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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2

        가까스로 신음을 삼킨 레너윌은 태연한 척 연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미 경직되어버린 얼굴 근육은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에테르가 낸 문제 자체는 그만큼 난해하기 짝이 없었다.

       

        적어도 레너윌에게는 그랬다.

       

        ‘이게 그렇게 어렵나…?’

       

        쩔쩔매는 레너윌을 본 에테르는 도리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플레어 스크롤의 격발부는 1차원 직선상의 단방향 회로였지만, 그 주변은 2차원 구조를 취한다. 그러니까, 1차원 유니터리 군이 2차원 특수 회전군과 동형사상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뭐, 어렵겠지.’

       

        애초에 레너윌이 그걸 모를 것이라고 상정하고 낸 문제였다. 

       

        ‘알아도 찾는 데 한세월이겠지만.’

       

        플레어 스크롤은 그 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수학적 대상을 명확히 알았다고 해서 그것을 바로 플레어의 해석에 써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일은 충분한 연습과 훈련 없이는 불가능하다.

       

        에테르의 예상대로였다. 레너윌은 두 구조 사이의 보존 관계를 찾아내지 못한 채 식은땀만 뻘벌 흘리는 중이었다.

       

        “공작님, 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넘어가겠네.”

       

        결국 레너윌은 마지못해 백기를 들었다.

       

        심판을 보는 살리에르 백작조차도 에테르가 낸 문제의 정답을 몰랐기에,  에테르는 직접 펜 뚜껑을 따 가며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논검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논검의 본래 취지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상대로부터 알아가는 것’. 상대방이 난해한 질문을 했다고 해서 기 죽을 필요는 없다. 다만, 레너윌에게는 제 딸의 나이 정도 되는 소녀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게 탐탁치 않았다.

       

        “…해서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거였군. 이해했네.”

       

        졸지에 학습지 선생님이 되어버린 에테르. 

       

        “…….”

        “공작님, 공작님이 문제 내실 차례입니다.”

        “…어, 그, 그렇지.”

       

        레너윌은 어깨를 움찔 떨었다. 무슨 문제를 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람.”

       

        레너윌이 이긴다에 돈을 걸었던 어느 부인이 불안한 듯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어댄다.

       

        스코어는 2대 0. 비록 레너윌에게는 두 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었지만,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다.

       

        전세는 이미 역전되었다는 것을.

       

        ‘아까 질문하지 않았던 게….’

       

        처음 세 번을 ‘넘기겠습니다’로 일관한 에테르의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낀다. 그때 에테르는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안’ 했던 것이다.

       

        알아차리기엔 너무 늦었다. 에테르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레너윌을 바라보았고, 레너윌은 땅에 처박힐 정도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복잡하다.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치 절멸급 마수를 눈앞에 둔 느낌이군….’

       

        확신이 없는 상태.

       

        막막한 심정을 그런 말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가문 이름에 먹칠해선 안 된다.’

       

        단둘이서만 논검을 하는 거라면 모를까. 지금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보고 있는 상황이다. 체면을 구기지 않으려면 승부에서 이기거나, 못해도 무승부로 끝내야 한다.

       

        “최상급 화계마도, ‘체이서 플로우’에 아무런 마력을 보강하지 않았을 때 순간 최대 출력을 계산해 보….”

        “초당 1016.2시버트.”

        “대, 대체 어떻게 계산했나…?”

        “급수로 풀었습니다.”

       

        에테르는 싱긋 웃으며 만년필을 빙글빙글 돌렸다.

       

        “다시 제 차례로군요.”

       

        그 말 한마디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사형 선고라도 받은 것 같다.

       

        “적색 계열 플레어의 출력이 초당 2천 시버트로 일정하다고 가정합시다. 이때, 위상이 같은 두 플레어를 일정 거리를 두고 동시에 격발한다고 하죠. 두 격발점의 위력이 정확히 상쇄되는 첫 지점들에 대한 자취의 방정식을 얘기해 보세요. 단위는 CGS 유닛으로 부탁드립니다.”

       

        실제로 사형 선고가 맞았다. 

       

        -너네 가문 명예 쩔더라.

       

        “윽….”

       

        이젠 환청까지 들린다.

       

        ‘에테르.’

       

        외견만 보면 아리따운 소녀에 불과한 그녀였다.

       

        귀족이 술을 따르라고 하면 따를 것처럼. 또, 춤을 춰 보라고 하면 출 것처럼. 무슨 말이라도 들어줄 것처럼 순둥순둥하고 동글동글한 인상. 그것이 메이드복을 입은 에테르의 모습이었다.

       

        실상은 정반대였다.

       

        에테르는 하스펠트 가문의 명성에 난도질을 할 기세로 질문을 던져왔다. 평민이 귀족을 합법적으로 농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불경하다고도 말 못 한다. 먼저 논검을 신청한 건 다름 아닌 레너윌이었으니까.

       

        “공작님, 제한 시간 다 되어가는데요.”

       

        레너윌의 머릿속에 오만 감정이 들어찼다.

       

        소녀의 기량에 놀라서 당황. 사전에 알아차리지 못하여 탄식. 압도적인 기량 차이에 경악.

       

        그럼에도 여유로운 저 미소 때문에 공포. 수많은 귀족 앞에서 치부가 까발려진 듯하여 수치….

       

        그리고 경외.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에 대한 경외….

       

        “…넘어가겠네.”

       

        레너윌은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문제를 풀려고 시도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문제를 받아적고, 대략적인 풀이를 구상했다.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짧은 시간에 수없이 많은 고민을 거쳤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지식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이건 또 어떻게 푸는 건가?”

        “해설해 드릴게요.”

       

        그 뒤로는 불 보듯 뻔한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레너윌이 혼신의 힘을 다해 문제를 내면 그걸 가볍게 맞춰버리고, 에테르는 플레어에 관한 고난도 문항만 줄줄이 물어보며 공작을 괴롭혔다. 마지막으로, 그가 해설을 요구하면 도저히 반박할 수 없도록 정교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 이건….”

       

        사실상 티배깅이나 다름없는 행위. 

       

        “이건 말도 안 돼!!”

       

        생선 가시 바르듯이 실시간으로 쳐발리고 있는 하스펠트 공작을 보며 베팅을 건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이거 조작 아닙니까? 하스펠트 공작이 일개 금안족 소녀에게 지고 있다니요!”

        “어허, 그러게 플레어 제1저자라고 했을 때 믿었어야지.”

        “평민인 건 됐으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쇼! 아카데미 1학년생이 어떻게 그런 논문을 냈냐는 말이오!”

        “후후, 어르신. 이제 좀 정신이 드시나요?”

       

        도박장…. 아니, 논검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가뜩이나 금화 열 장을 잃게 생긴 제하드 남작도 그 분위기에 일조했다. 남작은 콧김을 쉭쉭 내뿜으며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그때였다.

       

        척, 하고 남작의 어깨에 기다란 팔이 걸린다. 남작은 고개를 고정한 채 눈동자를 오른쪽으로 굴렸다.

       

        “여보게, 제하드 남작.”

        “화, 황태자 전하….”

        “이참에 좋은 교훈을 하나 얻지 않았나?”

        “그, 그게 무슨 마, 말씀이십니까…?”

       

        아내한테 등짝 맞을 걱정을 하는 남작을 향해, 클리온은 피식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미소녀는 항상 옳다는 것 말이야.”

        “그게 무슨…….”

       

        그리고 그것이 신호였다.

       

        “……졌습니다.”

       

        레너윌의 인정과 함께, 길고 길었던 논검이 끝났다.

       

        살리에르 백작이 에테르의 손을 들어주면서 논검은 일단락됐다.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갔다. 개중에는 에테르의 티배깅을 비난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역배를 시도한 황태자의 눈총 한 번에 수그러들고 말았다.

       

        에테르는 손바닥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레너윌은 고개를 푹 떨군 채로 무언가를 구시렁거렸다.

       

        “공작님, 왜 그러십니까?”

        “…살리에르. 난 이제 죽을 딸들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걸세.”

       

        레너윌은 늘 자식들에게 가문의 명예를 중요시하라고 가르쳤다. 갓난아이부터 시작해서, 성인이 된 이후로도 쭉. 늘 하스펠트의 이름에 걸맞은 품위와 체통을 지키라고 당부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레너윌도 제 아버지로부터 그렇게 교육받았고, 그의 아버지 또한 선대로부터 같은 방법으로 교육받았다. 공작가의 위신은 항상 황제 다음가는 것이었어야 했으니.

       

        “딸 정도 되는 아이에게 졌다고 해서 부끄러운 일은 아닙니다.”

        “논지는 그게 아닐세.”

        “그러면….”

        “중요한 건 다른 귀족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겠지.”

       

        레너윌은 수 개월 전 시종에게 들었던 보고를 떠올렸다.

       

        – 레너윌 님, 클라이스 님께서 평민 출신 금안족 소녀의 논문을 표절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가문의 명예는 가문 스스로 지키는 것이 아니다. 명예라는 건 기본적으로 타인의 시선에 크게 휘둘린다.

       

        그 명예를 지키지 못한 클라이스를, 레너윌은 북방으로 보내버렸다. 공적을 쌓아 실수를 만회하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자식을 한 명 더 잃었다.

       

        이걸로 몇 명 째더라?

       

        마수가 득시글거리는 땅을 본적으로 삼고 있는 북부대공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예로부터 하스펠트 가문은 직계와 방계를 막론하고 적잖은 이가 전선에서 명예로운 죽음을 맞았었다.

       

        그런데.

       

        ‘논검에서 졌다. 이제 다른 귀족이 우리 가문을 금안족만도 못하게 볼 게 뻔해.’

       

        그런 생각에 머리가 저릿거린다.

       

        플레어의 권익을 주장하려다가 도리어 사람들 앞에서 망신만 받은 꼴이 되었다.

       

        ‘심지어 저 아이가 내 딸보다 뛰어나다는 건가….’

       

        레너윌의 황망한 눈동자가 금안족 소녀를 향했다.

       

        “학생이 여긴 어쩐 일인가요? 갑자기 익숙한 얼굴이 보여서 많이 놀랐습니다.”

        “교수님 보러 왔어요. 연구실에 안 계시더라고요.”

       

        에테르는 카이뤼삭 교수와 술을 따라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허허, 하며 웃는 모습이 이질적이다. 아카데미에 막 입학한 파릇파릇한 소녀라기보다는, 사회에서 구르고 구른 중간관리자를 보는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다른 곳을 둘러보았다. 노름판에 놓인 돈을 휩쓸어가는 역배들이 보인다. 하스펠트 공작의 승리를 예측했던 대부분의 귀족은 힘 빠진 눈동자로 레너윌을 쳐다보고 있었다.

       

        “공작님, 이게 어찌 된 일이십니까?”

        “…나도 잘 모르겠소.”

        “하스펠트 가문은 화계마도의 정점 아니덥니까?”

        “저 소녀가 훨 뛰어난가 보오.”

       

        레너윌은 씁쓸하게 웃으며 자켓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논검에서 이기면 플레어 개발의 주도권이 딸에게 있음을 피력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정통파 귀족 중에는 자신과 생각을 같이 하는 귀족이 많았다. 플레어는 하스펠트의 것이지, 만민의 것이 아니리라.

       

        그리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다.

       

        “졌군.”

       

        추하게 물고 늘어지지 않기로 했다. 

       

        가문의 명예가 우선 아닌가. 졌으면 졌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그나마 떳떳해지는 방법이다.

       

        “공작님.”

        “어, 유스틸라 후작인가?”

       

        유스틸라. 하스펠트와 함께 정통파 귀족의 선두에 있는 명문가다. 두 사람은 정치적 견해의 일치로 인해 청년 시절부터 서로를 지지하며 친하게 지내왔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어째서 저 소녀에게 논검을 신청하신 겁니까?”

        “그러게나 말이다.”

        “이번 논검으로 잃으신 것이 많습니다. 공작님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분들과, 가문의 고결함이….”

        “됐네.”

       

        레너윌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유스틸라 후작이 그의 옆모습을 슬쩍 흘겨보았다. 레너윌은 허탈한 표정이었다.

       

        “그까짓 마법 하나 도로 가져오려고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릴 게야.”

        “하지만 플레어잖습니까. 하스펠트 가문에서 비밀리에 개발하던….”

        “됐어. 질질 끌어봤자 더 추해지기만 할 뿐이야.”

        “순순히 인정하려 하시다니, 공작님답지 않습니다.”

        “술이 덜 깨서 그런 모양일세.”

        “저 소녀에게 무언가라도 있단 말입니까?”

        “저건 단순한 여자애가 아니다.”

       

        괴물이지.

       

        “클라라나 클라이스도 제법 수재라고 생각했건만, 새 발의 피였군. 진짜 천재는 따로 있었어.”

        “논검 한 번으로 결정하시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아무튼…. 이 일은 나중에 마저 얘기하기로 합시다.”

        “이런.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두 사람은 천정에 걸린 공중시계를 보며 아차 싶었다. 본 회의가 열리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귀족 대회의. 해당 회의에는 당연히 제국의 정점인 황제도 참여한다.

       

        황제를 지지하는 정통파 귀족이니만큼, 레너윌과 유스틸라는 제 몸가짐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그것이 곧 제국과 황실에 대한 충성을 의미하는 것이니.

       

        한때 가주 자리를 내주었던 클라이스가 황실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여서 휘청거릴 때도 있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다시 황제의 온건한 기둥으로 함께하리라.

       

        “자, 움직이세.”

        “예.”

       

        상념을 털어버리고 귀족 회의나 준비하려던 참이었다.

       

        “언니 지금 뭐하는 거야아아!!”

       

        저 멀리서 날카로운 고함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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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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