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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4

       “왜 그러는 것이냐?”

       

       

       최초의 짐승은 먼지 쌓인 신전의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를 따라 간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을 터인데. 어찌하여 이곳에 남아있으려는 것이냐?”

       

       

       나의 물음에 최초의 짐승은 대답하지 않았다.

       

       언어를 말하지 못하는 짐승이기에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이전에는 어렴풋하게나마 자신의 뜻을 전하곤 했었는데, 신앙이 부족해진 탓인지 그런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약간이나마 알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서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 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서 최초의 짐승을 쓰다듬어 주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약간의 신앙을 주입. 어차피 나한테는 있으나 마나 한 정도의 힘이었으니까. 나누어 주는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뭐, 나에게 들어온 신앙을 다른 신에게 전해준다는 일 자체가 굉장히 낭비가 심한 일인지라, 10의 신앙을 넣어주면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2정도였으니.

       

       나처럼 신앙이 의미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하지 않는 일이었다.

       

       

       “크응….”

       

       

       그래도, 어느정도의 응급조치는 되었는지, 최초의 짐승은 조금이나마 기운을 차린 것 같았다.

       

       꼬리를 흔들 기운도 없이 있는 것이 걱정이었는데, 응급조치라도 회복해서 다행이구만.

       

       

       “그래서, 여기서 무얼 하려고 한 것이냐?”

       

       “멍! 멍멍!”

       

       

       강아지처럼 멍멍 짖으며 무언가를 전하려고 하는 최초의 짐승.

       

       하지만 그 뜻은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그저 어렴풋한 가닥만 잡아갈 수 있을 뿐.

       

       

       “음…. 남기고 싶다? 자신을?”

       

       “멍!”

       

       

       자신을 남기고 싶다. 다시 말해 다른 이들에게 기억되고 싶다. 잊혀지고 싶지 않다는 말이렷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수인 일부만이 최초의 짐승을 믿고 있는 상황인데. 이러다가는 금방 잊혀질 것 같은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 나약해진 아이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아르카디아의 인간들이 이 녀석을 믿도록 설득할까? 아니면 소문을 흘려서 신앙을 끌어모아볼까? 그것도 아니라면 왕을 이용해서 수작질을 부려볼까?

       

       음. 옛날에는 이 녀석을 두고 전쟁이 벌어졌을 정도로 중요한 신이었건만, 지금은 이렇게 찬밥 신세라니. 처량하기 그지 없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등 뒤에 붙어있는 닉스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저기, 저 강아지도 신이죠?”

       

       “음. 이래뵈도 제법 오래된 신이란다. 수인들이 신앙했던 최초의 짐승이지. 지금은 다른 신들에게 신앙을 빼앗겨서 이렇게 초라해졌지만.”

       

       

       내 말에 최초의 짐승은 꼬리를 축 늘어트렸다. 내 말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모습이었지만…. 사실이잖느냐. 제대로 말도 할 수 없어서 신탁과 축복을 내릴 수 없는 짐승신과, 원하는대로 신탁과 축복을 내려줄 수 있는 다른 신.

       

       어느쪽이 더욱 인기일지는 안봐도 뻔하지.

       

       

       “음…. 최초의 짐승이라, 그게 이름인가요? 이름 같진 않은데….”

       

       “이름은 아니지. 그냥 이 녀석을 의미하는 말, 칭호와 같은 것일 뿐이니.”

       

       

       그러고보면…. 이 녀석은 아직도 이름이 없었구나. 매번 최초의 짐승. 최초의 짐승. 이렇게 불렀으니까. 그 칭호를 부르는 것으로 충분했으니.

       

       

       “그러면 이름은 무엇인가요?”

       

       “이 녀석은 아직도 이름이 없구나.”

       

       

       최초의 짐승이라 부르면 모두 알아들으니, 이름을 지어줄 필요가 없었지.

       

       

       “그러면…. 지금 이름을 지어줄 순 없나요?”

       

       “지금?”

       

       “네. 제게 이름을 붙여주신 것처럼…. 저 강아지에게도 이름을 지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 강아지라니…. 이래뵈도 한 종족이 모시는 신인데. 지금은 많이 쇠락하긴 했지만.

       

       뭐, 그래도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나쁘지 않…. 아, 그렇네. 이름 지어주고 그 이름을 다른 것으로 남게 한다면 이 녀석이 바라는대로 자신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생각하느냐?”

       

       “멍?”

       

       

       하지만, 최초의 짐승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신이면서 이렇게나 단순할 수가 있나…? 분명 예전에 같이 여행할때는 이정도까지 생각이 없진 않았는데….

       

       이쯤이면 무언가가 이녀석의 지성이 생겨나는걸 방해하는게….

       

       아. 맞다. 신은 신이지만 짐승의 신이었지.

       

       짐승이 고도의 지성을 가질리 없다. 라는 인식이 수인을 비롯한 아인종들에게 퍼져있을테니, 짐승의 신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을 터. 그 영향으로 이 녀석이 이렇게 바보처럼 변해버렸겠구나.

       

       음. 자신을 신앙하는 신도들의 인식에 맞추어 변화하게 되다니, 신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귀찮구만.

       

       뭐, 나도 신이지만! 그래도 나는 본체 자체는 변하지 않고 정신적으로만 약간씩 영향을 받는 것으로 그치고 있으니까.

       

       아무튼.

       

       

       “네가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네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그 이름을 인간들의 역사에 남겨주마. 그렇게 된다면 너의 존재는 인간의 역사가 파묻히지 않는 한 계속해서 남을 수 있을터. 어떻느냐?”

       

       “멍!”

       

       

       최초의 짐승은 별다른 생각 없이 크게 짖었다. 대충 이 녀석은 내가 도와주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겠지.

       

       뭐, 도와주는 것이 맞긴 한데.

       

       

       “그러면 일단 이름부터 짓자꾸나.”

       

       

       음. 이름을 뭐라고 짓지? 어디보자. 짐승. 강아지. 늑대. 펜리르? 아니, 이건 좀 불길해. 케르베로스? 저승에 있어야 할 것 같잖아. 하티나 스콜도 불길하기는 마찬가지고. 가름도 케르베로스랑 마찬가지고. 바르그? 흠…. 애매해.

       

       아니, 늑대에서 벗어나…. 아. 잠깐. 늑대. 하나 더 있구만.

       

       천랑성. 시리우스.

       

       큰개자리의 알파성이자, 겨울의 대삼각형을 이루는 별.

       

       시리우스. 음. 괜찮네. 거기에 도시의 이름에 붙이기에 적당한 이름이라고 생각하니까. 이미 다른 겨울의 대삼각형인 베텔게우스와 프로키온이 큰 도시의 이름으로 남아 있으니.

       

       이 녀석의 이름을 시리우스라고 짓고, 아르카디아의 수도 이름을…. 음, 여기 수도의 이름이 뭐지?

       

       그냥 아르카디아라고 부르고 있어서, 수도 이름은 기억에 남지 않는구만. 흠.

       

       뭐, 이 이름을 기억할 필요는 없겠지.

       

       아무튼, 잠든 왕의 꿈에 깃들어서 가볍게 설득하면 되겠지. 신탁을 내리는 것은 조금 줄이고 싶으니까.

       

       대충 신들의 세계의 문지기로 최초의 짐승을 데려가니, 그 영광된 역할을 맡게 된 짐승의 이름을 시리우스로 짓노라. 그러니 그동안 최초의 짐승이 지켜온 이 도시의 이름을 시리우스로 바꾸거라.

       

       같은 느낌으로 말해주면 되겠지.

       

       솔직히, 그동안 아르카디아의 역사에서 이 녀석의 도움을 받은게 한두번이 아닌걸. 이 녀석의 이름을 따서 수도 이름 정도는 지어도 되지 않을까!

       

       수인들의 신으로서 여러 수인들의 부족을 통합하는 원동력이 되고, 이웃나라에서 신을 탐내 전쟁의 원인이 되고, 그 후 몬스터들을 때려잡는 등의 여러가지 일을 하는 것으로 나라를 부흥시켰으니. 지금의 아르카디아가 있는데 1등 공신이라 할 수 있으리라.

       

       

       “너에게 시리우스라는 이름을 주마. 밤하늘의 늑대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

       

       “멍!”

       

       

       최초의 짐승. 시리우스는 내 말에 무척이나 기뻐하며 꼬리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음. 이렇게 기뻐할 줄 알았다면 진작에 이름을 지어줄 걸 그랬어. 

       

       이렇게 꼬리를 흔들어대는 시리우스를 보고 있자니, 왠지 인간들이 괘씸하게 생각되는구만. 자신들을 위해 열심히 일한 시리우스를 이제와선 다른 신들이 많다고 홀대하다니.

       

       좋아. 이렇게 된 이상 시리우스에게 이런저런 타이틀을 잔뜩 붙여줘서 힘을 실어주자. 인간들에게서 떠난 시리우스가 그만큼 굉장한 녀석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면 인간들도 후회하겠지!

       

       

       그렇게, 수인들의 종족신인 최초의 짐승은 나와 함께 만신전의 입구로 향했다.

       

       

       – – – – – – – – – – – – – – – – – – – –

       

       

       “그렇게 신앙이 쇠락하기 시작한, 최초의 짐승이라 불린 신은 시리우스라는 이름을 받고서 만신전의 수호자가 되었습니다.”

       

       “좋아. 거기까지. 그렇게 받은 시리우스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거라 생각한다.”

       

       

       칠판 앞에 서 있는 교사는 분필로 빠르게 써내려간다.

       

       

       “천년고도. 신들의 영광이 담긴 도시. 재앙이 닥치기 전까지 인류 세계의 중심지였던 곳이며, 재앙과 마왕, 그리고 수많은 전쟁을 겪었음에도, 그 명맥을 이어나가 지금 이렇게 너희들이 공부하는 아카데미가 위치하게 되었으니까.”

       

       

       교사는 칠판에 적었던 시리우스에 대한 호칭들에 밑줄을 치며 말했다.

       

       

       “역사가 너무 깊은 나머지, 지금도 시리우스의 땅을 조금만 파면 유물이 쏟아진다고 말해지니까 말이야. 그런 유물을 노리고 찾아오는 모험자들도 많고.”

       

       “저희가 공부하는 이 아카데미의 지하 깊숙한 곳에도 거대한 유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음. 그 유적의 힘으로 아카데미는 보호받고 있단다. 많은 곳이 훼손되긴 했지만, 악의를 통과시키지 않는다는 결계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만신전의 수호신 시리우스의 옛 신전…. 그것도 수인들의 조상신이던 시절의 신전이 아닐까? 라는 추정이 이루어지고 있지.”

       

       

       교사의 말대로 창밖에 보이는 광경에는 희미한 우윳빛의 결계가 하늘에 드리워져 있었다.

       

       저 결계가 있는 한, 외부의 적들이 아카데미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그 신전의 주인으로 추정되고 있는 만신전의 수호신. 짐승신 시리우스는…. 아직까지도 만신전의 입구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지.”

       

       “허락된 이들 외에는 결코 통과시키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마왕조차 만신전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교사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 후, 칠판에 다른 이름을 적어내려갔다.

       

       

       “관문을 지킨다. 라는 의미에서는…. 명계의 거신 탈로스와 동급이라고 불리우니까 말이지.”

       

       

       검은 바위의 거신. 명계의 수호신. 탈로스. 라는 이름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범한 뼛조각이다.)

    (어째서인지 통제 민주주의를 위하여! 라는 글이 옆에 적혀있다.)

    오늘도, 내일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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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늬들이 날 수호룡이라 부르든 말든 난 잘거야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story of a human reincarnated as the Creator God of a new world, and her observation logs of the burgeoning new world and life. — Dragons, which have existed since before the birth of human civilization, became the guardian dragons of the empire. But whether you guys call me that or not, I’m going to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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