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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3

    <153 – 진심이 되는 순간>

     

    1.

    이사벨은 연미복 차림의 집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선 얼굴부터 험악하다.

    몸도 평범한 집사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발달된 근육 때문에 거슬린다.

    기백으로 넘어가서는 아예 악의조직의 하수인, 아니 간부급으로 보일만치 무섭고 살벌하다.

     

    ‘분명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아.’

     

    똑같이 항상 미소를 띠고 있는 지젤과 비교해도 극명한 차이가 난다.

    이사벨은 그 차이가 배려에 있음을 깨달았다.

    지젤은 항상 자신의 얼굴이 다른 이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신경 쓴다.

    입은 웃어도 눈은 웃지 않는, 그런 모순적인 표정은 상대에게 위화감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지젤은 눈도 함께 웃는다.

    상대의 긴장을 풀고 분위기를 유하게 만들기 위해서.

    조나 와이히엠하이.

    오크노디가 집사라고 소개한 남자는 달랐다.

    입은 웃어도 눈은 웃지 않는 얼굴.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는 걸까?

    그럴 리가 없다.

    저 험악한 얼굴과 발달된 신체를 보라.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주변에서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다보면 저절로 깨닫기 마련이다.

    이런 표정을 지으면 남들이 어떻게 볼지, 이 표정이 어떤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지.

     

    ‘전부 알고도 저지른 거야.’

     

    저 남자는 명백한 위협을 행사하고 있다.

    오크노디의 친구인 자신에게도.

    다른 학생들에게도.

    상급반 학생들의 보호자들에게도.

     

    “변방 출신 학생이라고? 흠, 뭐 열심히는 살았구나.”

    “호너 후라이드치킨.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변방의 촌것들과 교분을 나눈 건 아니겠지?”

     

    상급반 보호자라는 족속들도 마음에 안 들긴 했다.

    하나같이 대귀족가나 고위관료들로 이루어진 이들.

    그들은 대놓고 변방을 무시했으니까.

    변방 출신 보호자를 무시하는 것은 덤이었다.

    헌데 그 오만한 무리들이 험상궂은 집사를 상대로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도 직접 무어라 비꼬거나 지적하지는 않는다.

    혹시라도 실수로 엮일까봐 행동거지를 주의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와이히엠하이 재단이 대단하기는 하군요. 제국 3대공신가문마저도 눈치를 볼 정도라니.”

     

    지젤의 말에 긴장감이 높아졌다.

    가뜩이나 위험한 사내.

    그가 어째서인지 자신과 손오천을 주시한다.

    낌새가 좋지 않았다.

    홈룸강의가 끝나자 다가오는 조나.

     

    “다들 인사해요! 여기는 집사 조나!”

     

    좋다고 소개부터 시켜주는 오크노디 때문에 얼떨결에 통성명을 했다.

    살기에 민감한 손오천은 평상시의 장난기를 드러내지도 않고 잔뜩 긴장한 얼굴로 등에 맨 봉을 한 손으로 꼭 움켜쥐고 있었다.

     

    “그리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대리인. 저희 재단은 불우한 아이들이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는 보육서비스와 상급교육기관에 입학시켜주는 장학제도를 지닌 집단입니다.”

    “우린 당신들이 장학생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알아요.”

    “이사벨?”

    “오크노디는 가만히 있어.”

    “쥐방울아. 여기는 이사벨 말 들어라.”

     

    손오천에게 고맙다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이사벨.

    그녀가 본격적으로 조나를 쏘아붙였다.

     

    “예비장학생은 훈련을 따르지 않으면 창녀나 노예로 만들고, 장학생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실험이나 테러에 써먹는 재단을 우리가 좋게 볼 것 같아?”

     

    손오천의 커다란 두 손에 귀가 막힌 오크노디는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는 것처럼 어리둥절했다.

    긴장감이 사라지는 감정표현 뚜렷한 얼굴과 달리, 이사벨과 조나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몹시 위험했다.

     

    “오해가 있으신 모양이군요.”

    “변명할 수 있으면 해봐.”

    “저희 아가씨는 수석장학생입니다. 재단에서 전례 없는 재능을 지닌 역대 최고의 인재이죠. 그런 아가씨를 저희가 애지중지 보살피지 않을 리가 없잖습니까.”

    “…그게 끝이야?”

    “다만 아가씨의 교우관계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습니다. 당신들처럼 나약한 인간들이 곁에 있다간 아가씨께서 동료를 잃는 슬픔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제대로 된 변명을 기대한 건 아니다.

    그럴만한 조직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달리 할 말이 있잖아. 그래야 하는 거잖아. 어째서 당신들이 저지른 짓을 부정하지 않는 거냐고!”

     

    예비장학생을 창녀나 노예로 만들겠다고 협박한 적이 없다고.

    성과를 내지 못하면 실험이나 테러에 써먹지 않는다고.

    우리는 그런 악한 조직이 아니라고.

    부정하길 바랬다.

    자신들의 착각이길 바랬다.

    조나는 어떤 혐의도 부정하지 않았다.

    역으로 협박해올 뿐이었다.

    목숨을 잃고 싶지 않다면 떨어져나가라고.

    거추장스럽게 굴지 말라고.

     

    “유념해두십시오. 오늘부로 당신들은 재단대리인인 저 ‘조나 와이히엠하이’의 판단에 의거하여 재단의 중요인물인 ‘오크노디’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딴 협박에 굴할 것 같아? 당신들이야말로 각오해. 우리는 사악한 재단의 품에서 반드시 오크노디를 해방시킬 거니까.”

     

    격앙된 얼굴로 무어라 더 쏘아붙이려던 이사벨의 팔뚝을 지젤이 붙잡았다.

     

    “왜 말리는 거야. 당신도 알고 있잖아! 저놈들이 오크노디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저길 보십시오.”

     

    지젤이 가리킨 곳은 오크노디의 귀를 막고 있을 손오천이 있는 곳이었다.

     

    “아니 이 쥐방울 녀석이? 힘주지 말라고!”

    “왜 나만 빼놓고 비밀 얘기해! 나도 들을 거야!”

    “악! 손목 아프다 이놈아. 뼈 잡지 마!”

     

    힘주어 손오천의 힘을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오크노디 때문에 손오천이 앓는 소리를 내며 두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오크노디의 면전에서 언성을 높일 수 있는 시간은 여기까지였다.

     

    “당신들은 모릅니다. 저희 재단이 무슨 짓까지 할 수 있는지.”

    “어차피 더러운 수작이겠지.”

    “그 더러운 수작을 몸소 체험하고 싶지 않다면 아가씨의 곁에서 떨어지십시오. 구두경고는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경고를 마치고 돌아가는 조나.

     

    “앗, 같이 가!”

    “송구합니다만 참관은 이쯤에서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재회까지 부디 몸 건강히 지내시길 바랍니다, 아가씨.”

    “히잉. 벌써 가? 조금만 더 있다가지.”

     

    손오천을 퍽 밀치고 쪼르르 달려가 조나의 곁을 빙글빙글 돌며 칭얼거리는 오크노디의 모습에서 이사벨은 커다란 벽을 느꼈다.

    날마다 음식을 해주며 호감을 쌓은 자신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애교스러운 모습.

    오크노디는 저 남자에게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정신적으로.

    상당히 어렸을 적부터.

    아마도 세뇌에 가까운 교육이 있었겠지.

    오늘의 일로 확실해졌다.

    재단은 그들이 생각하던 그대로의 조직이었다.

    재단도 저 남자도 용서할 수 없어.

    어깨를 늘어뜨리며 홀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오크노디를 맞이하며 다짐은 더욱 커졌다.

     

     

    * *

     

     

    조나가 떠났다.

    다른 교수님들도 소개시켜주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면회티켓 한 장으로는 시간이 부족해서 이만 떠나야한다고 했다.

     

    “티켓이 많은 사람한테서 뺏으면 안돼요?”

    “아쉽게도 지금은 때가 좋지 않습니다. 다음에는 반드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넉넉하게 티켓을 준비하겠습니다, 아가씨.”

    “약속이에요?”

     

    고개를 끄덕이는 조나.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내의 다짐이니 더욱 믿음직스러웠다.

    다음 달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럼 다음에 봐요, 조나! 리프한테도 꼭 안부 전해주세요!”

     

    조나의 배웅을 마치고 안목키우기 강의실로 향하니 이사벨과 지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사분과 인사는 잘 마치셨습니까?”

    “너무 아쉬워요. 다른 사람들은 아침 일찍 아카데미에 와서 하루면 시간이 충분했을 텐데, 저만 한나절이나 겨우 같이 지냈잖아요…”

    “그래도 저희가 곁에 있지 않습니까. 오크노디를 아끼는 마음은 모두 같습니다. 집사의 몫까지 저희가 대신 보살펴드리죠.”

    “풋. 지젤아저씨가 집사가 되겠다고요? 웃기긴 했는데 절대 불가능이니까 포기하세요!”

     

    지젤이 호기심을 보였다.

     

    “집사 역할이 그 정도로 힘듭니까?”

    “물론이죠! 조나는 제가 부탁하는 건 뭐든지 다 들어주거든요.”

    “말만 들어서는 철없는 말괄량이 아가씨네.”

    “그치만 집사는 원래 그런 존재잖아요? 조르는 건 뭐든지 다 들어주는 사람.”

    “…이럴 땐 오크노디가 귀족가의 딸이라는 사실이 새삼 실감이 나네.”

    “에이, 그런 거 아니에요. 재단이 조금 부유하기는 해도 귀족이라 불리기엔 부족하죠.”

    “어째서?”

    “그야 마스코트로 만든 음식이 없잖아요!”

     

    강의실 앞에서 기다리던 티토소가가 옆에서 대화를 엿듣다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거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산 너머에서 사는 인간귀족들은 왜 죄다 음식이름을 성으로 삼고 있어?”

    “기근의 마왕이 세를 떨쳤을 때, 마족의 점령지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먹을 것이 없었대. 그래서 현지에서 조달한 재료로 특별한 요리를 만들어 먹으며 토벌을 진행했는데, 1세대 귀족들의 공훈을 기리는 의미에서 음식 성을 쓰는 거야!”

    “헤에. 굉장한 유래가 있었네.”

    “근데 요즘은 그런 거 없고 그냥 귀족이면 다 음식 성을 쓰다보니까 일단 새로운 음식을 만들고 그걸 귀족이름으로 삼는 추세야!”

    “오크노디. 그럼 나도 새로운 요리를 만들면 귀족이 될 수 있을까?”

     

    오크노디가 씩 웃었다.

     

    “안될 거 없지! 식품도감에 추가할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면 범용성과 등급에 따라서 어느 나라에서든 귀족의 위를 수여받을 수 있거든.”

    “오크노디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음… 이건 비밀인데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 나도 나중에 귀족작위가 필요하면 요리를 하나 개발하려고 하거든!”

     

    옆길로 새는 대화에 적당히 분위기가 개선되어서 잠자코 듣고 있던 이사벨.

    그녀의 눈에 충격의 감정이 떠올랐다.

     

    “오크노디. 요리를 만들 수 있어?”

    “앗.”

     

    오크노디가 어색하게 눈치를 보더니 헤헤 웃었다.

     

    “딱히 귀찮아서 직접 안 만들고 얻어먹기만 한 건 아니에요! 이사벨이 하는 요리가 맛있었는걸요.”

    “그럴 수가…”

    “이사벨…? 혹시 화났어요?”

     

    이사벨은 충격에 손이 덜덜 떨렸다.

    오크노디가 요리를 할 수 있다.

    배신감을 느낀 것이 아니다.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어차피 오크노디는 자신이 해주는 요리를 좋아하니까 곁을 떠날 수 없을 거라고.

    밥심으로 재단의 사악한 꼬드김으로부터 오크노디를 지켜내겠다고.

    나름 자부심까지 지니고 있던 그녀였다.

    하지만 오크노디가 요리를 할 수 있다면?

    그녀가 없어도 상관없다.

    오크노디는 언제든 곁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강해져야해. 지금보다 훨씬 더.’

     

    떨리는 손을 주먹으로 꼭 쥐며 다짐했다.

    오크노디가 스스로 밥을 해먹을 의지가 떠오르지도 않을 정도로 요리실력을 키우자고.

    단순히 취미의 영역에 머물렀던 요리에 진심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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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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