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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3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는 화창한 아침. 프란체의 침실 창문에 한 전서구가 날아왔다.

         

       콕콕. 콕콕.

         

       부리로 창문을 쪼아대며 고개를 휙휙 돌리는 전서구. 프란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창문을 열었다.

       

       “어디서 보낸 거지?”

         

       전서를 꺼낸 프란체. 자신의 임무를 마친 전서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개를 시원하게 펼치며 떠나갔다.

         

       “이건…?”

         

       프란체는 전서의 문양을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엑시드의 표식이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기대감에 점점 올라가는 심장 박동수. 프란체는 황급히 전서를 펼쳤다.

         

       ─────────────────

       진 바렌베르크와 제국의 국경에 도착했다.

         

       자유의 도시 판테온부터 빠른 복귀를 위해 쉬지 않고 달려와 다소 지친 감이 있으니 조금의 휴식만 취하고 다시 이동하겠다.

         

       이틀 뒤 공작령에 도착 예정.

       ─────────────────

         

       “드디어…!”

         

       너무나도 감격한 나머지 프란체는 크게 벌려진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이날만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왔는지. 감정이 차오르며 전신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아니야.”

         

       감정이 북받치던 프란체는 고개를 휘저으며 물렁해진 정신을 다잡았다. 이러한 감정은 나중에 진과 재회했을 때 느껴도 늦지 않다.

         

       지금은 해야만 하는 일이 있으니 말이다.

         

       딸랑-

         

       테이블 위에 올려진 종을 울리니 침실의 문이 열리며 사용인들이 들어 왔다.

         

       “기침하셨습니까, 공작님.”

       “좋은 아침이에요!”

         

       헬레나를 따라온 사용인 두 명. 공작가에서 대대적인 물갈이를 할 때 들어온 신입이다.

         

       “그래, 좋은 아침이구나. 오늘은 바쁘면서 중요한 날이야. 움직이기 편하면서도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드레스로 하렴.”

         

       헬레나가 “네!”하고 대답하자 신입 사용인 둘이 황급히 움직이며 준비를 한다.

         

       오늘 입을 드레스는 펑퍼짐해 몸이 편하면서 차분한 분위기의 어두운 음영의 파란색. 헬레나의 선택에 만족스러운 프란체는 고개를 주억였다.

         

       “레냐는 공작님의 머리를, 말리나는 장신구를 맡아.”

         

       헬레나는 그리 말하고 브러시나 스폰지 같은 화장 도구들을 늘어놓았다. 프란체는 가만히 앉아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치장 시간이 끝나고, 프란체는 눈을 떠 수은을 덧댄 거울을 바라봤다. 신입들의 실력이 나쁘지 않다.

         

       “다들 경력으로 왔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솜씨가 괜찮구나.”

         

       프란체가 작게 웃으며 한 번 고개를 끄덕이자 레냐와 말리나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이동하는 프란체. 헬레나를 비롯해 다들 그녀에게 따라붙었다.

         

       집무실에 도착하니 안에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케일이 프란체를 힐끔 바라보곤 말했다.

         

       “오늘이군.”

       “오늘이에요.”

         

       어깨를 으쓱이곤 고개를 내젓는 케일.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황실과의 악연이 끊기겠군.”

         

       케일의 말대로, 오늘 이 시간 이후 데카르트와 대립했던 황권은 무너질 거다.

         

       “다들 명심해. 이전과는 수준이 다른 큰 혼란이 제국에 찾아올 거야.”

         

       뜬금없이 황제와 황후가 사망한 소식도 큰 혼란을 가져왔지만, 이번에는 훨씬 더 큰 대란이 올 것이다.

         

       황족, 귀족, 평민 가리지 않고 제국민 모두가 성역화했던 성녀가 황위를 이어받기 위해 전대 황제와 황후를 암살했다. 그리고 이어서 데카르트 공작까지 암살 시도. 대륙 전체가 떠들썩해질 거다.

         

       “카자르, 말했던 대로 기사를 내줄 저널리스트들은 모았니?”

       “네. 그것도 유명한 사람들만 모아서 제국 전체에 빠르게 퍼질 거예요.”

         

       프란체는 황실에 소식을 전하기 전, 제국의 저널리스트들을 모아 이 일의 연관성을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성명할 거다.

         

       성녀, 황후 소미레가 모든 일의 주범이라고.

         

       “케일, 공작가의 기사들은 전부 대동했니?”

       “새벽부터 준비해서 바로 움직일 수 있다.”

         

       전체적인 호위를 진행할 기사들의 배치 준비도 끝났다.

         

       “좋아. 출발하자.”

         

         

       * * *

         

         

       데카르트 대광장.

         

       가장 맨 앞에는 공작가의 기사들이 일렬로 검을 뽑은 채 엄중히 서 있다.

         

       공작령에서 가장 넓은 장소임에도 제국 각지에서 온 저널리스트들과 무슨 일인가 싶어 구경 온 영지민들로 가득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하다.

         

       “무슨 일이래?”

       “큰 소식이 있다던데?”

       “설마 공작님께서 돌아가신 거 아니야?!”

       “어허, 이 사람이 불안한 소리를 하네.”

         

       아무런 정보가 풀리지 않아 목적을 알 수 없어 술렁이는 영지민들. 그만큼 현재 데카르트 공작령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다른 영지와의 교역이 끊겼고 공작이 왕국의 재앙을 놓쳤다는 소식과 마탑에서 인간을 상대로 비인도적인 마법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거기에 화합을 위해 황궁으로 간 공작은 최근 떠들썩한 암살 사건으로 인해 혼수상태. 공작령에 대공황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큰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공작령만큼 살기 좋은 곳은 없어.”

       “저널리스트도 모인 거 보니 큰 소식인 건 확실하군.”

       “대체 언제 시작하는 거야?”

         

       긴 시간이 지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공작의 대리인. 수십의 사람이 올라가도 거뜬한 단상의 위에는 마도구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던 그때.

         

       “어?”

       “공작님 아니야?”

       “맞는 거 같은데?”

         

       영지민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혼수상태로 알려진 프란체 데카르트가 멀쩡한 모습으로 호위들과 단상 위에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공작령에 거주하시는 영지민 여러분, 그리고 오늘을 위해 찾아주신 저널리스트분들에게 중대한 소식을 알립니다.

         

       대광장 전역에 크게 울려 퍼지는 프란체의 우아한 음성. 저널리스트들은 서둘러 수첩을 펼쳤고, 영지민들은 단상 위로 시선을 고정했다.

         

       ─저는 이전, 화합의 회담에 참여하기 위해 황궁에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거기서 암살 시도가 들어왔습니다.

         

       웅성웅성.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술렁거리기에 서로 말하는 내용이 제대로 들려오지 않는다.

         

       ─전대 황제, 황후 폐하께서 돌연 서거하신 것. 새로운 황권이 데카르트를 적대시한 것. 황궁에서 제게 들어온 암살 시도. 이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시선을 단상 위로 고정한 채 손만 움직여 수첩에 무언가 적는 저널리스트들.

         

       ─먼저 말씀드립니다. 저를 암살 시도한 건 다름 아닌 제국에서 성역화된 성녀, 소미레입니다.

         

       멈칫. 말도 안 되는 소식에 대광장에 서 있는 모든 사람이 경직됐다. 쉴 틈 없이 펜을 움직이던 저널리스트들마저 입을 벌린 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성녀는 오래전부터 저를 죽이기 위해 암흑 길드의 암살자들을 고용해왔고, 이것이 통하지 않자 전대 황제, 황후 폐하까지 암살하며 황위를 이어받아 데카르트를 압박했습니다.

         

       이후에도 프란체 데카르트의 설명은 이어졌다. 지금껏 제국을 혼란스럽게 만든 사건들은 전부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제 명예와 데카르트의 이름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성녀 소미레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악인입니다. 데카르트와 저를 노린 것도 자신의 독보적인 입지를 위해서였습니다.

         

       저널리스트들은 무겁게 침을 삼키곤 수첩에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현재 황실보다 권위가 높은 데카르트 공작이나 되는 인물이 이러한 거짓을 할 이유는 없으니 저 내용은 진실이다.

         

       ─또한, 그간 공작령에 나돌던 좋지 않은 소문은 모두 새로이 황권을 잡은 황제와 황후가 주도한 음해입니다.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요.

         

       숙연해진 데카르트 대광장. 거대한 망치로 뒤통수를 후려 맞은 듯한 충격에 모두가 입만 달싹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상입니다.

         

       할 말이 끝난 프란체 데카르트는 공작의 품위에 걸맞게 고고하고 우아한 걸음으로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 * *

         

         

       데카르트 공작의 공표는 황실에서 가장 먼저 들었지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저널리스트들과 전서구를 통해 순식간에 제국 전역으로 퍼졌다.

         

       “…믿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야.”

         

       절대 믿고 싶지 않았던 진실. 지진이 난 것처럼 전신을 부르르 떨던 레제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째서? 라는 의문이 가장 먼저 들었다.

         

       무엇이 부족해서, 무엇을 위해서 이러한 일을 저지른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고민과 생각은 사치였다. 소식을 전해들은 황실 수사단과 기사단은 바로 움직였으니 말이다.

         

       “폐하, 죄인 소미레를 구속했습니다.”

         

       수사부 장관이 소식을 전하러 왔다. 옆에는 황실 기사단장도 있었다.

         

       “송구하오나 폐하께서도 구속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레제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었다.

         

       “…기사단장, 부탁하네.”

       “예.”

         

       철컹! 레제프의 손목에 두꺼운 수갑이 채워졌다. 그가 소드 마스터임을 고려해 준비한 특수 수갑이었다.

         

       “가시지요.”

         

       수사부 장관과 움직이는 황실 기사단장. 그렇게 도착한 곳은 궁궐 내부에 있는 감옥, ‘궁내감’이었다.

         

       황족을 가두는 감옥답게 죄인을 가두는 곳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고풍스럽다. 레제프가 안으로 들어가자 철컥! 문이 굳세게 잠겼다.

         

       밖에서도 죄인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문인지라 쇠창살로 이루어진 틈새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 어느 한 남성이 걸어왔다. 레제프와 같은 금발이자 황족을 상징하는 보석 같은 눈동자.

         

       제2 황자, 라자 페델리안이었다.

         

       “하… 형님, 이게 대체 무슨 꼴입니까?”

         

       라자는 난처하다는 듯 눈썹을 좁힌 채 미간을 짓눌렀다. 레제프에게서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형님이 가끔 멍청하고 순진한 모습을 보여줘도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 군주의 교육을 받고 소드 마스터까지 도달하신 태자 전하셨으니까요. 그런데 이게 대체 뭡니까?”

         

       멍하니 바닥을 바라본 채 말이 없는 레제프. 라자는 오만상을 구기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뭐라 말이라도 해보십시오! 어머니와 아버지를 암살하고 제국까지 말아먹을 뻔한 개 같은 성녀를 그토록 사랑하셨으니 뭐라도 알고 계셨을 거 아닙니까!”

         

       강하게 말해도 대답하지 않는다. 하아, 라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휘저었다.

         

       “형님도 뜻이 같아 데카르트를 견제하면서까지 그 망할 성녀를 도와준 겁니까?”

         

       입술을 머금은 채 고개를 젓는 레제프.

         

       “그럼 이 모든 건 알고 계셨습니까?”

         

       조심스레 얼굴을 들은 레제프. 혼탁한 보석의 눈동자가 라자와 마주쳤다.

         

       “나는… 몰랐다…. 모두… 그냥… 다….”

         

       눈을 얕게 뜨며 레제프를 살피는 라자. 이내 쯧, 혀를 차곤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은 알고 있었군.”

       “…….”

         

       레제의 눈은 정확했다. 레제프는 그저 아니라고, 그럴 리 없다고 외면하며 자기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을 뿐이었다.

         

       “언제부터입니까? 성녀가 10년 전 황궁에 들어온 시점부터입니까?”

         

       레제프는 고개를 저었다.

         

       “…1년 전이다.”

       “바렌베르크와 전쟁할 때입니까?”

       “그래…….”

         

       짚이는 게 있다. 편두통이 몰려온 라자는 눈을 감고 미간을 주물렀다.

         

       “그때겠네요. 갑자기 돌아가겠다고,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발광했을 때. 성녀는 그 시점부터 미쳐있었군.”

         

       전쟁이라는 잔혹함이 그녀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 걸까? 라자가 봐온 소미레라면 그럴 만도 하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여리고 순결했으며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비상사태이니 황권은 잠시 제가 이어받겠습니다. 조사가 끝나면 다시 복귀하시든가 하시고…….”

         

       라자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말을 이어가던 그때, 쾅! 황실 수사관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다급하게 소리쳤다.

         

       “황자 전하! 죄인 소미레가 사라졌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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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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