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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2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관악산 아래 등산로의 입구. 

       

       막 불이 들어온 가로등 하나가 등산로를 막은 입입금지(立入禁止) 테이프를 비추고 있는 앞으로, 경찰차 한 대와 승합차 한 대가 천천히 멈춰섰다. 

       

       승합차 문이 열리자 예닐곱 명의 순사들이 내렸는데, 순사들의 손에는 아리사카 소총이 들려져 있었다. 경찰차에서도 순사 두어 명이 내렸다.

       

       마지막으로 경찰차에서 나온 사람은 일반 순사복이 아닌 헌팅캡에 가죽재킷 차림으로, 허리에는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 사내는 다름아닌, 특별고등경찰인 강 형사. 차에서 내린 강 형사는 순사들에게 지시했다. 

       

       『좋아! 일단 여기서 잠시 대기하지.』

       『예!』

       

       모두 합쳐 열 명의 순사들은 등산로 입구 주변에 모여 앉았고, 강 형사도 적당한 곳에 앉아 담배를 꺼내물었다. 순사들 중 순사부장 계급의 경찰이 강 형사에게 다가와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며 말했다.

       

       『그나저나 녀석들, 입입금지인데 정말로 들어갔네요.』

       

       그 말에, 강 형사는 담배를 물고는, 입입금지 테이프 너머 어두워져 잘 보이지 않는 등산로를 올려다보고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잘 알지. 조선 놈들은 하지 말라면 더 하는 습성이 있거든. 사상이 불량한 녀석이라면 더더욱.』

       

       강 형사가 쫓던 것은 방금 산으로 올라간 깡마른 더벅머리 남학생, 송병오였다.

       

       저녁을 먹으러 경성 부내를 다니다가 우연히 스쳐지나간 그 깡마른 더벅머리 남학생은, 저번에 청계변 판자촌에서 불온서적을 흘린 더벅머리 녀석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여학생과 히히덕거리며 어딘가로 가는 모습에, 순사 몇을 차출해서 따라갔더니 이곳 관악산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왜 여기서 대기하는 겁니까? 바로 쫓아가 잡으면 되지 않습니까?』 

       

       젊은 순사부장의 물음에, 강 형사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푸하하! 설마, 내가 저런 잔챙이 하나 잡는 것이 목적으로 보이나?』

       『예?』

       『야마자끼! 자네는 아직 무르군. 그래서 네가 언제까지고 순사부장인 거야!』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순사부장 야마자끼는 특고 강 형사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대꾸했다. 비록 보통경찰인 자신의 직속 상관은 아니지만 직급상 경부보, 즉 순사부장인 자신보다 직급이 높았으며, 게다가 조선인이라는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특별고등경찰의 경부보까지 올라갔다는 것은, 그야말로 ‘실적’을 인정받아 올라간 자리라는 뜻이었으니…… 존경심과 경외심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강 형사는 담배를 든 손으로 등산로를 가리키고는 말했다.

       

       『생각해 봐. 저 둘을 미끼로 쓰는거야.』

       『에, 미끼입니까?』 

       

       멍청하게 대답한 순사부장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깨달은 듯이 아! 하고 말했다.

       

       『아, 설마!』

       『그래. 혹시 알아? 이 산에 그 늑대가 숨어있을지도.』 

       

       만약 이 산에 늑대가 숨어있기라도 한다면—늑대란 놈은 영리한 녀석이라 경찰이 떼거지로 몰려가면 숨지만, 학생 한두 명이 겁없이 산에 들어가면 분명 덮칠 것이다.

       

       더벅머리 녀석과 여학생의 머리색을 보니 각성자일테고, 더벅머리 녀석이 허리에 찬 권총을 보면 사격을 하는 놈이리라. 늑대가 나타나면 분명 총성이 울리겠지. 

       

       저 학생들이 늑대에게 죽어도 상관은 없다. 저런 풋내기 ‘맑스 보이’ 한 놈 잡아들이느니, 저 녀석을 미끼로 써서 늑대를 잡는 것이 낫다.

       

       강 형사는 그렇게 설명하고는 덧붙였다.

       

       『그 때 바로 진입해서, 늑대 사냥의 공을 가로채는 거다.』 

       『과연, 일석이조로군요!』 

       

       순사부장은 감탄하더니, 곧 의문을 띄우며 다시 물었다.

       

       『하지만, 늑대가 없다면 어떡합니까?』

       『늑대가 없어도 관계 없지. 그러면 그냥 조금 기다렸다가, 산에서 걸어내려오는 더벅머리 녀석을 체포하면 그만이야. 원래대로의 계획대로. ……알겠나, 야마자끼? 작전은 이렇게 짜는 거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순사부장이 강 형사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그 때, 산 위에서 어렴풋이, 탕- 하고 총성이 메아리쳐 들렸다. 

       

       ‘옳지!’

       

       늑대가 나타난 것이 분명했다. 늑대 사냥의 공을 가로채려면 서둘러야 한다. 강 형사는 산길을 앞장서며 순사들에게 외쳤다.

       

       『가자!』

       

       

       

       ***

       

       

       

       “가, 가까이 다가오지 말게! 이, 이번엔 진짜로 쏠 터이니……”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송병오는 그렇게 외치며, 권총을 든 오른손을 쭉 뻗어 다시금 상대방을 조준했다. 사실, 방금의 격발은 경고사격으로 일부러 빗맞춘 것이었지만, 조준사격이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는 않을 터였다. 이렇게 벌벌 떨리는 손으로 어떻게 목표를 맞추겠는가. 

       

       송병오는 이를 악물고 다시 한 번 외쳤다.

        

       “그러니 일단 진정하고 말해주게! 응? 그 모습은 대체 어찌 된 건가!”

       “호호! 어찌 되긴 무얼 어찌 돼?” 

       

       송병오의 외침에 대꾸한 것은 여학생의 고운 목소리가 아닌, 짐승의 그것처럼 거칠고 낮은 목소리. 

       

       거친 회색 털로 뒤덮인, 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덩치와,  길다란 주둥이와 그 안의 날카로운 송곳니. 그 모습은 마치 전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늑대인간 그 자체로, 즉 인랑화(人狼化)된 공팔자였다.

       

       공팔자는 야수같은 목소리로, 비웃으며 말했다.

       

       “큭, 그동안 네 비위 맞춰주느냐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뭐라? 이, 이런 장난일랑 그만두게! 자네는 못된 병에 걸린 게야…… 내 원래대로 돌아올 방법을 찾아볼 터이니!”

       

       송병오의 대꾸를 들은 공팔자는, 지금까지 그녀가 사냥해 온 다른 사냥감들을 떠올렸다.

       

       ‘남자들이란 어째 다 이럴까.’ 

       

       그동안 그녀가 사냥해 온 ‘사냥감’은 그저 남자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다양했다. 나름대로 회사를 운영한다는 사업가나 회사원부터, 집도 없는 거지까지…… 

       

       그렇게 가지각색의 남자들이었음에도, 나이 어린 여학생인 공팔자가 조금 맞장구를 쳐 주고 듣기 좋은 소리를 해 주면, 금세 자신을 좋아한다는 착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다. 

        

       ‘호호! 착각도 우습다니까! 내가 미쳤을까, 자기네들같은 중년 늙다리를 정말로 내가 좋아하겠어?’

       

       심지어는 현실을 마주쳐도 현실부정부터 하는 것이다. 지금의 이 녀석, 송병오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착각에 푹 절여져 있어서, 인랑으로 변한 지금도 상황 판단이 안 되는 것이다. 

       

       “병이라고? ……호호호! 이게 원래의 내 모습인걸!”

       

       물론 이것이 공팔자의 원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공팔자가 느끼기에, 사람의 모습일 때보다 이 모습일 때가 진정한 자신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살아오며 느껴보지 못한 이 해방감. 사냥감을 앞에 둔 맹수의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우월감. 그리고 충족감. 

       

       공팔자는 송병오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송병오는 뒷걸음질치며 외쳤다.

       

       『가, 가까이 다가오지 말게!』

       

       그리고, 탕! 하지만 이번에도, 차마 공팔자를 쏘지는 못하고 위협사격이었다. 차마 공팔자를 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스워. 참으로 우스워.’

       

       공팔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2미터 넘는 거체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송병오의 뒤로 움직여, 

       

       ‘퍽!’

       

       두터운 앞다리로 송병오의 뒷목을 쳐서 기절시켰다. 공팔자는, 흐억, 하는 힘빠진 소리와 함게 쓰러지는 송병오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쳇. 그나저나 총을 쏘다니.’

       

       물론 공팔자가 그깟 교총탄이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교총탄은 말 그대로 학교에서 실습용으로 쓰는 것이고, 마력이 제대로 담기지 않은 교총탄은 애초에 화약량부터가 적어서, 일반 권총은 커녕 장난감 딱총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게다가 자신의 향상된 감각과 속도로는 얼마든지 피할 자신이 있었으니, 이깟 총에 맞을까봐 걱정할 것은 없었다.

       

       다만, 총 소리를 듣고 경찰이 몰려올 것이 염려되었던 것이다. 인랑화된 공팔자는 아쉬운 듯 혀로 입가를 핥으며 생각했다.

       

       ‘자리를 옮겨야겠네. 오랜만에 천천히 살점을 즐겨볼 생각이었는데……’ 

       

       팔다리부터 잘라서 천천히 즐길 예정이었건만, 경찰이 오기 전에 자리를 이동해야한다. 

       

       그래도 여유가 없지는 않았다. 

       

       이곳 관악산은 경성 부내의 산도 아니고 교외의 으슥한 곳이다. 물론 산아래에 민가도 듬성듬성 있고 주재소도 있으니 누군가가 신고를 넣어 결국 경찰이 오긴 오겠지만, 최소 20, 30분은 걸릴 것이다.

       

       ‘일단 다시 사람 모습으로 돌아가서, 이 녀석을 업고 옆의 청계산을 가든가 아니면 한강대교 밑으로 숨던가 하자.’

       

       그렇게 생각한 공팔자는 다시 인간 모습으로 돌아오기 위해 명령어를 읊었다.

       

       “우에아……”

       

       —탕!

       

       ‘뭐지?’ 

       

       막 명령어를 읊으려던 공팔자의 늑대 귀를 총탄이 스치고 지나갔다. 고개를 돌리니, 몇 길 떨어진 등산로 쪽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손전등 불빛과, 

       

       『저, 저게 뭐야! 늑대가 아니잖아!

       『괴물이다! 마수다!』 

       『우테(쏴)!』

       

       하는 외침이 들렸다. 이어서,

       

       —탕!

       —탕, 탕!

       

       초탄을 쏜 뒤 제각기 나무나 바위 뒤로 몸을 숨긴 순사들이 다시금 총탄을 발사해오자 공팔자는 당황했다. 경찰이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것이다. 

       

       ‘경찰이 어떻게 알고?’

        

       공팔자로서는, 저 경찰들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사냥감, 즉 송병오를 쫓아 여기까지 온 것임을, 꿈에도 짐작할 수 없었으리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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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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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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