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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2

       “…….”

        

       “…….”

        

       처음 보는 남자 어른이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외모가 외국인은 아니었다. 하긴, 조사해본 바로, 이 사람이 외국인인 것이 아니라 아내가 외국인이라고 했었지. 수아는 그저 둘 사이에서 나온 딸일 뿐이고.

        

       “…….”

        

       수아는 우리 둘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일단 어떻게든 허락받아내긴 했지만, 사실 오늘 이렇게 마주칠 예정은 없었으니까.

        

       수아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부모님은 바쁘고, 사실 평일에는 얼굴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수아가 집 밖으로 나와 있어도 가정부 아주머니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수아의 아버지와 이렇게 마주친 것이다.

        

       ……뭐, 수아는 예상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예상할 수 있었다.

        

       자기 딸의 친구가 집에서 묵어간다는데 나와보지 않을 부모는 없었으니까.

        

       심지어 어머님조차도 내가 친구들과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자마자 바로 달려오시지 않았던가. 심지어 오늘 아침에도 저택에 찾아왔었다고 했고.

        

       오늘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 같지만.

        

       “네가 사라구나.”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수아도, 수아의 아버지도 아니었다.

        

       옆에 서 있던 금발의 미녀였다.

        

       원래는 모델 일을 하고 있다고 했던가? 결혼한 뒤에는 경영에도 일정부분 기여하고 있다는 것 같지만, 이렇게 보면 지금도 모델을 해도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수아에게서 이야기 많이 들었어.”

        

       한국어가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몇몇 발음에서 영어 같은 악센트가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어를 그렇게 유창하게 하는데도 ‘외국인’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뭐, 외모만 따지면 수아보다도 더 확실하게 외국인처럼 보이긴 했지만.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여행용 가방을 그대로 세워두고, 수아의 아버지와 어머니, 두 사람을 향해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여기서 묵는 것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아 친구잖니. 편하게 머물다 가렴.”

        

       “감사합니다.”

        

       수아 어머니의 말에, 다시 한번 공손하게 감사 인사를 한다.

        

       “……그래, 내 집이라 생각하며 지내다가 가거라.”

        

       “네, 감사합니다.”

        

       수아의 아버지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기보다는, 나를 나름대로 판단해보고 있었다고 봐야겠지.

        

       ……수아가 나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반대했다고 했던가.

        

       지금은 사실상 가출도 끝난 상황이긴 했지만, 일단은 수아가 가출하게 된 원인이었다.

        

       그리고 수아의 어머니도, 이렇게 보면 마냥 자상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아가 얼굴을 보기도 어려울 만큼 바쁜 사람이라고 했었고.

        

       ……그렇게 생각하면 어머님과 다를 것이 뭐가 있나 싶다.

        

       아니지, 그래도 어머님보다는 낫나. 어머님은 나를 일부러 찾아오지 않던 거였으니까. 분기마다 찾아와서 가족이라는 티를 내고 가기는 했지만, 정말로 그것뿐이었다. 가족이라는 것은 그저 허울뿐이었으니까.

        

       어쩌면 저것도 연기일지도 모르지.

        

       집은 내가 어제 지냈던 소희의 집 보다 훨씬 넓었지만, 훨씬 더 쓸쓸해 보였다.

        

       아마 그게 단순히 기분 탓은 아니리라.

        

       수아가 온갖 핑계를 대면서 나의 저택에서 묵어갔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수아의 집 마당은 내가 살던 곳의 마당보다 훨씬 좁았다.

        

       하지만, 사실 서울 한복판에 이만한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미 갑부라는 증명이다. 실제로 가지고 있는 집이 이것뿐만인 것도 아닐 거고.

        

       키우는 강아지와 뛰어놀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울에서는 굉장히 넓은 집이었다.

        

       “걔는 이제 뛰지 못해. 뛰기에는 너무 지쳤으니까.”

        

       바꿔말하자면 늙었다는 소리다.

        

       사실 개를 키워본 적이 없는 나로선, 이게 늙어 보이는 건지 잘 모르겠다. 가만히 보면 털도 듬성듬성 빠졌고, 다리도 비쩍 말라서 그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그러려니 생각할 뿐이었다. 개가 늙는다고 털이 하얗게 세고 그러는 것은 또 아니었으니까.

        

       ……아닌가? 잘 모르겠다. 무언가를 키우는 것도 나에게는 허락된 적이 없으니까.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보았다.

        

       얼핏 뻣뻣해 보이는 털과는 다르게, 털은 매우 부드러웠다.

        

       눈을 감고 있던 그 아이는, 내 손이 느껴졌는지 가만히 눈을 떴다.

        

       그리고 그 까만 눈으로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개가 몇 년을 살더라.

        

       아마 십몇년쯤이면 사람으로 따졌을 때 노인이라고 했던 것 같다. 아마 얘도 그 정도의 나이는 되었겠지.

        

       “얘 이름이 뭐야?”

        

       “초코.”

        

       “초코?”

        

       “응, 초코.”

        

       털 색을 보고 지은 이름일까? 정말 직관적인 이름이다.

        

       나름대로 귀엽기도 하고.

        

       슬슬 밤이 늦기도 했고, 얘도 자다 일어나서 그랬는지 몸을 일으킬 힘은 없는 모양이었다. 나를 한참 동안 올려다보던 이 아이는 다시 눈을 감았다.

        

       순간 혹시……?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다행히도 손이 닿은 부분은 여전히 따뜻했고, 코가 살짝 벌렁거렸다.

        

       “어릴 때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었어.”

        

       “어릴 때?”

        

       “응. 나는 친구가 없었거든.”

        

       그 말을 들은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금시초문이었다.

        

       아, 물론, 내가 원래 다른 아이들에게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는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면 어머님이 어떻게든 처리해버린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다고 대단한 이타심으로 그랬다기보다는 그냥 포기하고 있었던 것에 가깝기는 했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아의 관계는 이제 거의 다 회복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사람이 학교를 장악해버린 뒤에는 나, 그리고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괴롭힐 이유가 사라졌으니까.

        

       자연스럽게 수아의 주변에도 다시 사람이 몰려들었다. 내가 수아를 만나러 반에 갈 때마다, 수아는 여러 아이 사이에서 어색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름대로 인기가 많은 아이였나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냐.”

        

       수아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무래도 어딜 가도 이질적인 외모니까. 외국에 있건, 여기에 있건.”

        

       “…….”

        

       나는 수아가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수아에게는 동아시아계의 얼굴과 백인의 특징이 모두 있기는 했다.

        

       아마 배척받은 이유는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집에 와서 이 아이랑 계속 대화한 거야. 아버지도, 어머니도 집에는 안 계셨으니까. 두 분은 너무 바쁘시니까.”

        

       “…….”

        

       내 옆에 쪼그려 앉은 수아는 초코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여 초코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었다.

        

       초코는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기분 좋다는 듯 실눈을 뜬 채로 자기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널 좋아하나 봐.”

        

       “응.”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날린 말이었는데, 다행히 수아는 배시시 웃으며 초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정말로 소중한 존재를 보는 것 같은, 부드러운 눈.

        

       ……하지만, 초코의 수명은, 이쪽으로는 문외한인 내가 보더라도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만약 초코가 떠나가면, 그 시절에 수아가 이 아이와 나누었던 이야기는 그대로 영영 둘만의 비밀이 되겠지.

        

       “……친구.”

        

       나는 불쑥 말을 꺼냈다.

        

       “응?”

        

       “친구라는 거.”

        

       나는 수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만든 거야?”

        

       수아는, 나와 비슷한 처지였다. 물론 누가 더 나은 상태였나 따진다면 수아가 조금은 더 나은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둘 다 똑같은 피해자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수아의 부모님은, 수아에게 감사해야 했다. 딸이 나처럼 삐뚤어지지 않고 제대로 자라주었으니까. 무언가에 이상하게 집착하지도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으니까.

        

       아니면, 지금 이 앞에 있는 초코에게 감사하거나.

        

       하지만, 궁금하기도 했다.

        

       어떻게 친구가 그렇게 많이 생겼는지. 어떻게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나와 같은 상황에서, 나와 다를 수 있었는지.

        

       나의 질문이 다소 뜬금없었는지, 수아는 한동안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별거 아닌 이야기야.”

        

       “별거 아니라니?”

        

       내가 하지 못했던 일인데?

        

       아,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주는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던 사람들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수아도 다르다.

        

       그렇기에, 나는 알고 싶었다.

        

       “나는, 그저 겁이 많았을 뿐이야.”

        

       “……겁이 많다니?”

        

       다른 사람에게 말도 제대로 걸지 못하던 나도 있는데, 그렇게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던 수아가 겁이 많다는 것을 나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

        

       수아는 한동안 초코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고 있다가, 이내 부드럽게 그 손을 뗐다.

        

       수아를 올려다보고 있던 초코는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빠졌다.

        

       잠시 고민하듯 말이 없던 수아는, 이내 고개를 들었다.

        

       거실 쪽 창문에서 쏟아지는 빛에 비친 수아의 얼굴은, 뭔가 굳게 마음먹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듣고 싶다면 들려줄게.”

        

       “그래, 정말 듣고 싶어.”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밤은 길다.

        

       방에는 우리 둘밖에 없을 거고.

        

       친구끼리, 둘 이외에 못 할 이야기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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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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