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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2

    <152 – 아가씨의 아카데미 생활>

     

    밤새 재잘거리며 조나의 품속에서 떠든 기억만 나고 잠든 기억은 없는데, 눈을 뜨니 침대였다.

    노곤한 기운에 기지개를 끙 피며 아등바등 팔을 뻗으니 오랜만에 숙면 후의 개운함이 느껴졌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니 잠들었던 곳은 아카데미 면회동에 마련된 숙직실이었다.

     

    “훈련시간을 지켜서 일어나셨군요.”

    “헤헤. 기본이죠.”

    “잘하셨습니다. 새벽구보를 마치시면 아침은 제가 차려드리죠.”

    “와아!”

     

    돌핀팬츠 언니들 사이에서 열심히 새벽운동을 하면서 기대감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오크노디. 좋은 일이라도 있었니?”

    “어제가 면회였잖아. 보호자가 왔나보지.”

    “우와. 부럽다. 보호자가 온 학생은 세 명에 한 명도 안 된다던데.”

     

    대부분이 하급반 학생들로 이루어진 돌핀팬츠 언니부대의 부러워하는 목소리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헤헹. 언니들도 조나를 보면 깜짝 놀랄걸요? 제 집사가 얼마나 유능한데요.”

    “집사? 부모님이 아니라?”

    “파파는 바빠서 못왔대요!”

    “엄마는?”

     

    어… 그러게?

    함께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고민에 잠겼는데 그런다고 모르는 사람을 알 길은 없었다.

     

    “몰라요!”

    “몰라?”

    “마마는 들어본 적 없어요!”

     

    돌핀팬츠 언니들이 갑자기 입을 헙하고 막았다.

    질문을 던진 언니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미안해, 오크노디…! 내 부주의함 때문에 괜히 싫은 기억을 떠올렸지?”

    “편부모 가정인가봐.”

    “아빠 혼자 딸을 키우다니 진짜 고생하셨겠다.”

    “재혼도 안 했나봐.”

    “아버지가 어머니를 진짜 사랑하셨나보다.”

     

    쑥덕쑥덕 떠드는 소리가 꼭 지금이야, 얼른 울어! 라고 등을 떠미는 것 같았는데 진짜 엄마도 아닌 사람한테 별 생각이 없었던 나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엄마 보고 싶고 그러지는 않아?”

    “괜찮아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인걸요. 게다가…”

    “게다가?”

    “마마처럼 곁에서 보살펴주는 이사벨과 아카디아가 있는걸요!”

    “으아아, 너무 귀여워!”

    “두 사람이 부러워!”

    “오크노디가 원하면 우리도 마마라고 불러도 좋아!”

     

    졸지에 마마가 다섯 명이나 생겼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언니들이 막 껴안고 쓰다듬고 간식도 주는 통에 행복한 새벽운동이 되었다.

     

    “오크노디. 괜찮으면 집사라는 사람도 같이 보러 갈 수 있을까?”

    “미안해요. 아침은 조나랑 둘이 먹으려고 했거든요!”

    “가족처럼 친한 분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을 수도 있지. 오지랖 부리지 말고 보내주자.”

     

    갈색의 긴 머리를 뒤로 묶어 내린 말총머리 돌핀팬츠 언니가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돌아보고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해주었다.

    마주 손을 흔들어주며 헤어지고 기분 좋게 조나에게 돌아가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곱절은 경쾌했다.

     

    “헤헹.”

     

    괜히 막 웃음이 나오고 즐거워진다.

    아침을 함께 맞이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즐거운 일이었나?

    어제까지만 해도 나한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숙직실이었는데.

    그곳에 그저 조나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건만.

    그것 하나로 돌아갈 집이 생긴 것처럼 즐거워졌다.

     

    “조나, 저 왔어요!”

     

    아침을 차렸을 조나를 기대하며 활짝 문을 열었다.

    숙직실 한편에 설치된 조리대.

    엎어진 냄비와 바닥에 쏟아진 전골 옆으로 조나가 쓰러져있었다.

     

     

    * *

     

     

    “마나탈진입니다.”

     

    의무실에 상주하는 치료사가 말했다.

    조나는 겨우 한숨 돌렸다.

    마나를 다루는 이는 간혹 자신에게 허락된 마나의 용량보다 더 큰 힘을 사용하면, 신체의 기력이나 정신력까지 끌어다 쓰며 탈이 나고는 한다.

    디스트로이어의 이중경계를 벗어나고자 무리했던 어젯밤의 그처럼 말이다.

    결정타를 입힌 것은 아마도 클린마법.

    오크노디를 안심시키려고 사용했던 마법이었다.

    아침까지는 어떻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버텼지만 끝내 탈이 난 것이다.

     

    “미안해요, 조나…”

    “아가씨가 사과할 일이 아닙니다.”

    “그치마안… 저 때문에 클린마법 썼잖아요…”

     

    고작 30분 남짓한 의식상실이다.

    강건한 신체는 그 짧은 사이에도 더 많은 마나를 흡수하고 있다.

    한 번 바닥을 쳤던 마나는 더 빠르게 차오르기 마련이니, 오히려 조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더욱 강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바구니를 덮은 천까지는 청소하지 못할 때부터 무리했던 걸 깨달았어야 했는데… 제가 조나를 붙잡고 떠들어대는 와중에도 줄곧 아팠었죠?”

     

    하지만 이런 성장은 기쁘지 않다.

    아가씨를 슬프게 만들고 자괴감을 심어주다니.

    집사로서는 가히 실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아가씨. 잠시 손목을 내어주시겠습니까.”

    “훌쩍. 손목이요…?”

     

    팅팅 부운 눈으로 손을 내미는 오크노디.

    하얗고 고운 손목을 쥐며 가볍게 마력을 끌어올렸다.

    어벙한 얼굴의 아가씨가 갑자기 늘어난 중량을 견디지 못하고 쿵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으걋!”

    “아가씨 정도는 손가락 하나만 닿아도 이렇게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를 불쌍하게 여기며 그리 마음고생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그만해요!”

     

    옷 위에 코팅했던 금속을 도로 회수하자 잠깐 사이에 부쩍 초췌해진 아가씨가 한숨을 돌렸다.

    식은땀을 잔뜩 흘릴 정도로 막대한 중량에 짓눌린 경험이 인상 깊었나보다.

     

    “이렇게 강한 분이 어쩌다 마력탈진으로 쓰러지신 거예요?”

    “교수 한 명과의 마찰이 있었습니다. 아가씨께서 신경 쓰실 일은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제 집사가 쓰러졌는데.”

     

    세모꼴로 변한 눈이 화가 아주 많이 나보인다.

    화가 나도 귀여워 보이는 아가씨의 모습은 집사로서 꽤 모시는 보람이 있다.

     

    “그러지 마시고 얼른 강의나 들으러 가시죠. <보호자 참관주간>에는 아가씨가 평소 듣는 강의를 보호자들이 참관할 수도 있습니다.”

    “아참. 강의를 깜빡할 뻔했어요!”

     

    부축을 하려는 아가씨를 한 손가락으로 이마를 밀어 떼어놓고는 옷깃의 구김을 폈다.

     

    <메탈코팅>

    <연미복 일상태세>

     

    <메탈워커>

    <자동보행보조 – A타입>

     

    마나탈진 후에 어느 정도 회복이 되기 전에 재차 마나를 사용하는 것은 마나기관에 끔찍한 고통을 일으키는 짓이지만 그에게는 의무가 있다.

    재단을 대표해서 파견된 재단대리인으로서, 아가씨를 모시며 돌보는 집사이자 보호자로서 품위와 품격을 유지하며 참관강의에 참석할 의무가.

    자격도 기회도 지니지 못한 이들에 비하면 고통을 참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가씨의 친구들도 어서 보고 싶군요.”

    “제가 친구를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지 알면 깜짝 놀랄 걸요? 잔뜩 소개시켜드릴게요!”

     

    세 걸음을 걸을 때마다 한 번씩 돌아보며 유심히 얼굴을 살펴보는 아가씨.

    아픈데 아프지 않은 척 하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모양새에 도리어 이쪽이 걱정되는 마음이 들었다.

    기프트 아카데미를 이렇게 착한 마음씨로 다니고 있어서야 어디 생존이나 가능할까.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겠군.’

     

    강의실로 가는 길.

    조나는 오래된 기억들을 더듬었다.

    한때의 그에게도 주어졌던 기회.

    힘겨운 시기를 함께 보내던 친구라고 부를 존재들을.

    많은 이들이 있었다.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던 이도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는 극소수.

    눈을 감으면 그들이 지르던 비명과 저주가 생생히 들린다.

     

    “늦었군요, 오크노디 학생. 홈룸 시간이라도 지각은 좋지 않습니다. 어서 자리로 가서 앉으십시오.”

    “에헤헤. 죄송해요!”

    “음. 웃는 얼굴을 보니 차마 감점을 못 주겠군요. 이번 한 번만 봐드리는 겁니다.”

     

    월요일 1교시.

    상급반 홈룸강의를 맡은 마하바라타 교수.

     

    “처음 뵙겠습니다, 교수. 오크노디의 보호자인 조나 와이히엠하이입니다.”

    “흐음?”

     

    변신술의 대가이자 드래곤 교장의 최측근이기도 한 그가 조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묘한 기시감을 느낀 것처럼 멈칫멈칫 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마하바라타는 교사로서의 자신의 본분을 우선시했다.

     

    “예에. 참관 도중에는 다른 보호자들이 앉은 구역에서 빈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상급반 학생들의 보호자들답게 하나같이 일국의 대귀족, 삼국에 이름을 널리 알린 고위기사, 마탑의 고위마법사 등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거대한 바위나 높은 탑이 들어선 것처럼 숨 막히는 존재감을 지닌 보호자들이 학생들을 피해 저들끼리 무형의 경계를 펼쳐 신경전을 겨룬다.

    그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고 있으면 조나의 존재는 그리 눈에 띄는 수준도 아니었다.

     

    “저 자가 그 소문만 무성한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관계자인가?”

    “느껴지는 기세는 그리 대단치 않군.”

    “실력이 아닌 그 음험한 수작으로 대리인의 자리에 선출되었나. 아이만큼 불길한 사내로군.”

     

    힘의 우위는 분명히 저쪽이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상대를 경계하는 것은 저쪽이다.

    이것이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이름값.

    오크노디가 파파라 부르는 보스의 저력이다.

     

    꾸벅.

     

    눈을 마주친 학생이 웃는 얼굴로 눈인사를 건넸다.

    암흑상인 지젤.

    아카데미 내에서 오크노디의 곁을 지켜준 사내였다.

     

    이사벨. 손오천.

    그와 함께 다니는 이들은 탐탁찮은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다른 이들은 혹여나 무슨 험한 일이라도 당할까봐 눈도 못 마주치고 급히 고개를 돌린다.

    두려움은 차라리 낫다.

    경멸과 혐오의 눈으로 뒤에서 째려보는 제국그룹 학생들이 거슬렸다.

     

    어른들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경계를 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가씨의 아카데미 생활이 정말 힘들어 보이는군.’

     

    재단관계자가 있는 와중에도 이 정도의 태도를 보이는 학생들이 재단의 공식장학생인 아가씨만 있을 때에는 어떻게 대할까.

    분명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가씨의 편지나 아카데미에 심은 스파이의 보고로 듣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

    이 시점에서 조나는 전날 아가씨가 했던 이야기는 전부 뒤로 밀어두었다.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던 아가씨가 실은 심각한 상황을 아무것도 아닌 척 자신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애썼을 가능성이 생겼으니까.

    아가씨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그녀의 말은 더욱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교우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소중하게 여겼던 교우관계도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국학생들보다 자신을 더욱 적대시하는 이사벨과 손오천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저들은 오크노디를 도울 수 없다.

    아가씨야 저들을 친구로 생각하지만 저들도 아가씨를 친구라고 여길까?

    친구가 맞더라도 그녀를 도울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설령 의지가 있더라도 능력이 부족하다.

     

    ‘재단의 대리인에게는 재단본부의 지원을 요청할 권한이 있지.’

     

    그리고 아가씨에게는 재단의 지원이 필요했다.

    지금까지의 간접적인 지원 이상으로 아카데미 생활에 즉시 영향을 미칠 보다 확실한 지원이.

     

    재단의 인력을 추가로 투입해서라도 아가씨를 적극적으로 지켜드리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은 본인의 협조도 필요하다.

    이쪽에서 돕고 싶어도 당사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아가씨의 교우관계를 정리해야겠군.’

     

    새로운 인연에 마음을 의지할 기회를 만든다.

    아가씨를 위해서는 불필요한 친분을 쳐낸다.

    그 빈자리에 보다 유익한 인연을 심어주자.

     

    실로 완벽한 계획이다.

    이거라면 아가씨의 아카데미 생활이 보다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물론 정든 인연을 아가씨가 쳐내기는 힘들겠지.

    더럽고 힘든 일은 집사가 대신 할 몫이다.

    손오천과 이사벨.

    두 학생을 보는 조나의 입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눈은 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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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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