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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2

        

       그의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서서히 검게 변하고 있는 정원에는 오직 고요만이 가득하였고, 어제의 여파 때문에 풀벌레들도 이리저리 도망을 갔기 때문인지 평소라면 들려올 만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직 저 멀리 저택에서 켜지는 불빛의 흔들림과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그리고 거미들이 떼로 몰려들어 물들이는 것 같은 초현실적인 풍경만이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하지만 소리 없는 공간에서 진성은 다시 한번 물었다.

         

       “누가 하나를 아는가?”

         

       침묵.

       저승 세계를 그대로 끄집어 올린 듯한 소름 끼치는 침묵.

       버섯들은 입을 꾹 닫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스산하게 흔들려야 할 나뭇가지조차 제 잎사귀 하나하나 통제하여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입을 막고 있었다. 군홧발에 짓밟힌 바닥에서는 가만히 서 있는 진성의 체중에 짓눌려 입술이 닫혔고, 매연으로 흐릿해진 하늘의 윗부분에서는 인공위성인지 별인지 모를 것이 제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다.

         

       진성은 그 끔찍한 침묵을 휘감은 채 세 번째 물었다.

         

       “누가 하나를 아는가?”

         

       그러자 버섯 하나가 입을 열었다.

         

       “제가 하나를 압니다.”

         

       자그마한 사람 크기만큼 부풀어 오른 버섯.

       버섯은 가로로 갈라진 틈새를 달싹이며 입처럼 움직였고, 사람으로 치면 이마의 위치에 새겨진 십자가에서 새빨간 액체를 줄줄 흘렸다. 마치 상처에서 핏물이 맺혔다가 흐르는 것처럼 버섯의 기둥을 타고 흐른 피는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으며, 기이하게도 입으로 보이는 위치가 가까워지자 갑자기 커브를 그리며 입가에 닿는 것을 거부하였다.

         

       “하나는 위대하신 분. 천지 위에 계신 분.”

         

       버섯의 소리는 깊고 굵었다.

       이전 러시아에서 나타났던 버섯과는 다르게 즐거움이라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목소리에서는 오직 우울함과 진중함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고해성사하는 범죄자 같은 음성이요, 동시에 송구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진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누가 둘을 아는가?”

       “제가 둘을 압니다.”

         

       그러자 첫 번째 물음에 답한 버섯의 옆에 있는 버섯이 입을 열었다. 두 번째 버섯 역시 가로줄을 들썩이며 목소리를 발했고, 위쪽에 난 십자 상처에서 핏방울을 떨구었다.

         

       “계약의 서판 둘. 그러나 하나는 천지 위에 계시는 위대한 분.”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문답이 시작되었다.

         

       “누가 셋을 아는가?”

       “제가 셋을 압니다.”

         

       진성이 물으면 버섯이 답을 했다.

       자리를 잡은 순서대로 버섯은 입을 열었고, 진성이 빙빙 돈 방향을 따라 그들은 하나둘 답을 하며 기둥에 핏방울로 그린 선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차례가 한 바퀴를 거의 다 돌고 열세 번째의 버섯이 되었을 때.

         

       “누가 열셋을 아는가?”

       “제가 열셋을 압니다.”

         

       열세 번째 버섯은 앞선 버섯들이 그러하였듯 답을 하였다.

         

       “신의 속성 열셋, 부족 열둘, 별 열한 개, 계명 열 개, 출산 전의 아홉 달, 할례 전의 여덟 날, 일주일의 일곱 날, 미슈나의 여섯 권, 율법 다섯 권, 들러리 네 명, 족장 셋, 계약의 서판 둘, 그러나 하나는 천지 위에 계신 위대하신 분.”

         

       진성은 그 대답을 듣고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발을 옮겨 열네 번째와 열다섯 번째 버섯의 앞에 섰다.

       그리고 의심스럽다는 듯한 몸짓을 보이며 둘에 얼굴을 가까이해 들여다보기도 하였고, 이것이 뭔지 알 수가 없다는 듯 주위의 버섯을 쳐다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외쳤다.

         

       “묻는다. 하나부터 열셋. 열셋부터 하나. 오직 그 숫자만으로 완성되는 찬양에 숫자가 더해졌으니. 누가 열넷을 아는가?”

         

       그러자 버섯들이 일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열넷을 모릅니다.”

       “저는 열넷을 모릅니다.”

       “저는 열넷을 모릅니다.”

       “저는 열넷을 모릅니다.”

         

       열둘의 버섯이 모른다고 하였다.

       하지만 여섯 번째의 버섯만큼은 그 외침에 동조하지 않았고, 모른다는 말이 끝나고 난 다음에야 입을 열어 말을 했으니.

         

       “제가 열넷을 압니다.”

         

       여섯 번째의 버섯은 줄줄 흐르는 핏물 속에서 말했다.

         

       “열넷은 신성하지 않은 것. 시체에 손을 대 부정해진 것, 이레 동안의 부정함을 간직한 것. 부정의 아버지(אב הטמאה).”

         

       그 말이 끝나자 커다란 버섯에 새겨졌던 민달팽이 모양이 꿈틀거렸다. 문양은 몸을 뒤트는 버섯의 움직임에 따라 그 크기와 길이를 달리하며 기어 다녔고,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래로.

       더 아래로.

         

       그리고 마침내 뒤틀리고 줄어들고 늘어나는 버섯의 몸체의 움직임에 힘입어 입의 위치까지 도달한 문양은 입과 겹치게 되었고, 민달팽이는 가로로 된 입을 잡아먹으며 입을 없애버렸다.

         

       그 모습을 본 진성은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누가 열다섯을 아는가?”

       “내가 열다섯을 안다.”

         

       그러자 민달팽이가 더듬이를 꿈틀거리며 움직이더니 제 몸을 쭉 늘렸다. 그리고 제 몸체를 반으로 갈라 틈새를 만들고, 그 사이로 끔찍한 고기 썩는 냄새를 풍기며 입을 열었다.

         

       “열다섯은 나로 인해 부정해진 것. 나의 씨앗을 받아 몸을 길러 부정을 간직해 사방에 그것을 퍼뜨리는 것. 부정의 자식(ולד הטמאה)이다.”

         

       그 말이 끝나자 주위의 버섯들은 일제히 둘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있던 아까와는 달리 둘을 중심으로 원을 그려 포위하듯 자리를 잡았고, 하얀 촉수 두 갈래를 뻗어 발처럼 사용하며 주위를 맴돌았다.

         

       진성은 천천히 빙글빙글 도는 버섯을 따라 움직이며 그들의 기둥을 손으로 문질러 얼굴 전체가 새빨갛게 변하게 했고, 그 사이사이에 눈으로 보이는 점을 찍어주었다. 그렇게 열셋의 버섯에 같은 작업을 행한 뒤 검은 잉크를 가져와 그 얼굴에 뿌려버렸다.

         

       그리곤 버섯이 그리는 원 밖으로 나와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신실함으로, 오직 신실함으로 말하노라. 부정이란 불결한 것이며, 불결한 것은 곧 허락되지 않은 것이니. 위대하고 유일하신 네 글자의 신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내리신 은혜로움이요 규칙이로다.”

         

       진성은 마치 설교하는 목사처럼 말했다.

         

       “믿는 자들이여! 위대한 분이 허락하지 아니한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죽은 고기와 피와 돼지고기와 위대한 분의 이름으로 잡지 않은 고기로다!”

         

       진성의 말을 들은 버섯들의 얼굴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중앙에 있는 두 부정한 버섯과 같이 몸체가 뒤틀리면서 새겨졌던 십자가 모양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형상은 조금 찌그러진 십자가같이 보이기도 했고, 대충 그려놓은 초승달의 모양과 흡사해 보이기도 했다.

         

       “묻는다. 음식으로 먹어선 안 되는 것이 무엇이냐?”

         

       진성이 묻자 버섯들은 빙글빙글 도는 것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목을 졸라 죽인 것입니다.”

       “때려서 잡은 것입니다.”

       “떨어져서 죽은 것입니다.”

       “서로 싸워서 죽은 것입니다.”

       “다른 야생의 것이 일부를 먹어버린 것입니다.”

       “우상에 제물로 바쳤던 것입니다.”

       “화살에 점성을 걸고 잡은 것입니다.”

         

       버섯의 대답에 진성은 답해주었다.

         

       “그렇다! 신실한 자들이여, 이것은 불결한 것들이니 결코 입에 대서는 아니 될 것이다. 믿음을 거절하는 자들이 너희를 두려워하여 죄악으로 건네려 하는 것이니, 너희는 오직 위대하신 분을 두려워하고 그들을 두려워해서는 아니 될 것이니라!”

         

       진성은 그렇게 소리치며 쌓아두었던 가죽을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 그것을 원의 중앙에 있는 두 버섯에 집어 던져 칭칭 감아버리고, 지푸라기를 띄워 그들의 입가 위치에 물렸다.

       그리고 기다란 가죽끈으로 둘을 꽁꽁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하였다.

         

       그리고 준비해온 기다란 막대기를 하나 집어 들더니 거기에 불을 붙였다.

         

       기름을 먹인 천을 휘감아놓은 막대기는 활활 타올랐고, 바람 한 점 없는 정원의 한복판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길에 희롱당하기라도 하듯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그림자를 만들었다. 횃불의 불빛은 정원을 밝히고, 버섯들이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그 아래에 가죽에 덮여 웅크리고 있는 두 개의 제물을 음울한 그림자로 덮었다.

         

       진성은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 버섯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버섯은 기다렸다는 듯 딱딱하게 굳은 하얀 나뭇가지를 팔에서 뻗었고, 진성은 마치 초에 불을 붙이듯 거기에 횃불을 가져가 불꽃을 피워올렸다. 그러자 나뭇가지 끝부분은 자그마한 불꽃이 피어났고, 이윽고 기름을 먹은 것처럼 화르륵 타올라 횃불과 같은 크기의 불꽃이 되었다.

         

       진성은 모든 버섯에 똑같은 작업을 한 뒤, 버섯의 사이에 껴서 똑같이 원을 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때로는 춤을 추듯이 움직이고, 때로는 횃불을 이리저리 흔들어 그림자들이 춤을 추게 했다. 그리고 원이 좁아질 때면 버섯에게 다가가 위협을 하기라도 하듯 횃불을 앞에 휘두르기도 하였고, 멀리 떨어지면 본능에 몸을 맡긴 듯한 움직임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중앙에 있는 제물들이 발하는 냄새는 심해졌다.

       썩은 것 같은 악취는 물론이고 야생의 동물에서나 맡을법한 끔찍한 누린내가 풍겼고, 거기에 더해 지린내와 똥 냄새까지 풍겼다. 어찌나 심했는지 코를 마비시키고 입 안 전체를 역겨운 맛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머리를 지끈거리게 할 정도였다.

         

       진성은 그 냄새를 한참이나 맡으며 계속해서 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냄새가 싹 사라져버렸을 때.

         

       투—웅!

         

       진성은 들고 있는 횃불을 있는 힘껏 땅바닥에 내려쳤다.

       그러자 버섯들 역시 그것을 따라 하듯 땅바닥에 불이 붙은 자기 팔을 내려쳤다.

         

       투—웅!

         

       속이 비어있는 것이 내는 울림소리가 퍼졌다.

       땅바닥과 부딪친 불꽃은 산산이 터져나가며 흔적을 없앴고, 불씨는 하늘로 피어오르며 마지막 빛을 발했다. 그리고 버섯들 역시 제 역할을 다했다는 듯 하나둘 무너져내렸고, 이윽고 한 줌의 핏물이 되어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원의 중앙에 있던 두 제물 역시 한 줌의 핏물이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다른 버섯과는 다르게 그 어떠한 피비린내도, 악취도 풍기지 않은 채 그대로 몸이 쪼그라드는 것에 그쳤으며, 버섯을 감싸고 있던 가죽은 사라진 몸체 때문에 찌그러지고 뒤엉키며 어떠한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형상이 마치 멧돼지와 흡사하게 보였다.

         

       멧돼지 같은 형상의 입 부분에서는 핏물이 되어버린 버섯의 흔적을 꾸역꾸역 토해내고 있었고, 검은색에 가까운 붉은 액체는 멧돼지의 입에서 나오기 무섭게 땅에 스며들며 사라져버렸다.

         

       진성은 멧돼지가 액체를 다 토해내자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곤 사람 머리만 한 크기의 가죽 뭉치가 되어버린 제물을 들어 올렸다.

         

       매끈해야 할 가죽에서는 빳빳하고 거친 느낌이 들었고, 주술로 강화한 눈으로 꿰뚫어 보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끈적한 액체와 지푸라기 조각이 섞여 털과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죽 뭉치는 꽤 묵직했으며, 흔들 때마다 무언가 찰랑거리는 느낌이 났다.

       진성은 찰랑거리는 소리를 듣고 안에 남은 액체의 양을 대충 가늠한 뒤 등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진성이 돌아간 자리에는 약한 피비린내와 짐승의 냄새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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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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