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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3

   지금 칼에게는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다.

   

   당연하게도 그의 실력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아니다. 몇 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완벽히 압도하는 괴물 같은 기사의 실력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그와는 다른 부분. 굳이 규정하자면 정신적인, 혹은 규율적인 부분에서 칼에게 문제가 있었다.

   

   지금 칼은 평상시보다 거세게 나를 몰아붙이고 있다.

   

   메스가키 스킬에 의해 머리에 열이 오른 검격에는 옅게나마 마력이 실려 있으니 그 위력은 내 방패를 뒤흔들 정도다.

   

   칼의 검격을 파악하며 패링에 익숙해져서 버티고 있는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미 나자빠졌을 걸?

   

   생각해봐. 평범한 사람이 저 검에 얻어맞으면 어떻게 될지.

   

   지금 칼이 들고 있는 목검은 분명 날이 없는 몽둥이나 마찬가지긴 해. 근데 몽둥이도 잘못 얻어맞으면 뼈가 부러지고 심하면 골로 간다고.

   

   특히 칼이 휘두르는 저 목검은 어지간한 진검보다도 위험하지! 아카데미의 학생 중 하나가 저기에 얻어맞는다면 그대로 사경을 헤매게 될 걸?!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칼이다. 할배가 인정할 정도로 실력 있는 기사인 그가 자기가 휘두르는 검의 무게를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저 검을 휘두르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내가 막아낼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있잖아. 만약에. 칼의 목검이 내게 커다란 상처를 줄지도 모르는 상황이 온다면 저 녀석은 어떤 식으로 반응할까?

   

   재밌을 것 같지 않아?

   

   방패 뒤에 숨어 때를 기다린다.

   

   막아내고. 막아내고. 또 다시 막아내고.

   

   그러던 어느 순간에 기회가 보였다.

   

   저 검격이라면 분명 패링 할 수 있어.

   

   날아드는 검격을 보며 그를 확신한 나는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티잉!

   

   패링이 발동됨에 따라 칼이 휘두르는 검격이 튕겨나며 틈이 생긴다.

   

   처음에는 이 현상에 당혹스러워 하던 칼이지만 나와 대련을 하며 패링에 익숙해진 녀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서 그에 대응했다.

   

   튕겨난 것을 되돌린 다음 휘둘러야 하기에 본래보다 더 거세진 검격.

   

   궤적이 새겨짐에 따라 철벽 스킬이 내게 조언한다.

   

   저 검이 노리는 것은 나의 머리라고.

   

   잘 된 일이었다.

   

   그 공격이 위험하면 위험할수록 칼이 느낄 당혹스러움은 더 커질 테니 말이다.

   

   칼은 지금도 내게 저 검을 막아내리라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 그랬으니까.

   

   단 한 번의 유효타도 허용하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나는 방패를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나를 쓰러트릴 거라면 어디 한 번 제대로 해보라는 듯이.

   

   그 순간 흐려졌던 칼의 눈에 이성이 돌아왔다.

   

   자아. 어떡할래.

   

   이미 검을 되돌리기엔 늦었어.

   

   아무리 너라도 이 상황에선 무리일 걸.

   

   칼의 판단은 빨랐다.

   

   그는 이를 악물고서 자신의 검을 늦추기 위해 노력했다.

   

   공격을 멈추지는 못하더라도 내게 상처를 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너라면 그럴 줄 알았어. 나는 그를 보고 웃음을 지으며 또 다시 한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그러면서 메이스 끝에 신성을 담았다.

   

   단순한 신성이 아닌 신성박투술의 뜨거운 열기를.

   

   그와 동시에 칼이 내지른 검이 내 이마에 닿았다.

   

   충격은 있었지만 그는 그리 크지 못했다.

   

   필사적으로 칼이 자신의 검을 멈추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두른 신성이 어느 정도 충격을 흡수해 준 덕분이기도 했다.

   

   이마를 기점으로 알싸한 통증이 퍼지는 걸 보면 분명 멍은 들겠지만 뭐 어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저 녀석이 검을 멈추느라 용을 쓰는 덕분에 내가 공격을 할 기회가 생겼단 거지.

   

   방금 전 주먹을 내지를 때 활용했던 방식은 메이스를 휘두를 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단순히 팔로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의 힘을 실어 앞으로 휘두르는 거다.

   

   내 움직임을 눈에 담은 칼이지만 이미 검을 휘둘러 대응하기엔 늦은 상태였다.

   

   그 때문에 칼은 무리하게 검을 휘두르는 대신 내 메이스를 받아내는 것을 택했다.

   

   여기까지는 내가 머릿속에 그려 둔 시나리오대로야.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결말을 내는 것 뿐.

   

   자. 칼. 여기서 내 공격을 아무런 피해 없이 막아낸다면 네 승리야.

   

   그게 가능할 리는 없지만!

   

   예전에. 처음 네게 한 방을 먹이겠다고 결심 했을 때의 나는 약했어.

   

   메이스를 제대로 휘두르는 법조차 모르는 건방진 꼬맹이에 불과했지.

   

   지금도 난 여전히 약해. 그렇지만 그 때에 비할 정도는 아니라고.

   

   네가 상상하던 내 공격의 위력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어.

   

   지금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내 공격이 강할 거야.

   

   칼이 방패삼은 목검의 위로 내 메이스가 내리 찍힌다.

   

   히야. 진짜 얘가 괴물이긴 하다니까.

   

   자기 근력만으로 내 공격을 버티려고 한다고?

   

   지금 내게 남아있는 모든 신성을 담은 이 공격을?

   

   상식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는 대처법이 너무도 경악스러워서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진짜 괴물이라니까.

   

   그런데 있잖아. 네가 강하다 하더라도 네가 들고 있는 목검이 그만큼 강한 건 아니잖아.

   

   칼이 마력을 덧씌운 상태라 하더라도 목검은 목검이다.

   

   저가 견딜 수 있는 위력에는 한계가 있다.

   

   한없이 짧으면서 영원처럼 길었던 대치 속에서 목검의 한 가운데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목검이 반으로 갈라져버렸다.

   

   장애물을 박살내버린 메이스는 본래의 목표를 향해서 움직였다.

   

   내가 노린 곳은 칼의 복부였다.

   

   퍼억!

   

   메이스가 적중함에 따라 칼의 몸이 뒤로 밀려나더니 이내 허공으로 떠올랐다.

   

   손에 전해지는 감촉을 느낀 나는 확신했다.

   

   내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메이스에 얻어맞고 칼이 날아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상쾌한 웃음을 지은 다음 그대로 바닥에 널부러졌다.

   

   <모든 걸 다한 일격이었느냐?>

   ‘네에.’

   

   안 그래도 신성박투술을 현실에서 시험해 본다고 절반을 날려먹은 상태였으니까.

   

   제대로 된 일격을 날리려면 모든 걸 쏟아 부어야 했다고요.

   

   덕분에 지금 팔다리가 안 움직여요.

   

   당분간은 이러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뭐어. 그래도 칼한테 한 방 먹였으니까 만족해요.

   

   이제 그 녀석한테 자기 주인한테 얻어맞은 허접 허접 개허접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레파토리가 차고 넘치는 걸 보면 이 순간을 무척이나 고대했었던 모양이에요.

   

   쓰잘데기 없이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키득거리던 나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리고는 정색했다.

   

   신성박투술이나 철벽같은 스킬들도 사용할 때마다 숙련도가 서서히 오르잖아.

   

   그럼 메스가키 스킬도 숙련도가 올라가는 거 아냐?

   

   어떤 식으로 칼을 놀릴지 생각을 하자마자 여러 메스가키 어투가 떠오르는 건 메스가키 스킬의 숙련도가 올랐기 때문?

   

   비상!

   

   초비사아아아앙!

   

   그래. 생각해보면 이상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야.

   

   허접이니 좆밥이니 하는 비속어가 입에 달라붙은 거라거나.

   

   속으로도 허접 소리를 지껄일 때가 많아진다거나.

   

   다른 애들을 도발 할 때 자연스레 어휘가 풍부해 지는 거나.

   

   …나 서서히 메스가키 스킬에 잡아먹히고 있는 건가? 그런 건가?!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은 내가 눈동자를 떨고 있으려니 저 옆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목을 돌릴 힘조차 없어 그게 누군지 눈으로 볼 순 없었지만 난 그 사람의 정체를 알았다.

   

   “아가씨. 대단하셨습니다.”

   

   그는 칼이었다. 녀석은 전력을 다한 내 일격에 얻어맞고도 별 데미지가 없는 듯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알른 가문에서 대련을 할 때처럼 아팠습니다. 어느새 이렇게까지 강해지시다니. 역시 알른 가문의 피를 이으신 분이십니다.”

   

   크게 다치더라도 아카데미에서 치료해 줄거란 믿음을 가지고 내지른 공격이었는데.

   

   뭐? 아팠다고? 겨우 그 정도로 끝이야?!

   

   칼은 나름대로 나를 칭찬하기 위해서 꺼낸 말이겠지만 내겐 그것이 기만처럼 느껴졌다.

   

   만화 속 악당이 호오. 제게 상처를 내다니 정말 대단하시군요.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았거든.

   

   으으. 칼. 두고 보자. 지금은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 때마다 점점 더 버거워 질 거야.

   

   나는 소울 아카데미의 고인물이니까.

   

   언젠가 네 입에서 이 허접견은 도저히 아가씨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라는 소리가 나오도록 만들어 주겠어!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또 속으로 허접이란 소리를 내뱉었음을 깨닫고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

   

   그 후로도 메스가키 스킬의 숙련도에 대해 하루 종일 고민했던 나였지만 그 끝에 나온 결론은 아무것도 없었다.

   

   애당초 내가 메스가키 스킬의 숙련도를 쌓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안 쌓는 게 가능하긴 해?

   

   입을 열 때마다 그 말이 자동으로 메스가키 언어로 바뀌어 버리잖아.

   

   평생 입을 다물고 있을 게 아니라면 내가 살아있는 한 메스가키 스킬의 숙련도가 쌓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설령 강제성이 있지 않더라도 나는 메스가키 스킬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도 하고.

   

   메스가키스럽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걸 제외한다면 이 스킬의 성능은 압도적이니까.

   

   절대적인 도발 성능. 상대에게 반강제적으로 걸리는 분노 디버프. 거기에 더해 적들이 분노함에 따라서 올라가는 능력치.

   

   지금까지 겪었던 것보다 더한 위기가 수도 없이 닥칠 텐데 그 속에서 메스가키 스킬 없이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메스가키 스킬의 숙련도가 쌓이고 내 입에 허접이니 좆밥이니 하는 단어가 달라붙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거지.

   

   이러다 나중에 메스가키 스킬이 사라지더라도 허접 허접 거리게 될까봐 무섭긴 한데. 어쩌겠냐.

   

   조금 있으면 할배에게 속으로 말을 걸 때도 낡아빠진 고물 할배라고 그러는 거 아닌가 몰라.

   

   아니다. 그건 좀 재밌을지도.

   

   나중에 연습모드에서 할배랑 수련할 때 장난삼아 그렇게 불러볼까?

   

   한참 고민을 하다 계속 생각을 해봐야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른 나는 기분 전환이나 할 겸 해서 식당에 왔다.

   

   원래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맛있는 걸 먹어야 하는 법.

   

   우울할 때는 고기와 단 게 최고라고!

   

   <그래서 오늘도 혼자 밥을 먹는 게냐?>

   ‘…할아버지. 그걸 굳이 지적해야 해요?’

   

   혼밥하는 사람한테 왜 혼밥하세요. 라고 물어보는 건 크나 큰 실례라고요.

   

   사교계니 뭐니 하는 것에 대해 엄청나게 잘 아는 분께서 왜 저한테 그러시는 거죠?!

   

   <아니. 굳이 지금도 혼자 먹을 이유가 있나 싶어서 그러지. 처음 이 곳에 왔을 때처럼 주변에 적만 가득한 것도 아니잖으냐.>

   ‘그건 그렇죠.’

   

   처음에 내가 아카데미에서 혼밥을 했었던 이유는 나랑 같이 식사를 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함께 식사를 하고자 한다면 같이 밥을 먹어 줄 사람들이 있다.

   

   비시나 애버리 같은 애들은 내가 명령하면 강제로 따라야 하는 입장이고.

   

   조이나 페이비는 내가 부탁하면 기꺼이 원래 같이 먹던 애들을 내버려 두고 나에게 오겠지.

   

   아서는 약간 애매하고.

   

   프레이? 걔는 애초에 내 말을 안 들어 주니까 올지 안 올지 모르겠네.

   

   얼빠여우는… 내가 싫어. 걔가 밥 먹는 거 쳐다보고 있으면 진짜로 체할 거 같은 걸.

   

   어쨌든 정리하자면 지금 난 혼밥에서 벗어나려면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혼밥을 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다.

   

   ‘그러다 미움사면 어떡해요.’

   

   진짜 몸을 내던져가며 호감도를 올려 놨는데 메스가키 스킬이 쓰잘데기 없는 소리를 해서 호감도를 떨어트리면 어떡하냐고!

   

   <겨우 그런 이유로 저들이 그대를 미워할 리는 없다 생각한다만.>

   ‘그건 저도 알아요.’

   

   그치만 말이에요.

   

   식사 자리에서 허접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하면 저 쪽이 괜찮아도 제가 불편하다고요.

   

   지난 번에 현장 학습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걸 느꼈어요.

   

   쓰잘데기 없이 눈치를 보면서 식사를 할 바에야 혼자 밥을 먹는 편이 나아요!

   

   <싸울 때는 그리 호쾌하면서 인간관계 부분에 있어서는 어찌 이리 서툰 것인지.>

   ‘시끄러워요. 할아버지.’

   

   할배에게 가벼이 대꾸를 한 후에 시킨 메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무렵 저 멀리서 한 사람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관계에 서툰 허접 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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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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