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53

     지난 사흘.

     에드먼드 듀카스텔 교수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에드먼드 듀카스텔 백작이라는 인간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전형적인 골수 노스트럼 귀족형 인간.

     지브롤터가 왕국을 지켜주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노스트럼 왕가가 그 핏줄 때문에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자.

     동시에 제국을 향해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자.

     

     매국노는 아니다.

     매국노가 되기 이전에 죽었다.

     딱히 충신으로 죽은 것도 아니고, 불운하게 죽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독살.

     아마도 제국에 의해 살해당했거나, 혹은 주변에 있던 이들의 치정에 의한 사망.

     합스베르크 황제가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제국의 그림자가 암살한 것처럼 꾸민 주변인에 의한 암살’로 나는 추정한다.

     

     인품이 없는 꼰대.

     이러한 인간이 아카데미에서 어떤 일을 저질렀는가를 따지고 들어간다면, 한 줄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누아르 지브롤터의 학점을 깎았다.

     한 번 무단으로 결석했던 일에 대하여 점수를 깎아버리고 말았다.

     왜?

     여기에는 한 가지, 누구도 모르는 기밀이 하나 들어가 있다.

     “아버지. 하나 여쭙고자 합니다.”

     [말하라.]

     제국에서 얻어온 원격 통신 도구를 통하여, 나는 지브롤터 영지의 어느 한 방에 있는 이와 아주 짧게 실시간으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에드먼드 듀카스텔도 혹시 ‘세인트 지오’ 부류입니까?”

     [네 어머니를 상대로 고백한 쓰레기 중 한 명이었지.]

     “답이 나왔군요. 감사합니다.”

     에드먼드 듀카스텔이 왜 누아르 지브롤터를 엿 먹였는가.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해 보니, 결국 그 근간에는 수컷의 논리와 찌질함이 결부되어 있었다.

     [그래. 방학 때는 내려올 생각이더냐?]

     “아스타시아와 함께 2주 정도는 내려갈 생각입니다. 마침 ‘그것’도 온다는 이야기도 있고.”

     [음. 기다리고 있으마.]

     “예.”

     통신이 끊어졌다.

     애초에 이 통신, 1분 정도 통신을 하는데 상급 마석을 사용할 정도로 가성비가 낮다.

     하지만 그 1분 남짓한 통신에서 상급 마석 이상의 정보가 오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메리트가 있다.

     에드먼드 백작.

     쓰레기를 오물 냄새 풍기지 않게 적당히 포장해서 제국에 던진다.

     

     그러려면 우선 에드먼드 백작이 곤경에 처해야 하는데.

     “굳이 내가 곤경에 빠뜨릴 필요는 없겠어.”

     정치적인 이슈로 인해, 그는 이미 곤경에 처해있다.

     “그러길래 평등하게 점수를 줬어야지.”

     에드먼드 교수.

     그가 학생들에게 내린 성적의 기준과 결과는 교수회의에 참여한 모든 교수가 확인을 마쳤다.

     성적 조작.

     정확히는 ‘특정 학생’에 대한 편애와 차별.

     “이건 조작이야, 조작.”

     에드먼드 교수는 누아르 지브롤터는 물론이거니와, 제국 유학생들에 대한 점수만 일부러 낮게 채점했다.

     “조작하더라도 이렇게 티가 나게 조작하냐.”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

     생각은 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들킨다거나, 누군가가 반론을 제기하여 문제가 되었을 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덮어두면 아무 문제가 아니지만.

     들쑤셔서 드러내면 문제가 되는 사안이니까.

     “지금까지의 노스트럼은 그래왔지.”

     이런 게 문제라고 누가 지적하지 않았으니까, 관성적으로 그냥 그래왔다.

     “다른 곳에서도 그러면 안 될 사안이기는 하지만….”

     이전에는 평민에 대한 신분 차별이었다면, 이번에는 개인적인 옹졸한 복수와 국가 차별.

     “오로솔에서는 그러지 말았어야지.”

     * * *

     “에드먼드 교수의 교수직을 박탈하고, 그의 연구실을 몰수하겠소.”

     

     교수들이 모여있는 회의실, 상석에 앉은 윈체스터 총장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공! 그게 무슨 소리요!”

     수염을 짙게 지른 흑발의 중년 남자, 에드먼드 백작이 탁자를 손으로 치며 벌떡 일어났다.

     “박탈이라니!”

     “나는 지금 대공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로솔 아카데미의 총장으로서 있는 것이오.”

     

     윈체스터 총장이 넌지시 경고를 날렸으나, 아쉽게도 에드먼드 백작은 윈체스터 총장과 비슷한 연배의 인간.

     “총장이라고 하더라도 대공이자 재상이 아닌 건 아니지! 윈체스터 대공! 이는 듀카스텔 백작가에 대한 모욕이오!”

     “에드먼드 개인의 일탈이 듀카스텔 백작가 전체의 일탈인가?”

     “그렇소! 내가 듀카스텔 백작이니까!”

     

     간혹, 귀족 중에는 가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가진 인간이 있다.

     ‘재미있네.’

     구경 오기를 잘했다.

     교수회의라서 공식적으로 참가할 명분은 없지만, 나는 재단 이사장이라는 명목으로 벽에 놓인 의자에 앉아 교수회의를 구경하는 중이다.

     “어찌 이렇게 일방적으로 결론을 내린단 말인가! 분명 지난번 교수회의에서는 이런 일은 없었거늘!”

     

     그랬다.

     내가 바토리 부총장과 식사를 하기 전에 있었던 교수회의에서는 그저 단순히 ‘이게 문제가 되는가?’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눴다.

     정확히는 ‘규정에 따라 징계와 해임을 할 사안인가’라거나, ‘이게 규정에 위배되는 사안인가’까지.

     “지금 나를 아카데미에서 쫓아내는 걸로 넘어가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듀카스텔 백작가를 축출하려는 건가!”

     “백작.”

     “‘교수’라고 부르시오! 나는 아직 교수를 내려놓은 게 아니니!”

     총장이 직접 교수 회의에서 해임안을 재가하였는데, 듀카스텔 백작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왜 교수를 그만둬야 하는가! 그 이유부터 설명하시오!”

     왜 교수 자리에 연연하며 버티려고 하는가.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당사자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엄연히 국왕 폐하의 명령에 따라 임명받은 아카데미의 교수! 어찌 아카데미의 규칙 따위로 나를 해임하려고 하는가! 오로솔 아카데미는 국왕 전하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는 말인가!”

     “백작…!”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교수들끼리 정한 것만으로 나를 해임시킬 수는 없소! 특히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만으로!”

     학생 차별.

     징계에서 해임까지 들어간 이유.

     “나 에드먼드 듀카스텔은…!”

     장황하게 본인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그 호소에 들어있는 속내를 짐작한다.

     ‘일단 돈이 아쉽지.’

     교수로서 받아야 할 십억 넘는 연봉이 날아간다.

     오로솔 아카데미에 초빙된 교수들은 다들 최소 십억이 넘는 연봉을 받고 있으며, 남은 기간 받아야 할 금액은 자연히 소멸한다.

     ‘쪽팔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부끄럽다.

     1학기 동안 학생도 아카데미에서 규칙 위반으로 쫓겨난 적이 없는데, 학생보다 먼저 퇴학당하게 생겼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고작 그런 이유’라고 생각하는 게 제일 커.’

     본인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부끄러워해야 할 일에 대하여, 부끄러움이라는 감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듯 떠들고 있다.

     

     “학생에 대한 평가는 교수 개인의 권한! 나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가했을 뿐이며, 학점을 바꿀 이유는 어디에도 없소!”

     도저히 답이 없다.

     이미 답은 나와 있고 끝이 났는데, 추하게 버티고 발악하며 어떻게든 물러서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스슥.

     

     시선을 주고받는다.

     윈체스터 총장이 나를 보고, 내가 바토리 부총장을 향해 시선을 보낸다.

     “듀카스텔 백작.”

     바토리 부총장이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났다.

     “노스트럼 왕가를 향한 충성심으로, 누아르 지브롤터 학생의 점수를 깎은 건가요?”

     “뭐라?”

     “아뇨, 그냥 궁금해서. 솔직히 그렇잖아요? 백작이 점수 깎는 바람에 누아르 지브롤터가 차석이 되었고, 덕분에 나리아 공주께서는 유일한 수석이 되셨는데.”

     “그건 우연의 일치일 뿐이오! A 학점을 준 유일한 사람이 나라서 그렇지!”

     바토리 부총장의 말에도 에드먼드 백작은 좀처럼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누아르 지브롤터가 그날 제대로 나오기만 했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소!”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백작께서 더 잘 아시지 않나요?”

     “흥! 가문에서 데리고 온 수하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잘못이지!”

     날 선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몇몇 교수들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으나, 나는 다리를 꼰 채 오른 다리의 무릎을 만지작거리며 느긋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별일이라고 하면 별일.

     한 해, 가도를 달리는 귀족의 마차에 치여 다치거나 죽는 평민의 숫자는 몇 명이나 될까.

     그것도 말이 이끄는 자동마차가 아니라 마도자동선, 심지어 겉에 노스트럼의 국기가 펄럭거리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마도자동선이라고 한다면.

     운 없는 웬즈데이는 그 자동선에 치였다.

     정확히는 바퀴에 튄 돌덩이가 바닥에서 하늘로 솟구쳤고, 웬즈데이는 피할 겨를도 없었다.

     ‘사실 웬즈데이 말고도 피해자가 여럿 있었지만.’

     제국출신 그림자가 그것도 피하지 못하냐.

     라고 하기에는 당시 사상자가 제법 많았다.

     ‘사(死)’상자다.

     우리의 미친 국왕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마도자동선을 최고속력으로 달렸고, 하필 오로솔 아카데미의 중앙 광장과 대로는 그런 자동선이 달리기에 너무나도 적합한 고속도로였다.

     누아르의 심부름으로 간식을 사러 나왔던 웬즈데이는 마도자동선이 폭주하며 튀기는 돌덩이에 맞아 죽을 뻔한 아이를 구하면서 상처를 입었다.

     다른 몇몇 이들은 뭐, 웬즈데이나 기사가 주변에 없었던 것이 불운했을 뿐.

     “어떠한 이유에서든 나는 이번 일로 물러날 생각이 없소!”

     그리고 그런 불운한 사고로부터 굴러온 눈덩이가 지금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지금부터 이 사안을 가지고 나에게 문제를 삼으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이는 듀카스텔 백작가에 대한 정식 도전으로 받아들이겠소!”

     “영지전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못 할 것도 없지!”

     일촉즉발의 상황.

     이대로 가면 ‘너무 극단적인 인간을 상대로는 조금’이라면서 한 수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 되겠지만.

     ‘예상했다고.’

     이미 결과는 나와있다.

     나머지는 에드먼드 백작이 순순히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추하게 계속 걸고 넘어지느냐 하는 문제뿐이다.

     “영지전이라. 곤란하군.”

     윈체스터 총장이 손으로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뜸을 들였다.

     “오.”

     또각, 또각.

     저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렸고, 윈체스터 총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끼이익.

     문이 열린다.

     굳게 닫혀있던 회의실의 문이 좌우로 열리며, 금발의 여인이 제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나,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왕세자의 옷을 자신에게 맞게 개량하여 입고 온 나리아가 뒷짐을 진 채 앞으로 나섰다.

     “학생회장으로서, 부당한 일을 당한 학우의 일을 돕고자 이 자리에 나섰습니다.”

     “왕세자의 옷을 입고, 그런 말을?”

     “윈체스터 총장께서 대공이자 재상인 것처럼, 본인 또한 학생회장이자 왕위 계승자입니다.”

     “……설마!”

     사실, 나리아는 처음부터 대기하고 있었다.

     

     이 교수회의는 애초에 회의의 형식을 빌린 재판장.

     재판에서 당사자가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걸고넘어지고 있었을 뿐이다.

     “노스트럼 왕국의 왕위 계승자이자 학생회장,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은 교수 회의의 결과를 지지합니다.”

     “이…!”

     억지를 부린다면, 그보다 더 한 억지를 부리면 그만.

     “지금.”

     듀카스텔 백작이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이용해 저항하는 것처럼.

     “저도 따르겠다는 아카데미의 규칙을 정면으로 거스르겠다는 겁니까?”

     

     나리아 또한 권력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다.

     “그대는 왕녀지…!”

     “다음 대의, 왕이 될 사람이죠.”

     “!!”

     치졸하고 옹졸한 협박이지만, 오히려 단순하고 명확하기에 협박은 확실하게 통한다.

     “에드먼드 듀카스텔 백작.”

     찍히면 X된다.

     “이 일, 정확히 기억해두겠습니다.”

     본인은 싫겠지만, 나리아는 세인트 지오의 딸이다. 

     * * *

     “젠장, 젠장!”

     남자화장실.

     “젠장!”

     늙은 노인이 화장실 세면대를 향해 주먹을 마구 내리치며 분노를 토해낸다.

     “그렇게 화내시면 몸에 좋지 않습니다. 경.”

     “너는…?”

     “반갑습니다, 경.”

     나는 밖에서 느긋하게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가, 세면대 옆에 섰다.

     “본인이 결석한 걸 가지고 걸고 넘어지다니. 그렇게 수석을 한 번 해보고 싶어서 발정난 못난놈 때문에 곤욕을 치르셨군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크흠.”

     듀카스텔 백작이 격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이 자도 잘 알고 있다.

     그레이와 누아르의 관계를.

     “동생이 뭐라고 하던가?”

     “제게 찾아와서 형이 어떻게 해달라고 하더군요.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어찌 학생이면서 교수의 권위에 도전한단 말입니까?”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예. 제가 만일 교수회의에 정식으로 발언할 수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정면으로 받아쳤을 겁니다.”

     

     가정법.

     하지만 그러지 않았기에, 당장은 힘이 없음을 은근슬쩍 드러낸다.

     “이번 해임안, 제가 막아드리겠습니다.”

     “그대가…?”

     “예. 물론 당장은 상황이 짜증나니, 학점 정정은 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으음….”

     처음에는 자존심 문제였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뻗대다가는 진짜 영지전이라도 일어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 예상되기 일보직전.

     “폭풍우가 몰아치면 거지 같아도 창문을 닫고 비를 피해야죠. 지금은 그럴 때입니다.”

     “…….”

     정확히는 ‘차기 국왕의 눈 밖에 나기 일보직전’이라는 점.

     “그냥 드리는 말씀은 아니고.”

     은근슬쩍.

     “제 ‘파티’에 한 번 와보시겠습니까?”

     나는 품에서 붉은 물약이 든 유리병 하나를 꺼내, 듀카스텔 백작의 앞에 놓았다.

     “[크비슬링스]는 듀카스텔 백작을 환영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