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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3

     

    “하앗!”

     

    “팔이 내려갔습니다. 금방 시선을 내리는 버릇 때문에 그렇습니다. 항상 적의 시선에 집중하십시오.”

     

    타냐가 리셰의 자세를 교정해주며 조언을 주었다.

     

    성검을 회수하고도 1주일이 지났다.

     

    우리는 월광궁 소속의 2병영 훈련장에 있었다. 내가 추천하기도 해서 리셰는 타냐에게 검술 지도를 받고 있었다.

     

    ‘리셰의 증상은 다중인격. 정신질환으로 분류할 수 있어.’

     

    케이스 자체가 적어서 많이 연구된 질병은 아니다. 트라우마나 PTSD가 주 원인이라고 예상되는데, 리셰는 그런 케이스는 아니다.

     

    성검의 특수한 기능 때문에 질병이 생겼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경험이 원인이 되어버렸다고 할까.

     

    아셀라의 저주와 마찬가지로 특이한 요소가 끼어있다. 그때 외과수술에 더불어 아티팩트와 해주사가 필요했던 것처럼, 의학적 치료와 이 세계의 신비도 필요하다.

     

    ‘아셀라 때와는 달라. 신체적인 부상으로 볼 수는 없어.’

     

    외과수술은 아마 크게 효과가 없겠지.

    더욱이 부위가 뇌다.

     

    뇌수술은 어렵다. 실패율도 높다. 치유주문으로 수복할 수 있는 부위도 아니다.

     

    첨단장비가 있다면 두개골 절제도 생략할 수 있지만, 현 단계에서는 얻을 이익보다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했다.

     

    ‘정신질환에 가장 좋은 치료법은 역시 야외활동이지.’

     

    사람의 신체 메커니즘이 그렇다.

     

    우리의 신체는 구석기 시대 야생동물을 사냥하던 원시적인 때에서 진화하지 않았다.

     

    실내에만 있고 햇빛을 못 쬐면 호르몬 체계가 망가진다.

     

    리셰는 특히 야외활동에 익숙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환경이 바뀌면 증상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본격적인 치료는 이쪽.’

     

     

    ―――――――――――

    ○ 의학 B

    · 진단 A – 혈액검사 B

    – 엑스레이 B

    – MRI B

    · 처방 B – 처방전작성 C

    – 세컨드오피니언 C

    – 카운슬링 C [NEW]

    · 응급처치 B – 수술(기본) B

    – 수술(복강경) B

    ―――――――――――

     

     

    새로 개방된 스킬에는 몇 개가 있었다.

     

    응급처치 루트에서 성형수술이나 치아 신경치료같은 스킬이 습득 가능했다. 어느 쪽도 내 분야는 아니다.

     

    내가 그중에서 선택한 건, 처방 루트의 [카운슬링] 스킬이었다.

     

     

    ―――――――――――

    · 카운슬링 C : 환자와의 대화에서 처방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도움이 될 선택지를 표시합니다.

    ―――――――――――

     

     

    아직 사용해본 적은 없다. 이쪽 리셰에게 다른 인격이 있다는 자각은 없고 정신적인 트러블도 없으니.

     

    성검 쪽 리셰를 상대할 땐 도움이 되겠지.

     

    ‘그리고 약물 처방.’

     

    정확한 인과는 아직 파악해야 하겠지만, 성검 쪽 인격이 활성화하면 언제라도 성검이 파괴될 위험이 있다.

     

    리셰의 정신상태를 안정화한다.

     

    이쪽에는 보다 강화된 연금술로 제작한 약제가 필요하다.

     

    매지컬 세로토닌 같은 거려나.

     

    일단 성검은 분류 자체는 세계급 아티팩트다. 전설급보다도 두 개나 윗단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희귀한 물건이다.

     

    그걸 상대하려면 나도 화학이나 상식을 뛰어넘어서 신비의 영역에 접근한 약제를 준비해야 한다.

     

     

    “얘, 고트베르크. 용사님은 어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라우가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2병영에는 어쩐 일이세요?”

     

    “나도 일단은 승계권자잖아. 용사님 계신 곳 정도는 둘러볼 수 있거든.”

     

    “아직은 보시는 대로에요.”

     

    “열심이네. 귀여워라.”

     

    라우가가 싱글대며 리셰를 구경했다.

     

    타냐의 하드한 트레이닝을 따라가느라 땀에 범벅이 된 리셰는 힘들어하면서도 몸을 쉬이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내 쪽을 힐끔거리더니 얼굴에 힘을 풀고 혀를 빼물었다.

     

    소심하게 손을 든다. 인사인가?

     

    “어머.”

     

    그 모습을 본 라우가가 음흉한 생각이 떠올랐는지 갑자기 내게 팔짱을 꼈다.

     

    “뭐 하세요, 황녀님.”

     

    “기다려 봐.”

     

    라우가의 행동을 본 리셰는 어쩐지 풀이 죽어서는 다시 타냐와 검술에 집중했다.

     

    아까보다 악에 받친 동작이었다.

     

    “고트베르크, 아셀라는 용사님 만나봤지?”

     

    “그렇죠. 함께 작전 행동도 했습니다.”

     

    “으음… 너희, 당분간 조심해야겠다.”

     

    “뭘요.”

     

    라우가는 짓궂게 웃고는 훈련장을 떠났다.

     

     

     

    ***

     

     

     

    리셰가 검 실력을 기르는 동안 나도 연금술의 경지를 올리기로 했다.

     

    내의원 사무실에는 그간 쌓아놓은 온갖 약제 재료가 많이 있었다.

     

    “그래도 이 수준은 안 되지.”

     

    작은 병을 꺼낸다.

    안에는 투명하고 조그마한 결정이 두 알 담겨있다.

     

    지나가던 클로에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다가와 책상에 턱을 얹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생님, 그건 뭔가요?”

     

    “세이렌의 눈물이야.”

     

    “네엣? 어, 어, 엄청 비싼 마법 재료잖아요! 경매 붙이면 마도국에서 마도사들이 원정을 나올걸요!”

     

    “그 말을 들으니 더 든든하네.”

     

    상태창의 메시지.

     

     

    [희귀한 재료를 사용하여 경험치를 상승시켜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희귀한 재료에는 반드시 부합하겠지.

     

    샬레에 세이렌의 눈물을 올려놓고 책상에 진을 그린다.

     

    연금술을 발동한다.

     

    “우와아. 평소 제약하실 때보다 진이 훨씬 복잡해요.”

     

    클로에의 말대로 조금 고차원의 기술이 필요할까 싶어 진을 3개로 그려봤다.

     

    먼저 성질을 파악한다.

     

    ―――――――――――

    · 세이렌의 눈물

    – 전설급 재료

    – 탄소구조 기반의 안정성 높은 화합물

    – 불안정한 형태의 마력회로 및 마나흐름을 정렬하는 물질을 제조하는 데 사용

    ―――――――――――

     

    안정화라. 마침 활용법이 제법 있을 듯한 효과다.

     

    “강화는 되려나.”

     

    진을 그려 마나를 순환시켜본다.

     

    ―파지직!

     

    주문은 완성되지 못하고 중간에 스파크를 일으키며 파기됐다. 그 바람에 클로에가 깜짝 놀라 벌러덩 나자빠졌다.

     

    “흐갸악.”

     

    “내 이해도가 낮아서 강화할 수도 없나.”

     

    원료가 아닌 효과가 담긴 핵심 물질만 써보고 싶어졌다.

     

    “추출.”

     

    새 진을 그려 다음 주문을 시전한다.

     

    빛이 번쩍이고, 결정은 조그마한 다이아몬드 같은 모습으로 정제됐다.

     

    완벽한 육각형. 손으로 잡아도 때 하나 묻지 않는 신비로운 모양이다.

     

    ―――――――――――

    · 안정화의 결정

    · 전설급 재료

    ―――――――――――

     

    “이 형태면 약제를 만들 때 쉽게 조합할 수 있겠어.”

     

    그때, 스킬창이 반짝였다.

     

     

    ―――――――――――

    · 희귀한 재료를 다룬 경험을 얻었습니다.

    · [연금술]의 한 가지 스킬을 새로 습득할 수 있습니다.

    · [인챈트] [원소화] [연성]이 습득 대기 중입니다.

    ―――――――――――

     

     

    “좋아, 어디 보자.”

     

    인챈트는 마법으로도 있는 스킬이다. 무기나 방어구에 재료의 특성을 부여해서 강화한다.

     

    본래 이 세상의 연금술은 주로 광물을 다루는 대장장이들의 보조 기술이다.

     

    원래 목적이라면 아주 실용적이겠으나 내게는 크게 필요는 없다.

     

    “원소화. 내가 아는 원소 개념은 아니겠고, 5대 원소 이야기겠어.”

     

    물질을 분해하는 스킬 같다. 아마 이 뒤에 재구성같은 것도 있어서, 선행스킬이 아닐까 싶다.

     

    “그보다는 연성. 이쪽이 당장 필요해.”

     

    화학으로 제작 불가능한 신물질을 만들고 약제 제작으로 확장하려면 [합성] 계열에서 파생된 [연성]에 길이 있지 않을까 싶다.

     

    터치하여 습득한다.

     

    그러자 내 앞에 휘황찬란한 리스트가 주르륵 나열됐다.

     

     

    ―――――――――――

    ◎ 연성 목록

    · 미스릴 = 철 + 구리

    · 수은 = 담수 + 철 + 구리

    · 흑요석 = 수은 + 용의 피

    ―――――――――――

     

     

    “허, 이제 좀 연금술답네.”

     

    온갖 물질의 조합이 가능했다.

     

    금속뿐만 아니라 특수한 물질도 꽤 있었는데, 희귀한 재료를 요구하거나 랭크를 더 올려야 만들 수 있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맨 밑에는.

     

     

    [엘릭서 = ??? + ??? + ???]

     

     

    연금술의 마지막 오의답게 만병통치약이자 불로불사의 물약, 엘릭서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언젠간 만들 수 있겠지.’

     

    상당히 흥미가 돋았다.

     

    희귀품 중에서 당장 만들 수 있는 건 없나 찾아보는데, 하나가 있었다.

     

     

    [성역화의 포션 = 안정화의 결정 + 안정제 + 진통제 + 담수]

     

     

    내 재능에 의한 스킬이라 그런지 내가 여태 만들어 온 약품에도 재료로 요구하는 게 있었다.

     

    기다릴 것도 없이 나는 바로 재료를 준비해 연성을 시전했다.

     

    “진은 네 개. 이번엔 공중에서 연결해 보겠어.”

     

    어설프지만 아셀라가 했던 방식을 흉내내 진을 그린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마나가 단순히 반짝이는 게 아니라 폭발하듯 삐쭉이며 작동한다.

     

    ―파아앗!

     

    결과는 훌륭했다.

     

    내 앞에 투명한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가 하나 준비됐다.

     

    “어쩐지 신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약제네요.”

     

    클로에의 평가는 정확했다.

     

    어차피 연성을 테스트하는 단계니 효과는 직접 먹어봐야 알 수 있겠지. 임상실험이다.

     

    나는 플라스크의 액체를 단숨에 들이켰다.

     

    맛은 그저 그랬다.

     

    “흠.”

     

    상태창에는 내게 [성역화]라는 패시브가 생긴 것 말고 큰 변화는 없었다.

     

    “클로에, 나 변한 거 있어?”

     

    “어… 잘 모르겠는데요.”

     

    성역화라는 건 결국 무슨 의미지. 전투 중에 유효한 포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실험은 이쯤이면 됐어.”

     

    리셰에게 유효한 포션을 제작하게 될 때까지 다양한 재료로 랭크를 올려야겠다.

     

    그리 생각하고 오후 업무를 위해 나는 월광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아, 선생님!”

     

    월광궁에 가니 리셰가 반갑게 나를 맞았다.

     

    “용사님, 훈련 수고하셨습니다.”

     

    리셰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헷, 지켜봐 주셨죠. 덕분에 재밌었어요. 타냐 단장님의 지도는 조금 힘들긴 해도….”

     

    그녀가 대답하다 말고는 갑자기 맛있는 냄새라도 맡은 듯 눈을 번쩍 뜨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왜 그러세요?”

     

    “네? 아, 아뇨. 뭔가 좋은 냄새랄까, 느낌이 난다 싶어서.”

     

    리셰는 뭔가에 홀린 듯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한 바퀴 빙 돌고는, 다시 내 앞에 돌아와서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렇네요.”

     

    “뭐가요?”

     

    “저, 실은 성검을 만졌을 때부터 뭔가… 기분이 엄청 안 좋아졌거든요.”

     

    반대쪽 인격의 정신상태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 그도 당연했다.

     

    “그, 그런데 방금 그게 완전히… 엄청 편해져서, 기분이 좋아졌는데.”

     

    “잘 됐군요. 몸을 많이 움직인 덕분입니다.”

     

    “아뇨, 선생님이에요.”

     

    리셰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선생님 옆에 있으면 좋아져요.”

     

    그녀는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지, 홀린 듯 한 걸음씩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혹시 이게 ‘성역화’의 효과인가.

     

    주변의 동료를 정신공격으로부터 지키는 용도의 포션이었다든지.

     

    “용사님, 잠시.”

     

    “고트베르크… 아니, 라스 선생님. 저, 부탁이니 조금만…”

     

    리셰가 마침내 나와의 거리를 제로로 만들었다.

     

    “…후우우.”

     

    처음이라 어색한지 내 허리에 양팔을 어설프게 얹고는 크게 호흡을 내쉬는 리셰.

     

    “용사님, 어떤 상황인지 원인은 알겠습니다. 잠깐 떨어져 주시면 설명드릴 테니…”

     

    “너, 내 주치의에게 뭐 하고 있어.”

     

    귓가에 차가운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고개를 돌리니 아셀라가 무시무시한 얼굴로 리셰를 노려보고 있었다.

     

    “황녀님, 그게…”

     

    리셰는 뭐라 변명하려 하면서도 내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고 아셀라는 더욱 분노가 들어차서 우리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그때 내 상태창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재능의 발전이 상당합니다]

    [디버프 ‘기절’이 발동합니다]

     

     

    “하필 지금.”

     

    나는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감각을 느끼며 그 자리에 무너지듯 쓰러졌다.

     

    “라스, 라스!!”

     

    아셀라가 황급히 내게 달려오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닫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파페포포님 후원 감사해요! 늘 읽어주셔서 기쁩니드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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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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