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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3


    ​
    아무리 공작이 자신을 경계한다고 해서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
    ​
    리안의 개그 세계의 주민이었다면 일말의 고민이나,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말을 쉽게 입을 담았겠지만, 그는 내구도가 무한이나 다를 바 없는 개그 세계의 주민이었다.
    ​
    ​
    그렇기에 그는 거리낌 없이 공작에게 성큼성큼 다가섰다.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인 공작은 허리춤에 매어둔 짧은 단검을 꺼내 리안에게 휘둘렀다.
    ​
    ​
    푸욱!
    ​
    ​
    휘둘러진 단검은 리안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이에 놀란 건 공작이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을 살짝 벌렸다. 리안의 정도의 강자라면 이 정도 공격은 눈감고도 피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
    그제야 생존본능으로 마비되었던 이성이 되돌아왔다. 이를 기민하게 눈치챈 리안이 제 허벅지에 꽂힌 단검을 쥐고 있는 공작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
    ​
    “지금에 와서 이런 말을 하면 우습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적이 아닙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큿,쿨럭!”
    ​
    ​
    말을 잇던 그녀는 핏물을 뱉어냈다. 치료되지 않은 배 쪽 상처가 벌어진 탓이다.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린 입술, 초점이 풀렸다가 잡히기를 반복하는 눈동자.
    ​
    ​
    이대로 있다간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은 모습에 리안은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
    ​
    “실례하겠습니다.”
    “다,가오지마!”
    ​
    ​
    리안이 그녀의 허벅지 쪽으로 손을 뻗자 단검이 허벅지를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만약 그녀의 체력이 조금이라도 더 남아있었다면 리안의 다리를 그대로 토막 내려 했을지도 몰랐다.
    ​
    ​
    떨리는 손은 그저 검을 더욱 깊게 박아 넣을 뿐 그 이상의 행동은 수행하지 못했다.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공작의 핏물 위에 리안의 핏물이 섞여들었다. 리안은 제 허벅지가 찔리든 잘리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녀의 다리 위에 왼손을 올린 채 신성력을 사용했다.
    ​
    ​
    우웅.
    ​
    ​
    손등 위로 전과 같은 문양이 찬란하게 떠오르고, 공작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기 시작했다.
    ​
    ​
    “이건…?”
    ​
    ​
    따스하고 안온한 기운에 공작의 눈이 슬며시 풀어지기 시작했다. 극도로 긴장되었던 몸이 강제로 노곤노곤하게 풀리자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입술을 벙긋거리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
    ***
    ​
    어딘가에 위치한 낡고 어두운 서재. 
    ​
    ​
    서재 안쪽은 연한 보라색 빛이 은은하게 주변을 비추고 있었지만, 그 빛이 어디서 쏟아지는 건지 알 수 없어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
    ​
    서재의 벽을 따라 책장들이 높게 솟아있었고, 책장 빈칸에는 눈구멍에 양초가 튀어나와 있는 두개골이나 말린 개구리, 허브, 뼈, 뭘 표현한 건지 알 수 없는 조각상 따위가 놓여있었다. 몇몇 물건은 검은색 연기나, 붉은색 핏물을 뚝뚝 떨어뜨리기도 했다.
    ​
    ​
    책이 꽂혀있긴 했지만 그다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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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을 다루는 법: 네크로맨서를 위한 안내서’
    ‘저승의 언어: 죽은 자와의 대화’
    ‘뼈의 마법: 구조와 강화의 비밀’
    ‘죽음 너머의 경계: 영혼의 여행안내’
    ‘영혼의 결속: 영원한 충성을 얻는 방법’
    ‘저주와 보호: 네크로맨서의 방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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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재의 주인이 ‘네크로맨서’에 관심이 많거나, ‘네크로맨서’ 그 자체인지 그에 관련된 책이 여러 권 꽂혀있었다.
    ​
    ​
    2평 반 크기의 방 가운데에는 옆으로 널찍한 진갈색 나무 책상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꽤 오래 사용했던 물건인지 낡은 티가 났다.
    ​
    ​
    책상 위에는 세발 달린 얇은 받침대가 놓여있었고 그 위에 사람 머리만 한 커다란 수정구가 놓여있었다. 잘 관리된 물건인지 반짝반짝 윤이 났다. 
    ​
    ​
    책상 뒤에 놓인 가죽 의자에 검은색 로브의 후드를 머리끝까지 눌러쓴 분홍 머리의 여성이 음흉하게 웃음 짓고 있었다. 드러난 턱선이 날렵했고 목이 가늘었다. 살짝 드러난 입술이 매혹적으로 휘어있었으며 입술 아래 매력점이 찍혀있었다.
    ​
    ​
    “하으… 이제 조금만 있으면 손에 들어온다.”
    ​
    ​
    그녀는 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수정구 안쪽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수정구 안쪽에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에게 공격당하는 공작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여지고 있었다. 
    ​
    ​
    “제국의 최강이라 불리는 저 여자를 내 것으로 만들면 비어있는 사천왕 자리에 들어가는 건 확정이야. 그렇게 되면 에르보안 님 곁에 내가… 내가…흐흥!”
    ​
    ​
    그녀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황홀한 표정으로 몸을 배배 꼬았다. 이내 아무도 묻지 않은 사실을 주절주절 늘어놓기 시작했다.
    ​
    ​
    “설마 제국의 보호 마법을 내가 뚫어버리다니… 에르보안님조차 제국의 보호 마법을 파괴하지 못하셨는데…! 이건 마왕님께서 나와 에르보안님을 맺어주려는 게 분명해. 그럴 수밖에 없지 응응!”
    ​
    ​
    제국 전체엔 보호 마법이 걸려있어, 외부에서 공간 이동 마법으로 침투하는 건 불가능하다. 거기다 국경 근처에는 신성 마법까지 걸려있어 마기를 품은 이가 제국으로 침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
    ​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이득에 비해 손해가 너무 크기에 마기가 제로에 가까운 존재들만이 제국에 첩자로 숨어든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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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르보안을 동경하여 그에 대한 이야기를 귀동냥했을 뿐인 여자가 상세한 정보까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저, 에르보안님 조차 포기했던 제국 침투를 자신이 성공했다며 행복해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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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딱 봐도 얼굴만 예쁠 뿐,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여자가 어떻게 제국의 보호 마법을 뚫고 제국 최고의 검이라 불리는 공작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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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는 전부 행운의 신이 그녀에게 가호를 내린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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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첫 번째 행운은 구하기 극도로 어렵다는 도플갱어를 얻어낸 일이다. 그것도 막 죽어가는 객체를 얻어 영혼까지 사역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도플갱어는 다른 언데드들과 달리 능력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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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의 두 번째 행운은 어둠의 사신이라 불리는 무시무시한 몬스터와 도플갱어의 합성을 성공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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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데드 합성의 기초를 배우던 중, 실습으로 스켈레톤 두 마리를 합성하려다가 실수로 가장 아끼는 언데드 두 마리를 넣고 합성해버렸던 사건의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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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률은 고작해야 0.004%였지만… 행운의 신이 그녀에게 미소라도 지어주고 있는지 단번에 성공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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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이 상대하고 있는 도플갱어가 죽지 않고 멀쩡한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건 어둠의 사신이라 불리는 그림자형 몬스터와 합성된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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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약 두 번째 행운이 없었다면 여자는 공작을 다크 나이트로 만들 생각을 하긴커녕 도망 다니기 바빴을 것이다. 
    ​
    ​
    그녀의 세 번째 행운은 에르보안의 집무실로 공간 이동 마법을 시도하려는 순간, 정령왕이 제국과 마왕의 땅을 연결하는 통로를 연결해 버린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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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르보안의 집무실에 걸린 보안 마법이 그녀의 이동 마법을 튕겨냈고, 튕겨 나간 마법이 사막에서 바늘 찾을 확률로 제국과 연결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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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게 연결된 장소가 하필이면 긴 잠에 빠진 숲의 주인이 기거하는 장소였다. 그게 그녀의 네 번째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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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는 누군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놓는 것처럼 잠든 숲의 주인을 타락시켜 숲을 오염시키고. 숲의 주인을 조종하여 도플갱어를 강화했다.
    ​
    ​
    ‘상대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뽑아내 흉내 낼 수 있는 도플갱어라니… 이거라면 에르보안님도 날… 날 칭찬해주실 거야. 하으..’
    ​
    ​
    우연과 어이없을 정도의 행운이 겹쳐 만들어진 덫이었기에 아무리 리안이 원작을 뒤적여도 답이 나오지 않는 게 당연했다.
    ​
    ​
    “하아아… 얼마나 아름다운 작품이 만들어질까!”
    ​
    ​
    그녀는 헤벌쭉하게 웃으며 수정구 너머를 행복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
    ​
    치지직..
    ​
    ​
    “어?”
    ​
    ​
    공작의 모습을 비춰주던 수정구에 노이즈가 끼기 시작했다. 안개라도 낀 것처럼 흐려졌다 돌아오길 반복하는 모습에 여자는 당황한 얼굴로 수정구를 툭툭 두드렸다.
    ​
    ​
    “아이씨! 이거 왜 이래? 설마 고장 난 건가?”
    ​
    ​
    탐스러운 과실을 수확하기 직전에 이런 일이 일어나니 초조함이 훅 치솟았다. 그녀는 지팡이로 땅을 짚어 스켈레톤 메이지를 소환했다. 검은색 망토를 두른 해골이 달그락거리며 땅에서 솟구쳤다.
    ​
    ​
    “이 수정구 좀 고쳐봐!”
    ​
    ​
    메이지는 곧바로 갈색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어 마법을 사용했다. 
    ​
    ​
    츠즈즈…
    ​
    ​
    “으아아! 꺼져버렸잖아!”
    ​
    ​
    별 효과가 없었는지 수정구가 그대로 꺼져버렸다. 그녀는 망토 후드를 뒤로 훅 넘기며 신경질적으로 제 분홍 머리를 털어댔다. 도도한 영애를 연상시키는 매혹적인 눈과 도톰한 입술, 앙증맞은 코가 드러났다.
    ​
    ​
    “으으.. 이러면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하잖아…”
    ​
    ​
    공작이 완전히 쓰러지면 조용히 다가가 다크 나이트로 만들어버리려 했는데, 수정구가 망가지는 바람에 직접 확인하러 가게 생겼다.
    ​
    ​
    “제국 제일 검이라고 불리는 여자니까 한… 이틀만 있다가 나가보면 되지 않을까? 그, 그치만 그사이 죽어버리면? 그럼 영혼을 수확하지 못해서 능력치가 몇 배는 떨어질 텐데?”
    ​
    ​
    그녀는 혼잣말이 익숙한지 손톱을 깨물며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다 정신을 놓기라도 한 것처럼 수정구를 들어 올려 우는 소리를 냈다.
    ​
    ​
    “고쳐져! 고쳐지라고! 으아아앙!”
    ​
    ​
    그녀는 우는 소리를 내느라 수정구 안에 아주 잠깐 비췄던 장면을 놓치고 말았다. 하얀 머리에 금안을 가진 남자가 덫 안으로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
    ​
    달그락..
    ​
    ​
    그와 함께 조용히 서 있던 메이지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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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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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다음화를 한땀한땀 쓰다보니 오래걸려서 우선 쓰던 것까지만 가져왔습니다.

다음화 업로드 할때(새벽) 아랫부분은 잘려나갈 예정입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아무리 공작이 자신을 경계한다고 해서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리안의 개그 세계의 주민이었다면 일말의 고민이나,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말을 쉽게 입을 담았겠지만, 그는 내구도가 무한이나 다를 바 없는 개그 세계의 주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거리낌 없이 공작에게 성큼성큼 다가섰다.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인 공작은 허리춤에 매어둔 짧은 단검을 꺼내 리안에게 휘둘렀다.

푸욱!

휘둘러진 단검은 리안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이에 놀란 건 공작이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을 살짝 벌렸다. 리안의 정도의 강자라면 이 정도 공격은 눈감고도 피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생존본능으로 마비되었던 이성이 되돌아왔다. 이를 기민하게 눈치챈 리안이 제 허벅지에 꽂힌 단검을 쥐고 있는 공작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지금에 와서 이런 말을 하면 우습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적이 아닙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큿,쿨럭!”

말을 잇던 그녀는 핏물을 뱉어냈다. 치료되지 않은 배 쪽 상처가 벌어진 탓이다.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린 입술, 초점이 풀렸다가 잡히기를 반복하는 눈동자.

이대로 있다간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은 모습에 리안은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다,가오지마!”

리안이 그녀의 허벅지 쪽으로 손을 뻗자 단검이 허벅지를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만약 그녀의 체력이 조금이라도 더 남아있었다면 리안의 다리를 그대로 토막 내려 했을지도 몰랐다.

떨리는 손은 그저 검을 더욱 깊게 박아 넣을 뿐 그 이상의 행동은 수행하지 못했다.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공작의 핏물 위에 리안의 핏물이 섞여들었다. 리안은 제 허벅지가 찔리든 잘리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녀의 다리 위에 왼손을 올린 채 신성력을 사용했다.

우웅.

손등 위로 전과 같은 문양이 찬란하게 떠오르고, 공작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기 시작했다.

“이건…?”

따스하고 안온한 기운에 공작의 눈이 슬며시 풀어지기 시작했다. 극도로 긴장되었던 몸이 강제로 노곤노곤하게 풀리자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입술을 벙긋거리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어딘가에 위치한 낡고 어두운 서재.

서재 안쪽은 연한 보라색 빛이 은은하게 주변을 비추고 있었지만, 그 빛이 어디서 쏟아지는 건지 알 수 없어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서재의 벽을 따라 책장들이 높게 솟아있었고, 책장 빈칸에는 눈구멍에 양초가 튀어나와 있는 두개골이나 말린 개구리, 허브, 뼈, 뭘 표현한 건지 알 수 없는 조각상 따위가 놓여있었다. 몇몇 물건은 검은색 연기나, 붉은색 핏물을 뚝뚝 떨어뜨리기도 했다.

책이 꽂혀있긴 했지만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영혼을 다루는 법: 네크로맨서를 위한 안내서’

‘저승의 언어: 죽은 자와의 대화’

‘뼈의 마법: 구조와 강화의 비밀’

‘죽음 너머의 경계: 영혼의 여행안내’

‘영혼의 결속: 영원한 충성을 얻는 방법’

‘저주와 보호: 네크로맨서의 방어술’

서재의 주인이 ‘네크로맨서’에 관심이 많거나, ‘네크로맨서’ 그 자체인지 그에 관련된 책이 여러 권 꽂혀있었다.

2평 반 크기의 방 가운데에는 옆으로 널찍한 진갈색 나무 책상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꽤 오래 사용했던 물건인지 낡은 티가 났다.

책상 위에는 세발 달린 얇은 받침대가 놓여있었고 그 위에 사람 머리만 한 커다란 수정구가 놓여있었다. 잘 관리된 물건인지 반짝반짝 윤이 났다.

책상 뒤에 놓인 가죽 의자에 검은색 로브의 후드를 머리끝까지 눌러쓴 분홍 머리의 여성이 음흉하게 웃음 짓고 있었다. 드러난 턱선이 날렵했고 목이 가늘었다. 살짝 드러난 입술이 매혹적으로 휘어있었으며 입술 아래 매력점이 찍혀있었다.

“하으… 이제 조금만 있으면 손에 들어온다.”

그녀는 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수정구 안쪽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수정구 안쪽에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에게 공격당하는 공작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여지고 있었다.

“제국의 최강이라 불리는 저 여자를 내 것으로 만들면 비어있는 사천왕 자리에 들어가는 건 확정이야. 그렇게 되면 에르보안 님 곁에 내가… 내가…흐흥!”

그녀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황홀한 표정으로 몸을 배배 꼬았다. 이내 아무도 묻지 않은 사실을 주절주절 늘어놓기 시작했다.

“설마 제국의 보호 마법을 내가 뚫어버리다니… 에르보안님조차 제국의 보호 마법을 파괴하지 못하셨는데…! 이건 마왕님께서 나와 에르보안님을 맺어주려는 게 분명해. 그럴 수밖에 없지 응응!”

제국 전체엔 보호 마법이 걸려있어, 외부에서 공간 이동 마법으로 침투하는 건 불가능하다. 거기다 국경 근처에는 신성 마법까지 걸려있어 마기를 품은 이가 제국으로 침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이득에 비해 손해가 너무 크기에 마기가 제로에 가까운 존재들만이 제국에 첩자로 숨어든 상황이었다.

에르보안을 동경하여 그에 대한 이야기를 귀동냥했을 뿐인 여자가 상세한 정보까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저, 에르보안님 조차 포기했던 제국 침투를 자신이 성공했다며 행복해할 뿐이었다.

딱 봐도 얼굴만 예쁠 뿐,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여자가 어떻게 제국의 보호 마법을 뚫고 제국 최고의 검이라 불리는 공작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었을까?

이는 전부 행운의 신이 그녀에게 가호를 내린 덕분이었다.

그녀의 첫 번째 행운은 구하기 극도로 어렵다는 도플갱어를 얻어낸 일이다. 그것도 막 죽어가는 객체를 얻어 영혼까지 사역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도플갱어는 다른 언데드들과 달리 능력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었다.

그녀의 두 번째 행운은 어둠의 사신이라 불리는 무시무시한 몬스터와 도플갱어의 합성을 성공한 일이었다.

언데드 합성의 기초를 배우던 중, 실습으로 스켈레톤 두 마리를 합성하려다가 실수로 가장 아끼는 언데드 두 마리를 넣고 합성해버렸던 사건의 결과물이었다.

성공률은 고작해야 0.004%였지만… 행운의 신이 그녀에게 미소라도 지어주고 있는지 단번에 성공해버렸다!

공작이 상대하고 있는 도플갱어가 죽지 않고 멀쩡한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건 어둠의 사신이라 불리는 그림자형 몬스터와 합성된 덕분이었다.

만약 두 번째 행운이 없었다면 여자는 공작을 다크 나이트로 만들 생각을 하긴커녕 도망 다니기 바빴을 것이다.

그녀의 세 번째 행운은 에르보안의 집무실로 공간 이동 마법을 시도하려는 순간, 정령왕이 제국과 마왕의 땅을 연결하는 통로를 연결해 버린 일이었다.

에르보안의 집무실에 걸린 보안 마법이 그녀의 이동 마법을 튕겨냈고, 튕겨 나간 마법이 사막에서 바늘 찾을 확률로 제국과 연결되어버렸다.

그렇게 연결된 장소가 하필이면 긴 잠에 빠진 숲의 주인이 기거하는 장소였다. 그게 그녀의 네 번째 행운이었다.

그녀는 누군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놓는 것처럼 잠든 숲의 주인을 타락시켜 숲을 오염시키고. 숲의 주인을 조종하여 도플갱어를 강화했다.

‘상대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뽑아내 흉내 낼 수 있는 도플갱어라니… 이거라면 에르보안님도 날… 날 칭찬해주실 거야. 하으..’

우연과 어이없을 정도의 행운이 겹쳐 만들어진 덫이었기에 아무리 리안이 원작을 뒤적여도 답이 나오지 않는 게 당연했다.

“하아아… 얼마나 아름다운 작품이 만들어질까!”

그녀는 헤벌쭉하게 웃으며 수정구 너머를 행복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치지직..

“어?”

공작의 모습을 비춰주던 수정구에 노이즈가 끼기 시작했다. 안개라도 낀 것처럼 흐려졌다 돌아오길 반복하는 모습에 여자는 당황한 얼굴로 수정구를 툭툭 두드렸다.

“아이씨! 이거 왜 이래? 설마 고장 난 건가?”

탐스러운 과실을 수확하기 직전에 이런 일이 일어나니 초조함이 훅 치솟았다. 그녀는 지팡이로 땅을 짚어 스켈레톤 메이지를 소환했다. 검은색 망토를 두른 해골이 달그락거리며 땅에서 솟구쳤다.

“이 수정구 좀 고쳐봐!”

메이지는 곧바로 갈색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어 마법을 사용했다.

츠즈즈…

“으아아! 꺼져버렸잖아!”

별 효과가 없었는지 수정구가 그대로 꺼져버렸다. 그녀는 망토 후드를 뒤로 훅 넘기며 신경질적으로 제 분홍 머리를 털어댔다. 도도한 영애를 연상시키는 매혹적인 눈과 도톰한 입술, 앙증맞은 코가 드러났다.

“으으.. 이러면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하잖아…”

공작이 완전히 쓰러지면 조용히 다가가 다크 나이트로 만들어버리려 했는데, 수정구가 망가지는 바람에 직접 확인하러 가게 생겼다.

“제국 제일 검이라고 불리는 여자니까 한… 이틀만 있다가 나가보면 되지 않을까? 그, 그치만 그사이 죽어버리면? 그럼 영혼을 수확하지 못해서 능력치가 몇 배는 떨어질 텐데?”

그녀는 혼잣말이 익숙한지 손톱을 깨물며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다 정신을 놓기라도 한 것처럼 수정구를 들어 올려 우는 소리를 냈다.

“고쳐져! 고쳐지라고! 으아아앙!”

그녀는 우는 소리를 내느라 수정구 안에 아주 잠깐 비췄던 장면을 놓치고 말았다. 하얀 머리에 금안을 가진 남자가 덫 안으로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달그락..

그와 함께 조용히 서 있던 메이지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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