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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3

        

       방으로 돌아간 진성은 방 전체를 밝히고 자신이 만든 주물을 확인해보았다.

       주물을 이루고 있는 가죽은 어두운 갈색을 띠고 있었고, 거기에 붙은 지푸라기 역시 그 가죽의 색에 물들어서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짧고 빳빳하게 선 지푸라기는 손으로 슬쩍 쓸어내리면 통증마저 느껴질 정도였으며, 꾹 누를 때마다 느껴지는 탄탄하면서도 묘하게 물컹거리는 감촉은 죽은 돼지를 직접 만지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진성은 그 감촉에 만족스러웠는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주물을 들어 방구석에 있던 잘 짜인 나무상자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장식장에서 벼루와 경면주사(鏡面朱砂) 한 덩이를 꺼내곤 장식장 아래에 넣어놓은 돼지기름을 한 움큼 퍼서 벼루 위에 얹어놓았다.

         

       “흐음.”

         

       그는 돼지기름이 상하지 않았나 한 번 냄새를 맡아보고는 삼매진화를 피워 기름을 녹였다. 그리고 경면주사를 들고 천천히 벼루에 갈아 새빨간 염료를 만들었다. 그는 경면주사와 돼지기름을 섞어 만든 물감이 적당히 걸쭉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작업을 반복하였고, 만족스러울 정도가 되자 검지로 물감을 찍어 상자의 안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은 동굴 속에 그려진 벽화와 같은 모습이었다.

         

       낡아빠진 나무에는 가죽을 몸에 두른 사람이 횃불을 들고 돼지를 때려잡는 그림이 그려졌고, 거기에 그려진 돼지는 아주 크고 불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진성은 그린 그림에 삼매진화를 피워 순식간에 바싹 말려버리곤 그대로 상자를 닫았고, 그 위에 가죽끈을 휘감아 열리지 않도록 밀봉했다.

         

       덜컹.

         

       그가 밀봉을 끝마치자 상자가 흔들렸다.

         

       살아있는 것이 안에 갇혀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것처럼 사정없이 흔들렸으며, 상자를 부숴버리고 나올 듯 굉음이 울려 퍼졌다. 게다가 그 굉음 사이사이로 퍼져나오는 뭔지 모를 소리는 마치 돼지가 내뱉는 고통의 신음과 같았고, 신음이 울려 퍼지고 나면 꼭 코를 찌르는 누린내가 퍼졌다.

         

       “아주 잘 만들어졌구나.”

         

       진성은 이 두려운 광경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좋다는 듯 웃었다.

         

       그는 손에 삼매진화를 가득 피우고 손을 위로 쭉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치 횃불을 흔드는 것처럼 이리저리 휘두르더니 그것을 상자에 가까이 가져갔다. 그러자 여러 번 뒤집히기까지 했던 상자의 격렬한 움직임이 줄어들었고, 마치 겁이라도 집어먹은 것처럼 잠잠해졌다.

         

       진성은 횃불을 그대로 위에 가져다 댔고, 그러자 ‘꾸이익-‘ 하는 소음과 함께 머리카락을 불에 태운 듯한 냄새가 풍겼다. 진성은 그 고약한 냄새를 멀리 보내려고 하는 듯 이리저리 손짓하였고, 그것을 몇 번 반복하자 냄새도 사라지고 상자도 잠잠해졌다.

         

       하지만 잠잠해졌다고 끝은 아닌 법.

         

       상자 안에 들어있는 주물(呪物)의 여파 때문인지 상자 주변에 곰팡이가 슬기 시작했고, 깔끔했던 카펫은 풍파를 정통으로 맞은 것처럼 윤기를 잃고 삭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무로 된 장식장들은 습기가 차고 냄새가 나기 시작했으며, 썩어가는 것처럼 색이 변해갔다.

         

       부정.

       진성이 의식을 통해 몇 겹이나 겹쳐 강화했던 부정의 상징이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본래 사람으로 해야 하는 의식을 인외(人外)의 존재로 대체해 오염시키고, 유대교에서 갈라진 지파에서 행했던 액을 옮기는 주술을 더했으며, 거기에 부정한 의미를 그대로 안고 태워야 할 물건에 다시 한번 이슬람 문화권의 주술을 더해 부정을 겹쳤다. 그리고 그것을 태우기는커녕 사냥을 한 것으로 쳐서 그 형체를 고스란히 남기기까지 했다.

         

       본래 형체가 없거나, 형체가 없어져야 하는 부정이 형상을 이루었다.

       거기다가 사냥하였으니 시체의 상징도 품었고, 시체라는 것은 곧 부정한 것이니 거기서 또 부정의 의미가 겹친다. 게다가 주물을 담을 상자에 원시적 형태의 그림을 그리고 상징을 부여한 뒤 ‘시체’와 ‘사냥감’의 의미를 더하기까지 했으니….

         

       저렇게 끔찍한 여파를 사방에 풍기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진성은 허공에 손을 뻗어 침대에 숨어들었던 황금을 끄집어냈다.

       황금은 꿈틀거리며 그의 손짓에 따라 기어 왔고, 상자를 중심으로 삼아 사각형의 선을 그렸다. 그리고 파도가 위로 솟구치는 것처럼 뻗으며 하나의 점을 향해 몸을 겹쳐 형상을 만들었다.

         

       황금 피라미드.

         

       시체의 부정함을 억누르고 보관하기 적당한 물건이며, 동시에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와 상극에 있는 종교의 상징이기도 했다.

         

       주물은 황금 피라미드 안에 들어가자 부정함을 사방으로 뻗는 것을 멈추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은 썩지도, 빛이 바래지도 않은 채 그대로 부정을 껴안았으며, 벽면부터 바닥까지 빈틈없이 자리 잡은 황금은 주물을 보관하는 자그마한 창고이자 감옥이 되었다.

         

       진성은 황금 피라미드가 주물을 완전히 억누르는 것을 확인하고는 서랍에서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철분.

       비타민 C.

       붕대.

       포도주.

       포비든 요오드(Povidone-Iodine) 소독약.

       빵 통조림 하나.

       그리고 곱게 갈아 만든 뼛가루 한 움큼.

         

       그는 그것을 허공에 띄워서 화장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가 화장실로 이동한 지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의 몸에 이상이 생겨났다.

       말끔했던 손바닥들의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손바닥의 중심부의 피부가 벗겨지고, 점차 무언가 후벼파기라도 하는 듯 깊은 상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손등까지 꿰뚫어버리지는 않았으나 뼈가 보이기 직전까지 파고들어 간 듯 구멍이었다.

         

       이러한 구멍은 손으로 그치지 않고 그의 양발에도 똑같이 이루어졌다. 발바닥 장심에 구멍이 뻥 뚫렸다.

         

       뻥 뚫린 구멍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마치 영화에서 사용하는 과장된 표현처럼, 피가 욕조를 메울 정도로 줄줄 흘렀다.

       진성은 그것을 보고 허공에 띄워두었던 포도주를 들었다. 그리고는 코르크를 빼는 대신 병의 목을 그대로 잡고 분질렀고, 그대로 욕조 바닥에 쏟아버렸다.

         

       “hic est enim sanguis meus novi testamenti, qui pro multis effunditur in remissionem peccatorum.”

         

       그가 라틴어로 주문을 외우자 피비린내가 화장실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피비린내와 비례해 그의 손과 발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양은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흐르던 피는 이윽고 방울져서 떨어지는 정도로 그치게 되었다.

         

       으드득.

         

       진성은 피가 서서히 멎어 들기 시작하자 허공에 띄웠던 것들을 마구잡이로 입에 집어넣었다. 철분, 비타민 C, 뼛가루를 대충 뭉쳐서 입에 넣고 씹어서 삼켰고, 목이 멜 때마다 몸을 굽혀 입으로 욕조를 흥건하게 채운 포도주를 빨아 먹었다. 그리고 마침내 핏방울이 모조리 멎자 그제야 포비든 요오드 소독약을 상처에 쏟아내고 붕대를 감았다.

         

       그리곤 욕조에서 나와 빵 통조림을 손에 쥐었다.

         

       통조림에는 선명한 할랄 인증 마크가 붙어있었다.

         

       그는 통조림을 따 뻑뻑하고 맛대가리 없는 빵 위에 뼛가루를 뿌려가며 한입 크기로 떼어먹었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목이 막힐 때마다 욕조에 가득 찬 포도주를 입을 대서 빨아먹었다.

       그렇게 빵 하나를 모두 먹고 나서야 이제 되었다는 듯 한숨을 쉬곤 붕대를 풀었다.

         

       붕대를 풀자 나온 것은 깔끔한 피부.

         

       언제 상처가 생겼냐며 시치미를 떼듯 보들보들하고 하얀 피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본래도 하얀 편이었지만, 출혈 때문에 진성의 피부는 질린 것처럼 더더욱 하얗게 변해있었다.

       마치 혈색 좋은 뱀파이어 같았다.

         

       그는 붕대를 대충 바닥에 내던지고 샤워기를 들어 자신의 가죽옷과 피부에 묻은 피와 포도주를 씻어내고는, 수건으로 대충 닦고 방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신발 하나 신지 않은 채 물기 가득한 맨발로 찰박거리며 식당까지 이동했다.

         

       그가 식당으로 향하자 맛있는 냄새와 함께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고, 안에는 수많은 사람의 인기척과 말소리가 들렸다.

         

       진성은 문 앞에서 셋까지 세고는 똑똑 두들겼다.

         

       그리고 물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문 너머에서 활기찬 이아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들어와!”

         

       들어오라는 말을 딛자 진성은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쏠렸고.

         

       “…”

       “…”

       “…”

         

       순간 식당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 침묵을 가장 먼저 깬 것은 바로 이세린이었다.

         

       “오, 오빠…. 옷이…?”

         

       닭고기 스테이크를 썰고 있던 이세린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진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바로 진성의 몸.

         

       정확히 말하면, 진성이 절대로 입지 않을 것 같았던 가죽옷이었다.

         

       새것 같았던 가죽옷은 진성의 고생을 함께해서 그런 것인지 묘하게 길이 들어 있었고, 평범한 색감에 약간 불그스름한 빛을 띠게 되었다. 게다가 중간중간 광택이 도는 부분과 광택이 돌지 않은 부분이 묘하게 어울렸으니.

         

       그 모습이 마치 록스타(Rock star)가 공연을 위해 옷을 차려입은, 혹은 록스타의 열광적 팬이 공연에 찾아가기 위해 옷을 맞춰 입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주술 때문에 입은 것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느니라.”

         

       진성은 그렇게 말하곤 슬쩍 식당을 둘러보았다.

         

       바뀌어버린 식당의 풍경이 진성에게 적응이 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하지만 이내 식당의 메커니즘을 깨닫고 셰프에게 다가갔다.

         

       “소고기 스테이크. 블루 레어. 1kg…. 아니. 2kg. 그리고 토마토와 감귤, 마늘과 미역을 갈아서 음료를 만들고, 선지를 덩어리째 삶아서 한 덩어리 주시지요.”

         

       그는 피에 미친 모기나 할법한 주문을 하고는 가족들이 모여있는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리고 이양훈을 보며 말했다.

         

       “성인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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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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