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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4

       

       

       “왜, 왜 그런 거야?”

       

       

       왜 그랬냐며 묻는 소리를 무시한 채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내 주위에는 익숙해진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나를 포위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아니, 포위하듯 이라는 말은 옳지 않겠지.

       

       그들은 정말 나를 포위하고 있는 거니까.

       

       딱히 관심은 없었지만 삼 년 내내 봐서 얼굴은 기억하고 있는 반 친구들.

       

       아멜리아와 도로시. 그리고···이름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최근에 생긴 히로인들.

       

       학교 선생님들과 언젠가 보았던 최전방의 영웅들까지.

       

       저번에 보았던 협회의 정예 병력도 왔구나. 꼬리를 자르러 온 건가?

       

       최종결전이랍시고 많이도 모아온 모양이었다.

       

       ···역시 실패했나.

       

       다들 전체적으로 아주 피곤해 보이고, 자잘한 상처들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지는 못한 모습이었다.

       

       히로인들이랑 시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저런 엑스트라들을 처치하지 못하다니.

       

       짜증이 치솟아 작게 혀를 찼다.

       

       

       “여기까지 왔으니 당연하겠지만 하나만 물어볼게요. 다른 아라크네 일원들은 어떻게 된 거죠? 분명 그쪽으로 갔을 텐데.”

       

       “···.”

       

       “뭐,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답은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그 침묵만으로도 충분히 대답은 되었다.

       

       어딘가에서 싸늘한 시체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겠지.

       

       

       “역시, 살려두는 게 아니었어.”

       

       

       짜증이 치솟아 눈을 찌푸렸다.

       

       아직 미숙했을 무렵의 나.

       

       그때의 나는 아직 현실감을 버리지 못해 마치 사람처럼 움직이고 행동하는 녀석들을 안타깝게 여겨 살려두었다.

       

       그리고 살려둔 녀석들은 갈 곳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동료로 받아들였었지.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서.

       

       ···하지만 그 생각은 잘못되었던 모양이다.

       

       도움은 무슨. 엑스트라도 처치하지 못하는 녀석들에게 뭘 바라겠어?

       

       

       “그래도 네 동료잖아!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동료? 그것들이?”

       

       

       하.

       

       아멜리아가 나를 향해 노려보며 하는 말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동료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저깟 엑스트라들도 치우지 못한 놈들이 고작 동료일 리가 없잖아요? 임무를 실패한 시점에서, 녀석들은 동료가 아니었어요.”

       

       “···거짓말.”

       

       “거짓말이라니?”

       

       “너는, 처음부터 그 녀석들을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서.”

       

       “그런 심한 말씀을···. 이래 보여도 몇 년간 생사를 함께해온 동료인데···.”

       

       

       슬픈 듯 눈물을 흘려보았지만, 아무도 나를 향해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주지 않았다.

       

       다들 시우의 말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농담도 안 통하는 녀석들 같으니.

       

       

       “정말 네가 그들을 동료라고 생각했으면, 고작 셋으로 우리들 모두를 상대하라고 내보내지는 않았을 테니까.”

       

       “···아하하. 뭐, 그건 그렇죠.”

       

       

       딱히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아서 그냥 수긍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잖아?

       

       고작해야 인형 따위를 동료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나.

       

       조금 애착이 가는 인형들이기는 했지만···.

       

       결국은 그들 또한 인간이 아닌 인형에 불과한 존재들.

       

       조금 아쉽기는 해도, 뭐.

       

       이별에 큰 의미를 둘 정도는 아니니까.

       

       

       “···아르테, 왜 그렇게 변한 거야?”

       

       “흠···. 사람들도 다 모인 것 같고, 슬슬 시작해 볼까요.”

       

       “내 말에 대답해! 도대체 왜 그렇게 변해버린 거야?!”

       

       

       악에 받친 듯, 시우가 나를 향해 다시 한번 소리쳤다.

       

       ···원래는 무시하려고 했는데.

       

       정말 이것만큼은 듣고 싶다는 듯, 대답하지 않으면 계속 물어볼 기세라 어쩔 수 없이 되물었다.

       

       

       “변하다뇨?”

       

       

       뭐, 좋아.

       

       최종 보스와 주인공 일행이 만나자마자 바로 싸움에 들어가면 재미없는 법.

       

       이렇게···주인공과의 대화 시간을 가지는 것도 필요한 일이겠지.

       

       특히나 최종 보스가 원래는 아군이었다면 더더욱.

       

       적이 된 아군과의 안타깝고 슬픈 대화 내용은 언제나 관객들을 몰입하게 해주니까.

       

       

       “저는 변한적 따위는 단 한 번도 없는데요.”

       

       “그럴 리가 없어. 그렇다면 우리가 아카데미에서 보냈던 시간은 다 뭐야?”

       

       “···아, 그거.”

       

       “아카데미에서 같이 사건도 해결하고···! 아멜리아의 집에 놀러 가기도 하고···! 지금까지 있었던 추억들은, 전부 뭐냐고!”

       

       “음, 즐거웠었죠.”

       

       

       그래, 즐거웠다.

       

       시우와 그 여주인공들과 함께하는 생활은 정말 즐거웠어.

       

       즐겁지 않을 리가 있을까?

       

       관객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준비된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

       

       시우와 히로인들을 향한 간당간당한 러브라인들.

       

       그 모든 걸 조율하느라 조금 힘들기는 했다.

       

       하지만 그만큼, 나와 작가님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가는 세상을 나 또한 진심으로 즐겼다.

       

       

       “아르테, 제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예전의 너로 돌아···.”

       

       “전부 제가 꾸민 일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로 기뻐하는 당신들의 얼굴이 어찌나 웃겼는데요.”

       

       “뭐?”

       

       “···설마, 아직도 눈치채지 못했던 건가요? 아하하하하하하하! 이거 진짜 웃기는데요!”

       

       

       진심으로 놀랐다.

       

       적어도 의심 정도는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설마 의심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니.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할 리가 없었으려나?

       

       

       “설마 몰랐나요? 아카데미에 최근 삼 년간 갑자기 왜 그렇게 많은 일이 터졌는지!”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피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생각도 하지 않으며 폭소했다.

       

       그들과 나 사이에 도대체 무슨 간극이 있었던 걸까.

       

       나는 분명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설마 전혀 모르고 이곳까지 왔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너, 설마···.”

       

       “네, 그 설마랍니다! 당신들이 지금까지 겪어온 사건들···. 그거, 다 제가 흑막이었어요!”

       

       “그럴, 그럴 리가···!”

       

       “아하, 아하하하하···. 설마 아멜리아의 아버지가 해외의 마피아에게 죽었다는 말 따위를 진짜 믿었을 줄이야. 대충 내뱉은 말이었는데, 충격이에요.”

       

       “···뭐?”

       

       “앗차. 이건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

       

       

       잘못 말했다는 듯 입가를 가리고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분노 섞인 시선들뿐이었다.

       

       음, 그야 그런가.

       

       고인 능욕을 한 것도 모자라서, 사실상 내가 그 사람을 죽였다는 걸 시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엣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죠···. 그래요. 제가 죽였습니다.”

       

       “거, 거짓말하지 마. 그럼···우리 아빠가 죽었을 때, 그 눈물은 뭐였는데···!”

       

       “네? 아, 그 눈물이요···?”

       

       

       아멜리아의 외침에 나는 웃음을 멈추고 감정을 잡아보았다.

       

       ···음, 이 정도인가?

       

       

       “아멜리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아버지가 하신 일을 자랑스러워하는걸, 아버지께서도 바라실 거예요.”

       

       “···너!”

       

       “아하하. 제 연기도 꽤 좋았나 보네요.”

       

       

       인형들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고인 능욕을 당한 기분 아닐까?

       

       뭐, 고인 능욕을 한 건 사실이지만!

       

       ···아니, 애초에 사람이 아니니까 고인 능욕이라는 말은 옳지 않을지도 모르겠네.

       

       

       “···아르테.”

       

       “어이쿠···. 드디어 할 마음이 생기신 모양이에요!”

       

       

       시우의 표정도 잔뜩 굳어버렸다.

       

       분명 아직도 망설이는 점은 있어 보였지만, 그런데도 나를 막아서야 한다는 마음이 더 강해진 모양이었다.

       

       좋아. 그렇게 나와야 주인공이지.

       

       ···조금만 더 자극해 볼까.

       

       

       “즐거웠어요. 당신들과의 친구 놀이는.”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적의.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대한 적을 타도해야 한다는 명분은 있었지만 그걸 실감하지 못했던 거라면···.

       

       지금은 눈앞에서 본 행동 탓에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이 여자는 위험하다고.

       

       

       “음, 좋아요. 좋아. 다들 의욕이 생긴 모양이네요.”

       

       

       나야 좋지만.

       

       즐거운 최종장을 연출해야 하는데, 관객들의 의욕이 없어서야 쓰나.

       

       엑스트라에 불과한 녀석들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분위기를 띄워주는 데에는 쓸모가 있으니까.

       

       주연, 조연, 엑스트라 모두 가리지 않고 내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왔다.

       

       그제야 나는 실감할 수 있었다. 드디어 최종장이라는 사실을.

       

       이 세계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하, 아하하하하하하하···.”

       

       “···에에잇!”

       

       “자, 잠깐! 섣불리 움직이지···.”

       

       

       촤악.

       

       엑스트라 한 명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내게 달려들었다.

       

       시우가 분명 내 능력에 대해 말해 줬을 텐데, 멍청하기도 하지.

       

       그러니까 네가 엑스트라인 거야.

       

       시우가 뒤늦게 제지하려고 했지만, 당연히 제지할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보시는 대로.

       

       스스로 파리지옥에 걸려든 벌레처럼.

       

       아주 간단하게, 함정에 빠져서.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로 꼴사납게 죽어버렸다.

       

       그 육체와 얼굴이 분리된 채로.

       

       

       “자아, 최종장을 시작해볼까요···.”

       

       

       나는 보이지 않는 관객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마치 고풍스러운 인형극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인사하듯이.

       

       

       “부디, 재미있게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큭, 젠장. 다들 정신 차려!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옷에서 한번 빼낸 실을 재활용 할 수 없다는 페널티 따위는 극복한 지 오래다.

       

       그러니, 질리도록 즐길 수 있겠지.

       

       분명 작가님도 기뻐할 것이 분명했다.

       

       

       “빌런 명, 마리오네트 사살 작전을 개시한다! 다들 보이지 않는 실을 경계하도록!”

       

       

       피로 얼룩진 축제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람들이 인간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시우에게 구원받지 못한 아르테입니다.

    작가님의 각본대로 삼 년간 열심히 세상을 조율해오다가 마지막에 배신했다, 는 설정이네요.

    ***

    야스씬에 삽화가 추가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보셨던, 그 씬 있잖아요.

    들박씬.

    그걸 신청해주신 분께서 정말 감사하게도 팬아트를 외주로 전환해주셨기에, 삽화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네요.

    니켄 님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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