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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4

       그래도 오그라듦을 참고 대련했던 효과는 있었다.

        

       소피아 비앙키는 원래 콧대가 굉장히 높았다.

        

       처음 등장할 때도 전장에서 싸우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등장했었고, 주인공들을 한차례 이긴 다음 ‘힘 조절을 못했다’라느니 하는 대사를 하던 캐릭터였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나한테 지는 것으로 시작했지.

        

       심지어 나와 같은 편이었던 레나도 사망 판정을 받지 않았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시간을 몇 번씩이나 돌려가면서 싸우긴 했지만, 사실 내가 이길 수 있었던 이유가 그거뿐이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얼마 전에 루카스와 마주했다.

        

       그것도 나를 봐주는 것도 아니고, 어째서인지 나한테 엄청나게 화가 나 있는 루카스와. 몸을 보호하는 법복을 입고, 유물을 무기로 들고 있는 루카스와 마주했던 것이다.

        

       그리고 소피아 비앙키의 실력은 루카스 수준은 아니었다.

        

       예전에 어느 야구 선수가 그랬던가. 바로 직전까지 괴물 같은 속도의 직구만 던져대던 투수와 마주하다가 그 투수가 교체되니 그다음 공은 칠만한 것처럼 보였다고.

        

       내가 딱 그런 기분이었다.

        

       일대일로 아무런 능력도 없이 싸운다고 할만하다고 볼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나는 저 정도 되는 성당 기사도 상대할 수 있다.

        

       그나마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그게 내가 가질 수 있었던 긍정적인 효과였다.

        

       하지만, 반대로 부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그건—

        

       “실비아!”

        

       소피아 비앙키가 나한테 엉겨 붙는 수준이 이전보다 훨씬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이전에 달라붙을 때는 몰랐는데, 아마 그때는 나를 평가하고 있기라도 했던 모양이었다.

        

       실력 있는 검사인 소피아 비앙키였고, 그런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나는 아무런 재능도 없는 사람이었으니 ‘중요한 것’ 취급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어제의 그 훈련 이후에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지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뭐, 엉겨 붙는다고 해서 내 몸에 손을 대는 건 아니니 다행이긴 했지만…….

        

       “아, 소피아. 평안하셨나요.”

        

       “네, 물론입니다!”

        

       얘도 분위기가 원작이랑 아주 다른데.

        

       클레어도 분위기가 달라지긴 했지만, 얘는 그보다 더 이상했다. 클레어는 그나마 주변 환경 자체가 완전히 반대되는 곳에서 성장할 수 있었으니 그렇다 쳐도, 얘는…… 음.

        

       환경이 달라지긴 했지만, 정체성이 바뀔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아마 연기겠지?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샤를로트는 소피아 비앙키한테 친근함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동향 사람이니까. 신분의 차이는 꽤 크지만.

        

       “네, 어제 굉장한 일이 있었거든요.”

        

       “굉장한 일?”

        

       샤를로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어보자, 소피아 비앙키의 얼굴이 내 쪽으로 돌아왔다. 활짝 웃고 있는 그 모습을 보니 뭔가 꺼림직했다.

        

       “어제 실비아 님과 비앙키 영애가 대련했습니다.”

        

       소피아 비앙키가 미처 말하기 전에 레나가 먼저 끼어들어 말했다.

        

       “맞아요.”

        

       아주 잠깐, 한순간이라서 사람 대부분은 제대로 보지 못했겠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소피아 비앙키의 얼굴에 짜증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오히려 그 모습을 보며 안도했다.

        

       그러니까, 캐릭터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건 아니란 말이지.

        

       “어제 실비아와 대련을 했어요.”

        

       “그렇군요.”

        

       샤를로트는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상상이 간다는 표정이었다.

        

       “검사로서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실비아와 대련 이후에는 생각이 달라지는 법이니까요.”

        

       …….

        

       음, 그렇게 너무 띄워주는 것도 조금 그런데.

        

       “…….”

        

       말없이 이야기를 듣다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 앨리스가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이 중에서 내 표정을 거의 온전히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앨리스 한 명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마 내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제대로 읽어냈기에 보인 반응이리라.

        

       나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

        

       “비앙키 영애.”

        

       방과 후.

        

       다들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가방을 챙기고 있을 때, 나는 소피아 비앙키를 불렀다.

        

       “네!”

        

       소피아 비앙키가 가방을 챙기다 말고 내 쪽을 향해 활짝 웃어 보이는 바람에 시선이 이쪽으로 확 몰렸다. 내 주변에 앉아있는 사람들 말고도 교실 전체가.

        

       ……차라리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 말을 걸 걸 그랬나.

        

       그래도 주변의 반응을 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소피아 비앙키는 원작에선 학교에서 만나는 캐릭터는 아니었으니, 이 반응 자체는 꽤 신선한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이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미지가 어떻게 잡혀가고 있는지 알고 있으면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이렇게 말하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내 주변에 너무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 많아서 사실 외모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 자신이 없어졌다. 다 잘생기고 예쁜데 새로 만난 어떤 사람의 외모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가능할까?

        

       활짝 웃는 소피아 비앙키를 멍하니 올려다보는 남자애들이 많은 것으로 봤을 때, 그녀의 외모는 객관적으로 보아도 아주 훌륭한 편에 든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잠깐 따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내 질문에 주변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다른 사람한테 단둘이 이야기하자고 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일 거다.

        

       그러고 보니, 나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보는 이미지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이미지가 완전히 다를 텐데.

        

       뭐,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물론이에요!”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소피아 비앙키는 그렇게 대답했다.

        

       앨리스의 시선이 강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런 앨리스한테 시선을 잠깐 보낸 뒤, 다시 소피아 비앙키를 보았다.

        

       “그러면, 오후에 잠깐 저의 방을 들러주셨으면 합니다. 어제의…… 대련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소피아 비앙키는 끝까지 밝게 웃는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

        

       아카데미에서 가장 속 편하게 대화를 나눌 곳은 당연히 기숙사의 내 방이었다. 귀족들이 묵는 방답게도 벽도 문도 두꺼워 소리가 거의 새어나가지 않는다. 거기에 쌀쌀한 바깥 기온과 다르게 이 안은 따뜻하다. 이야기가 길어지더라도 중간에 굳이 자리를 바꿀 필요가 없다.

        

       내 방으로 들어오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니, 자기 방과 다른 점을 찾기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소피아 비앙키가 계속 그렇게 두리번거리도록 둔 채 조용히 차를 준비했다.

        

       “그럼……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앉으십시오.”

        

       “네.”

        

       소피아 비앙키는 조금의 긴장감도 없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자수정 같은 눈동자가 똑바로 나를 향하고 있으니 조금 불편했다. 아무리 서양에서 10년을 살았어도 이…… 특유의 아이컨택에는 아직 완벽하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마음을 똑바로 먹자.

        

       이 자리에서 내가 불편해야 할 이유는 없다. 사실, 진짜 불편해야 할 사람은 첩자로 들어와 있는 소피아 비앙키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자기 임무를 착실하게 수행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겠지.

        

       “소피아 비앙키.”

        

       “네.”

        

       “법국 출신이십니까?”

        

       내가 굳이 돌려 말하지도 않고 돌직구를 날리자, 그녀가 순간 입을 멍하니 벌렸다.

        

       “네?”

        

       “법국 출신이냐고 물었습니다.”

        

       벙찐 표정의 소피아 비앙키를 앞에 두고, 나는 찻잔에 차를 따라서 밀어주었다.

        

       사실 그런 검술을 쓰고도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대놓고 여신이니 뭐니 하는 말을 했는데.

        

       하긴, 제국에도 입버릇처럼 여신이니 뭐니 하는 사람은 있을지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 믿는 종교는 아니었지만 분명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종교였으니까. 그만큼 신자도 많을 것이고.

        

       사실을 알고 있는 내가 봤으니 알아차렸을 뿐이고, 다른 사람이라면 ‘진짜 법국의 기사가 저렇게 대놓고 있을 리가 없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대답해주지 않으실 겁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소피아 비앙키를 보며 대답을 채근하자, 그녀는 눈을 한 번 깜빡이더니 말했다.

        

       “제……가, 제 국적을 속였다는 뜻인가요?”

        

       “속이지는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신분 자체가 진짜라면 속였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진짜일 수는 있지만.”

        

       적어도 이번을 위해서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원작에서도 소피아 ‘비앙키’라는 이름이었고, 그 이름은 최신작까지도 계속 바뀌지 않고 나왔으니까.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나는 소피아 비앙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소피아 비앙키는 당황하면서도 내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표정이 더 잘 보였다.

        

       일부러 저러는 걸까? 당황한 표정을 더 정확하게 보여주면 상대가 속을 거라고 생각해서?

        

       글쎄, 그건 이제부터 알아내 보면 되는 거겠지.

        

       “혹시, 법국에서 오신 성당 기사이십니까?”

        

       “…….”

        

       결국, 소피아 비앙키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어떻게 아셨냐고 물어본다면 대답해주실 건가요?”

        

       “글쎄요.”

        

       나는 소피아 비앙키를 보며 말했다.

        

       “그쪽이 보여주는 패가 유용하다면 이쪽의 패를 보여주지 않을 이유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후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익명으로 후원해주셨기에 독자 닉네임 기능으로 인사드립니다!

    언제나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쓰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쓰고 싶다는 동기인데, 제게 있어서 글을 쓰는 가장 큰 동기는 바로 독자 여러분입니다.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재미있어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저는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매일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글을 쓰며 느끼는 보람과 즐거움이 여러분에게도 느껴졌으면 좋겠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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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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