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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2

     회귀 전의 인간과 회귀 후의 인간은 같은 존재인가?

     나는 ‘누군가는 맞고, 누군가는 틀렸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후자부터 이야기하자면, 누아르 지브롤터가 그 예시다.

     ’14살 때부터 메이드 가슴이랑 엉덩이 만지고 다니던 새끼가 이제는 차기 지브롤터 백작으로 추앙받고 있다니.’

     장족의 발전이다.

     7년 동안 나는 누아르를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 노력의 결과가 여기에 나타나고 있다.

     ‘성적은 차석. 품행은 단정. 전후 모두 웬즈데이가 전담 교사로 붙어서 교정해주고 있는 게 큰 역할을 하고 있어.’

     제국의 그림자, 웬즈데이 45.

     보육원에 들어왔던 제국 그림자 중에서 내가 누아르에게 ‘직접’ 붙이기로 한 9의 배수 그림자 중 한 명.

     다른 이들로는 먼데이부터 선데이까지 6명이 더 있으나, 이들은 현재 멘테 리프트 자작과 함께 흡혈귀 사냥에 힘을 싣고 있다.

     사실상 누아르 전담.

     개인의 무력은 부족해도 눈치도 빠르고 능력도 좋아, 내가 그녀의 ‘본명’도 외웠을 정도.

     언젠가 황태자를 죽이고 모든 게 끝나는 날, 누아르가 ‘사람’이 되었다면 나는 그녀에게 본명을 선물할 생각이다.

     그림자에게 있어 자신의 이름을 사용한다는 건 한 인간으로서 자유를 의미하는 거니까.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

     회귀 전의 그 개망나니가 지금과 같이 나름 성실하고 착한, 그냥 그 나이대 소년들이 으레 지나가는 미인을 보며 ‘어우야’라고 침을 꼴깍 삼킬 정도가 되었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14세에 메이드 성희롱이나 하고 다니던 개새끼.

     14세에 아카데미 실질적 공동 수석에 학점 4.4를 먹은 노력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전혀.

     ‘환경이 바뀌면 사람도 바뀌지만, 바뀐 환경의 영향이 크지 않으면 회귀 전이나 후나 같은 인간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지.’

     다시, 전자.

     회귀한 시간만큼의 흐름에서 별반 차이가 일어나지 않은 경우에는 회귀 전이나 후나 같다.

     에드먼드 듀카스텔이라고 하는 백작, 기초군사학 교수가 그러하다.

     [에드먼드 듀카스텔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기밀통신용 마석에서 마나가 흘러나온다.

     목소리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특정 패턴을 가진 마나가 흘러나오는 물건이다.

     “그보다, 통신 상태는 괜찮습니까?”

     [양호. 대화에 문제는 없습니다.]

     내 귀에 연결된 마도공학 장치가 그 파장을 인식하고 소리로 변환하여 귀에 직접 소리를 전하는 방식.

     모르가니아 첩보부가 몰래 연구하고 있는 제국 마도공학과 연금술에 의해 개발된 물건 중 하나다.

     [그를 색으로 분류하자면 어느 쪽입니까?]

     “빨아도 빨아도 묵은 때를 벗겨낼 수 없는 걸레 색깔.”

     주로 찌든 때와 먼지가 섞인 회색이다.

     [재활용은 가능합니까?]

     “영웅만능주의에 푹 빠져있는 인간을 다시 써먹으려고 하신다면야.”

     [그러면 ‘옆집’에 던지는 건 어떻습니까?]

     기본적으로 나와 나리아의 대화는 이렇게 기밀통신이기는 하지만, 나리아는 은근히 이런 부분에 있어 재미를 붙이는 중이다.

     “그냥 제국이라고 하시죠.”

     […그래도 기밀 통신인데.]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도 못 해주는 겁니까?]

     나리아가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진다.

     거리는 제법 떨어진 곳이지만, 분명 시선이 느껴진다.

     “…옆집으로 넘어갈 인간도 아닙니다. 뼛속까지 노스트럼이니까요.”

     [그래도 경이라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혹시 수업 듣다가 마음에 들지 않기라도 했습니까?”

     [경에게 좋은 명분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추천하는 겁니다.]

     “쓰레기를?”

     [쓰레기니까.]

     “…….”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회귀 전에도 성향이 그렇기도 하고, 사람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냉철하네.’

     혁명군의 리더 망국의 공주가 되기 이전의 본판은 어디 사라지는 게 아니다.

     잔인하고, 계산적이고, 냉철하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필요하다면 범죄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저지르는 존재였다.

     그 목적이 회귀 전에는 ‘왕국의 부활’이었다면, 지금은 ‘타도 노스트럼’에-

     정정.

     타도 ‘구세계’.

     

     지금까지 쌓여온 영웅만능주의에 입각한 노스트럼 왕국을 바꾸어 나가는 게 현재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가진 궁극의 목적.

     “알겠습니다. 대신 욕은 좀 먹을 것 같은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쓰레기가 하는 욕 따위에 상처 입을 것도 없습니다.]

     “결심이 섰다면 움직이도록 하죠.”

     나는 마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잘 포장해서 옆집에 던질 테니, 여왕께서는 ‘미친놈’이 혹시 움직이면 그걸 대응해 주시길.”

     [확인.]

     뚝.

     마석에서 빛이 사라지며, 파장이 끊겼다.

     “후.”

     살짝, 기가 빨린다.

     백은을 통해 꿈을 꿀 때는 인간의 정기가 빨려 들어간다면, 지금은 칼 위를 걷는 기분이다.

     ‘자칫 잘못하면 진짜 단두대에 사람이 올라갈 수 있다고.’

     왕녀가 아카데미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사교계의 흐름은 변하기 시작했다.

     왕국 애호단.

     학생회.

     

     사실상 오로솔 아카데미가 다음 나리아 왕정의 기초단계가 아니냐는 이야기는 여기 다니는 학생들도 입학 이전부터 말이 나왔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고 있으니 말 다 했지.

     ‘어떻게 할까.’

     결론은 나왔다.

     쓰레기는 불태워 없애야 하지만, 우리의 왕녀께서는 쓰레기를 집에서 태우지 말고 옆집으로 던질 것을 요구했다.

     그걸 잘 포장하는 건 나의 몫.

     띵동.

     나는 재단 이사장실 책상 위에 있는 종을 가볍게 눌렀다.

     똑똑똑.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노크와 함께 들어온 정장의 사내.

     협곡 재단에서 일하는 직원인 동시에, 보육원 출신 중에서 20살 성인이 된 남자.

     “앨버트. 라 플라시아 레스토랑에 식사를 하나 예약해 두게. 사흘 뒤 저녁으로.”

     “그분과 룸을 잡는 겁니까?”

     “룸은 잡되, 그녀와 가는 건 아니야. 애초에 거기, 데이트하러 갈만한 곳은 아니잖나.”

     나는 가볍게 검지로 귀 한쪽을 두드렸다.

     “알겠습니다. 공무시군요.”

     앨버트는 좌우를 빠르게 훑은 뒤, 옷깃을 검지와 중지로 만지작거렸다.

     별 의미 없는 신호다.

     고작 이런 일반적인 제스쳐 속에 ‘아직 듣는 귀가 있다’라거나 ‘열린 문 뒤 복도 끝에 다른 직원이 있다’라거나 하는 식으로 해석하는 건 과잉해석이며 정신병에 가까운 의심암귀다.

     “제가 직접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아, 그리고….”

     초대하는 사람의 성향에 맞게.

     “내 건 미디움 웰던으로, 상대의 것은 핏기 가득한 레어로.”

     

     * * *

     사흘 뒤, 레스토랑 라 플라시아.

     “스테이크를 주문하는데 상대에게 묻지도 않고 굽기를 정하시나요?”

     “레어만 드시잖습니까.”

     “저도 웰던으로 먹을 줄 아는 여자랍니다.”

     내 초대를 받은 바토리 에르제베트 부총장은 피곤한 얼굴로 나이프를 들었다.

     “그래도 사양하지 않겠어요. 다시 구워달라고 하는 건 실례니까.”

     “정당한 소비자의 권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제국에서는 그래도 괜찮지만, 노스트럼에서 그랬다가는 요리사가 스테이크에 침이라도 뱉을걸요?”

     “그런 비위생적인 행동을 한다면 가게는 접어야죠. 적어도 이 오로솔에서는.”

     “어머. 오로솔 아닌 곳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뜻?”

     “식사하실 거면 지브롤터에서 하십시오.”

     “…그렇게 답하시면 진짜인 줄 알잖아요. 제가.”

     바토리 부학장은 핏기가 소스처럼 흐르는 스테이크를 한 점 가볍게 물었다.

     

     “그래서 부르신 용선은 뭐예요? 방학 중에 뭐 할지? 계절학기에 수업 들어보시려고?”

     “이번에 올라온 교수회의 안건에 대하여 부총장님의 의견을 여쭙고자 합니다.”

     “…….”

     “부총장님도 답답하니까 제 초대에 응하신 거 아니겠습니까? 다른 교수들의 식사 자리를 거절하고.”

     “자기가 젊은 줄 아는 40대 중년 교수들이 허허허 거리면서 술 한번 따라보라고 하는 게 싫어서 왔을 뿐이에요.”

     “…부총장에게 그러는 자가 있단 말입니까?”

     “예.”

     “…….”

     제국이나 왕국이나, 늙은 남자가 젊은 미인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하는 건 으레 있는 일이다.

     “외교 문제로 걸고 넘어진다면 일단 저는 응원해 드리겠습니다.”

     “안 그래도 그거 상담 좀 해볼까 고민했는데 다행이네요. 이사장님이 이렇게 응원이라도 해줘서.”

     하지만 부학장을 상대로 ‘아가씨가 술 한 잔 따라봐’라고 하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일부러 그런 거 다 알아요. 부학장이든 뭐든 제국인을 상대로 어떻게든 긁어보려고 하는 거. 누가 시켰든 아니면 원래 그런 인간이든, 음습함 반 정치적 의도 반 그 정도겠죠.”

     “정치적 의도가 더 높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도 같은 노스트럼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짓이로군요.”

     “뭘요. 노스트럼식 모욕주기는 이미 부학장으로 들어온 첫날부터 시작되었는데.”

     “…….”

     아마도 내가 모르는, 혹은 듣지 못하는 곳에서도 제국 교수를 향해 은근한 압박이 있는 모양이다.

     “이사장님께서 황손녀님을 계속 끼고 지내셔서 잘 모르시겠지만, 1학기 내내 제국 유학생들을 향한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았답니다?”

     “유학생들에 관한 문제는 알고 있습니다. 아스타시아가 듣고, 그녀가 제게 이야기를 해준 부분도 있으니까.”

     “어머, 둘이 있을 때는 그런 것도 이야기하나요?”

     “제가 직접 나서는 건 그녀도 부담스러워하지만, 알고는 있으라고 하는 소리죠.”

     사실은 곳곳에 심어둔 직원과 첩자를 통해 파악한 내용에 가깝지만.

     “아카데미 학생들끼리는 유학생들에 대한 심리적 울타리가 조금 허물어졌습니다. 학생회에서 일하고 있는 제국 유학생….”

     “블론드.”

     “예. 그 금발 친구도 그렇고, 다른 유학생들도 각자 아카데미 학생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죠.”

     “…….”

     바토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와인을 삼킨다.

     아마 그 뒤에는 ‘그게 다 첩자로서 사람 낚으려고 하는 짓인데’라는 말이 있었으리라.

     제국의 나쁜 남자를 동경하는 어느 한 남작 영애를 향해 시비를 걸면서 은근하게 친해지는 202호의 그림자 청년이라거나.

     

     순박한 어느 후작가 청년을 상대로 도서관에서 자주 마주치며, 좋아하지도 않는 소재의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며 호감도를 쌓는 302호 그림자 여인이라거나.

     당장 201호, 블론드의 경우에는 나리아의 오른팔 역할과도 같이 학생회에서 일하며 솔선수범하고 있다.

     “그거 아세요? 제국 유학생 중에 왕국 학생들과 가장 덜 친해진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스타시아 황손녀가 1등일 거예요.”

     “그녀에게는 단 한 명으로 충분합니다.”

     “그레이 지브롤터?”

     “100명의 지인을 사귀어도 1명의 벗을 사귀는 것만 못한 경우가 많죠.”

     “그레이 지브롤터 이사장님은 벗이 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연인이 되고 싶어 하시는 거 아니신가~”

     한 가지.

     “어떻게, 고백은 받아주셨나 몰라요?”

     “팁이라도 하나 알려주시겠습니까?”

     “사랑한다고 그냥 직진해버리는 건 어때요?”

     “매일 사랑을 속삭이고 있습니다만.”

     대외적으로, 심지어 바토리 교수에게도 마찬가지지만.

     “키스는 해보셨어요?”

     “…….”

     “어머나. 황손녀님께서 순결 서약이라도 하신 건가~”

     아직, 나는 아스타시아를 직권으로 계속 데리고 다니고 있지만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는 아니다.

     대외적으로는.

     “후후훗. 아스타시아님께서 포기할 때까지 계속 도전하실 건가요?”

     “졸업할 때까지.”

     “졸업까지 실패하면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

     회귀 전의 그녀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그러할 뿐이다.

     대외적으로는.

     “진심은 통하는 법. 혹시 압니까? 사실은 이미 키스는 물론이거니와, 서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같이 목욕도 하는 사이일지.”

     “…….”

     “…그렇게 되고 싶다는 겁니다. 정색하지 마십시오.”

     “아니, 흠. 그, 지브롤터의 맹약은…?”

     “그 맹약을 깨트리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황손녀를 보내지 말든가.”

     “어머. 진짜 짜증나시나보네. 하긴. 17살 건장한 청년이니까, 이해는 해요.”

     적당히 나이에 맞게 행동하여 약점을 보이는 게 참 좋다.

     바토리 부총장이 어떠한 존재든, 지금 그녀에게는 내가 ‘죽어라 참고 있는 혈기 왕성한 청소년’으로 보일 테니까.

     “흐음. 그런데 말이에요. 황손녀님 말고 다른 여자 불러서 해결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정 못 참겠으면.”

     “허니문에서 처음으로 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여자는 순결을 지키는데, 남자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

     순간적으로 바토리는 나를 향해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어려서 뭘 모르나 본데….”

     치기 어린 급발진에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잠깐. 그러면….”

     

     찰나.

     세로로 길게 갈라진 동공과 함께, 입술에 묻은 붉은 소스를 혀로 핥으며 야릇한 표정을 짓는 그 ‘찰나’를 그녀는 감추지 못했다.

     ‘역시나.’

     블러디 엘프, 흡혈귀는 진조에 가까울수록 순결한 자의 피를 좋아한다고 하더니.

     괜히 흡혈귀 사냥꾼 부대가 순결을 유지하는 게 아니다.

     “흠, 흠흠. 저기, 이사장님?”

     바토리 부총장이 상체를 숙이며, 장갑을 낀 손으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긴다.

     “교수회의에서 나온 에드먼드 듀카스텔 교수 징계 및 해임안에 대하여, 우리 좀 더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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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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