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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3

       독고천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심리 공격에 잘 말려들지 않는 편이다.

         

       왜냐.

         

       자신이 잘났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흐음.”

         

       허나, 그런 그에게도 백우진의 말투는 제법 매서웠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아주 제대로 건드리는 어조와 표정이 어우러져 순간 자신마저도 넘어갈 뻔했으니 말이다.

         

       ‘넘어가주는 거야 어렵지 않다만….’

         

       어쭙잖은 도발에 넘어가면서까지 그녀를 취하고 싶을 정도로, 독고천의 입장에서 제갈연지는 썩 괜찮은 신붓감이었다.

         

       제갈세가라는 거대한 뒷배, 뛰어난 무공 실력, 앞머리에 가려진 빼어난 외모까지.

         

       소위 잘난 여자는 제 가치를 잘 알기에 다루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녀는 다르다.

         

       눈앞에서 내비치는 행동만 보아도 그녀의 인생이 보인다.

         

       지나치게 소심한 탓에 남들에게 쓴소리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성격.

         

       조금만 교육하면 말없이 제 뒤를 졸졸 따를 모습이 그려진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좋은 인형이 되겠어.’

         

       보기에 좋고, 쓰기에도 좋은데, 커다란 선물까지 뒤따르는 인형.

         

       ‘완벽한 내 이상형이야.’

         

       독고천에게 여인이란 그런 존재들이다.

         

       제 욕구를 한량없이 기쁜 마음으로 받아내고, 제 인생에 큰 이득을 안겨주면 그만인.

         

       그저 자신의 원대한 꿈을 위해 흔쾌히 제 등을 주춧돌로 내어주는 도구.

         

       생각이 깊어질수록 독고천은 그녀가 더욱 탐이 났다.

         

       새하얀 그녀가 제 입맛대로 변하게 되어가는 모습을 상상하자, 저릿한 쾌감이 인다.

         

       당장이라도 놈에게서 그녀를 빼앗아 오고 싶지만.

         

       “자네의 유쾌한 제안은 거절하도록 하지.”

         

       지금은 물러서야만 할 때였다.

         

       말끔하게 발을 빼고 물러나는 독고천의 모습에 백우진은 탄식을 내뱉었다.

         

       “아, 이게 안 되네.”

         

       판타지 세계에선 나름대로 잘 먹힌 고급 도발인데, 여기 와서는 영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질 게 뻔한 싸움은 하지 않는 게 정답이지. 내게 시간이라도 주어진다면 모를까.”

         

       자신만만한 미소에 백우진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마치 시간이 조금 주어지면 얼마든지 자신에게서 제갈연지를 뺏어갈 수 있다는 듯이.

         

       이는 또 다른 도발이기도 했다.

         

       “무서워서 시간을 절대 안 줘야겠네.”

         

       이에 넘어갈 그가 아니었다.

         

       그녀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같이 있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싫어서다.

         

       여기서 발을 빼겠다면 더 이상 그들이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어졌다.

         

       백우진은 그들을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

         

       “볼일 끝났으면 어서들 가슈. 우리 훈련 방해하지 마시고.”

       “아니, 저 자가…!”

         

       그의 껄렁한 태도에 제갈진이 발끈하려 했으나, 독고천이 이를 막아섰다.

         

       “에잇!”

         

       제갈진이 애꿎은 땅을 걷어차며 뒤로 돌아섰다.

         

       독고천은 오직 백우진만을 바라보고 있는 제갈연지에게 시선을 옮겼다.

         

       “여기서 물러난다고 해서 소저를 포기한 건 아니오.”

         

       그는 뒤로 돌아서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또 봅시다.”

         

       말없이 연무장을 벗어난 두 사람.

         

       이윽고 다른 이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즈음, 제갈진이 그에게 물었다.

         

       “왜 내기를 받지 않았나.”

         

       그 물음에 독고천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내 개인적인 일에 소중한 조원을 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하하! 자네다운 대답이군.”

         

       제 어깨를 두드리며 크게 웃는 제갈진.

         

       독고천은 알고 있다.

         

       지금 그의 물음이 자신을 시험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그는 나를 이상적인 지휘관으로 보고 있다.’

         

       그가 용의 자리를 잃어 가면서까지 자신의 참모가 되어준 이유는 단 하나다.

         

       지금까지 자신이 보인 모습들이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휘관에 걸맞기 때문이다.

         

       제갈세가의 인물들은 그릇이 애매하다.

         

       무림맹이 생긴 이래 군사 또는 참모의 지위를 꽉 붙들고 살아왔기 때문인지, 본인들이 그 위에 올라서야겠단 야망이 없다.

         

       오직 좋은 지휘관을 보좌하며 그와 함께 제 이름을 날리겠단 생각에 멈춰 있다.

         

       ‘뭐, 나로서는 편한 일이지.’

         

       스스로 좋은 부하가 되어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남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꾸며내는 것이 퍽 귀찮기도 하다만, 이제는 그마저도 익숙해져 가고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걸어가고 있을 때, 제갈진의 안색이 흐려졌다.

         

       “무슨 일인가?”

       “으음…, 아무래도 연지를 저런 놈 밑에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말이야.”

         

       비록 서먹서먹한 관계라곤 하나, 자신의 누이 아닌가.

         

       예의도 모르고 방종한 태도를 일삼는 사내의 곁에 두고 가려니 그것이 마음에 걸린 탓이다.

         

       독고천은 그런 그를 향해 걱정말라는 듯,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걱정 말게. 내 조만간 제갈 소저의 마음을 송두리째 가져올 테니.”

         

       제갈진의 얼굴이 조금은 펴졌다.

         

       그가 판단하기에 백우진과 독고천, 이 두 사람 사이의 차이는 극명하다.

         

       ‘어쨌거나 연지도 제갈가의 여식.’

         

       알량한 재능 하나만 믿고 오만하게 구는 백우진과 뛰어난 재능뿐 아니라 그 외의 모든 것들을 두루두루 갖춘 독고천.

         

       제갈이라는 성씨를 지닌 이상, 그녀 또한 금세 알아차릴 터.

         

       자신이 옆에서 바람까지 잡아주면 그 시간을 더욱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제갈진이 독고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답했다.

         

       “자네만 믿고 있겠네.”

         

       그래.

         

       어느 쪽이 더 튼튼한 동아줄인지, 멀지 않아 판가름이 날 것이다.

         

         

       * * *

         

         

       “끄악!”

       “꺅!”

       “억!”

         

       백우진이 목검을 휘두를 때마다 한 사람씩 저 멀리 나가 떨어진다.

         

       본인 스스로는 평소와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직접 검을 맞댄 조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제대로 화났네.’

       ‘오늘 걸리면 죽겠다.’

         

       목검에 실린 힘이 평소보다 훨씬 강했다.

         

       심지어 거칠었다.

         

       언제나 수려하기 짝이 없는 검술만을 선보이던 그에게서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윽…!”

         

       단검 두 자루를 교차시켜 백우진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낸 당선영의 입에서 옅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

         

       그것이 백우진의 정신을 일깨웠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훈련, 그들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까지 실력을 내보이진 않기에.

         

       그녀가 저토록 힘겹게 공격을 막아내선 안 된다.

         

       끝이 요사스럽게 움직이던 목검이 힘을 잃고 바닥에 축 늘어졌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이어 덧붙이는 한마디.

         

       “미안하다.”

         

       훈련에 사사로운 감정이 끼어들어선 안 되는 건데.

         

       자신으로 인해 힘겹게 일어났을 그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인사를 전하는 백우진.

         

       “뭘 미안하기까지야.”

       “나였어도 빡쳤을 것 같기는 해, 그치?”

       “광수 말이 맞소. 설마 그토록 뻔뻔한 작자가 대장 말고 또 있을…, 읍읍!”

         

       황급히 장삼의 입을 틀어막으며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구왕수.

         

       “하, 하하…. 이봐, 삼이. 혀를 깨물어서 말이 잘못 나온 거지?”

         

       애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장삼.

         

       한바탕 난리가 날 거란 생각과는 달리, 백우진은 설핏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휘저었다.

         

       “얼른 가라.”

       “그, 그럼 내일 봐!”

       “수고하셨소!”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사라지는 장삼과 구왕수.

         

       그들의 실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만큼, 도망치는 속도도 덩달아 빨라졌다.

         

       신예화가 발뒤꿈치를 들어 올리며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돼. 우린 다 이해하니까…, 응?”

         

       애쓰는 그녀의 모습이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평소에는 말괄량이 같다가도 ‘백우진’이 풀 죽은 얼굴로 앉아 있으면 지금과 같은 말투와 표정으로 그를 위로하던 그녀였다.

         

       또렷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괜히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머리로 향하려는 팔을 황급히 돌려세우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래, 고맙다.”

       “치.”

         

       그녀는 아쉽다는 투로 혀를 차며 돌아섰다.

         

       당선영은 묘하게 풀이 죽은 그의 등을 두어 번 세게 내리쳤다.

         

       “당신답지 않게 왜 이래? 언제나처럼 당당하게 굴어야지.”

         

       그녀가 상체를 앞으로 숙이자, 향긋한 체취가 물씬 풍겨왔다.

         

       “내가 반했던 그때 모습처럼, 응?”

         

       얇고 기다란 손가락이 코끝을 툭 치고 지나간다.

         

       그와 동시에 숙였던 상체 또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럼 내일 봐.”

         

       가볍게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당선영.

         

       혼자가 된 백우진은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바람처럼 가버렸네.”

         

       제갈연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가겠다는 말 한마디 없이 사라져버린 후였다.

         

       “아까 점수를 좀 딴 것 같았는데….”

         

       아니었나.

         

       복잡한 뒷머리를 긁적이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벌써 보름인가.”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 덕에 주변이 훤하다.

         

       안 그래도 마음이 복잡했는데 잘 됐다.

         

       이럴 때 마시는 술맛이 또 각별한 법.

         

       “빨리 정리하고 술이나 마셔야겠다.”

         

       백우진은 거친 훈련으로 인해 흙바닥에 생겨난 구멍들을 메우기 시작했다.

         

       뒷정리는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한계의 한계까지 쥐어 짜낸 그들에게 이런 잡스러운 일까지 맡기고 싶지는 않았기에.

         

       하나둘씩 구멍을 메우고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고 있을 때.

         

       캬릉! 캬앙!

         

       익숙한 울부짖음이 들려와 백우진의 고개가 입구 쪽으로 돌아갔다.

         

       제갈연지의 품을 제일 좋아하는 탓에 맡겨 놓았던 아기 백호가 짧은 다리를 바쁘게 놀리며 이곳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백우진은 달려드는 녀석을 그대로 안아들었다.

         

       “어이구, 무거운 거 보니까 며칠 못 본 사이에 많이도 먹었구나.”

         

       캬릉!

         

       짧은 앞발을 휘두르는 아기 백호.

         

       그런 말은 실례라고 온몸으로 주장하는 듯하다.

         

       백우진이 녀석과 가볍게 즐기고 있을 때, 수줍은 걸음 하나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배, 백 공자….”

         

       제갈연지였다.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그녀를 보고 있던 백우진 또한 쭈뼛거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켕기는 게 있는 모양새였다.

         

       “어, 어…, 그래. 백호랑 산책하러 나왔구나?”

       “네에.”

         

       다시 말이 없어진 두 사람.

         

       백우진의 품에 있던 아기 백호만이 무언가를 훈계하듯 캬릉거리며 앞발을 마구 휘저어대고 있을 때.

         

       “사, 사실은.”

         

       제갈연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백호한테 백 공자가 있는 쪽으로 가, 가라고 했어요…!”

         

       눈을 질끈 감으며 감춰둔 속내를 드러내는 그녀.

         

       “그, 그래?”

         

       시무룩하게 있던 백우진의 표정이 금세 환해졌다.

         

       고개를 내렸더니 아기 백호가 근엄한 표정으로 앞발로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

         

       자기한테 고마워하라는 걸까.

         

       “백 공자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뭔데…?”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우물쭈물하던 그녀가 별안간 허리를 숙였다.

         

       “죄, 죄송해요!”

       “엉…?”

         

       

       아니, 네가 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방해꾼이 생길수록 두 사람의 사랑을 불타오릅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원하시는 놈의 참교육은 서서히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속이 콱콱 막히게 만드는 고구마라고 느껴질 법한 부분은 없도록 잘 써보겠읍니다.

    주인공이나 조원들의 성장이 본궤도에 안착한 만큼, 지금보다 더 시원하게 일을 진행해볼 생각입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저는 내일 또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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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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