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52

       슬라그보르트 제과 공장은 TT2 예테린푸르크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양대 미궁 중 하나였다.

         

       이곳의 과자 장인들도 다른 곳의 예술가들처럼 원더스타인의 영혼이 깃든 보석에 정신이 오염되어 괴물들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반죽 기계에는 밀가루 대신 시체들이 던져졌고, 과자 장식으로는 설탕 결정 대신 온갖 끔찍한 것들이 쓰였다.

         

       그렇게 피와 살점이 낭자한 공장에서 만들어진 고기 파이들은 포장지에 깔끔하게 싸여 차곡차곡 밖으로 실려 나갔다.

         

       괴물이 된 점원들이 공장 입구에 있는 과자 가게에서 그것들을 팔았다.

       괴물이 된 주민들은 시체를 대가로 내밀고 과자를 사서 먹었다.

       그리고 직원들은 대가로 받은 시체를 실어가 다시 반죽 기계에 던져 넣었다.

         

       절망이 가득한 도시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너무나 일상적인 광경은 플레이어들에게 뭔가 웃기면서도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이러한 지옥도에서도 조력자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었다.

       공장의 구석진 방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괴물들의 접근을 막고 있는 눈먼 늙은이였다.

         

       빌헬름.

       그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제과사였다.

       그가 이 회사의 사장이었다는 사실은 미궁 공략 중반부에 드러났다.

         

       그는 사실 수상쩍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지금까지 거쳐온 도시들에서 조력자라고 하면 대부분 미치광이에 사람 목숨을 우습게 아는 악당들이 대부분이었다.

         

       예테린푸르크라고 다르지 않았다.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의 길들이기 교수로 등장하는 파이렌도 다른 도시의 조력자에 꿀리지 않을 정도로 잔인한 악행들을 저질렀다.

         

       그들은 원래부터 자기만의 광기에 빠져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원더스타인의 혼이 깃든 보석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도 거부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빌헬름이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두서없는 과거를 늘어놓을 때마다 그에 대한 의심을 키워갔다.

       그가 절대 출입하지 말라고 한 방문 너머에는 그의 비열한 과거가 숨어 있으리라 예상했다.

         

       미궁 공략 후반부에 가면, 그가 그토록 아끼던 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 드러났다.

         

       그곳은 바로 극작가 크리스티앙에 관련된 물품이 수집된 전시실이었다.

         

       극작가 크리스티앙은 이전 도시들에서도 계속 언급되었다.

       그는 현시대 공연계의 정신적인 우상으로 여겨지는 인물이었다.

       ‘6대 극장’에는 그에 대한 실마리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빌헬름은 그의 열성적인 팬이었다.

         

       그가 시도 때도 없이 중얼거리던 대사들은 그가 좋아하는 극본의 구절이었으며, 그가 두서없이 늘어놓던 과거들은 모두 극본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그가 중간중간 서브 퀘스트를 내려주면서 모아오라고 했던 과자 재료들이 어디 쓰였는지도 마지막에 드러났다.

         

       극작가 크리스티앙의 서거 21주년 기념일.

       그 영전에 바칠 제사음식을 위해 그는 모아온 과자 재료들로 케이크를 만들었다.

       그는 마지막 기력을 짜내 만든 케이크를 제단에 올리면서 숨이 끊어졌다.

         

       예술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장인의 고집이 빚어낸 케이크.

         

       그래서일까.

       그가 목숨을 걸고 마지막으로 만든 그것에는 숨겨진 효능이 있었다.

         

       바로 TT2의 최종 보스전에서 그것을 섭취하면, 원더스타인이 사용하는 광역 즉사기에 면역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즉사기 자체는 이벤트성 공격이라 게임의 난이도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바뀌는 것은 대화문 몇 개가 다였다.

       그래도 도전과제를 위해 플레이어들은 과자 재료를 모았고, 공장을 나올 때 케이크를 꼭 챙겨서 나왔다.

         

       미래에 그런 악연으로 얽힌 두 사람이지만, 지금은 나란히 걸으며 화목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 주제는 바로 그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극작가 크리스티앙에 대한 것이었다.

         

       원더스타인은 그가 크리스티앙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무엇인지, 즐겨 암송하는 대사가 무엇인지, 어떠한 부분에서 개인적인 해석을 가미하는지 다 꿰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괴물서커스 방문객 4명을 전시실로 초대했을 때, 원더스타인은 대표로 나서서 자신들에게 그의 손님이 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

         

       “으헛헛, 가장 좋아하는 부분도? 나와 이렇게 취향이 비슷한 사람은 처음 봤네. 과연! 엘라 양 같은 천재가 그런 작은 서커스단에 있는 이유가 있었군. 단장이 예술을 보는 눈이 뛰어난 사람이군그래.”

       “과찬이십니다.”

       “아냐, 자네는 그런 찬사를 들을 만하네. 내가 아끼는 와인 한 잔을 더 따라 줌세. 피차 크리스티앙에게 반한 사람들끼리 한 잔 나누자고.”

       “후후, 감사합니다.”

         

       원더스타인은 편안한 얼굴로 잔을 받았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를 노려보는 시선 때문이었다.

         

       그 시선의 주인은 황금 카니발의 단장인 지몬 마기어였다.

       전시실 구석에서 서서 이쪽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증오심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짐작이 갔다.

       오늘 만남의 주역인 황금 카니발의 자리를 자신이 뺏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입학시험에서의 일을 포함한다면, 그는 원더스타인에게 2연패를 당한 셈이었다.

         

       거기다 레이나의 문제도 있었다.

         

       아무리 그가 그녀에게 화풀이에 가까운 학대를 해댔고, 또, 그녀가 친딸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지난 15년 동안 그녀를 키운 것은 그였다.

         

       자존심 높은 그의 성격상 자기 앞에서 딸이 다른 남자에게 안겨 아빠 소리를 했다는 것은 참기 힘든 모욕일 것이다.

       비록 그것이 행사에서 있었던 가벼운 놀이였더라도 말이다.

         

       원더스타인은 지몬이 자신을 노려볼 때마다 피하지 않고 맞서서 그를 쳐다봤다.

         

       자신도 어차피 그에게 좋은 감정이 없었다.

       그의 비정한 면모가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있었고, 괜히 엘라를 데려가서 상황을 꼬이게 한 것도 거슬렸다.

         

       그는 자신의 부단장을 훔쳐 간 사람이었다.

       여기서 괜히 시선을 피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원더스타인은 그 와중에도 엘라의 상태를 살피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마야가 해 준 조언을 잊지 않았다.

       감정적인 동요가 그녀의 정신상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까 지른 비명이 무색하게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그녀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전시실 안을 둘러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는 원더스타인이 자신을 계속 쳐다보는데도 불구하고 조금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나 자신에게서 한 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던 2주 전의 그녀 같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까 비명을 지른 것은 그냥 상황 자체에 놀랐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긴 자신도 레이나가 그렇게 덤벼들 줄 몰랐지 않은가?

         

       엘라의 무관심한 태도는 가스통의 치료가 점점 효과를 발휘하는 증거로 봐야 했다.

       그는 안심하고 그녀를 관찰하던 것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그것은 원더스타인의 착각이었다

         

       엘라의 눈은 전시실의 소장품들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딴생각으로 가득했다.

       아까 무대 뒤에서 보았던 장면이 계속 반복해서 재생되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레이나의 고백과 뒤이어지는 그녀의 입맞춤.

         

       고작 볼에 한 거긴 하지만…….

       자신도 했던 거긴 하지만…….

         

       엘라는 한숨을 토하며 그 귀한 ‘<크리스티앙 가이드> 초판본’ 앞에서 눈을 감았다.

         

       그녀는 극작가 크리스티앙의 팬이었다.

         

       그녀는 10살이 되기도 전에 그의 작품들을 모두 섭렵했다.

       장미 풍차 카바레에서 <울펜슈타인 백작>의 대역을 즉석에서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 덕분이었다.

         

       그녀는 공장에 들어오기 전부터 공작의 애장품들에 어떤 것이 있을까 잔뜩 기대했다.

         

       <크리스티앙 가이드>의 초판본은 물론이고, 그의 친필 지시문이 적힌 대본이나 특정 공연에서만 팔았던 기념품 등등, 황금 카니발의 단원들이 소문으로 들은 것들만 해도 엄청났다.

         

       그런데 공작은 무려 그 이상의 물건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평소의 그녀라면 하나하나 볼 때마다 감탄사를 내뱉을 것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대했던 것들을 봤음에도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의 신경은 온통 뒤로 쏠려 있었다.

         

       아까의 사건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는 원더스타인과 그에게서 조금 떨어져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레이나에게.

         

       그녀는 지난 10일 동안 그와 통신으로 나누었던 대화들을 떠올렸다.

         

       -단원들도 다행히 레이나 양의 수업을 잘 따라가더군요.

       -레이나 양도 대단하던데요? 벌써 엘라 양이 만든 훈련의 절반 이상을 통과했어요.

       -다행이에요. 그녀도 이곳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아서.

       -레이나 양이 생각보다 말이죠.

       -레이나 양은…….

       -레이나…….

       -그녀는…….

         

       -……엘라 양과 달리…….

         

       그것들이 맹독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퍼져나갔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말들이 이제는 하나하나가 복선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레이나 양을 부단장으로 삼고 싶어요. 당신은 더 필요 없습니다.

         

       그가 하지도 않은 말이 상상 속의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엘라는 반박하고 싶었다.

         

       아니라고.

       당신 옆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은 나라고.

       다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해줄 수 있다고.

         

       마야는 늘 그렇듯 뚱한 표정으로 전시실 구석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아까 자신이 저지른 짓을 떠올렸다.

         

       ‘실수했어.’

         

       공장 견학하는 동안 그들 네 사람은 계속해서 함께 움직였다.

       비록 서류상 레이나의 보호자는 원더스타인, 마야의 보호자는 유라크네로 되어있었지만, 애초에 가족 단위로 온 손님들이 많아서 꼭 2명씩 짝을 안 지어도 직원들은 제지하지 않았다.

         

       비록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는 둘씩 나뉘긴 했지만, 그래도 바로 옆에 붙어 있었기에 마야는 불만스럽지 않았다.

         

       그저 ‘내가 좀 더 빨리 신청했으면 둘이서 왔을 텐데.’ 하는 생각만 계속 들 뿐이었다.

         

       하지만 사회자가 두 사람에게 과제를 줬을 때,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단장님에게 안겨 얼굴을 붉히는 레이나의 모습이 너무나 얄미웠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염동력을 발휘했다.

       두 사람의 케이크가 쓰러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단장님은 어쩌면 눈치챘을지도 몰랐다.

       아니, 분명 알아차렸을 것이다.

         

       0.1g의 오차도 잡아내는 줄타기 기술을 보였던 그가 케이크의 균형이 흐트러지는 그 부자연스러움을 못 알아차릴 리 없었다.

         

       물론 그녀는 원더스타인이 그 일로 자신을 책망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웃고 넘기는 사람이니까.

         

       아마 이 일도 미숙한 아이의 괜한 심술로 생각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나 어린애 취급을 안 당하려고 했는데…….’

         

       마야는 어제오늘 자신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깨끗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던 이성 속에 뭔가 불쾌한 불협화음이 끼어들어 있었다.

         

       그녀는 소파에 몸을 파묻고 오랜만에 명상 공간으로 들어갔다.

         

       레이나는 공작과 원더스타인이 대화하는 내내 불안에 잠겨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버지의 웃는 낯빛 뒤에 스멀거리는 흉악한 기세를 못 느낄 그녀가 아니었다.

       그가 무슨 짓을 저지를 것 같았다.

       그 불안감은 공작이 비서의 부축을 받으며 오찬 자리에서 보자며 먼저 전시실을 나갈 때까지 가라앉지 않았다.

         

       공작이 방을 나간 순간, 지몬이 그의 앞에 섰다.

         

       그는 순식간에 방 저편에서 바로 그의 앞까지 이동했다.

       그렇게 재빨리 움직이는 데도 발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봐, 원더스타인 단장. 나와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무슨 일이시죠?”

       “다음 주 있을 트레이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군.”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노려보았다.

       둘 다 예의를 차리고 입에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서로는 그것이 상대의 본심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다들 여기에 있으세요. 잠시 마기어 씨와 대화를 나누고 오겠습니다.”

       “잠시 기다리고 있게들. 얼마 걸리지 않을 거야.”

         

       검은 정장과 검은 망토, 황금 정장과 황금 망토.

       윤기가 흐르는 금발과 날카롭게 빗은 흑발.

         

       서로를 지그시 노려보던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괴물서커스 일행은 물론 황금 카니발의 단원들까지도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여 둘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원래 저번 작가의 말에 올려야 했는데 깜빡했네요.
    1월 4일 휴재 공지에도 언급했지만, 매일 정시 연재는 무리인 것 같습니다.

    글 쓰는 속도가 계속 따라잡히네요.

    그래서 다시 연재 주기를 조정할까합니다.

    지난 번엔 연재 회차마다 30시간 정도 간격으로 해서 주6일 연재를 했는데, 그렇게 돌아가겠습니다.
    1주일 만에 약속을 철회하게 된 점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