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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3

       그 부서진 걸 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없기도 했고, 슬슬 밤이 늦어가는 시간이라 일단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훈련장이 망가졌다는 것을 제니퍼한테 알린 것은 다음 날의 일이었다.

        

       “애초에 총으로 쏘는 것을 전제로 만들었으니 그렇게 세게 치면 부서지는 게 당연하다.”

        

       이야기를 들은 제니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총알은 애초에 관통해 지나가니 구동부가 뒤로 꺾일 일은 없지. 하지만 그걸 검으로 쳐서 강한 힘을 가하면 부품이 그대로 부러지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엉망이 된 기계장치 부분을 살피던 제니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비부품이라면 있으니 아카데미에 말해두면 고칠 수 있어. 너무 걱정할 것까진 없다.”

        

       사실 걱정하지는 않았다. 혹시 고치는데 큰돈이 들더라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낼 수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제니퍼는 우리 셋을 바라보았다.

        

       어젯밤에 죄송하다고 몇 번이나 말하는 소피아 비앙키에게는 굳이 올 필요 없다고 했는데 이렇게 꾸역꾸역 찾아온 것을 보면, 진심으로 미안하긴 했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진심으로 미안한 것처럼 보여야 하는 상황이라거나.

        

       “검사가 굳이 여기서 훈련하는 것은 처음 보는군. 사실 이런 훈련장에서 검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을 텐데.”

        

       “그런…… 가요?”

        

       소피아 비앙키의 말에, 제니퍼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총을 사용하는 전투는 반응속도가 생명이지. 그때그때 튀어 오르는 표적을 한 번에 쏴서 쓰러뜨리는 게 중요하니까. 하지만 검사는 검과 검을 부딪히는 실력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나? 이런 반응속도 훈련을 하는 것도 필요하긴 하지만, 결국 제일 중요한 건 진짜로 검을 휘두르는 사람과의 훈련이지.”

        

       “그건 그런데요…….”

        

       “흠.”

        

       주춤거리는 소피아 비앙키를 보고 제니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 훈련이 필요하다면, 두 사람이 도와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

        

       왠지 그런 말 나올 것 같더라.

        

       제니퍼는 지난번 전장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나를 아주 고평가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혼자서 전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누구라도 그럴 거다.

        

       자치국에서 레나가 온 것도 아마 내 동향을 살피고 싶었던 것일 테니까. 정작 레나는 전혀 모르는 것 같았지만.

        

       현대였다면 아무리 강한 인간, 전장에서 무수히 공을 세운 인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인간을 ‘히든카드’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어려운 전장, 일반적인 훈련을 받은 병사는 쉽게 승리할 수 없는 작전에 조금이나마 승리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그런 사람만 모아 부대를 만들어 투입할 뿐이다.

        

       하지만 일본 서브컬쳐의 특징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이 세상은 다르다. 전장에 어떤 전쟁영웅이 투입되었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적은 벌벌 떤다. 심지어 그런 존재가 전장의 판도를 바꾸기까지 한다. 그런 존재조차 총 맞으면 죽는 세계관인데도 말이다.

        

       “네에?”

        

       소피아 비앙키는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두 사람은 이 아카데미에서 교관을 제외하면 총기를 가장 잘 다루는 사람들이니까.”

        

       제니퍼는 그런 그녀에게 아주 간단한 이유를 댔다.

        

       “게다가, 여기 있는 이 ‘황녀님’은 이미 전장에서 활약한 전적이 있다. 교착상태에 빠져서 무의미한 소모전의 위험에 빠진 제국군을 말끔하게 구해냈지. 그것도 혼자의 힘으로.”

        

       “아, 그게…….”

        

       소피아 비앙키는 내 쪽을 슬쩍 보면서 말했다.

        

       “그게, 정말이었나요?”

        

       “물론입니다.”

        

       소피아 비앙키의 말에 레나가 끼어들었다.

        

       “그 군벌 무리를 처단할 때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분은 바로 실비아 님이었습니다. 제국 측에 함께 있던 자치국 병사들도 증언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실비아는 전장으로 향할 때 분명 혼자였다. 나 뿐만이 아니라 전선의 거의 모든 병사가 미친 사람 보는 눈으로 실비아를 보고 있었으니 증인도 많지.”

        

       미친 사람 보듯 보았을 수밖에 없기는 했다.

        

       영웅 한 사람이 전장을 바꿀 수 있기에, 사실 정말로 영웅 한 사람만 내보내는 일은 거의 없다. 거의 전술 병기나 다름없는 존재를 그냥 낭비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만약 그 이야기가 제국의 프로파간다라고 생각한다면, 아예 대련을 해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아, 그런 건 아니지만…….”

        

       소피아 비앙키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요?”

        

       “대련하는데 굳이 주변 환경을 고려할 필요는 없지.”

        

       대련하는데 주변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은 제니퍼 정도밖에 없을 것 같은데.

        

       “아뇨, 그……”

        

       소피아 비앙키의 시선이 내가 가진 총을 향했다.

        

       “총기를 사용하시는 분은 엄폐물이 무척 중요할 텐데……”

        

       “여러 사람과 싸우는 것이라면 모를까, 한 사람과 마주하는 거라면 큰 문제 없을 거다. 게다가, 상대는 여기 있는 실비아와 레나, 이렇게 두 사람이다. 그러면 엄폐물 같은 어드밴티지는 없어도 되겠지?”

        

       나는 뭐라고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정작 레나는 이미 전투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자동 권총으로도 대련할 수 있겠습니까?”

        

       “아, 그거 말이다만.”

        

       제니퍼는 자기 허리춤에 있던 홀스터에서 권총을 하나 꺼냈다.

        

       내가 사용하는 자동 권총과 거의 똑같이 생긴 물건이었지만, 총구 끝부분이 막혀있었다. 단순히 막혀있다기보다는 조금 특이한 형태로, 마치 컴펜세이터처럼 옆으로 뚫린 구멍이 있었다.

        

       “네 총, 브라우닝의 총이지? 내가 가서 훈련용 총기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공포탄을 넣으면 실총 사용 감각과 비슷하게 쓸 수 있을 거다.”

        

       제니퍼가 내 쪽으로 그 권총을 넘기며 그렇게 말해서, 나는 다소 떨떠름하게 받아 들었다.

        

       “이러면 내가 네 사격을 보면서 네가 쏜 총알의 수를 헷갈릴 일은 없겠지.”

        

       보통 사람은 그런 식으로 세면서 보고 있는 게 불가능할 텐데요.

        

       뭐, 나도 눈치가 있으니 굳이 그런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나는 제니퍼로부터 훈련용 총을 받았고, 레나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슬라이드가 총신을 덮는 형태의 총이 아니라, 제니퍼가 아마 브라우닝에게 부탁해 만들었을 공포탄 어댑터를 끼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조준사격에는 좀 불편하겠지만, 애초에 양손에 총을 들고 싸우는 애였으니까.

        

       탄창에 공포탄을 채워 넣고 서로 마주 보고 서자, 제니퍼는 우리와 소피아 비앙키 쪽을 한 차례씩 본 다음 말했다.

        

       “좋아. 그럼……”

        

       그리고 무척 즐거운 표정으로 잠깐 뜸을 들였다.

        

       하여간에 이런 거 정말 좋아한다니까.

        

       “시작!”

        

       *

        

       생각해보니, 나는 이쪽 세계에 와서 보지 못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예를 들어, 검을 휘두르면서 기술명을 외치는 거.

        

       각 캐릭터에게는 고유의 스킬이 있었고, 그 스킬들도 이름 하나하나가 다 있었다.

        

       그리고 캐릭터들은 스킬을 쓰면 꼭 그 이름을 외치곤 했다.

        

       물론 스킬 이름이 기술 이름이라기보다는 짧은 대사에 가까운 캐릭터도 있었는데, 그렇다면 기술 이름 대신 그 대사를 외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생각해보면 싸울 때 기술 이름을 외치지 않는 것이 당연하긴 했다. 적에게 내가 어떻게 싸울지 다 알려주는 것이나 다름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턴제 전투가 아닌 현실의 전투는 기술 이름을 외치면서 폼을 잡을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아, 물론 마법사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주문을 외워야 하니까.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신이시여, 제게 빛을……!”

        

       따위의 대사를 진짜로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아, 맞다, 그랬지, 참.

        

       얘는 법국 사람이니까.

        

       기도문을 읊으며 싸우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런 외침을 듣는 내가 괴롭다는 것이다.

        

       유명 성우를 많이 쓰기로 유명한 회사였고, 당연히 소피아 비앙키의 캐릭터를 맡은 성우도 굵직한 작품의 주연이나 중요한 조연을 많이 맡아본 사람이었다.

        

       게임이었다면 언어가 당연히 일본어였겠지. 만약 이곳에서 쓰는 언어가 일본어였다면 오히려 위화감은 못 느꼈을 거다.

        

       하지만, 이쪽 세계의 언어는 영어를 기반으로 한 가상어.

        

       비록 내가 내 모국어나 다름없이 이해하는 언어이긴 했지만—

        

       “빛의 힘으로……!”

        

       같은 소리를 마치 일본 만화 영어 더빙판 같은 걸 보는 느낌으로 직접 보고 있으면 형언할 수 없는 오그라듦을 느끼게 된다.

        

       차라리 한국어로 들렸으면 좀 나았을 텐데.

        

       게다가 내 능력 때문에, 전투하는 내내 나는 그 소리를 몇 번이고 되감아 가며 들어야 했다.

        

       망할.

        

       *

        

       총알이 다 떨어지기 전에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만약 훈련이 더 길어졌다면 나는 그 오그라듦을 버티지 못하고 아예 이야기를 뒤로 돌려서 훈련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빛의 힘으로’ 전에 총으로 쏴 훈련을 끝내버렸다는 것이 소피아 비앙키에게는 조금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뭐, 얘도 성당 기사니 총 맞는 것 정도는 막을 수 있는 법복이 있겠지만.

        

       “물론입니다.”

        

       레나는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제국의 황녀님이시니까요.”

        

       아니, 보통 황녀는 이런 거 못 해야 정상인데.

        

       ……생각해보니 제국에서 황녀, 황자 타이틀 달고 있는 애들은 죄다 한가락씩 하는 놈들이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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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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