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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3

       방을 나선 두 사람은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나란히 계단을 올랐다.

       그들은 사람이 없고 탁 트인 넓은 장소를 찾아가고 있었다.

         

       바로 공장의 옥상이었다.

         

       로드 판타스틱은 옥상 출입구 왼쪽에 있는 굴뚝 앞에 섰다.

         

       ‘재주 좀 볼까?’

         

       그는 굴뚝을 오르기 시작했다. 팔로 사다리를 잡지도 않았다. 수직 사다리를 마치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성큼성큼 걸었다.

         

       원더스타인은 그 모습을 보더니 출입구 오른쪽에 있는 굴뚝으로 향했다. 그 역시 두 다리만 이용해 사다리를 올랐다. 6.0에 달하는 근력과 스킬북에 재빨리 끼워 넣은 ‘줄타기’ 기술이면 충분했다.

         

       두 사람은 굴뚝 꼭대기에 섰다.

       연기가 나오는 통로 바로 아래에 있는 난간이었다.

         

       “굳이 이런 데서 대화를 해야 하나요?”

         

       두 굴뚝의 간격은 대략 3m.

         

       두 사람의 망토가 펄럭였다.

       바람은 모자를 잡고 있지 않으면 날아갈 정도로 거셌다.

         

       원더스타인은 굴뚝 아래의 정경을 감상하며 속으로 잔뜩 긴장했다.

         

       아찔한 높이였다.

       테트로미노 광장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혹시 모르니까 날개라도 준비해둬야 하나?’

         

       상대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몰랐다.

       갑자기 곡예 기술을 시험한다고 단검을 던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로드 판타스틱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기 짝이 없었으나, 내심 속으로는 상대에게 감탄했다.

         

       보통 배짱과 기술이 아니었다.

       대뜸 굴뚝을 오르는 자신을 태연하게 쫓아 오르는가 하면, 이 높이에 서서도 약간의 두려움도 없이 입에 미소를 한가득 띠고 있었다.

         

       위험한 상황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생각보다 더 무서운 놈이군.’

         

       지몬은 상대에 대한 경계심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기술은 제법일세.”

       “이 정도는 기본이죠. 한 서커스단의 단장을 맡으려면.”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둘은 동시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들의 실력이 기본이라면 세상에 서커스단을 할 사람은 몇 명 없을 것이다.

         

       “인사치레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빨리 들어가지. 공작 각하를 오래 기다리게 할 순 없네.”

       “후후, 그러시죠.”

         

       지몬은 잠시 숨을 골랐다.

       아까 본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려 보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내 딸을 아주 잘 구슬린 모양이더군. 그렇게 웃는 건 처음 봤어.”

       “그녀가 당신 밑에 있는 것보다 우리 서커스단에 있는 게 더 즐거운 모양이죠.”

       “그 애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네.”

       “네네. 압니다. 당신 밑에서 그렇게 학대당하고 살면 마음이 굳을 수밖에 없겠죠.”

         

       지몬은 이를 갈며 거친 소리를 뱉었다.

         

       “그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세뇌? 약물? 마법?”

       “사람을 뭐로 보시는 겁니까?”

       “솔직히 말해야 할 걸세.”

       “그런 짓 한 적 없습니다.”

       “그래? 끝가지 부정할 셈이군. 좋아. 그럼……자네 부단장은?”

         

       엘라?

       원더스타인은 입을 다물었다.

         

       지몬은 드디어 자신이 허를 찔렀다고 생각하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 모를 줄 알았나?”

       “……무슨 말이시죠?”

         

       지몬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원더스타인은 뭔가를 던지는 시늉을 하는 그의 오른손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러나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았다.

       다시 그를 봤을 때, 그는 왼손에 장미를 한 송이 뽑아 들고 있었다.

         

       “뛰어난 마술사는 그릇된 암시(Misdirection)를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알지.”

         

       그는 장미를 휙 던졌다.

       그것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갔다.

         

       그 순간 그의 오른손이 다시 번개처럼 움직였다.

       원더스타인은 다시 그 움직임을 쫓았으나, 역시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았다.

       그의 왼손에는 어느새 다시 뽑았는지 장미가 또 들려 있었다.

         

       “특정한 방향으로 관객들의 사고를 유도하고, 상황이 반전되었을 때, 우왕좌왕하는 그들을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짜릿하지.”

         

       그가 다시 장미를 던졌다.

         

       원더스타인은 이번에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이 다시 움직였으나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았다.

       그의 왼손에도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그는 대신 원더스타인의 가슴을 가리켜 보였다.

         

       고개를 숙인 그는 자신의 가슴에 어느새 장미 한 송이가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거기서 잘못된 길로 빠지면, 자기가 사람의 생각을 제멋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돼.”

         

       지몬의 손에는 어느새 3번째 장미가 들려 있었다.

         

       “솔직히 말하지. 나는 말일세. 엘라 양이 탐났네. 그 엄청난 재능을 괴물서커스 같은 곳에 쓰기 아깝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녀에게 암시를 걸었지. 은근한 유도로 기억을 자극했다네. 자네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떠올리도록.”

         

       원더스타인은 이제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놀라운 현상을 마주했네. 알겠나? 마치 기억이 무언가에 가로막힌 것처럼 그녀는 트랜스 상태에 빠졌네. 고작 몇 초지만. 그리고 자신이 뭘 떠올리려 했는지조차 기억해내지 못했지.”

         

       그가 다시 가슴을 가리켰다.

         

       원더스타인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가슴팍에 꽂혀 있던 장미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고개를 다시 든 그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디서 솟았는지 모를 수백 송이의 장미가 바람을 타고 허공에서 춤추고 있었다.

       적색, 분홍색, 자색, 황색의 장미들이 두 사람 주위를 떠다녔다.

         

       “연금술사 영감이 계속 타가던 약재들. 그 용도를 꿰뚫어 볼 사람이 우리 중에 없을 거라고 여겼나? 약학에 뛰어난 동료가 말해주더군. 그것들은 하나 같이 기억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재료라고. 약물을 통해 그녀의 기억을 조작하고, 자네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만 남겼겠지. 자네는 그렇게 그녀를 ‘사육’한 거야. 내 말이 틀렸나?”

         

       맙소사.

       그게 그렇게 연결되다니.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내저었다.

         

       “로드 판타스틱, 당신이 오해한 겁니다.”

       “내 딸에게는 어떤 암시를 심었지? 응? 무슨 약물을 사용했나?”

       “오해라고 했을 텐데요?”

         

       그때, 허공에 흩뿌려진 장미들 사이에서 날개가 퍼덕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을 확인한 지몬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이런. 충격을 줄 생각은 없었는데.”

         

       원더스타인은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쫓았다.

       하얀 깃털 뭉치가 굴뚝 아래로 활강하고 있었다.

       그것은…….

         

       “비둘기……?”

       “엘라 양이 기르는 동물이지. 그녀의 인스피라. 알고 있지 않나?”

         

       원더스타인은 공장 환기구로 들어가는 비둘기를 바라봤다.

       그녀가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고?

         

       “언제부터……?”

       “내가 첫 번째 장미를 뽑을 때부터.”

         

       그제야 원더스타인은 지몬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에게서 제대로 든 대답을 듣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가 노리는 것은 자신의 입에서 엘라의 기억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을 그녀가 듣게 하는 것이었다.

         

       그가 장미를 계속 던지면서 마술을 보인 것은 단순히 ‘그릇된 암시’를 설명하려고 한 게 아니었다.

       그의 마술 자체가 그릇된 암시였다.

       비둘기가 근처에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려는.

         

       “트레이드에 대한 협상은 이걸로 충분히 한 것 같군.”

         

       허공을 날아다니던 장미들은 어느새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과연 엘라 양은 어느 서커스단을 선택할까?”

         

       지몬의 입에는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다음 주 화요일을 기대하지.”

         

       그는 사다리를 타고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갔다.

         

       홀로 굴뚝 위에 남은 원더스타인은 암담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지금의 엘라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자신에게 잃어버린 기억이 있다는 것도, 조작된 기억이 있다는 것도, 사실 그녀가 원더스타인을 미워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가스통의 치료도 그저 마음을 안정시키는 용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와 단원들이 합심해서 그녀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닥칠 거라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녀가 모든 기억을 되찾는 것 말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기억을 찾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당신 기억은 잘못되었다’라고 사실을 말해주는 것만으로 기억을 찾을 수 있는 거라면 ‘마신의 권능’과 ‘사신의 낫’이라는 이름이 아까웠다.

         

       지금의 그녀가 사실을 알아봤자 얻을 수 있는 것은 그저 그와 단원들에 대한 배신감과 상처,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과 혼란뿐이었다.

         

       “엘라 양.”

         

       건물로 들어온 원더스타인은 엘라가 창문에 기대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옥상에서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새초롬하게 그를 바라봤다.

         

       다행히 그녀는 충격에 빠진 것 같지 않았다.

       그를 향해서도 딱히 적개심을 내보이지 않았다.

         

       굴뚝 위는 바람이 심해서 제대로 못 들은 것은 아닐까?

       아니, 사실 비둘기는 구돌이가 아니라 그냥 지나가던 아무 비둘기가 아니었을까?

       로드 판타스틱의 허세가 아니었을까?

         

       그때, 그녀가 불쑥 말을 내뱉었다.

         

       “과자.”

       “네?”

         

       그녀는 창문에 팔을 기대고 중얼거렸다.

         

       “내가 보낸 과자 돌려보냈잖아…….”

       “아.”

         

       원더스타인은 아까 견학 도중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엘라는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당신이 별장에 있는 줄 알았어. 나만 혼자 맛있는 게 먹는 게 미안해서 그것들을 보낸 거야. 그런데 당신은 그냥 돌려보냈지. 훗, 레이나와 그렇게 둘이 재밌게 놀고 있는 줄 알았으면 안 보냈지.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내가 방해한 건가? 비웃었어? 내가 모자 안에 구겨 넣은 과자들을 확인하고?”

         

       그녀는 소매로 젖은 눈가를 비볐다.

       원더스타인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옆에 조용히 다가가 섰다.

         

       “엘라 양.”

       “위로라면 됐어. 그게 당신 진심이라면…….”

       “이것 좀 보세요.”

       “무슨……응?”

         

       원더스타인은 자신의 모자를 벗어 보였다.

       그 안을 들여다본 엘라의 눈에 휘둥그레졌다.

         

       검은 실크해트 안에는 과자가 한가득 담겨있었다.

         

       “이, 이게 무슨……?”

       “저희는 공장에 들어가기 전에 대기하면서 과자를 대접받았습니다. 출시 예정인 신제품이라고 하더군요.”

         

       그녀의 탄성을 내뱉었다.

       이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간 건지 그녀도 알아차렸다.

         

       “저도 몰래 모자에 과자들을 넣었습니다. 혼자 별장에 있을 엘라 양 맛 좀 보여주려고요.”

         

       엘라의 입에 허탈한 미소가 걸렸다.

         

       “뭐야, 그럼 우리 인스피라가 서로 동시에 작용했던 거였잖아……. 서로에게 과자를 보냈다고?”

       “하하, 그런 것 같군요.”

         

       엘라는 그의 손에서 모자를 뺏어서 얼굴을 갖다 댔다.

       확실히 온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마법적인 공간을 통해 전송되기 때문에 물건은 보내질 때의 상태를 유지했다.

       이 과자는 그녀가 쑤셔 넣을 때의 그 온기와 향을 보존하고 있었다.

       그녀가 보낸 과자가 분명했다.

         

       버터, 설탕, 밀가루 구운 냄새가 선명하게 코끝을 간질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그녀를 자극하는 냄새가 있었다.

         

       그건 그의 어깨와 등에 몇 번 고개를 파묻었을 때, 맡았던 냄새였다.

         

       시큼하면서도 달콤해서 이상하게 계속해서 맡게 되는……

       그의 금빛 머리칼 향기.

         

       엘라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서 모자를 다시 그에게 내밀었다.

         

       “모, 모자로 먹을 걸 전송하는 건 이제 그만하자! 냄새가 배잖아!”

       “음, 그럴까요?”

         

       그녀는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기 위해 모자를 눌러쓰고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당신 모른 거야? 황금 카니발이 머무르는 곳은 슬라그보르트 공작의 별장이라고. 여기 과자는 매일 제공됐어. 굳이 챙겨줄 필요도 없었는데…….”

       “글쎄요. 맛있는 걸 먹으니까 그냥 당신도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랑 똑같네.

         

       엘라의 얼굴을 더욱 붉어졌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더욱 고개를 푹 숙였다.

         

       “내 생각하는 척하기는! 사실 별로 그립지 않았지? 새로 부단장을 앉힐 만한 애를 찾았잖아.”

       “레이나 양이요? 글쎄요. 저는 당신 외에 부단장으로 생각한 적 없는데요.”

       “나, 나보다 걔가 낫지 않아?”

       “왜요?”

       “그, 그건…….”

         

       엘라는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기억을 찾으면 당신을 미워할 텐데. 그것보다 고분고분한 애가 낫지.”

         

       정적이 흘렀다.

       엘라는 눈물이 또 흘러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동정심으로 위로받기 싫었다.

       그의 진심을 듣고 싶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복도에 서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을 엘라였다.

         

       “나 아까 들었어.”

         

       그녀의 모자 속에서 “구구!”하는 소리가 들렸다.

       비둘기 구돌이다.

       생물은 그녀의 인스피라로 전송되지 않았기에 놈은 여전히 그곳을 자기 집으로 삼았다.

         

       원더스타인은 어떤 말로 변명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 변명할 수 없다는 말이 옳았다.

       그녀를 속인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군요.”

         

       그는 잠시 머릿속으로 말을 정리했다.

       어떻게 하면 그녀가 덜 상처받을까 고민하면서.

         

       이윽고, 그는 입을 열었다.

         

       “엘라 양, 그동안 속여서 죄송합니다. 당신의 기억은 사실…….”

       “아냐.”

         

       엘라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사과하고 싶군요. 어쨌든 저희가 당신을 속인 것은 사실…….”

       “아니라니까.”

         

       그녀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서글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말은 그가 전혀 예측 못 했던 것이었다.

         

       “나 사실……알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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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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