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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4

       “사라졌다…?”

         

       소식을 들은 라자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도대체 어떻게? 이곳은 황궁이다. 곳곳에 기사들이 배치되어있고, 수사단까지 움직이는 상황인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딘가에 숨은 게 아닌가? 조사는 확실히 해봤나?”

         

       라자의 물음에 난처한 듯 뒷머리를 긁적이는 수사관.

         

       “궁정 마법사들의 도움까지 받은 수사단과 기사단이 샅샅이 뒤졌지만, 흔적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다. 감시를 맡은 기사들도 정신과 기억을 잃었고요.”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라자는 고개를 휘젓곤 레제프를 바라봤다.

         

       “알고 계신 거 있습니까?”

       “…초월 마법사다.”

       “예?”

       “초월 마법사가 도와줬을 거야.”

         

       예상치 못한 인물에 눈썹이 좁혀지는 라자.

         

       “그게 무슨 소립니까?”

       “소미레는 늘 몰래 그 할멈을 찾아갔다.”

         

       레제프는 “이유는 모르겠지만.”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모르긴 뭘 몰라요? 딱 봐도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과 관계가 있는데.”

         

       저런 것도 형님이라고, 황태자라고 존중했던 라자는 과거의 자신이 멍청해보였다.

         

       “아무튼,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고 얌전히 계십쇼. 일은 다 정리하고 올 테니까.”

         

       라자가 등을 보이며 궁내감을 나가려던 찰나.

         

       “소미레는, 소미레는 어떻게 할 거지…?”

         

       레제프가 벌떡 일어나 철창을 잡고 물었다. 눈빛이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다.

         

       “어떡하긴 뭘 어떡합니까? 사건의 진상이 벌을 받지 않고 도망쳤는데 사살해야죠. 아무리 성역화된 성녀라도 인간의 국가 위에 설 수 없는 법입니다.”

         

       라자도 소미레와 연이 없는 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세월이 있어 절친인 수준. 그러나 레제프와 다르게 칼 같은 태도였다.

         

       “형님. 기나긴 정이 있어도, 연모하는 감정이 있다고 한들, 무슨 일이 있어도 국가를 존속해야 하는 황족은 그런 걸 잘라낼 줄 알아야 합니다.”

         

       철창에 고개를 들이밀며 레제프와 시선을 마주하는 라자.

         

       “고귀한 혈통인 황족으로 태어난 이상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일이죠.”

         

       레제프의 눈동자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제국을 다스려야 하는 군주로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궁내감’에서 잘 생각해보시길.”

         

       라자는 그리 말하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떠나갔다. 레제프는 감옥에 혼자 남아,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살이라니.”

         

       이내 눈을 질끈 감은 채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이게 현실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소미레는 대체 왜 그런 걸까? 이유가 무엇일까? 정말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일까?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레제프는 혼란이 왔다.

         

       “아…….”

         

       머리를 감쌌던 손에 머리카락이 한 뭉텅이로 뽑혀 나왔다. 저번처럼 쥐어뜯지도 않았는데…….

         

       탈모였다.

         

         

       * * *

         

         

       찰팍. 찰팍.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구정물이 튀며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에 따라 소미레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꼭 이렇게 숨어서 가야 해? 할머니 공간 이동 마법은 사용할 수 있잖아. 이런 하수구로 이동할 필요는 없는 거 같은데…….”

         

       힐끔 눈치를 보며 묻는 소미레. 라드리엔에게 모든 운명을 맡긴 상태인지라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하아…….”

         

       라드리엔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소미레를 바라봤다.

         

       “이미 황실 수사단은 너랑 내가 연관되어 있다는 걸 눈치챘을겨. 궁내감에서 너를 빼 올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는데 동시에 사라졌으니께.”

         

       소미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게 공간 마법을 쓰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바로 떠나면 된 거 아니야?”

       “마력의 흔적이 남잖여. 궁정 마법사단이 흐름을 따라 바로 추적해올 거여.”

       “그거라면 내 힘이 있잖아. ‘신성 디스펠’로 흔적을 지우고 이동하면 돼.”

         

       라드리엔이 소미레를 바라보자 그녀는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렇게 멍청해서야.

         

       “이동하고 나서 남은 마력은 누가 지워줄 건디? 나만 이동하고 너 혼자 남을겨? 그건 아니잖여.”

         

       아, 하고 고개를 주억이는 소미레. 라드리엔은 이제 그러려니 하고 체념했다.

         

       “미안, 할머니…….”

       “됐으.”

         

       찰팍. 찰팍. 둘은 말없이 하수구를 따라 걸었다. 더러운 구정물이 신발과 발목을 적시는 게 영 불편했지만, 지금은 이 방법 말고는 없었다.

         

       이러한 처지에 소미레는 한숨을 삼키며 하수구의 천장을 바라봤다.

         

       ‘일이 왜 이렇게 됐을까.’

         

       성녀라는 불편한 위치임에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간의 많은 계획이 실패했지만, 마지막에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실패했다. 그것도 아주 멍청하게.

         

       ‘그때 바보같이 감정에 휘말려서.’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에, 그간의 서러움이 한 번에 몰려와 감정적으로 변했다. 고지가 코앞이니 마음을 죽이고 냉철하게 행동했으면 이럴 일도 없었고 무사히 돌아갔을 텐데.

         

       “하아…….”

         

       무심코 한숨이 나온 소미레. 깜짝 놀라 황급히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올려 라드리엔의 눈치를 살폈다.

         

       “…….”

         

       찰팍. 찰팍. 조용히 갈 길만 가는 걸 보니 다행히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큰일날 뻔했네.’

         

       지금 소미레의 미래와 목숨줄은 라드리엔이 쥐고 있다. 심기 불편하지 않게 최대한 조용히 몸을 사려야지.

         

       “…….”

       “…….”

         

       썩은 내가 진동하는 어두운 하수구에선 물소리와 찰팍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자.

         

       “도착했다.”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로 나가면 황궁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겨. 좀 더 이동해서 숲으로 들어가면 공간 이동 마법을 쓸 거니 그리 알어.”

         

       소미레는 쥐죽은 듯한 목소리로 “알겠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커다란 철창의 틈새로 하수구를 나온 소미레는 화창한 햇볕에 손으로 하늘을 가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따라와.”

         

       라드리엔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저 할머니는 다리도 안 아픈가.

         

       걸음을 재촉해 황도의 버려진 숲 깊숙이 들어오자 드디어 라드리엔이 멈춰 섰다.

         

       “여기까지 왔으면 괜찮겠지. 준비혀.”

       “어, 응…….”

         

       딱! 라드리엔이 손가락을 튕기자 공간에 균열이 생기더니, 화아악! 대량의 마력이 발생하며 통로가 생겼다. 소미레는 혹시라도 추적이 붙을까, 다량으로 퍼져나가는 마력을 최대한 지워냈다.

         

       “들어가.”

       “응.”

         

       공간 이동의 통로를 이용해 황도에서 빠져나오고, 소미레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더니 물었다.

         

       “여긴 어디야?”

       “공작령.”

       “뭐?”

       “데카르트 공작령이라고.”

         

       순간 사색으로 변한 소미레였지만, 이내 라드리엔의 의도를 깨달았다.

         

       “…여기서 끝내라는 거구나.”

       “맞어.”

         

       소미레는 품에 있던 단검을 꺼내곤 칼자루를 꾸욱 쥐었다.

         

       “돌아가고 싶으면, 죽고 싶지 않으면 이번에는 꼭 성공혀. 이게 정말 마지막 기회이니.”

         

       입술을 머금은 채 눈을 부릅뜨는 소미레.

         

       “알겠어.”

         

       이곳에서 죽지 않을 거다. 돌아갈 거다. 부모님과 친구들을 다시 만날 거다.

         

       그리고, 매일 밤 악몽에서 나오는 본래의 소미레와도 만나지 않을 것이다.

         

         

       * * *

         

         

       페델리안 제국의 국경.

         

       혹사로 인해 지친 말을 좀 쉬게 해주려고 셀다스와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육포를 뜯으며 말했다.

         

       “지금 별일 없겠지?”

       “글쎄. 잘 모르겠군.”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불안해지잖아.

         

       “어떻게, 그쪽과 연락할 방법은 없는 건가? 상황을 보아하니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던데.”

         

       셀다스는 육포를 뜯다 말고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우리는 최단거리를 이용해서 공작령으로 향하는 도중이다. 일반적인 길이 아닌지라 소식을 확인할 방법은 없어.”

         

       그건 그렇긴 하다. 판테온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에서 사람을 한 명도 못 봤으니.

         

       “걱정하는 만큼의 큰일은 없을 거다. 공작 옆에 있던 흰머리 마법사는 정신머리가 똑바로 박혀 있었으니까.”

         

       카자르라면 믿을 수 있다. 마법을 제외하면 문외한이긴 한데, 생각이 깊고 판단력이 출중해 무슨 일이건 현명한 선택을 할 테니까.

         

       ‘무력도 강하고.’

         

       아마 지금쯤 초월 마법사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떠나기 전에는 그 경지에 거의 근접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도시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조금만 참아라. 조금만 더 이동하면 영지에 들어서니까.”

         

       셀다스는 그리 말하고 다시 모닥불을 쬐며 육포를 뜯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건가.

         

       “흠…….”

         

       멍하니 모닥불이 타는 걸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큰 걱정은 하지 말자. 내가 만든 힘과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프란체의 곁에 있으니까.

         

       “1시간 정도만 더 쉬고 출발하지.”

       “그래.”

         

       나와 셀다스는 말도 없이 멍하니 모닥불을 바라봤다. 쉬지 않고 이동해서 그런지 무거운 피로에 눈이 감겨오지만…….

         

       “후.”

         

       고개를 휘저으며 떨쳐냈다.

         

       “그 공작이 널 보면 어떻게 나올 거 같나?”

         

       문득 셀다스가 물었다.

         

       “글쎄다. 아마도 화부터 내지 않을까 싶은데.”

         

       제대로 대화도 하지 않은 채 편지 하나만 달랑 남겨놓고 떠났다. 내가 프란체였더라면 일단 화부터 냈을 거 같다.

         

       “그리고 울겠지.”

         

       자의식 과잉일지도 모르지만, 프란체의 삶에서 큰 축을 차지한 나라면 그렇게 나오지 않을까.

         

       “뭐, 자세한 건 보면 알겠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부스럭. 셀다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길질로 흙을 털어 모닥불을 꺼트렸다.

         

       “이제 출발하지. 시간이다.”

       “…그래.”

         

       셀다스와 말에 올라탔다. 아직 피곤해 보이긴 하지만, 근처에 도시가 있으니 괜찮을 거다.

         

       “미리 할 말이 있으면 말해라. 달리는 도중에는 대화를 못하니.”

         

       할 말이라. 딱히 없는데. 나는 고개를 휘저었다.

         

       “없다. 출발이나 하지.”

         

       셀다스는 고개를 끄덕이곤 이럇! 하며 음성 신호를 보냈다.

         

       다그닥다그닥! 말발굽이 지면에 부딪히며 큰 소리를 내었다. 이제 정말 프란체와의 재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기대되면서도 무섭네.’

         

       그간 사무치는 그리움이 내 가슴을 옥죄었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 내 목숨이 직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비상 사태니까 돌아가는 거긴 한데.

         

       ‘진짜 죽으려나.’

         

       이전에 꿈에서 나왔던 시스템은 말했다. 기억의 파편이 74%나 모였다고. 재앙의 파도 때도 동기화가 한 번 심화했던 걸 생각하면…….

         

       ‘80%는 넘겼겠군.’

         

       기억의 파편이 들어오며 마구잡이로 섞인 탓에 지금은 김공략과 진 바렌베르크의 경계선에 있지만, 돌아가게 되면 완전한 진이 되겠지.

         

       그때가 되면 과연 나라는 존재가 남아있을까? 남아있지 않다면, 진이 되어 달라진 나를 본 프란체의 반응은 어떨까?

         

       많은 의혹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솟구치지만…….

         

       ‘어쩔 수 없어.’

         

       이게 내 운명이다.

         

       다그닥다그닥.

         

       한참동안 말은 쉴 틈 없이 달렸고, 저 멀리서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제국의 도시로 들어선 거다.

         

       셀다스는 고삐를 당기며 말을 멈춰세웠다.

         

       “여기서 말을 옮겨타서 쉬지 않고 간다. 이의는 없겠지?”

         

       나는 “그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 도시를 들른다. 남는 시간동안 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확인해야겠지.”

         

       이래저래 검문소로 들어가고, 셀다스의 패를 이용해 영지로 들어올 수 있었다.

         

       “여기는 어디 영지지?”

       “에버나인 백작령이다.”

         

       근처를 둘러보던 셀다스는 바로 말을 이었다.

         

       “일단 마구간에 다녀오지. 너는 소식이나 알아보고 있어라.”

         

       셀다스는 그리 말하고 말 두 마리를 이끌고 이동했다.

         

       ‘막 움직여도 괜찮겠지?’

         

       판테온에 있던 것처럼 기척을 숨기지도 않을 테니 알아서 나를 찾을 수 있겠지. 나는 근처에 있던 카페에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점원. 나는 대충 눈치를 살핀 뒤 주문했다.

         

       “신문이랑 커피 한잔 부탁하지.”

       “네!”

         

       테이블에 앉아 잠시 기다리니 점원은 따스하면서 향긋한 커피 한 잔과 제국신문을 가져다주었다.

         

       “흠.”

         

       여유롭게 잔을 들며 신문을 살핀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만큼 신문에 실린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뭐야…?”

         

       성녀가 데카르트 공작을 암살 시도. 제국에 혼란을 가져왔던 모든 일의 원흉은 성녀. 죄인이 된 그녀는 도주. 황제는 구금.

         

       많은 일이 일어나 있었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까지 됐단 말이지.’

         

       뿌드득. 주먹이 꽉 쥐어지며 신문이 구겨졌다.

         

       ‘프란체를 건드린 죗값은 톡톡히 치러야 할 거야, 소미레. 그리고 망할 초월 마법사.’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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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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