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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4

       올리비아는 시선을 내렸다. 아우렐리아의 손이 거세게 멱살을 틀어쥐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자신은 항상 누군가의 멱살을 쥐는 쪽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얕보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나는……너한테 고작 그 따위 말을 들으려고 지금까지 버텨왔던 게 아니야.”

       

       지금만큼은, 이 손아귀를 풀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쾌락을 버렸어. 그 어떤 생에서보다 금욕적으로 살았다고……! 충동을 버리고, 내 감정을 억제했어. 내가, 내가 왜 그랬는지 알아?”

         

       아우렐리아의 팔이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굳이 다음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눈 앞에 있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이 지독한 고통에 대하여 잘 알 것이기 때문에.

         

       “젠장……X발!”

         

       아우렐리아는 멱살을 쥔 손을 떨쳐내듯 놓았다. 그녀는 올리비아의 뺨을 후려치는 대신, 꼴보기도 싫다는 듯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땅이 꺼질듯한 한숨을 뱉어내며 술을 들이켰다.

         

       전지(全知).

         

       물론 아우렐리아는 감히 전지라고 칭할 정도로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남들보다 많은 것을 기억할 뿐이고, 세계의 비사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을 뿐이다.

         

       주술의 극의에 도달한 것도, 그동안의 수많은 경험이 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극의에 도달했던 순간, 아우렐리아는 아주 잠시 동안 기뻐했다. 태고의 거신을 소환할 수 있게 되었고, 명계의 문을 열어 무한에 가까운 영혼들을 쏟아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극의에 도달한 순간 깨달았다.

         

       기쁘지 않다.

         

       뭘 해도, 기쁘지 않았다. 모든 게 지루하고, 무미건조해서, 그 사실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모든 불규칙은 규칙이 되었다. 더 이상 지금의 세계가 특별하지 않게 되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죽는지 알게 되었다.

         

       악마들이 강림한다. 대악마들이 나라들을 뒤집어 엎는다. 마왕과 마신이 강림하고, 올리비아가 그들을 쓰러뜨린다.

         

       물론 매번 똑같지는 않다. 힘없이 무너졌던 왕국들은 어느 순간부터 무너지지 않았다. 악마들의 공세에 일주일도 버티지 못했던 남부는 어느 순간부터 제 힘으로 악마들을 몰아내기까지 했다.

         

       국경이 뚫리고 적잖은 피해를 입었던 제국은 악마의 침입조차 허락하지 않는 대국이 되었으며, 제 사리사욕만 채우던 영웅들은 올리비아의 도움 없이도 대악마를 상대해낼 지경에 이르렀다. 올리비아가 만들어낸 변화였다.

         

       하지만 그뿐이다.

         

       올리비아가 마신의 잔재를 짊어진 채 죽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X같아.’

         

       도대체 올리비아는 이걸 어떻게 버텨왔단 말인가? 이 끔찍한 고독을, 고통을.

         

       아우렐리아는 본능적으로 술을 들이켰다. 하지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독이 위장을 헤집을 때 생기는 아릿한 고통 뿐이다.

       

       미각은 고장났다. 항상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던 욕망과 쾌락이 사라져버렸다. 아무리 기쁜 일도, 수천 번을 반복해오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아우렐리아는 깨달아버렸다.

         

       쾌락에 솔직하게 살았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했고,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샀다.

         

       하지만 이제는.

         

       쾌락이, 무엇이었는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는 망가졌다. 아주 옛적부터 감정은 무너졌고, 현실과 과거의 경계가 희미해졌다. 평범한 술로는 이 광기를 다스릴 수 없어 독주에 독초를 섞어 넣어 마셨다. 육체적인 고통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지워버릴 수 있었으므로.

         

       아우렐리아는 천천히 심호흡했다.

         

       그동안은 주제 넘는다고 생각하여 물어보지 않았지만,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이제는 알아야겠다.

         

       “……도대체 그 망할 마신이란 건, 왜 없어지지를 않는거냐?”

       

       올리비아는 저 질문에 대한 답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추론은 해보았었다.

       마신은 락테아의 최종 보스. 유저는 마신을 잡은 순간 엔딩을 보게 되고, 거기서 멈출 지, 아니면 새로운 회차를 시작하여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지를 선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마신은 없어지지 않는다. 정확히는, 없어져서는 안된다.

         

       최종 보스가 없는 게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없어져버리기 때문에.

         

       ‘……하지만 이 세상은 더 이상 게임이 아니지.’

         

       게임이었다가 게임이 아니게 된 것인지, 처음부터 아니었던 것이었는지.

         

       하지만 이제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바깥 세계를 모르는 아우렐리아에게 이런 추측을 말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자책도, 사과도 아니다.

         

       그저 진실 뿐.

         

       “아직 몰라.”

       “……마신의 잔재는, 왜 항상 네 영혼 속에 깃드는거냐?”

        “그것도 아직 몰라.”

         

       아우렐리아가 허탈하다는 표정을 자아냈다.

         

       “마신이 왜 계속 생겨나는지도 몰라, 마신의 잔재를 없앨 방법도 몰라……도대체, 네가 아는게 뭐냐? 애초에, 너랑 나랑 처음 약속했을 때랑 지금이랑 달라진 게 뭔데?”

         

       없다. 아우렐리아에게는 수천 년의 간극이 있었지만, 올리비아에게는 기껏해야 며칠 전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뭐? 기억 계승을 그만두라고?”

         

       아우렐리아는 가소롭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올리비아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네가 부탁했어.”

        “……뭐?”

        “미래의 네가 부탁했다고. 너는……더 이상 못 버텨.”

         

       아우렐리아는 정색했다.

         

       “뭐……뭐라고? 개소리 하지마! 나는……!”

       “너도 알고 있잖아.”

         

       선고(宣告). 아우렐리아의 몸이, 그대로 우뚝 굳었다.

         

       올리비아가 말한 대로였다. 그녀는 이미 한계였다.

         

       – 기억 계승. 이제 그만 해도 돼.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음 한켠으로 안도했다. 이 지옥같은 삶을 더 이상 이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우렐리아는 깊은 자기혐오를 느꼈다. 올리비아의 멱살을 부여잡기는 했지만, 사실 그건 그녀 자신을 향한 분노였다.

         

       “……그 년은 내가 아니야. 나는, 나는……더 할 수 있어.”

         

       아우렐리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올리비아가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말을 꺼냈을 때부터, 어쩌면 이런 추한 모습을 보여주게 되지 않을까, 상상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아우렐리아는 고개를 돌렸다. 바로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올리비아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술을 들이켰다.

         

       “……가.”

       “아우렐리-.”

        “기억 계승은 이제 그만 둘테니까! 가라고!”

         

       올리비아는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아우렐리아의 등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꺼지라고 X발! 이딴……등신같은 모습……보여주고 싶지 않으니까!”

         

       아우렐리아가 다음 회차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전송하지만 않는다면, ‘현실’의 아우렐리아가 미쳐버릴 일도 없다.

         

       계승 받을 기억 자체가 소실될테니까.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음에도, 올리비아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혹시 아우렐리아가 기억 계승을 계속할까봐? 아니. 그녀는 자존심은 강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다. 그녀는 다음 회차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전송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이대로 끝내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올리비아는 오두막 바깥으로 나가는 대신, 아우렐리아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다음 회차에, 끝낼 수 있어.”

       “…….”

         

       올리비아의 목소리는 처음에는 살짝 떨렸다. 하지만 곧 그곳에 자신(自信)과 확신이 깃들었다.

         

       마신이 생겨나는 이유? 마신의 잔재를 영구히 없앨 수 있는 방법? 마신의 잔재가 하필 이 몸 속에 깃든 이유?

         

       모른다. 삶을 수천 번 반복한 ‘올리비아’도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확신이 깃든 이유는 간단했다.

         

       ‘올리비아’와는 다르게, 그녀에게는 애초에 ‘다음’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설령 거짓일지언정 확신이라도 가져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아우렐리아가 비웃듯이 말했다.

         

       “……지금까지 편린조차 알아내지 못했으면서, 한 번 더 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올리비아는 말을 삼켰다. 말문이 막힌 것은 아니었다. 아우렐리아가 진정할 때까지, 잠시 유예를 주기 위함이었다.

         

       “나는, 그걸 마지막으로, 더 이상 ‘다음’으로 떠넘기지 않을거니까.”

       “뭐?”

       “그러니까, 달라.”

       “……하.”

       

       아우렐리아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

         

       참으로 오랜만에 마주하는 눈동자였다. 비록 이번 생에는 아직 마신을 처치하지 못했지만, 그것과 상관 없이 올리비아의 눈동자는 어느 순간부터 항상 그 빛이 바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할테지만, ‘비밀’을 공유한 그녀는 그 미세한 차이를 인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저 벽안에는 찬란함이 담겨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자취를 감췄던, 참으로 그리웠던 찬란한 확신이.

         

       ‘……언제였더라?’

         

       이 빌어먹을 약속을 처음 시작했을 때. 그때의 올리비아도 지금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록 목숨을 들먹이며 협박을 하기는 했지만, 아우렐리아는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을 잊어선 안될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 앞으로도 내가 계속 잡아줄게. 백 번이고 오백 번이고.

         

       그 때는 그저 웃어 넘겼었다. 평범한 괴수도 아니고, 마신을 오백 번이나 죽이겠다니. 하지만 올리비아는 정말 그걸 그대로 실현해냈다. 아니. 실현하는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당장 그녀가 기억하는 횟수만 해도 오백 번은 아득히 뛰어넘었으니까.

         

       “……더 이상 다음으로 떠넘기지 않겠다는 그 말, 확실해?”

        “확실해.”

       “내가 기억 계승을 그만 둘거라는 걸 알고 구라치는 건 아니고?”

        “정 믿지 못하겠으면, 마나에 맹세할게.”

         

       아우렐리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올리비아는 제 심장에 대고 맹세를 읊었다. 시퍼런 사슬이 올리비아의 심장을 옭아맸다.

         

       “너…….”

       “그러니까, 이제 그만 해도 돼.”

        “……하.”

       

       아우렐리아는 툴툴 웃었다. 그녀는 멍하니 창가를 쳐다보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올리비아는 아우렐리아의 눈동자에 약간의 빛이 깃드는 것을 보았다.

         

       “등신새끼.”

         

       그렇게 말한 아우렐리아는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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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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