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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2

   EP.152

     

   그레이스 펠튼.

     

   도둑 길드 길드장의 비서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김시인의 명령에 따라 현장을 뛰어다니게 된 인물.

   그는 로그 브리트만의 비서로 일하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허함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굉장히 해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의문이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길드장 앞으로 온 특수 의뢰가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고작해야 밥 처먹고 훈련을 하는 길드장의 부실하기 짝이 없는 일정을 체크하고 아침 식사와 어울릴 만한 도수가 낮은 술을 한 병 고른다.

     

   「지겹군.」

     

   체계도 잡히지 않은 도둑 길드에서 비서가 할 만한 보람찬 일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나마라면 다른 길드원들이 받은 의뢰비를 삥땅 치고 길드의 공금을 빼돌려 혼자서 안줏거리와 함께 비싼 술을 한 잔 하는 정도랄까?

     

   특별한 일이 벌어졌으면 했다.

   지금의 삶이 반복된다면 자신의 일부분이 곪아 버릴 것 같았으니 그 염증을 치유하기 위해 새로운 일을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펠튼! 길드의 정보 창고가 털렸습니다!」

   「……뭐?」

   「최근에 발견된 던전 자료도! 귀족들의 비리 문서도! 비싸게 취급하던 모든 정보가 사라졌습니다!」

   「뭔 개소리야!」

     

   길드의 정보 창고가 누군가에 의해 털렸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보안이 그렇게 철저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길드의 간부급이 아닌 이상 소리 소문도 없이 자료를 털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기, 길드장님!」

     

   비서인 그레이스 펠튼은 우선 길드장실을 찾았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일 수는 있겠지만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인원을 총동원해서라도 소를 훔친 놈 낯짝은 봐야 했으니까.

     

   「……이런 개 같은 경우가!」

   「길드장님?」

     

   하지만 길드장은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진 하트! 그 녀석은 지금 어디에 있지?」

   「예? 그건 저도 잘……」

   「이익! 비서라는 새끼가! 간부들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그레이스 펠튼은 너무나도 억울했다.

   본인은 길드장인 로그의 비서였지 진 하트의 비서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간부들을 관리하는 것은 최고직인 길드장의 업무.

   지가 하지 않은 일을 남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니 빡이 돌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진 하트 그 여자를 잡아올 테니까 그레이스 너는 길드에서 대기하고 있어! 젠장맞을! 똥을 밟은 것도 개 같은데 이젠 다 뒤지게 생겼네!」

     

   길드장은 그렇게 아무런 대책도 없이 길드를 떠났다.

     

   처음에는 그가 금방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평소에도 대충 명령이나 내렸지 본인이 직접 나서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니까.

     

   하지만 길드장은 며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진 하트를 따랐던 길드원들 소수도 이곳에 가망이 없다고 느꼈는지 길드를 떠나버렸고 사람이 줄어드니 길드의 활력 자체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참에 나도 흑영 때려치우고 다른 길드로 이적할까……」

     

   죽었는지 살았는지 일주일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 길드장.

   돈이 될 만한 정보들을 다 털려서 힘을 잃은 길드.

     

   그나마 의리로 남아 있는 듯하지만 언제 와해될지 알 수 없는 이곳에 더 이상 그의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길드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한 그날.

     

   도둑 길드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흰옷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여기 대가리 나오라 그래.」

     

   처음에는 혹시 로그 길드장이 자신들 모르게 돈을 빌리기라도 했나 의심했다.

   충분히 얼빠진 인간이었고 길드를 떠나서 연락도 없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으음……」

     

   일단 그 사람을 달랬다.

   정확히는 이곳이 흑영 길드라는 것을 숨기려고 연기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역효과를 일으켰을 뿐. 그 남자는 길드장이 이곳에 없다는 것만 몰랐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길드를 찾았다.

     

   그레이스 펠튼은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길드장이 사라진 상태라 그를 찾을 수도 없고 의뢰를 맡긴다고 해도 그것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도 전했다.

     

   하지만 웬걸.

     

   「일단 너희들 역할부터 좀 바꿔야겠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는 길드원들을 하나하나 불러 그들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했다.

   도대체 무슨 능력으로 그런 것을 해낸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에게 그토록 지겨워하던 비서 업무를 때려치우고 현장으로 뛰라고 말했다는 것.

     

   비로소 자신이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보람찬 삶.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진 하트와 길드장의 발자취를 쫓았고 수도에서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고생했다.」

     

   자신이 괴물이라고 인정한 남자가 자신을 인정해줬다.

   그것은 존재 이유를 찾던 그레이스 펠튼에게는 이례적인 감동을 불러왔고 그는 그 일을 계기로 김시인이라는 남자에게 충성을 맹세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들은 길드장과 진 하트를 찾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사소한 것들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이 일이 끝나면 자신은 길드를 그만두고 김시인을 따라갈 생각이었으니 딱히 감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제격이야.」

     

   김시인이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남겼다.

     

   「은신이 B에 고급 변장술이 A랭크, 특성에 전설적인 협잡꾼이면…… 실패할 걱정은 없겠네.」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가 김시인에게 신뢰를 얻었다는 사실이 훨씬 중요했다.

     

   「왕궁에 네가 잠입을 좀 해 줘야겠다.」

     

   그래서 그는 그의 명에 따라 왕궁의 경비대원으로 변장했다.

   혹시나 의심을 살까 봐 최근에 잦은 몬스터의 습격으로 입대를 결심한 용병 따위로 가짜 신분을 만들었고 타고난 말빨과 속임수로 신속하게 왕궁에 입궁했다.

     

   「이제 나의 무대야.」

     

   몬스터의 습격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는 빠르게 왕실의 기사로 변장을 했다.

     

   당연히 그의 변장을 알아보는 사람 따위는 없었다.

   기사단장을 보좌하는 기사가 회의실을 빠져나오는 것을 보자마자 그에게 달려가 남문의 습격에 대해 보고를 했음에도 기사는 그를 의심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는 보좌를 따라 자연스럽게 회의실에 들어갔다.

     

   이제 그의 역할은 왕을 왕궁 밖으로 유인하는 것.

   합당한 절차를 통해 진 하트를 왕위에 앉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둘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만나게 해야 했다.

     

   ***

     

   -끼야아악!

   -최강의 종족이 방정맞게 좀 굴지 마라!

   -그치만 저건 맞으면 아프단 말이야!

     

   수도 아르테나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두 마리의 드래곤을 향해 대공포의 포격이 발사됐다.

     

   수십 수백 명의 마법사들이 힘을 합쳐 쏘아대는 마력포들.

   그 모습을 보니 하늘에 화염포를 쏘던 남궁천호가 잠시 생각났지만 그 위력은 감히 한 사람이 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저건 잘못하면 진짜 다칠 수도 있겠는데……’

     

   크레센도의 경우에는 대공포의 공격이 적중할 것 같을 때, 소환을 해제하면 된다.

   하지만 저 이그니스라는 레드 드래곤은 나에게 귀속된 존재가 아니라 저걸 맞을 것 같다고 특별히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쏴!

   -쓰으읍! 파아아아!!!

     

   이그니스의 신호에 맞춰 크레센도가 준비하던 브레스가 궁궐을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예상대로 그 공격은 공중에서 대공포에 의해 요격됐고 빈틈이 생긴 두 마리의 드래곤을 향해 집중 포화가 펼쳐졌다.

     

   “계속 쏴라! 지상의 병력은 찬란한 별과 그의 동료들께서 맡아주고 계시니!”

   “마법사들을 지켜! 드래곤만 잡아낸다면 우리의 승리다!”

     

   그렇게 두 마리의 드래곤은 위험천만한 곡예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와중, 멀리서 달려오는 병사 하나가 반가운 소식 하나를 들고 나에게 달려왔다.

     

   “시인 님! 왕이 드디어 궁을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두 드래곤이 집요하게 궁궐을 노린 게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

     

   경비대원으로 변장하고 궁궐 주변을 염탐하던 도둑 길드원의 보고였다.

     

   “잘해주고 있나 보네.”

     

   나는 그레이스 펠튼이 향하고 있을 북문을 한 번 바라본 이후, 고개를 돌려 아직도 전투를 하고 있는 도둑 길드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그들은 기가 막힐 정도로 멋진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고작 사십 언저리나 될까 싶은 소수 병력이 막아 내는 수천 마리의 몬스터 군단.

   진 하트나 로그 브리트만을 제외하면 겨우겨우 버티는 정도로 전투가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반대로 괴물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마무리 단계군.”

     

   나는 성벽 위에서 도약해 길드원들의 틈에 착지했다.

     

   “너 얼마나 잡았냐? 난 이제 마흔 다섯 마리!”

   “크하핫! 나는 저놈 잡으면 이제 쉰! 금화나 준비하고 있으셔!”

   “젠장!”

     

   성벽에서 뛰어 내리기 직전에 몬스터 사냥 내기를 하자던 두 길드원이 목소리를 높이며 전투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제는 가야할 때.

   나는 검을 뽑아 들었고 최대한 섬세하게 초식을 펼쳤다.

     

   남해삼십육검 제일식 南海三十六劍 第一式

   격랑수검 激浪水劍

     

   쏴아아-!

     

   작은 물줄기가 검에서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길드원들을 피해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집어삼킨다.

   마력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눈을 까뒤집는 모든 괴물들.

     

   “아쉽겠지만 여기까지. 내기는 쉰 마리 먼저 잡은 놈이 이긴 걸로 해.”

     

   나의 등장에 진 하트와 로그 브리트만이 달려온다.

   내가 왔다는 것은 이제 전장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

     

   “진 하트 준비해. 네 원수를 만나러 갈 차례니까.”

   “네!”

   “길드원 전원 북문으로 이동한다!”

     

   그레이스 펠튼이 실수하지 않았다면 왕은 남문과 궁에서 최대한 벗어나기 위해 북문으로 향하고 있을 것.

     

   “무대는 만들어졌어. 이제 네가 마무리 지어.”

   “……감사합니다.”

   “뭘, 부탁을 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지키는 거지.”

     

   수도 아르테나의 모든 피난민들이 몰려 있을 아르테나의 북문.

   점성술사 노릇을 하며 퍼트린 찬란한 별에 대한 예언이 실현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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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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