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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4

    <154 – 보호자의 빈자리>

     

    ‘도망쳤나.’

     

    강의실에 들어오기도 전에 떠나버리는 재단대리인의 모습에 브론즈 디 아스트라다 교수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디스트로이어 교수처럼 선수를 쳐버리는 건데.

    발을 빼버릴 줄 몰랐던 탓에 직접 대면하여 자신의 수제자가 될지도 모를 아이를 학대하며 교육시킨 원한을 갚을 기회를 놓쳤다.

     

    “헤헹.”

     

    누구는 이리 속이 타는데 마냥 좋다고 헤실 거리는 오크노디의 모습을 보는 것이 괜히 열 받았다.

     

    “오크노디 1년생. 보호자를 만나서 기분이 몹시 좋은가보군.”

    “넹!”

    “보호자가 먼저 갔다니 아쉽게 되었구나. 오늘은 강의를 참관하는 보호자들에게 여러분이 그간 배운 실력을 뽐내는 실기평가의 날인데.”

     

    그 말에 오크노디 대신 옆에 있던 티토소가가 깜짝 놀랐다.

     

    “에에엣! 그런 중요한 걸 사전에 공지도 안 하면 어떡해요!”

     

    허둥지둥하는 티토소가의 모습에 그녀의 보호자로 참석한 볼링공처럼 둥글둥글하게 생긴 남성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말거라 티토소가. 울 애기의 안목이 나쁘거든 이 애비가 대신 옷도 골라주고 집도 골라주고 남편감도 골라주면 되지 않겠느냐?”

    “파파… 남편감은 제가 고를 거예요!”

    “으허허허. 그러려무나. 아무렴 우리 딸이 다른 건 몰라도 남자 보는 눈은 좋겠지. 어미가 이 애비를 골랐던 것처럼 말이다.”

     

    학부모가 참관했던 참관하지 않았건 모든 학생들이 떫은 표정을 지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저렇게까지 딸바보인 부모가 있나 싶은 얼굴로, 없으면 없는 대로 부담스럽긴 한데 그건 그것대로 부러우니까 작작 했으면 하는 얼굴로.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난어린 시선에 티토소가는 대담하게도 뭐 어쩌라고 하는 얼굴로 코웃음 쳤다.

     

    “흥.”

     

    애초에 안목키우기 강의 학생들과는 지난 번 추가과제 소동으로 사이가 안 좋아진 티토소가.

    모두를 위해 나섰다가 도리어 욕만 먹은 이후로 마음을 굳세게 먹은 티토소가는 더 이상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씩씩한 아이가 되었다.

     

    “울 애기 티토소가야, 만점을 받고 다른 학생들의 성적을 부숴버리렴!”

    “파파. 슬슬 부끄러우니까 응원은 좀 그만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런 씩씩한 티토소가조차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일 정도의 팔불출인 아버지도 참 대단했지만.

    대단한 딸바보에게 잠시 한눈이 팔렸던 브론즈 교수도 정신을 차리고 오늘의 실기시험을 소개했다.

     

    “이번 강의는 물품의 감정가를 가장 정확하게 맞춘 순으로 득점을 얻는 감정실기시험이지. 모든 문제에 모든 학생이 답을 내는 만큼 정확한 안목이 요구되는 시험이니 단단히 각오해둬라.”

     

    팔불출 티토소가 파파만큼은 아니어도 다른 보호자들도 눈을 빛내며 학생들을 격려했다.

     

    “천민들보다 못한 성적을 기록하지 마라. 귀족가문의 자존심을 보여주어라, 찰스 도너츠.”

    “아이의 미술적 안목을 기르기 위해 금화 천매를 들여 집안을 장식한 미술품들의 가치를 헛되이 하지 말거라. 너에 대한 투자는 매몰비용이 아니라고 믿겠다, 마린다.”

     

    세계최고의 교육기관에 학생을 보낸 가문이나 조직답게 보호자들이 보이는 과도할 정도의 열의!

     

    “부저를 누르고 정답, 부저를 누르고 정답, 부저를 누르고 정답…”

    “상위 20%에 못 들면 품위유지비가 없어지고 상위 50%에 못 들면 식비가 없어지고 상위 80%에 못 들면 내년 등록금이 없어지고…”

     

    긴장을 풀기는커녕 과할 정도로 긴장해버린 학생들의 모습에 지젤이 헛웃음을 지었다.

     

    “학생들이 다 불쌍해 보이는군요. 다들 이럴 바에야 보호자가 오지 않는 편이 나았겠습니다. 덕분에 저희가 유리해질지도 모르겠군요. 오크노디. 이사벨.”

     

    지젤이야 가볍게 던진 격려의 한 마디였다.

    물품의 감정가를 정확히 맞추라니.

    학생들에게는 지나치게 어려운 시험이다.

    기껏해야 근사치를 찍어서 맞추는 방향으로 가겠지.

    지젤 본인은 암흑상인의 안목을 너무 티내지 말고 적당히 힘조절을 해가면서 오크노디와 이사벨에게 슬쩍 점수를 나눠줘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10금화 5은화요!”

    “정답이구나.”

    “3금화 15은화!”

    “정답.”

    “그건 값어치가 없어요! 공짜에요!”

    “…오크노디 1년생. 너무 잘 맞추는 건 아닌가?”

     

    오크노디가 세 문제 연속 정답을 맞히기 전까지는.

     

     

    * *

     

     

    이맘때에 이런 문제가 나올 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물품이 시험에 나올지는 나도 모른다.

    매번 교수가 내키는대로 아무거나 집어서 가져오는데 그걸 어떻게 다 알겠어?

    눈에 가격표가 보이는 게 아닌 이상은 절대 모르지.

    근데 고인물에게는 얘기가 다르다.

     

    <브론즈 교수 실기시험 간단기출문제집>

    1. 깨진 항아리Broken Jar(공짜 ~ 10금화)

    *가공요소

    -감지안 : 가짜무늬, 가짜색상에 속지 않음.

    -냄새 : 3종 가공약품냄새를 기억할 것.

    *항아리 무늬패턴

    -촘촘한 십자무늬 : 10금화

    -물결무늬 : 20은화

    -빗살무늬 : 5은화

    -넓은 십자무늬 : 공짜

    2. 사슬갑옷Chainmail(1금화 ~ 5금화)

    *가공요소

    -내구 : 잡철을 써서 부품마모가 빠름.

    -체인 : 가품은 체인이 대칭을 이루지 않음.

    *고리 사이즈

    -5mm : 5금화

    -10mm : 3금화

    -20mm : 2금화

    -30mm : 1금화

    ……

    ……….

     

    품목별로 유의해야 할 요소와 경매가를 결정짓는 핵심키워드를 나누어놓으니 어지간한 범용적인 물품은 가격을 때려잡기 쉽다.

    거기에 경험으로 쌓인 지식으로 얼추 때려잡기를 더하면 정말 희귀한 물품이 아닌 이상에야 가치를 측정하기가 정말 쉬울 수밖에 없는 것!

     

    “오크노디 학생이 세 번, 지젤 학생이 다섯 번 정확히 정답을 맞췄군.”

     

    하지만 안목만으로 정답을 다 맞춰낸 건 아니다.

    바스락.

    손목에 넣어둔 작은 쪽지.

    그 안에는 지난주에 이미 브론즈 교수님의 연구실에 몰래 들어가서 받아적은 실기시험 정답이 적혀있는 것이다.

    교수님이 가르쳐준 도둑질을 적극 활용한 결과물!

     

    ‘흥. 난 떳떳해.’

     

    파파가 있는 재단의 물품을 훔친 교수님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만큼은 사악한 존재.

    도둑질로 참교육을 해줘도 의적질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었다.

    배운 대로 갚아주는 것이다.

     

    “…문제를 조금 바꾸지.”

     

    근데 너무 티내고 맞췄나보다.

    교수님이 문제지에 있던 문제를 바꾸니 고인물의 눈짐작으로 금화 단위까지는 맞춰도 은화 단위까지 다 때려잡는 정밀감정에는 실패했다.

    약간씩 엇나가는 가격에 정확한 정답을 부르지 못하니 틈이 생겼다.

     

    “저런. 초반문제에서의 활약은 요행이었군요. 이번 문제의 정답은 은화 7매에 동화 11매입니다.”

    “정답이네. 지젤 1년생이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하니 오크노디 1년생보다 고득점을 하는군.”

     

    무섭도록 정답을 맞춰대는 지젤 때문에 내 점수는 순식간에 역전 당했다.

     

    “이런. 너무 실력을 발휘했군.”

     

    암흑가에서는 속는 놈이 바보다.

    당연히 속지 않기 위한 기술을 발전시키고 다른 분야의 상인들과 정보를 교환하며 데이터를 늘려나가는 것이 암흑상인의 생리.

    지젤이 실전으로 다져진 안목과 최신위조기술의 감별방법을 적극 대입하니, 대부분의 문제에서 압도적인 정확도로 최고점수를 득점했다.

     

    “부우.”

     

    볼이 빵빵해진 내가 티토소가와 나란히 노려보는 모습에 지젤이 뒤늦게 어색하게 웃으며 정답을 기재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래봤자 남은 물품은 몇 남지 않았고 내가 역전을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브론즈 교수의 감정가 측정 실기시험에서 2등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관찰 경험치+5]

    [속임수 경험치+5]

    [훔치기 경험치+5]

    [감정 경험치+3]

    [안목 경험치+3]

    [2등 위로보너스로 22포인트를 습득합니다.]

     

    “미안합니다, 오크노디. 조금 살살할 걸 그랬네요.”

    “쳇. 됐어요. 지젤이 잘한 건데 어떡해요.”

     

    특기분야가 아니면 경험 빨로 고득점을 하고 순위권에 이름은 올리더라도 1등을 따기는 어렵다.

    나야 전투관련 컨텐츠를 메인으로 삼았으니 치고 박고 싸우는 근접전 강의가 아닌 이상에야 1등을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둘은 신나서 좋겠네. 나는 5등도 겨우 했는데.”

    “이사벨도 잘했어요. 2학년 선배들이 3 4등을 먹었으니 어쩔 수 없죠 머.”

     

    참고로 티토소가는 이번 시험, 당당하게 22등을 기록했다.

    참고로 이 강의, 처음에는 40명이 넘게 들었지만 탈주자가 빗발친 끝에 지금은 25명이 듣는다.

    뒤에서 4등이다.

     

    “장하다 티토소가! 꼴지가 아니라니 이 애비는 너무 대견하구나!”

    “응아악! 그런 칭찬 같지 않은 칭찬은 그만 둬요 제발. 오히려 쪽팔리다고!”

     

    실시간으로 뒤에서 4등 축하 고로시를 당하는 티토소가를 보면 2등이라고 축하인사를 받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나와 리프가 여기에 있었다면 저것보다 더하게 무표정한 얼굴로 플랜카드를 만들고 있지 않았을까?

     

    [경☆축 안목키우기 실기강의 2등 달성자]

    [안목키우기 강의 2인자 아가씨의 성적을 축하드립니다.]

     

    따위의 글자가 적힌 푯말을 들고 등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막 뜨거워진다.

     

    ‘그런 수치를 당할 바에야 없는 편이 낫겠지.’

     

    실망하지 않는다.

    조나가 강의를 참관하지 못했더라도.

    티토소가의 파파처럼 막 막 칭찬을 퍼붓지 않더라도.

    진짜로.

    레알로.

    …아주 쪼끔은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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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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