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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3

       

       

       “···심심해.”

       

       

       공허한 목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를 들은 라이라가, TV를 보며 적당히 내게 대꾸했다.

       

       

       “인터넷이라도 하지 그래?”

       

       “재미없어.”

       

       “···흐음.”

       

       

       라이라가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마 내가 즐길 수 있을 만한 게 뭐가 있을지 고민하는 게 아닐까?

       

       아무래도 임신한 몸이기에 나는 최근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다.

       

       분명히 이 세계에 떨어지기 전의 나는 집 밖에 나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성향은 바뀌는 법.

       

       일 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집에서 보낸 시간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기 때문일까.

       

       가만히 집에 있자니 너무 심심했다.

       

       

       “···저번에 준 책은?”

       

       “진작에 다 읽었어.”

       

       “네가 며칠 전에 산 게임···은 말할 것도 없을 테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게임을 봤을 때는 이거다 싶었는데.

       

       처음 보는 스토리, 처음 보는 시리즈들.

       

       갑작스럽게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AAA 급 게임들이 수십 개는 나타난 상황이잖아?

       

       당연히 나는 게임을 몇 개 사서 플레이해봤다. 시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할 일도 없었으니까.

       

       ···뭐, 지금 심심하다고 투정 부리고 있는 걸 보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겠지.

       

       전부 쓸데없는 고철 더미가 되어버렸다.

       

       

       “그러게 내가 쓸모없을 거라고 했잖아.”

       

       “설마 그렇게 쉬울 줄 몰랐지···.”

       

       “게임은 우리들 하라고 만든 게 아니니까.”

       

       

       그래.

       

       초인들에게 게임이란 굉장히 재미없는 물건이라는 걸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초인들의 능력이 굉장하고, 또 영향력이 좋다고 한들 결국 게임.

       

       한 번 사면 재구매를 하지 않는 특성상, 게임의 주 소비층은 당연히 일반인들이었고···.

       

       그 탓에 초인들에게는 너무 지루했다.

       

       난이도를 아무리 높여도 의미가 없더라.

       

       어린이가 즐기라고 만든 난이도를 하는 것 같은 기분밖에 들지 않았으니까.

       

       즐길 수 있는 종류는 간단한 퍼즐게임 정도뿐.

       

       조금이라도 육체적인 무언가가 개입되는 순간 게임이 급격하게 재미없어졌다.

       

       

       “정 심심하면 잠깐 밖에 산책하러 나가던가.”

       

       “그건 안 돼.”

       

       “···하여간 극성맞다니까.”

       

       

       병원에서는 아직은 평범하게 생활해도 괜찮다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심심함을 호소하면서도 가능하면 집 안에 가만히 있는 것을 택했다.

       

       무슨 일이 생겨서 배 속의 아이가 위험해지면 큰일이었으니까.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집 안에 있고 싶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라이라는 어느덧 누가 봐도 임신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었다.

       

       

       “네 엄마가 심심하대, 이레네.”

       

       “뭐 하는 거야?”

       

       “네 딸에게 말 걸고 있잖아.”

       

       “···.”

       

       

       그걸 묻는 게 아닌데.

       

       내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건 신경 쓰이지도 않는지, 라이라는 자꾸만 내 배를 만지작거렸다.

       

       

       “우리 조카가 태어나야 엄마가 심심하지 않을 텐데, 그렇지?”

       

       “···누가 네 조카야?”

       

       “네 딸이지, 그럼 뭐야. 나 정도면 이모 해도 되는 거 아닌가?”

       

       

       진짜 뻔뻔하네.

       

       그녀의 말에 무어라 대꾸하고 싶은 말은 굴뚝같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날 무서워하던 모습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예전의 그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아직도 어색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배에 귀를 가져다 대며 자꾸 쓰다듬던 라이라가 갑자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야, 야···! 배, 배 찼다! 배 찼어!”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이레네가 배 찼다고! 아, 안 느껴졌어?!”

       

       

       ···배를 찼다고?

       

       느껴지는 건 없는데.

       

       혼자 심각한 표정으로 부푼 배를 바라보는 라이라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웠지만, 나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라이라의 말에 나도 온 신경을 배에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라이라가 말한 배를 차는듯한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있지, 라이라. 역시 착각인 게···.”

       

       “조금만 더 기다려 봐. 분명 제 엄마가 아플까 봐 가만히 있는 거야.”

       

       “아니,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애가 그런 배려를 할 리가···.”

       

       

       통, 하고.

       

       자그마한 진동이 배 안쪽에서 울려 퍼졌다.

       

       

       “드, 들었지?! 이번에는 들었지?!”

       

       “···세상에.”

       

       “진짜 신기하다.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그럴 리가 없다는 건 그녀도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소한 것은 신경 쓰지 않은 채, 한동안 배 속의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즐겁게 떠들었다.

       

       조금 전까지 심심함에 몸부림치던 건 모두 잊고서.

       

       그렇게 한참을 떠들었을까.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라이라가 내게 질문했다.

       

       

       “있지, 보스.”

       

       “응?”

       

       “네 딸 말이야,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어?”

       

       “···갑자기?”

       

       “아니, 그냥. 궁금해져서.”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냐니.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었다.

       

       배 속에 시우와 만든 사랑의 결실이 있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냐···.”

       

       “뭐, 가볍게 말해줘도 돼. 애들이 키우고 싶은 방향으로 키워지지는 않으니까.”

       

       

       그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아멜리아와 그 아버지의 관계를 보고서 그런 걸 생각하지 못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라이오넬 씨도 아멜리아가 자기를 등쳐먹는 아이로 자라길 원하지는 않았을 거 아냐···.

       

       최전방 사태의 인연 겸 딸의 얼마 되지 않는 친한 친구라는 포지션이기 때문일까.

       

       그는 항상 내가 그에 관해서 잊어버릴 즈음에 연락해왔다.

       

       ···대부분이 푸념이었지만.

       

       아멜리아는 부모님을 좀 더 공경하는 게 어떨까.

       

       친한 친구보다 더 스스럼없는 모습이···좀 그랬다.

       

       아무리 그래도 아빠의 라노벨 낭독회는 조금···.

       

       

       “···아르테?”

       

       “아, 미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라.

       

       아,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냐는 이야기였지.

       

       

       “자유로운 아이로.”

       

       “···자유?”

       

       “그래. 누구에게도 속박받지 않는, 자유로운 아이.”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고는 한다.

       

       내게 시우가 없었다면. 만약 그랬다면 평생을 작가님의 꼭두각시로 살아가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시우와 나의 아이는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했다.

       

       

       “누군가의 꼭두각시 인형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아는 아이였으면 좋겠네.”

       

       “···쉬운 것 같아 보이면서도 어려운 걸 바라는구나, 우리 보스는.”

       

       “그런가?”

       

       

       라이라의 말에 나는 멋쩍게 웃으며 배를 쓰다듬었다.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네.

       

       시우가 아카데미에서 돌아올 때까지, 나와 라이라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

       

       

       

       “딸아, 너는 언제쯤 내게 손주를 보여 줄 생각이니?”

       

       “···아, 제발. 아빠, 나 아직 아카데미 학생이라고.”

       

       “아카데미 학생이라고 꼭 결혼하지 말라는 법 있나? 성인이니까 남자랑 사귀고 결혼 정도야 할 수 있지.”

       

       

       히죽히죽 웃는 그 얼굴에 주먹을 한 대 날려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차피 지금 내 실력으로는 맞출 수도 없을 테니까.

       

       당연하다는 듯 피한 다음에 이것도 공격이라고 한 거냐고 다시금 놀려대겠지.

       

       

       “왜 그, 네 친구도 벌써 사고 쳤잖아. 너도 슬슬 남자친구도 사귀고 해야···.”

       

       “으그그그그그극···!”

       

       “푸하하.”

       

       

       최대한 무시하려고 했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식의 정신 공격을 가하다니.

       

       

       “그건 그 녀석들이 이상한 거라고! 아니 무슨 그 나이에 피임도 하지 않고 임신을···!”

       

       “딸아, 나는 슬프다. 손주를 보지 못하고 두 눈을 감을 것 같아서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나···.”

       

       “으아아아악!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

       

       “···왜 그러냐고?”

       

       

       나를 놀리며 해맑게 웃던 아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잘 이야기했다는 듯.

       

       

       “네가 며칠 전에 내 SNS에 몰래 올린 부끄러운 사진의 원한, 이 아빠는 잊지 않았단다···.”

       

       “고, 고작 그거 가지고···!”

       

       “고작? 고오오오오자아아아악?”

       

       “···.”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건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잖니?”

       

       “어, 음···.”

       

       

       할 말이 없네.

       

       최근 내가 아빠를 조금 많이 공격하기는 했지?

       

       하지만 린드버그 가문의 장녀로서 나는 뻔뻔해지기로 했다.

       

       

       “그건 아빠가 저번에 내 방에 이상한 함정을 잔뜩 설치해서 그런 거잖아!”

       

       “그건 네가 내 눈앞에서 내 책을 낭독했으니 그랬던 거고.”

       

       “그건 아빠가 나 자는 사이에 침대에 물 뿌려놓고 그 나이 먹고 실례하냐고 놀려대서 그런 거잖아!”

       

       “그 행동은 네가 나에게 했던 행동이 원인이라는 걸 기억해줬으면 하는구나, 딸아.”

       

       

       나와 아빠는 이대로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따지면 끝이 없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아빠와 나는 이런 식으로 지내왔으니까.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아빠도 나도 모른다.

       

       당했으니 돌려준다.

       

       오직 그 생각만이, 나와 아빠가 이렇게 지내는 원인이었다.

       

       이제 와서는 멈출 생각도, 멈출 의지도 없었다.

       

       그야 먼저 멈추는 사람이 지는 거니까.

       

       그렇게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우리는 그런 식으로 암묵적인 룰을 여태껏 만들어왔다.

       

       

       “그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두고 봐. 다음에는 진짜 그 나이 먹고 울어버릴지도 모르니까!”

       

       “하하, 우리 딸. 아빠가 너무 무서워서 오줌 지릴지도 모르겠네···.”

       

       

       전혀 무섭지 않아 보이는 표정으로 아빠가 훌쩍였다.

       

       젠장. 또 놀리고 있구나.

       

       

       “두고 봐···! 우리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꼭 울게 해주마···!”

       

       “그럼 나는 아빠의 이름을 걸고 절대 울지 않겠다고 하면 되는 건가?”

       

       “으그그그그그극···!”

       

       

       절대 용서 못 해.

       

       나는 아빠를 괴롭힐 방법을 머릿속으로 열심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외전에 쓸 아이디어가···떨어져간다···.

    크아아악···!

    아, 그러고보니 Navel 님이 저번에 만들어주신 팬아트가 더 멋지게 리메이크되었더랍니다.

    아틀리에에 있으니 한번 쯤 확인해주시면 좋겠네요!

    Navel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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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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