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54

       그녀의 고백에 원더스타인은 그 자리에 굳은 듯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무엇을 알고 있었다는 것일까.

         

       그녀가 잃은 기억에 대해서?

       아니면, 그녀가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가 막 입을 떼려는 순간,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알고 있었다고. 내 기억이 잘못되었다는 거…….”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하긴.

       기억 자체가 온전했던 거라면 지금까지 자신에게 살갑게 굴던 그녀의 태도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애초에 기억을 잃었던 척 연기를 할 이유가 없었다.

         

       “언제부터였나요?”

       “그건……아.”

         

       그녀는 갑자기 몸을 으슬으슬 떨기 시작했다.

         

       사람은 너무 급격하게 흥분했다가 가라앉으면, 마치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몸이 경련을 일으키곤 했다.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이 빠른 속도로 전환되고, 축소되었던 모공과 모세혈관이 확장되면서 체온이 확 식는 것이다.

         

       8월 말이지만 이곳은 대륙의 북쪽에 있는 도시였다.

       샤를로티아의 늦가을과 비슷한 날씨였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망토로 그녀의 몸을 감싸주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접근에 엘라는 반사적으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하지만 그와 몸이 맞닿자 경계심은 금방 허물어졌다.

       망토 안에 깃든 온기가 그녀의 몸을 진정시켰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기대었다.

         

       따뜻했다.

       그의 평온한 심장 고동 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

         

       신기해.

       이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놀라는 게 없나 봐.

       항상 일정한 맥박이야.

         

       그녀는 코를 작게 킁킁거렸다.

       그의 셔츠에 밴 살 냄새가 그녀의 후각을 자극했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서 좋아.

       어떤 경우에도 든든하게 버티고 서 있어 주니까.

       언제든 기댈 수 있어.

         

       “괜찮으신가요?”

       “응…….”

         

       하지만 조금 기분 나쁘네.

       나랑 붙어 있는 게 조금도 두근거리지 않는 걸까?

         

       두 사람의 키 차이 때문에 이렇게 딱 붙어서면 그녀의 머리는 그의 턱 바로 아래에 닿았다.

         

       원더스타인은 자신의 목젖을 간질이는 머리칼을 느꼈다.

         

       그녀가 고개를 까딱였다.

       그녀는 모자가 닿는 부분에 자꾸 뒤통수를 치대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머리카락 사이가 가려운 것이다.

         

       그녀는 저렇게 모자 쓴 부위에 몇 번 머리를 비비고 나서는, 결국 참지 못하고 뒤통수를 긁곤 했다.

         

       지난 몇 주간 그녀와 계속 붙어 다니면서 그녀의 자잘한 버릇 몇 가지를 간파하게 되었다.

         

       깊은 생각에 잠길 때면 주머니에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는 찍순이의 턱을 간질인다든지, 상황이 지루하다고 느끼면 책상에 머리는 박고는 구돌이가 구르륵거리는 것과 비슷한 소리를 중얼거린다든지.

         

       이 행동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그녀가 조금 있으면 긁게 될 부위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는 그녀의 모자를 살짝 들고는 뒤통수를 쓰다듬어주었다.

         

       “우움……무, 무슨 짓이야…….”

         

       그녀는 어깨를 흔들어 그의 손길을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이 몸에 앉은 무언가를 떨치려는 행동이었다면, 모기 한 마리 간신히 쫓아낼 수나 있을까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그녀의 어깨에 앉은 찍순이가 하품을 쩍 할 정도로 느릿느릿한 움직임이었다.

         

       “후후, 이제 좀 괜찮으신가요?”

       “으응……. 조, 좋아. 그런데 어떻게 안 거야?”

       “엘라 양은 뭐든 티가 다 난답니다.”

       “흥……뭐래. 내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으면서.”

         

       그는 그녀가 어느 부위를 긁어야 시원해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그의 손톱 끝은 그녀의 두피에서 땀이 마른 부분을 찾아내 할퀴고 지나갔다.

         

       “으음…….”

         

       엘라는 간신히 진정시킨 몸을 다시 떨었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머리를 긁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 줄 처음 알았다.

         

       원더스타인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행동에는 악의가 없었다.

         

       가려운 부위를 긁어주는 일은 그가 현실에서 다른 사람과 나누었던 가장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이었다.

         

       그처럼 혼자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은 간단한 가려움조차 스스로 해결하기 힘들었다.

       등이나 엉덩이같이 비비기 쉬운 부분은 어떻게 벽이나 바닥에 대고 긁으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부위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옆에는 늘 그의 피부를 살펴주는 사람이 있었다.

       어릴 때는 보육원의 친구들이 그 역할을 했고, 보육원을 나와서는 복지재단에서 파견된 도우미가 그 일을 해주었다.

         

       그가 다른 사람과 살을 마주하는 데 거리낌이 없이 행동하곤 했던 것에는 그러한 경험의 영향이 컸다.

       그는 누군가가 안아주고 씻겨주고 먹여주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가려워하는 부위를 알아차리고 긁어주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일상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엘라에게서 있어서 그것은 조금 낯선 자극이었다.

       그녀는 그의 손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왜 그녀가 길렀던 동물들이 털이나 깃털 아래를 긁어주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지 알 것 같았다.

         

       원더스타인은 탁 하고 손뼉을 치고 그녀에게 두 손을 펼쳐 보이며 웃었다.

         

       “이제 조금 진정되었나요?”

       “뭐, 그, 그렇지……. 더, 덕분에…….”

         

       그녀는 차마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모자를 고쳐 썼다.

         

       “후후, 그럼 이제 말해주세요.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요?”

         

       그의 말에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부터긴. 처음부터지…….”

         

       엘라는 잠시 호흡을 고르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신을 낫에 맞고 기절했던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둘러싼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신을 대하는 단원들의 태도가 어딘가 조심스러웠다.

         

       그녀는 곧 그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깨달았다.

         

       자신은 사신의 낫에 맞았다.

       그들은 혹시나 그녀의 기억 어딘가에 문제가 생겼는지 염려하고 있었다.

         

       그녀는 단원들에게서 반전의 힘을 사용했던 마도사가 그녀를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덕분인가? 나 멀쩡해. 모두 기억하고 있는걸?”

         

       실제로 그녀는 단원들과 하나하나 마주하면서 그들과 있었던 추억을 얘기하며 자신의 기억에 손상이 없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원더스타인과 마주하고 나서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와 포옹하고 난 뒤 그녀는 단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들은 경악하고 있었다.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뭐지?

       내가 뭘 잘못한 건가?

         

       단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쉬쉬했다.

       자신에게는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라 얘기했지만, 그 표정들은 절대 아무 일 없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나중에 단원들 연기 교육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곧바로 잠든 척을 했다.

       그리고 찍순이를 내보내어 단원들이 하는 대화를 엿들었다.

         

       -세상에. 방금 내가 뭘 본 거야.

       -단장님 보고 좋아한다고?

       -으아아, 우리가 아는 엘라가 아니야!

         

       그들이 놀라는 것은 원더스타인에 대한 엘라의 호감 그 자체였다.

         

       그녀는 그들이 그것을 왜 그렇게 이상하게 여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곧이어 마야가 설명하는 것을 듣고 그녀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 반전의 힘을 사용하는 마도사 덕분에 그녀는 행복한 기억을 뺏긴 게 아니었다.

       불행한 기억을 잃은 것이었다.

       그것도 원더스타인과 관련된 것을.

         

       그래서 원래 그를 미워하던 자신이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엘라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내가 원래 원더스타인을 싫어했다고?

         

       그녀는 그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하나하나 기억을 되새겨 봤다.

       아무리 돌아봐도 그와 관련된 좋은 기억만 떠올랐다.

       그가 자신에게 했다는 나쁜 짓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첫 번째 관객이었다.

       자신은 그의 창업 파트너였다.

       그는 고향 마을을 구&해#$주%^다^&*

       그는 자신의 목숨도 여러 번 구해주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지원해주었다.

       그는 능력 있는 서커스단 단장이었다.

       그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친절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와 관련된 불행한 기억이란 뭘까.

       왜 내가 그걸 떠올리면 그를 미워하게 된다는 걸까?

         

       그녀는 하루 꼬박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척하면서 잃은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기억을 점검할수록 그에 대한 좋은 감정만 점점 깊어져 갔다.

         

       당신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이게 가짜 감정이라고?

         

       그렇게 하루 내내 고민하던 그녀는 마침내 다음과 같은 생각에 도달했다.

         

       꼭 그 기억을 떠올려야 할까?

         

       그녀는 그동안 계속 찍순이를 이용해 단원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들도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정확히 모르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을 봐서 베르그송 자작의 저택 이후로 자신이 겪은 사건들은 대부분 사실인 것 같았다.

       단원들은 모르는 이전의 어떤 사건 때문에 그와 자신과의 사이가 틀어진 것이다.

         

       그게 뭘까?

         

       그는 좋은 사람이잖아.

       물론 결점은 있지.

       그 때문에 뭔가 크게 일을 망쳤을지도 몰라.

       그래서 내가 그에게 실망한 걸 수도.

         

       그녀는 여기서 마을 처녀들을 건드리고 다니는 원더스타인을 떠올리다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건 아니지. 씨.

       근데 확실히 나쁜 감정이 들긴 하네.

         

       그녀는 원더스타인이 단원들에게 그녀의 기억에 대한 함구령을 내리는 것도 들었다.

       그의 말에는 자신에 대한 염려가 잔뜩 깃들어 있었다.

         

       그의 따뜻한 진심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이걸로 된 거야.

       과거 따위 필요 없어.

       지금이 좋은걸.

         

       그녀는 부정하기로 했다.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을.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를 했다.

       단원들이 자신을 속이는 데 맞춰주었다.

         

       그걸로 행복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었으니까.

         

       그녀가 가스통을 싫어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그가 원더스타인을 다른 길로 유혹한다는 거?

         

       우스운 시도일 뿐이었다.

       서커스 그랑프리를 향한 그의 열정은 무엇도 꺾어놓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기억을 치료하는 게 싫었을 뿐이었다.

         

       혹시나 그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되살아날까 봐.

       혹시나 그가 정말로 자신에게 나쁜 짓을 저질렀을까 봐.

       혹시나 그가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다른 사람일까 봐.

         

       그녀는 그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그녀는 치료를 최대한 늦추고 피하려고 애썼다.

       조금이라도 행복한 시간이 오래 가도록.

         

       그러면서 그녀는 원더스타인과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혹시나 기억이 돌아와도.

       혹시나 나쁜 감정이 생겨도.

       그를 덮어버릴 만큼 좋은 추억과 감정을 많이 쌓도록.

         

       그녀는 그렇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원더스타인은 안타까움에 속이 끓어 말했다.

         

       “어째서죠? 제가 정말로 당신에게 못된 짓을 한 거면요?”

         

       그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어.”

       “왜죠?”

       “당신을 믿으니까.”

         

       그녀의 말에 원더스타인은 미소지었다.

       속마음과 정반대로.

         

       엘라는 그의 웃음을 보고 함께 웃었다.

       그녀는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내가 잃은 기억이 뭔지 지금도 몰라.”

         

       그 목소리는 아까보다 힘이 차 있었다.

         

       “그게 돌아오면 지금 내 마음은 사라질까? 이전의 나처럼 당신을 싫어하고 원망하게 될까?”

         

       그녀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지금의 내 마음에 솔직해지고 싶어.”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확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해. 원더스타인. 진심으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검성 님, 2코인 후원! 꾸준한 관심 감사합니다!

    -도로시 님, 10코인 후원! 계속되는 후원에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더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 외에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도공학자 님, 1코인 후원!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덕분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