 익히고,

   

   가끔씩은 쓰러질 때까지 던전 공략을 하러 가고.

   

   밤중에는 마력의 단련을 하고.

   

   상황이 이러했으니 조이는 루시가 좋아하는 것을 거의 몰랐다.

   

   물어볼 틈조차 없었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한 발자국을 더 뛰어야 하는 게 그들의 생활이었으니까.

   

   미간이 찌푸려질 때까지 고민을 이어가던 조이는 먼 기억 속에서 하나의 추억을 건져 올릴 수 있었다.

   

   이전에 티 에라 마스에 갔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던 루시의 모습을 말이다.

   

   “알른 영애께서는 맛있는 것을 좋아하세요.”

   “맛있는 거라. 으음.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이네요.”

   “도와드릴까요?”

   “네. 부디.”

   

   *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간신히 연습모드에서 탈출하게 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멍하니 벽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느낌이 이상해.

   

   오랫동안 숙면을 취한 덕분에 몸은 무척이나 상쾌한데 정신은 피곤에 쩔어 있다니.

   

   도저히 침대에서 일어날 엄두가 나질 않아서 베개에 머리를 가져다댔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흐갸아아아. 진짜 고문이 따로 없네.

   

   <흐음. 이런 식으면 앞으로도 낮에는 훈련을 하고 밤에는 정신세계에서 신성을 다루는 법을 연습하면 되겠구나.>

   ‘할아버지. 제가 미치는 거 보고 싶으세요?’

   <공손한 어투를 들으니 마음이 안정되는 구나. 항상 이랬으면 참 좋았으련만.>

   

   할배. 왜 자꾸 자기가 불리한 거에는 대답을 해주지 않는 겁니까?

   

   애초에 질 전장에는 들어가지 않겠다 그거에요?!

   

   자꾸 그러면 머릿속으로도 메스가키스럽게 이야기하는 수가 있습니다?!

   

   할배를 말싸움의 한 가운데로 이끌기 위해 협박했더니 할배가 헛웃음을 흘렸다.

   

   <본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도 억울하구나. 훈련이 과열된 데에는 그대의 잘못도 있지 않은가.>

   

   크윽! 비겁하게 팩트로 공격을 하다니!

   

   할배의 말은 사실이었다.

   

   연습 모드에서의 훈련이 과열된 데에는 분명 내 책임도 있었으니까.

   

   처음에 할배가 요구한 목표를 달성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놀랍게도 이 세상의 연습모드에서는 스킬 숙련도가 올라갔던 것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를 하고 있었는데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점차 신성을 다루는 데 익숙해지는 걸 느끼며 확신하게 됐지.

   

   내 옆에 신성박투술의 원류인 할배가 있는 것도 좋은 요소였다.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할배는 가르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거든.

   

   자기가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 전파한 신성박투술에 대해서라면 더 전문적일 수밖에 없지.

   

   그렇게 나는 빠른 속도로 신성박투술의 숙련도를 올렸고 오후 11시가 되었을 무렵에 허수아비의 머리를 날리는 데 성공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온갖 고생과 고통 끝에 목표한 바에 도달해서 무척이나 기뻤고 할배도 재능이 있다면서 나를 칭찬해 주었으니까.

   

   근데 있잖아. 이게 사람이 고생 끝에 원하는 걸 이루면 머리에 도파민이 엄청 올라오거든?

   

   자기 주제도 모르고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적어도 그 때의 나는 그랬어. 박살난 허수아비의 머리를 보고서 신이 난 나는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다는 할배의 말에 이렇게 대꾸했지.

   

   ‘할아버지! 저 아직 더 할 수 있어요!’

   

   내가 그 때에 간과했던 사실은 순수한 의욕을 담아 말을 했더라도 그것이 왜곡되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단 것이었다.

   

   특히 내 메스가키 스킬의 왜곡이라면 더하지.

   

   ‘겨우 이걸로? 너무 쉬운 거 아냐? 신성박투술도 별거 없네. 하긴 낡아빠진 할배의 기술이니까 허접한 게 당연한가.’

   

   내 말이 메스가키 스킬을 통해 왜곡되었음을 알고 있는 할배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정수를 모아둔 기술을 모욕하는 건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마에 실핏줄이 올라온 할배는 아직 나아갈 길이 산더미처럼 남았다면서 밤을 새워가면서 나를 굴려댔다.

   

   대련이라는 명목 하에 몇 번이나 벽돌 위에 널부러졌던지.

   

   솔직히 말해서 이것도 내 잘못이 없진 않았다.

   

   바닥을 구르다 보니까 열 받아서 할배한테 도발을 걸어버렸거든.

   

   그거 때문에 열이 받은 할배가 나를 더 거세게 굴리고,

   

   구르다 보니 열이 받은 내가 도발을 걸고.

   

   대충 이런 식으로 고행의 스파이럴을 굴리다 보니 어느새 아침이 되더라.

   

   앞으로는 매일 이런 일상을 보내야 하는 건가. 빡센데.

   

   <그리고 말이다. 지금 이렇게 구르는 게 가문에서 구르던 것과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잖으냐.>

   

   …어. 그런가?

   

   할배의 대답을 들은 나는 몇 달 전 알른 가문에서 겪던 일상을 돌이켜 보았다.

   

   그리고나서 납득해버리고 말았다.

   

   딱히 다른 게 없네?

   

   굳이 따지고 보면 지금이 더 편하지. 최소한 몸은 피곤하지 않잖아.

   

   아카데미의 수업 때문에 휴식이 보장되는 것도 있고 말야.

   

   나 대체 알른 가문에서 얼마나 빡세게 살았던 거냐.

   

   <자아. 괜한 잡생각을 할 시간에 훈련장으로 가자꾸나. 현실에서도 몸을 움직여봐야 할 것 아니더냐.>

   

   ‘네.’

   

   할배의 이야기에 자연스레 납득하고만 나는 기지개를 키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래. 현실에서도 신성박투술을 써봐야지.

   

   연습모드에서의 수련이 현실에서 성과를 이루어내는지 제대로 확인해봐야 하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카데미 생활에 해이해진 메스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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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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