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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2

       *

        아침이 되자마자 나는 눈을 번쩍 뜨며 벌떡 일어났다.

        ​

        아니,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이겠지.

        ​

        곤히 잠든 내 정수리를 향해 날아와 딱 소리를 내며 부딫힌 무언가에 의해, 나는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꺴다.

        ​

        ​

        ​

        “으어헉!”

        ​

        ​

        ​

        놀란 나는 숨을 들이켜며 번쩍 몸을 일으키고는 한쪽 눈만 간신히 뜬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

        아직 잠이 덜 깬 몽롱한 정신을 파고드는 얼얼한 통증에,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꾹 누르자 자그마한 혹이 톡 튀어나와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

        ​

        ​

        “아후우… 너무 아파…”

        ​

        “실망인데,”

        ​

        “을…?”

        ​

        “분명 실비아는 애쉬가 피하는 거만큼은 잘한다고 말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네.”

        ​

        ​

        ​

        욱신거리는 통증에 두 눈을 찡그리자 흐릿한 시선 역시 덩달아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

        자그마한 자갈돌 여러 개를 위로 던졌다 다시 받아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앨리스 누나가 벽에 한쪽 어깨를 기댄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던져진 자갈들이 그녀의 손에 다시 떨어질 때마다 잘각거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다.

        ​

        ​

        ​

        “누… 나?”

        ​

        “좋은 아침, 애쉬.”

        ​

        ​

        ​

        누나는 싱긋 웃으며 내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

        정황상 그녀가 잠들어 있는 나를 향해 돌을 던진 게 분명해 보였다.

        ​

        상황 파악이 된 나는 앨리스 누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쏘아보았지만, 누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

        ​

        ​

        “어제 실비아랑 한바탕 해서 그런가? 아주 잘 자더라. 나도 잘 알지, 큰일을 잘 끝낸 후에 푹 자는 것만큼 달콤한 게 또 없긴 해”

        ​

        ​

        ​

        앨리스 누나는 그렇게 말하며 배시시 웃었다.

        ​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짓는 앨리스 누나의 웃는 얼굴이 너무나 환해서 조금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

        나는 손바닥 정 가운데를 혹의 꼭대기에 맞춰 살살 비벼가며 말했다.

        ​

        ​

        ​

        “이게 무슨 짓인지 설명 좀 해주지?”

        ​

        “피할 수 있나 없나 테스트 해본 거야. 결과는… 뭐, 보는 대로.”

        ​

        “아니, 자는 동안 날아오는 공격을 어떻게 피해.”

        ​

        “난 할 수 있는데?”

        ​

        “…?”

        ​

        “아마 실비아도 가능할걸?”

        ​

        ​

        ​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앨리스 누나의 태도에 나는 입을 쩍 벌렸다.

        ​

        실비아와 앨리스 누나.

        ​

        두 사람이 강하다는 거야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또 이렇게 들으니 새삼 나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깨닫게 되는 기분이었다.

        ​

        ​

        ​

        “그러고 보니, 실비아는?”

        ​

        “사냥 갔어.”

        ​

        “아침부터?”

        ​

        “내가 시켰어. 갑옷부터 각종 소도구까지, 이렇게 바리바리 짐 싸 들고 왔는데 성의 좀 보여야 하는 거 아니냐고.”

        ​

        “… 아하,”

        ​

        “게다가 지난 며칠간 제대로 못 먹었거든, 어제도 말했지만 약속했던 한 달을 지나버리는 바람에 조금 서두르느라.”

        ​

        “별로 굶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

        “신성력으로 억지로 몸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거든, 거의 3일에 한 끼 정도만 먹은 것 같아. 정말 발을 옮기기 위한 최소한의 기운만 유지하면서.”

        ​

        “… 이쯤되면 그냥 두 사람이 마왕인 거 아닐까.”

        ​

        ​

        ​

        시답잖은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이제 어느 정도 잠은 깬 모양이었다.

        ​

        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하자, 앨리스 누나도 벽에 기대던 상체를 떼어내며 말했다.

        ​

        ​

        ​

        “자, 그럼…”

        ​

        ​

        ​

        앨리스 누나는 별안간 던졌다가 다시 받기를 반복하던 자갈들을 콱 움켜쥐고는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

        ​

        ​

        “이불 개고 바로 따라 나와.”

        ​

        “… 따라 나오라니? 어디 가?”

        ​

        “오두막 밖으로 나오라는 소리야.”

        ​

        “어… 왜?”

        ​

        ​

        ​

        누나가 손을 펼치자 그 안엔 잘게 부서진 돌조각들이 부슬부슬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

        나는 황당한 얼굴로 그녀의 손바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누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손에 잔뜩 남은 돌가루를 잿가루가 가득 쌓인 모닥불에 털어내고는 말을 이었다.

        ​

        ​

        ​

        “테스트 할 거야.”

        ​

        “테스트?”

        ​

        “응, 실비아가 애쉬를 얼마나 잘 훈련했는지 테스트 해 보려고.”

        ​

        “아니, 나 이미 통과했는데…”

        ​

        “그건 실비아고, 나는 아직 애쉬가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지 모르잖아?”

        ​

        “…”

        ​

        ​

        ​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

        어제의 그 꿈같은 승리도 이미 수많은 우연과 행운이 겹치고 겹쳐서 겨우 이뤄낸 기적 같은 일이었다.

        ​

        하지만 어찌 되었건 승리는 승리이기에, 이제 됐다며 안심하고 있었는데 설마 난관이 또 하나 있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

        나는 어제 시험 중 꿰뚫렸던 어깨를 매만지며 몸을 잘게 떨었다.

        ​

        잠든 사람을 향해 돌을 던지는 앨리스 누나를 보면 그녀의 테스트 역시 만만치는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기 때문이었다.

        ​

        앨리스 누나는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키득거리며 말했다.

        ​

        ​

        ​

        “걱정하지 마, 나는 어제 네가 실비아랑 한 것처럼 싸우거나 하지는 않을 거니까.”

        ​

        “그건 다행인데…”

        ​

        “물론 합격이니 불합격이니 같은 것도 따지지 않을 거야. 이건 시험이 아니고 그냥 테스트일 뿐이니까.”

        ​

        “어…? 그게 무슨 소리야?”

        ​

        “방금 말한 대로야. 그냥 애쉬가 어느 정도로 움직일 수 있는지 미리 알아두려는 것뿐이니까 너무 그렇게 겁먹을 필요 없어.”

        ​

        ​

        ​

        나는 그녀의 말에 안심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

        물론 딱히 겁을 먹은 건 아니었다.

        ​

        운이 좋았다고는 하나 실비아를 상대로 승리를 따낸 덕분에 은근한 고양감이 몸을 휘감고 있기도 했고, 마왕을 향한 여정에 함께 하려고 마음을 먹은 만큼 투쟁이나 싸움을 피하기만 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도 했다.

        ​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마음가짐일 뿐.

        ​

        내가 딱히 전투를 즐기게 된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

        ​

        ​

        “아… 미리 말하지. 또 누나의 기준을 넘어야만 마왕 죽이러 갈 때 데려갈 거라고 말할까 봐 긴장했잖아.”

        ​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은데, 어차피 너도 이 여정에 반드시 동참해야 하거든.”

        ​

        “왜? 나 안 가면 실비아도 안 간다고 할까 봐?”

        ​

        ​

        ​

        앨리스 누나는 내 말에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곧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

        ​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넌 어제 실비아가 한 말을… 음,”

        ​

        “누나?”

        ​

        ​

        ​

        갑자기 말을 멈춘 앨리스 누나는 조용히 눈을 감더니 천천히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

        ​

        ​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먼저 나가 있을 테니까, 준비되면 나와.”

        ​

        “잠깐 테스트가 어떤 내용인지 안 알려줘?”

        ​

        “음, 그냥 애쉬가 지금까지 해온 걸 한번 쭉 되짚어 보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궁금하면 빨리 나와.”

        ​

        ​

        ​

        앨리스 누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조용히 오두막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

        ​

        ​

        ​

        ​

        ​

        ​

        ​

        ​

        *

        내가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는 앨리스 누나의 말은, 정말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

        오두막 밖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온 내게 그녀는 일단 뛰어보라고 시켰다.

        ​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일단 그녀의 말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실망인데,”

        ​

        ​

        ​

        뜀박질을 시작한 지 삼십 분 째.

        ​

        오두막 주변을 헉헉대며 달리는 나를 바라보며 앨리스 누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

        ​

        “일단 체력은 붙어있는 것 같은데, 너무 느려.”

        ​

        ​

        ​

        앨리스 누나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

        아니, 노려본다기보다는 단순히 나를 관찰하며 고민하는 것이리라.

        ​

        물론 지난 한 달여 간의 시간 동안 달리기와 회피, 그리고 피아를 다루는 데 익숙해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눈앞에서 말 그대로 사라지는 듯한 속도로 달음 박치는 실비아나 아마도 그에 준한 신체 능력을 지닌 것이 분명한 앨리스 누나에겐 한참 모자라는 것이 사실이었다.

        ​

        ​

        ​

        “됐어. 인제 그만 뛰어도 돼. 이리 와.”

        ​

        ​

        ​

        앨리스 누나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며 헉헉대며 숨을 고르는 나를 말없이 들여다보았다.

        ​

        내 신체 능력이 그녀의 성에 차지 않는 걸까.

        ​

        실비아는 항상 내게 칭찬을 해주었기에 내가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실비아의 호의에서 비롯된 후한 평가에 불과했던 모양이었다.

        ​

        나를 가만히 관찰하는 앨리스 누나의 날카로운 눈빛에 어제의 승리로 얻어낸 자신감의 갑옷이 한 꺼풀씩 벗겨지는 기분이었다.

        ​

        나는 천천히 벅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가만히 앨리스 누나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

        한참을 나를 바라보던 앨리스 누나는 이내 곧 팔짱을 풀며 말하기 시작했다.

        ​

        ​

        ​

        “그래도 호흡이 돌아오는 속도는 괜찮네, 실비아가 잘 훈련 시켰어.”

        ​

        “…아, 그래?”

        ​

        ​

        ​

        아무래도 그녀는 내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멎기까지 시간을 재고 있던 모양이었다.

        ​

        어딘가 전문적인 면모가 느껴지는 그녀의 평가에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다.

        ​

        ​

        ​

        “지구력도 좋고 회복력도 나쁘지 않지만, 속도가 너무 느려. 일반인의 달리기보다 조금 더 느릴 정도니까. 왼쪽 다리는 조금씩 이상하게 움직이고 오른쪽 발목도 조금 돌아간 느낌이라 자세도 이상해.”

        ​

        “아… 그건,”

        ​

        ​

        ​

        앨리스 누나의 눈은 정확했다.

        ​

        ​

        ​

        “나 이 숲에 들어왔을 때… 마차 사고를 당했거든, 라일라도 그때 죽었고… 지난번에 말했었지?”

        ​

        “아, 그러면 그때…”

        ​

        “응, 그때 내 다리는 완전히 망가졌었거든, 실비아가 정성스럽게 보살펴준 덕분에 회복하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앞으로 영원히 달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어.”

        ​

        “…”

        ​

        “그땐 달릴 일이 뭐가 있겠나 해서 담담히 받아들였는데, 설마 내가 마왕을 향하게 될 거라고 누가 알았을까.”

        ​

        “잠깐 보자.”

        ​

        ​

        ​

        앨리스 누나는 내 앞에 쪼그려 앉아 내 다리와 무릎을 만지기 시작했다.

        ​

        이미 사고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 멀쩡하게만 느껴지던 다리에 그녀의 손이 닿자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

        앨리스 누나는 내 다리에서 크게 망가졌던 부분을 신기할 만큼 정확히 손으로 짚어내고 있었다.

        ​

        ​

        ​

        “여기, 그리고 여기도, 뒤틀렸네, 여긴 뼈가 잘못 붙었고.”

        ​

        “어…? 아니, 누나 잠깐만…”

        ​

        “이대로 달린 게 더 신기할 정도야. 물론 당시로서는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 수 있지만… 신성력보다는 자연적인 치유력에 더 의지한 느낌인데… 아마 실비아가 가진 신성력으로는 그게 한계였겠지.”

        ​

        “아, 누나 잠깐만, 일어나야 할 거 같은데…”

        ​

        “가만히 있어 봐.”

        ​

        ​

        ​

        진지한 얼굴로 말하고 있는 앨리스 누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그녀가 하는 말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

        내 앞에 쪼그려 앉은 채, 가만히 내 다리를 들여다보는 그녀의 얼굴은 정확하게 내 사타구니 쪽에 있었다.

        ​

        물론 거리는 충분히 떨어져 있었지만, 정면에서 바라본다면 오해하고도 남을만한 구도라는 건 틀림 없었다.

        ​

        ​

        ​

        “…”

        ​

        ​

        ​

        그리고 하필 그 정면에는 활과 거대한 노루를 들고 있는 실비아가 있었다.

        ​

        짙은 그늘과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저렇게 멀리 서 있음에도, 그녀의 백금빛 머리칼은 선명하게 보였다.

        ​

        한계까지 치켜뜬 저 붉은색 눈동자까지도.

        ​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조금… 많이 상태가 안좋았어서, 한동안 멋대로 쉬었습니다.

    공지조차 올리지 못해서 독자 여러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차마 입에 담기도 싫은 일이었던 만큼, 자세한 설명을 드리지 못하는 것 역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인생 진짜 맵네요.

    이러니 피폐를 못 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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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나를 살려준 그녀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Score 4.2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Having lost all my family, I fled. As I was running away, she saved me when I was on the brink of death due to an accident. The moment our eyes met, I knew I couldn’t leave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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