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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4

       바루가 아는 민가는 항상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 웃을 때도 있고 짜증을 낼 때도 있고 정색을 할 때도 있지만 하나같이 잠시 뿐.

       

       그녀는 젊은 외견과 달리 어딘가 달관한 듯한 얼굴로 세상을 바라봤다.

       

       허나 지금은 달랐다.

       

       민가는 바루를 향해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지만 그 눈은 아니었다.

       

       서리가 내려앉은 듯 냉혹하고도 차가운 그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바루는 지금 이 순간 민가가 그 어떤 때보다도 무섭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다음번엔 적당히 도망을 치거라.”

       “네가 금방 올 것이라 믿었다. 그러니 찾기 쉽게.”

       “알고 하는 소리다. 내가 이 산 속에서 너 하나를 못 찾겠느냐.”

       

       민가는 바루를 일으켜 세워 준 후에 그녀의 머리를 꾸욱 눌러 주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그리고 나서 바루를 내버려 두고서 등을 돌렸다.

       

       바루는 그제서야 민가에 가려 보지 못했던 주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던 이들이 하나 같이 굳어 있었다.

       

       한 겨울의 호수에 물과 함께 얼어붙은 물고기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그것은 혼령들이라 하여 다르지 않았다.

       

       바루의 명에 따라 필사적인 전투를 벌이던 이들은 민가가 등장하자마자 저승사자라도 만난 듯 민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전장은 민가 한 사람의 등장으로 소강상태를 맞이하게 됐다.

       

       “용기와 만용에 대해 아는가?”

       

       민가가 내뱉은 한 마디가 화산파가 들어선 건물 전체에 울려 퍼진다.

       

       “용기란 자신이 이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해야 하기에 앞으로 나서는 자에게 어울리는 말이요. 만용이란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달려드는 머저리들에게 어울리는 말이니라.”

       

       잠시 말을 끊고서 곰방대를 입에 문 민가는 가만 화산파 안에 있는 이들을 둘러본다.

       

       그러다 맹주라는 자와 싸우고 있던 나설을 보고는 살짝 눈썹을 치떴다.

       

       허나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머저리들아. 그대들로 본인을 쓰러트릴 수 있다 생각했느냐? 그대들 따위의 무력으로 본인을 겁박하면 본인이 겁에 질리리라 생각했느냐?”

       “닥쳐!”

       

       민가의 날선 말에 처음으로 반응한 건 맹주라 불리는 자였다.

       

       그는 자신의 앞을 가로 막던 나설을 잊기라도 한 것처럼 민가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여기가 아피스 인 줄 알아?! 여긴 화룡무인이야! 너 하나의 무력이 모든 걸 지배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맹주의 고함을 가만 듣고 있던 민가는 이야기가 끝난 후에 삐뚜름하게 입꼬리를 치켜 올렸다.

       

       그는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무림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하는 구나.”

       “뭐?”

       “개미들이 집단을 이루어 봐야 개미일 뿐이다. 사람의 손에 짓눌리면 죽기 마련이지.”

       

       개인은 약하고 집단은 강하다.

       

       이는 너무도 상식적인 이야기다.

       

       아주 머나먼 과거부터 사람은 무리를 이루어 강한 무언가를 사냥해왔고, 집단을 이루어 서로를 보호했다.

       

       그는 작게는 친구 무리였으며 크게는 하나의 나라를 의미했으니.

       

       집단이 강하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렇지 않은가. 자연에 존재하는 여러 곤충이나 짐승들마저 집단을 이루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집단이 개인보다 강하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연의 섭리이자 이치였다.

       

       허나 민가는 그를 부정했다. 압도적인 개인은 상식으로 재단할 수 있는 존재라 아니라고 단정을 지어버렸다.

       

       “선례라면 지극히 많다. 먼 과거 처음으로 무림맹을 만들었던 무인이 그러했고. 명교의 유지를 이었던 괴인이 그러했으며. 최근에도 하나의 재앙이 무림을 휩쓸고 지나가지 않았나.”

       “하. 네가 천마랑 동격이라고?! 천마신공을 쓴다고 뭐라도 되는 줄 아나! 겨우 일류의 몸을 지닌 주제에!”

       

       맹주의 가열찬 외침에 민가가 웃음을 지었다.

       

       평소 그녀가 짓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부드러운 웃음이 아닌 차디 찬 냉소를.

       

       “부정하고 싶다면 입증해보거라. 집단인 그대들로 나를 무너트려 보아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네가 이 분들을 쓰러트릴 수 있을까?!”

       

       맹주가 손짓을 하자 어디선가 나타난 검은 복면의 무인들이 화령의 주변을 둘러쌌다.

       

       그들은 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바루조차도 강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저들 하나하나가 가진 기운이 무척이나 심대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저런 자들이 어디서 나타난 거지?

       

       그 기척을 조금도 느낄 수가 없었는데?

       

       내 감지에서 완벽히 벗어나 있었단 것인가.

       

       실력 있는 자들이구나. 대체 어느 경지에 이른 이들일까.

       

       본래라면 저 사이에 둘러싸인 민가를 걱정해야 할 터이지만 바루는 어째서인지 민가가 조금도 걱정스럽지 않았다.

       

       근거는 확실치 않았지만 민가라면 저 정도는 별 것 아니라는 듯 해치울 것 같았으니까.

       

       민가를 둘러싼 복면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아마도 그 자가 이 무리를 이끄는 대표인 듯 했다.

       

       “반갑소. 듣던 대로 고강한 무인이시구려. 사정이 사정인지라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점을 이해해주길 바라오.”

       “개방의 아해구나. 손에 박힌 굳은 살을 보면 봉을 다루는 듯 한데 장문제자 중 하나더냐?”

       “…그를 어찌.”

       “버릇을 숨기려 노력한 듯 하다만 그래봐야 네 본질을 어찌 감추겠느냐.”

       

       민가가 한심하다는 듯 그리 이야기를 하자 남자 말문이 막혔다.

       

       설마 복면으로 가린 자신의 정체가 들키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모양이었다.

       

       민가는 그런 복면인을 내버려 둔 채 맹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들이 네가 믿는 사람들이더냐?”

       “그래! 아무리 네가 강해도 화경을 넘은 무인 집단은!”

       

       맹주가 소리를 치는 것과 동시에 민가가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그 순간 민가의 형상이 순간 사라졌나 싶더니 이내 바람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민가가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던 이의 뒤에서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유리를 확신하고 있던 무리의 대장은 자신의 가슴에 뚫린 구멍을 경악스런 눈으로 바라보다 앞으로 고꾸라졌다.

       

       툭.

       

       침묵으로 가득한 화산파의 부지에 소리가 남과 동시에 돌바닥에 피가 맺힌다.

       

       “이 정도로 본인을 이기겠다고? 웃기는 소리를.”

       

       *

       

       눈을 깜빡일 때마다 한 사람이 죽어 나간다.

       

       맹주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한 번을 이기지 못했던 이들이 나뭇가지가 꺾이듯이 너무나도 손쉽게.

       

       맹주는 자신의 두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도저히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저들이 어디 평범한 사람이던가.

       

       저들은 무림맹의 정예다.

       

       하나하나가 한 문파의 장로 자리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괴물들이다.

       

       그런 사람들 열 댓이 모여 한 사람을 공격하고 있는데 어찌하야 그 공격의 대상이 된 자는 저토록 여유롭고 공격을 하는 이들은 공포에 질려 혼비백산을 하고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돼. 무언가가 잘못된 거야.

       

       버그? 아니면 치트? 그래. 분명 그런 걸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풍경이 나올 리가 없잖아.

       

       “맹주님. 설마 치트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죠?”

       

       방금 전까지 맹주와 다투던 나설이 웃음을 흘리며 물음을 던졌다.

       

       “설마. VR게임에 치트 안 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특히나 이 제작사의 게임이라면.”

       “그럼 저건 뭔데!”

       “화령님이죠.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사람.”

       

       화령. 화령. 빌어먹을 화령!

       

       맹주는 아직도 화령을 처음으로 만난 날을 기억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맹주는 화령이라는 인간에 대해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냥 사람 같지 않은 피지컬을 지니고 있구나 정도의 인식이었다.

       

       데케이가 연 대회에 나와 화령을 도발한 이유도 어디까지나 맹주의 컨셉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 이외의 이유는 없었다.

       

       허나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화령에게 조언을 구하러 갔을 때.

       

       화령이 자신에게 나아갈 길을 알려주길 바라며 그녀의 앞에 섰을 때.

       

       화령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그대가 다루는 무공은 그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더 위로 올라가고 싶다면 다른 무공을 찾아보게. 내가 추천하는 것은…’

       

       그건 단순한 비난이 아니었다.

       

       차라리 화령이 한 말이 무작정 맹주를 엿먹이기 위해 한 말이었다면 맹주도 웃어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화령이 해 준 말은 비난과는 달랐다.

       

       그녀는 정말로 진지하게 맹주가 십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익혀 온 무공이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화령은 조목조목 맹주와 그가 다루는 무공이 왜 어울리지 않는 지를 지적했다.

       

       그 문제점들은 분명 맹주도 못내 속으로 인지하고 있었지만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내용들이었다.

       

       맹주는 화령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화령은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문제점을 해체하여 맹주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알려 주었으니.

       

       맹주는 자신이 노력해온 세월이 헛됨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날 방송이 끝난 후에 화령이 한 말을 되새기던 맹주는 문득 이런 생각을 마음에 품었다.

       

       만약. 아주 만약에. 화령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해 준 조언도 형편없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십 년 동안 해온 노력도 부정당하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말도 안 되는 궤변이었다.

       

       그런다고 현실이 달라지지 않음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맹주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화령을 깎아내리기로 결심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후로 맹주는 화령을 깎아내리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어떻게든 그녀가 벌인 여러 위업들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들려 노력을 했다.

       

       허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화령의 명성은 계속 높아질 뿐이었다.

       

       맹주의 미움은 화령이라는 태양을 가리기에는 한없이 자그마 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열등감에 시달리던 맹주는 진짜 무림맹의 간부인 백일에게서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

       

       자신이 지원을 해 줄 테니 그들을 데리고 화산파를 습격하지 않겠냐고.

       

       안 그래도 화령이 이끄는 화산파가 잘 되어 가는 게 눈꼴 시려웠던 그다. 맹주는 그 제안을 두 팔 벌려서 환영했다.

       

       무림맹의 지원은 어마어마했다.

       

       신령이자 뛰어난 도술가인 바루에게 대항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있는 도술가.

       

       거기에 더해 무림맹이 키운 정예라 할 수 있는 무인들까지.

       

       그를 보며 맹주는 깨달았다. 자신을 바지사장으로 세우고 무림맹이 직접 화산을 무너트릴 생각이구나.

       

       그러면서도 어디까지나 이게 유저와 유저 사이의 분쟁이라 변명할 셈이구나.

       

       결코 정파답지 않은 더러운 수작이었지만 맹주는 그 지원을 거절하지 않았다. 화령의 명성에 금을 낼 수 있다면 그는 무어라도 할 생각이었으니까.

       

       화산을 습격하는 그 순간까지 맹주는 자신들이 패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건 하나의 개인이 물리칠 수 있는 세력이 아니었다.

       

       어쩌면 무림의 전설이라 불리는 삼존에게 대항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 정도로 막강한 집단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거지?

       

       무림맹의 마지막 무인을 처리한 화령은 무표정한 얼굴로 맹주 쪽으로 걸어왔다.

       

       다른 유저들은 멀쩡히 살아있었지만 그 누구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화령이 내뿜는 살기에 압도되어서 얼굴을 창백히 채로 공포에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건 맹주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화령의 시선에 압도된 맹주는 등줄기를 타고서 올라온 싸늘한 기운에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들어찬 생각이라고는 그저 공포 뿐이었다. 무섭다.

       

       두렵다.

       

       나는 이대로 죽는 걸까?

       

       죽어? 내가? 이건 게임이잖아.

       

       그래도 죽을 거야. 저 사람이라면 분명히 날 죽일 수 있을 거야.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나를 용서해줄까. 어떻게 하면.

       

       “네가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물어볼 것이 있다. 이 습격을 사주한 것은 분명 무림맹이겠지?”

       

       맹주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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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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