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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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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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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자비한 전투의 흔적이 가득한 몸이 시야 가득 들어찼다. 가죽 갑옷은 깊은 찍힘과 긁힘으로 가득했고, 피로 흥건하게 젖어 제 색을 알아볼 수 없었다. 아물지 않은 상처에서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
    ​
    ​
    새하얀 피부는 더욱 창백하게 질려 색을 완전히 잃은 것처럼 보였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한 여자의 입술 사이로 연신 작은 신음을 뱉어냈지만, 악몽 속에서 헤매는 사람처럼 깨어나지 못했다. 
    ​
    ​
    리안은 곧바로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몸을 바로 눕혔다. 호흡이 불규칙하고 잠깐 몸을 만졌을 뿐인데 손에 끈적한 피가 묻어났다. 시간이 꽤 지난 상처도 있는지 피딱지가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
    ​
    ​
    ‘다행이다. 아직 죽지 않았어!’
    ​
    ​
    리안은 안도하며 곧바로 제 왼손을 그녀의 명치 부근 위에 살포시 올렸다.
    ​
    ​
    “으…”
    ​
    ​
    그곳에도 상처가 있는지 작은 신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리안의 손에서 따스한 빛이 쏟아져나왔다.
    ​
    ​
    [ 으윽…! 기분 나빠! ]
    ​
    ​
    전보다 몇 배는 찬란하고 농도가 짙어진 신성력을 견디지 못한 마검이 리안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리안은 당황한 얼굴로 제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
    ​
    ‘이거 왜 이렇게 화려해졌어?’
    ​
    ​
    손등의 문양이 복잡하고 화려한 마법진 모양으로 바뀐 것도 어이가 없는데, 그 문양이 손등보다 조금 위에서 똑같이 그려졌다. 그런 마법진이 무려 세 개나 되었다. 전보다 임팩트가 몇 배는 강해졌다.
    ​
    ​
    피아의 포교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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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르륵…
    ​
    ​
    외관만큼이나 힘도 뛰어난지 작은 상처들이 하나, 둘 아물기 시작했다. 마치 시간이 되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상처가 아물수록 공작의 얼굴이 편안하게 풀렸다.
    ​
    ​
    자잘한 상처가 전부 아물자 커다란 상처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치료의 끝이 보이자 몸에 힘이 쭉 풀리면서 안도감이 밀려왔다. 
    ​
    ​
    살며시 미소 지으며 그녀의 표정을 확인하고자 시선을 굴리는 순간 시야가 흔들렸다.
    ​
    ​
    “억…!”
    ​
    ​
    억센 손길에 멱살이 잡혀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바닥을 구르는 볼링공처럼 몇 바퀴 굴러 가까이에 있는 벽에 쿵! 하고 부딪쳤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면 리안에게 밀쳐져 볼링핀처럼 날아갔겠지만 아쉽게도 이곳엔 두 사람뿐이었다.
    ​
    ​
    “흐으…”
    ​
    ​
    배쪽에 자리한 가장 큰 상처가 치료되기도 전이었기에 그녀의 몸엔 여전히 고통이 넘실거렸다. 하지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공작은 자세를 바로 한 후 뒷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는 리안을 매섭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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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 이번에는 남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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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심하게 관리된 듯 부드럽게 흐트러진 하얀 머리카락, 그 사이로 드러난 순금을 연상시키는 영롱한 금안은 공작가의 핏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이었다.
    ​
    ​
    매끈한 피부와 조각한 듯한 이목구비 또한 귀족이 아니고서야 가질 수 없는 특징이었다. 
    ​
    ​
    며칠 내내 제 자식을 흉내 낸 것과 싸워야 했던 공작에겐 리안 또한 그것들과 별반 차이 없이 느껴졌다. 그저 성별이 다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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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것들을 계속 죽이니 이젠 아들의 모습으로 나타나나 보군.’
    ​
    ​
    아이리스는 정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실종되었다. 그 탓에 아이리스의 성별을 알고 있는 건 아이를 낳을 때 도와준 산파와 그녀. 두사람이 전부였다. 산파는 몇 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아이리스의 성별을 알고 있는 건 공작이 유일했다.
    ​
    ​
    그녀는 리안을 보며 사납게 웃음 지었다. 
    ​
    ​
    ‘역시 -… 누군가가 파놓은 함정이 맞았군.’
    ​
    ​
    그녀의 이성은 이곳에 떨어진 직후부터 ‘여긴 함정이야.’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선 ‘…고통스럽게 죽어버린 내 아이가 건 저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거스러미처럼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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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만큼 아이리스를 잃었던 일은 그녀에게 큰 상처로 남아있었다.
    ​
    ​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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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는 가볍게 심호흡을 한 후 잿더미가 되어버린 제 감정을 털어냈다. 그리곤 비척거리며 일어나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리안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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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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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까지 등장했던 그것들과 달리 눈앞에 있는 놈은 얼빠진 소리를 내며 멍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입술을 벙긋거리며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는 모습이 어설픈 자비를 바라는 건가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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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검을 치켜들고 있는 공작을 보며 멍한 얼굴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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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사람…아니, 저분 공작님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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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시체가 되어 다 죽어가는 모습에 정신이 팔려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상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익숙한 것들이 시선에 들어왔다. 머리카락 끝이 핏물과 흙으로 뒤덮여있었지만, 설산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새하얀 색이나 그 사이로 보이는 번뜩이는 금안은 100m 멀리서 봐도 공작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는 특징이었다.
   
    ​
    상대가 공작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무서운 현실이 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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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깐.. 공작님이 이 정도로 다치셨다고? 그게… 가능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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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시체나 다를 바 없던 모습을 떠올리자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
    ​
    ‘공작님을 이 정도로 몰아붙일 수 있는 존재가 숲에 있다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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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 함께 뭉쳐 움직여도 위험한 상황에 다들 뿔뿔이 흩어지기까지 해버렸다는 걸 자각하자 공포 영화 도입부에 홀로 남은 조연이 된 기분이었다. 머릿속에 미니 리안들이 대혼란이 도래했다며 난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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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은 가볍게 심호흡하며 머릿속 화재를 잠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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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선 공작님을 마저 치료하고 여길 빠져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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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우 이성을 끌어모아 그럴듯한 답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두 앞에 하얀 빛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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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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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마검이 제 손에 쥐어져 있었고, 코앞에 공작이 다가와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마검과 그녀의 검이 치열하게 부딪쳤다. 리안은 어리바리한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마검이 이를 제한 했다. 순식간에 표정이 무덤덤해지고 포커페이스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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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 다행이다. 순간 멍청한 소리를 낼 뻔했어.’
    ​
    ​
    마검이 막아주지 않았다면 정말 입으로 ‘어버버..’같은 소리를 냈을지도 몰랐다. 속으로 안도하고 있는 사이 제 몸이 멋대로 움직여 공작과 치열하게 부딪쳤다.
    ​
    ​
    두 사람은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예리하게 움직였다. 몇십, 몇백년동안 수많은 인간을 죽여온 마검의 검술은 사나웠지만 동시에 우아했다. 공작의 검술은 정교하고 단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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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시무시한 양의 피를 흡수한 마검이 모든 힘을 쏟아낸다면 공작을 힘으로 찍어누를 수 있겠지만, 마검은 그러지 않았다. 
    ​
    ​
    검이 충돌하며 철과 철이 부딪치는 날 선 소리가 울려 퍼지고 춤을 추듯 정교하게 부딪치던 두 사람이 동시에 뒤로 훅 물러났다. 
    ​
    ​
    [ 크흐흐… 오랜만에 피가 끓어오르는군! ]
    ‘넌 피도 없잖아.’
    [ 파트너의 피를 말하는 거다! 막 흥분되지? ]
    ​
    ​
    리안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대로 그의 입술에 유열이 깃든 탓이다. 
    ​
    ​
    마검이 보다 많은 피를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마검과 리안은 긴밀하게 이어졌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 덕분에 리안은 마검이 제 몸을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 움직이기 전부터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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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 안다는 것은 자신이 몸을 조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쾌락을 안겨주었다. 
    ​
    ​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강자와의 싸움은 마검의 말대로 짜릿한 흥분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쉽사리 긍정할 순 없었다. 
    ​
    ​
    ‘아이리스 어머니를 보고 흥분된다고 대답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
    ​
    리안이 고민하는 사이 공작이 재차 리안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의 검이 맞부딪치려는 순간.
    ​
    ​
    “엄마.”
    “…!”
    “….?!”
    ​
    ​
    그녀의 등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뭉치더니 그녀의 무릎까지 겨우 올까 말까 한 크기의 아이리스가 나타났다.
    ​
    ​
    “헤헤, 엄마아 -..”
    ​
    ​
    아이리스를 빼닮은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무방비한 공작의 다리에 매달렸다. 
    ​
    ​
    콰직!
    ​
    ​
    그녀의 종아리와 허벅지가 아이의 몸에서 고슴도치 가시처럼 튀어나온 검은색 가시에 꿰뚫렸다.
    ​
    ​
    “크윽…!”
    ​
    ​
    공작의 몸이 허물어져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
    ​
    [ 감히 흉내쟁이 따위가 고귀한 싸움을 방해해?! ]
    ​
    ​
    싸움을 방해받은 마검이 단숨에 몸에서 가시가 튀어나온 아이리스를 베어버렸다. 
    ​
    ​
    “끼아아악!”
    ​
    ​
    항상 흩어지듯 사라졌던 것들이 마검의 일격에 비명을 내지르며 하얗게 먼지처럼 변해 바닥에 흩어졌다. 죽여도 죽여도 형태만 바꾸어 몇 번이고 덤벼드는 도플갱어의 진짜 죽음이었다.
    ​
    ​
    “공작님!”
    ​
    ​
    리안은 곧바로 바닥에 쓰러진 채 검을 바닥에 박아넣고 비틀거리며 일어나려는 공작에게 달려갔다.
    ​
    ​
    “크윽… 젠장!”
    ​
    ​
    그녀는 욕설을 내뱉으며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금세 몸이 허물어졌다. 피가 울컥울컥 빠져나와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기 시작했다. 리안은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곧바로 신성력을 사용하려 했지만, 1m 안쪽으로 들어간 순간 그녀가 매섭게 눈을 빛내며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
     그 탓에 핏물이 더욱 흥건하게 바닥을 적셨다. 그녀가 리안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아군이라 판단되어 상처의 크기가 훨씬 작았겠지만, 적으로 판단하는 바람에 평소보다 상처의 크기가 더 컸다.
    ​
    ​
    리안이 그녀를 아군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면 개그 필터에 의해 온몸이 꿰뚫려 죽어버렸을지도 몰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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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를 알 리 없는 공작은 상처 입은 야생 동물이 주사기를 든 수의사를 바라보듯 으르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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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다음화 보고 싶다.. 보려면 내가 써야하네… ;0;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헉…!”

무자비한 전투의 흔적이 가득한 몸이 시야 가득 들어찼다. 가죽 갑옷은 깊은 찍힘과 긁힘으로 가득했고, 피로 흥건하게 젖어 제 색을 알아볼 수 없었다. 아물지 않은 상처에서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

새하얀 피부는 더욱 창백하게 질려 색을 완전히 잃은 것처럼 보였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한 여자의 입술 사이로 연신 작은 신음을 뱉어냈지만, 악몽 속에서 헤매는 사람처럼 깨어나지 못했다.

리안은 곧바로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몸을 바로 눕혔다. 호흡이 불규칙하고 잠깐 몸을 만졌을 뿐인데 손에 끈적한 피가 묻어났다. 시간이 꽤 지난 상처도 있는지 피딱지가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

‘다행이다. 아직 죽지 않았어!’

리안은 안도하며 곧바로 제 왼손을 그녀의 명치 부근 위에 살포시 올렸다.

“으…”

그곳에도 상처가 있는지 작은 신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리안의 손에서 따스한 빛이 쏟아져나왔다.

[ 으윽…! 기분 나빠! ]

전보다 몇 배는 찬란하고 농도가 짙어진 신성력을 견디지 못한 마검이 리안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리안은 당황한 얼굴로 제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이거 왜 이렇게 화려해졌어?’

손등의 문양이 복잡하고 화려한 마법진 모양으로 바뀐 것도 어이가 없는데, 그 문양이 손등보다 조금 위에서 똑같이 그려졌다. 그런 마법진이 무려 세 개나 되었다. 전보다 임팩트가 몇 배는 강해졌다.

피아의 포교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스르륵…

외관만큼이나 힘도 뛰어난지 작은 상처들이 하나, 둘 아물기 시작했다. 마치 시간이 되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상처가 아물수록 공작의 얼굴이 편안하게 풀렸다.

자잘한 상처가 전부 아물자 커다란 상처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치료의 끝이 보이자 몸에 힘이 쭉 풀리면서 안도감이 밀려왔다.

살며시 미소 지으며 그녀의 표정을 확인하고자 시선을 굴리는 순간 시야가 흔들렸다.

“억…!”

억센 손길에 멱살이 잡혀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바닥을 구르는 볼링공처럼 몇 바퀴 굴러 가까이에 있는 벽에 쿵! 하고 부딪쳤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면 리안에게 밀쳐져 볼링핀처럼 날아갔겠지만 아쉽게도 이곳엔 두 사람뿐이었다.

“흐으…”

배쪽에 자리한 가장 큰 상처가 치료되기도 전이었기에 그녀의 몸엔 여전히 고통이 넘실거렸다. 하지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공작은 자세를 바로 한 후 뒷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는 리안을 매섭게 바라보았다.

“하… 이번에는 남자인가?”

세심하게 관리된 듯 부드럽게 흐트러진 하얀 머리카락, 그 사이로 드러난 순금을 연상시키는 영롱한 금안은 공작가의 핏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이었다.

매끈한 피부와 조각한 듯한 이목구비 또한 귀족이 아니고서야 가질 수 없는 특징이었다.

며칠 내내 제 자식을 흉내 낸 것과 싸워야 했던 공작에겐 리안 또한 그것들과 별반 차이 없이 느껴졌다. 그저 성별이 다를 뿐.

‘딸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것들을 계속 죽이니 이젠 아들의 모습으로 나타나나 보군.’

아이리스는 정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실종되었다. 그 탓에 아이리스의 성별을 알고 있는 건 아이를 낳을 때 도와준 산파와 그녀. 두사람이 전부였다. 산파는 몇 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아이리스의 성별을 알고 있는 건 공작이 유일했다.

그녀는 리안을 보며 사납게 웃음 지었다.

‘역시 -… 누군가가 파놓은 함정이 맞았군.’

그녀의 이성은 이곳에 떨어진 직후부터 ‘여긴 함정이야.’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선 ‘…고통스럽게 죽어버린 내 아이가 건 저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거스러미처럼 남아있었다.

그만큼 아이리스를 잃었던 일은 그녀에게 큰 상처로 남아있었다.

“후우…”

그녀는 가볍게 심호흡을 한 후 잿더미가 되어버린 제 감정을 털어냈다. 그리곤 비척거리며 일어나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리안을 바라보았다.

“어…”

지금까지 등장했던 그것들과 달리 눈앞에 있는 놈은 얼빠진 소리를 내며 멍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입술을 벙긋거리며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는 모습이 어설픈 자비를 바라는 건가 싶기도 했다.

리안은 검을 치켜들고 있는 공작을 보며 멍한 얼굴로 생각했다.

‘저 사람…아니, 저분 공작님 같은..데?’

반시체가 되어 다 죽어가는 모습에 정신이 팔려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상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익숙한 것들이 시선에 들어왔다. 머리카락 끝이 핏물과 흙으로 뒤덮여있었지만, 설산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새하얀 색이나 그 사이로 보이는 번뜩이는 금안은 100m 멀리서 봐도 공작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는 특징이었다.

상대가 공작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무서운 현실이 성큼 다가왔다.

‘잠깐.. 공작님이 이 정도로 다치셨다고? 그게… 가능한 일이야?’

반시체나 다를 바 없던 모습을 떠올리자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공작님을 이 정도로 몰아붙일 수 있는 존재가 숲에 있다는 거잖아..!’

다 함께 뭉쳐 움직여도 위험한 상황에 다들 뿔뿔이 흩어지기까지 해버렸다는 걸 자각하자 공포 영화 도입부에 홀로 남은 조연이 된 기분이었다. 머릿속에 미니 리안들이 대혼란이 도래했다며 난리를 쳤다.

리안은 가볍게 심호흡하며 머릿속 화재를 잠재웠다.

‘…우선 공작님을 마저 치료하고 여길 빠져나가자.’

겨우 이성을 끌어모아 그럴듯한 답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두 앞에 하얀 빛이 터졌다.

챙!

어느새 마검이 제 손에 쥐어져 있었고, 코앞에 공작이 다가와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마검과 그녀의 검이 치열하게 부딪쳤다. 리안은 어리바리한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마검이 이를 제한 했다. 순식간에 표정이 무덤덤해지고 포커페이스를 찾았다.

‘휴… 다행이다. 순간 멍청한 소리를 낼 뻔했어.’

마검이 막아주지 않았다면 정말 입으로 ‘어버버..’같은 소리를 냈을지도 몰랐다. 속으로 안도하고 있는 사이 제 몸이 멋대로 움직여 공작과 치열하게 부딪쳤다.

두 사람은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예리하게 움직였다. 몇십, 몇백년동안 수많은 인간을 죽여온 마검의 검술은 사나웠지만 동시에 우아했다. 공작의 검술은 정교하고 단아했다.

무시무시한 양의 피를 흡수한 마검이 모든 힘을 쏟아낸다면 공작을 힘으로 찍어누를 수 있겠지만, 마검은 그러지 않았다.

검이 충돌하며 철과 철이 부딪치는 날 선 소리가 울려 퍼지고 춤을 추듯 정교하게 부딪치던 두 사람이 동시에 뒤로 훅 물러났다.

[ 크흐흐… 오랜만에 피가 끓어오르는군! ]

‘넌 피도 없잖아.’

[ 파트너의 피를 말하는 거다! 막 흥분되지? ]

리안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대로 그의 입술에 유열이 깃든 탓이다.

마검이 보다 많은 피를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마검과 리안은 긴밀하게 이어졌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 덕분에 리안은 마검이 제 몸을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 움직이기 전부터 알 수 있었다.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 안다는 것은 자신이 몸을 조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쾌락을 안겨주었다.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강자와의 싸움은 마검의 말대로 짜릿한 흥분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쉽사리 긍정할 순 없었다.

‘아이리스 어머니를 보고 흥분된다고 대답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리안이 고민하는 사이 공작이 재차 리안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의 검이 맞부딪치려는 순간.

“엄마.”

“…!”

“….?!”

그녀의 등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뭉치더니 그녀의 무릎까지 겨우 올까 말까 한 크기의 아이리스가 나타났다.

“헤헤, 엄마아 -..”

아이리스를 빼닮은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무방비한 공작의 다리에 매달렸다.

콰직!

그녀의 종아리와 허벅지가 아이의 몸에서 고슴도치 가시처럼 튀어나온 검은색 가시에 꿰뚫렸다.

“크윽…!”

공작의 몸이 허물어져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 감히 흉내쟁이 따위가 고귀한 싸움을 방해해?! ]

싸움을 방해받은 마검이 단숨에 몸에서 가시가 튀어나온 아이리스를 베어버렸다.

“끼아아악!”

항상 흩어지듯 사라졌던 것들이 마검의 일격에 비명을 내지르며 하얗게 먼지처럼 변해 바닥에 흩어졌다. 죽여도 죽여도 형태만 바꾸어 몇 번이고 덤벼드는 도플갱어의 진짜 죽음이었다.

“공작님!”

리안은 곧바로 바닥에 쓰러진 채 검을 바닥에 박아넣고 비틀거리며 일어나려는 공작에게 달려갔다.

“크윽… 젠장!”

그녀는 욕설을 내뱉으며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금세 몸이 허물어졌다. 피가 울컥울컥 빠져나와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기 시작했다. 리안은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곧바로 신성력을 사용하려 했지만, 1m 안쪽으로 들어간 순간 그녀가 매섭게 눈을 빛내며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탓에 핏물이 더욱 흥건하게 바닥을 적셨다. 그녀가 리안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아군이라 판단되어 상처의 크기가 훨씬 작았겠지만, 적으로 판단하는 바람에 평소보다 상처의 크기가 더 컸다.

리안이 그녀를 아군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면 개그 필터에 의해 온몸이 꿰뚫려 죽어버렸을지도 몰랐다.

이를 알 리 없는 공작은 상처 입은 야생 동물이 주사기를 든 수의사를 바라보듯 으르렁거렸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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