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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5

    펑펑 울던 검은 사신들은 실컷 울었는지,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방실방실 웃으면서 내 주변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뒹굴뒹굴 굴러다니다가, 내 얼굴을 한 번 보고 ‘엄마다!’라고 의지를 내뿜고 다시 굴러다니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내 주변에서 굴러다니는 게 익숙해졌는지, 점점 달라붙는 정도가 심해졌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뺨에 달라붙고, 더듬이를 입에 물고 난리를 피웠다.

    색이 다른 황금 사신이 늘어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굴러다니던 검은 사신을 하나 집어서 손아귀에 들자,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검은 사신.

    황금 사신이랑 똑같이 생겼지만, 확실히 다른 점도 있었다.

    얘네들 이빨이 날카롭네.

    입 안에 손가락을 넣고 살펴보니 촘촘하게 작고 귀여운 상어 이빨이 돋아나 있었다.

    입안에 손가락을 물게 된 검은 사신은 ‘뭐지?’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다가 혀로 내 손가락을 할짝거렸다.

    혀가 작아서 그런지, 간지럽기만 했다.

    헤실헤실 웃는 검은 사신들을 보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의지를 전달했다.

    ‘다른 미니 사신들을 만나러 가자!’

    그러자,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검은 사신들.

    숫자가 황금 사신만큼 많아서 그런지, 박력 있는 움직임이었다.

    뚜방뚜방.

    가자!

    내가 앞장서서 걸어가자, 내 걸음걸이를 따라 하면서 내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은 구체의 경계를 향해서 점프!

    폭신한 마시멜로 바닥에 착지하고 뒤를 돌아보자, 검은 구체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검은 사신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이 튀는 것처럼 마시멜로 바닥에 튕겨 나간 검은 사신들은 데굴데굴 구르면서 미니 사신 정원 내부로 퍼져나갔다.

    내가 나오길 기다리던 황금 사신들도 막내가 늘어나자, 해맑은 미소를 띠면서 검은 사신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뚜방 파티가 시작되었다.

    사방에서 폴짝폴짝 뛰고, 서로 손을 잡고 뛰어다니는 미니 사신들의 파티! 

    황금 사신 같은 녀석들이 두 배가 돼서 그런지, 두 배로 어수선한 파티였다.

    파티장 중앙에는 처음 보는 투명한 플라밍고가 캠프파이어 대신 불타고 있었고, 마시멜로 아귀와 젤리 돼지는 사신들의 품에 안겨 조금씩 뜯어먹히고 있었다.

    따뜻한 플라밍고 화톳불 옆에 누워서 아귀를 뜯어먹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플라밍고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전담 황금 사신까지 붙어서 화톳불이 되어버린 걸까?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다 보니, 여전히 공중 위에 존재하는 검은 구체가 눈에 들어왔다.

    저 안에 있던 검은 사신들은 모두 데리고 나오는 것은 성공했지만, 여전히 저 안에는 연비가 나쁜 시체가 하나 널브러져 있었다.

    시체를 치워야 저 구체가 사라지려나?

    그런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이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미니 사신 정원의 ‘타피오카 펄 태양’이라고 생각하면 나름대로 운치가 있으니까 말이다.

    슬슬 예린이가 깨어날 시간이 되었을 테니, 돌아가서 푸딩이나 먹어야겠다.

    나는 미니 사신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잠깐의 작별을 전했다.

    황금 사신과 검은 사신도 해맑게 웃으면서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역시 미니 사신들은 우는 것보단 웃는 편이 좋아.

    ***

    싱크홀로 완전히 무너져 버린 송파구 바로 옆에 위치한 강남구.

    한때 아귀와 수많은 오브젝트가 싱크홀 속에 숨어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당히 위축되었던 강남구였지만, 지금은 어느새 활기차고 분주한 서울 중심지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활기찬 강남구의 외곽에는 커다란 연구단지를 혼자서 쓰고 있는 ‘트리니티 제1 연구소’가 존재하고 있었다.

    넓은 부지에 걸맞은 넓은 도로와 주차장을 가진 연구소는 이상하게 고요해서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하게 막아서 그런지, 활기찬 도시와 고요한 연구단지는 그 분위기 차이가 상당했다.

    도시와 연구단지 사이에는 높은 벽이 자리 잡고 있어서, 그 분위기 차이를 더욱 강조하고 있었다.

    그렇게 조용하고 고립된 트리니티 제1 연구소 깊숙한 곳에서는 비밀스러운 실험이 이어지고 있었다.

    트리니티 제3 연구소가 만들어 낸 ‘검은 액체’에 대한 실험이었다.

    관악구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괴물로 바꾼 액체로 알려져서 금기시되는 액체였지만 제1 연구소장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흥미로워. 정말로 인상적인 물질이야.”

    연구소장이 바라보는 화면에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아르마딜로가 검은 점액 속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결국 염산에 녹아버린 살점처럼 녹아버리는 아르마딜로, 그 장면을 보면서 부소장이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그런데 이걸 왜 ‘진화액’이라고 불렀는지는 모르겠네요.”

    연구소장의 옆에 서서 같은 화면을 구경하던 부소장은 의문을 표했다.

    “오히려 이건 오브젝트에게 작용하는 독약이라고 봐야 하지 않나요?”

    부소장이 보는 화면에는 또 다른 실험 장면이 비치고 있었다.

    점액 속에서 살아남은 것으로 보이는 ‘검은색 보석 아르마딜로’가 권총탄에 퍽퍽 뚫리며 터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권총에 뚫린 상처는 순식간에 재생되기는 했지만, 대구경 발칸에 맞아도 끄덕하지 않던 보석 아르마딜로라고 보기에는 많이 물러진 모습이었다.

    부소장은 그 장면을 보면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거의 90%에 가까울 정도의 확률로 오브젝트의 완전한 파괴를 유도하고, 살아남은 개체도 오히려 열화되는 것처럼 보여요.”

    연구소장은 부소장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지. 인류가 손을 댈 수 없는 오브젝트가 가득한데, 9할의 확률로 오브젝트를 죽이는 액체라니! 이건 오브젝트 정책을 180도 뒤틀어 버릴 혁명이야.”

    약간 흥분한 것 같은 소장의 말과 동시에 화면에서 아르마딜로가 시체가 되어버렸다.

    권총탄에 일방적으로 맞던 아르마딜로가 더 이상 재생하지 못하고 축 늘어진 것이다.

    “게다가 살아남은 개체도 물리적으로 물러지지. 유한한 재생력 따위는 현대 화기로 상처입힐 수 없는 단단함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열화야.”

    결국 모든 오브젝트를 죽일 수 있게 되는 시대가 오게 될 것이라며 소장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부소장은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 ‘진화액’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연구가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 연구가 필요하지, 필요해. 이 액체는 영생을 이루게 해줄 이정표가 되어 줄 테니 말이야.”

    “네?”

    연구소장의 생소한 이야기에 부소장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영생이라니요?”

    “자네도 이제 알 필요가 있겠지. 죽은 자도 다시 되살리는 ‘진화액’의 또 다른 힘을 말이야.”

    의미심장한 소장의 표정에서 부소장은 왠지 불길함을 느꼈다.

    ***

    따뜻하고 푹신푹신해.

    제임스의 전용기도 편하고 좋았지만, 역시 세희 연구소가 최고야.

    며칠 전에 세희 연구소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세희 연구소는 지겹지 않고 편안하기만 했다.

    세희 연구소에 마련된 내 격리실에 누워서 축 늘어져 있으니, 천국에 온 것만 같았다.

    주변에는 황금 사신과 검은 사신들이 침대 위에 자리 잡고, 나를 따라 누워서 쉬고 있었다.

    사실 검은 사신은 이번이 정원 밖으로 나간 첫 나들이였다.

    행동은 황금 사신이랑 엄청 유사하면서 정원 밖으로 나가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집돌이들이라서, 밖으로 끌고 나가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탁자 위에는 대용량 ‘회색 사신 푸딩’이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는 황금 사신과 검은 사신이 들어가서 야금야금 개미처럼 푸딩을 파먹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시베리아의 일부 지역을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했다는 소식입니다.]

    배경음처럼 틀어둔 TV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브젝트로 관리 능력을 상실한 몇몇 오지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소식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처치 곤란한 오브젝트들을 시베리아로 몰아넣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마 그래서 저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따뜻한 침대에 누워서 TV를 보고 있으니,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신아! 사신아! 사신아! 사신아! 돌아왔어!”

    제임스의 전용기에서 내리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던 예린이가 이제서야 돌아오는 소리였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는데, 무슨 병이라도 걸린 걸까?

    “황금 사신이도 안녕!”

    격리실 문을 벌컥 열어젖힌 예린이는 환한 얼굴로 나와 황금 사신을 바라보면서 인사했다.

    반가움과 기쁨의 감정이 쏟아져 들어오자, 황금 사신들도 헤실헤실 웃으면서 예린이를 반겼다.

    “!”

    예린이는 황금 사신들과 놀고 있는 까만 사신들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다시 인사했다.

    “와, 검은 사신이! 검은 사신이도 안녕!”

    하지만 검은 사신들은 황금 사신처럼 예린이를 반겨주지 않았다. 

    오히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노려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예린이는 소리 없이 으르렁거리는 검은 사신들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뒷걸음질 쳤다.

    황금 사신은 검은 사신의 행동에 엄청나게 놀라더니, 그러면 안 된다는 것처럼 검은 사신을 때찌때찌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서 물어뜯을 것처럼 으르렁거리던 검은 사신들은 황금 사신의 때찌를 맞더니 애처로운 얼굴로 내 쪽을 돌아봤다.

    하지만 예린이를 공격하면 당연히 안 되니,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삐이익.

    그러자, 검은 사신들은 아기 새가 우는 것처럼 애처로운 소리를 내더니, 그 형태를 잃고 녹아내려서 슬라임처럼 축 늘어져 버렸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니까, 슬퍼 보이는 검은 사신들을 무시했다.

    그나저나 검은 사신은 소리를 낼 수가 있구나, 나도 못 하는 걸 할 줄 아네….

    미니 사신에게 위협받아서 충격받은 것 같은 예린이는 살금살금 격리실로 들어와서 슬라임처럼 녹아내린 검은 사신을 만져보려고 손을 뻗었지만, 만질 수가 없었다.

    마치 자석이 자석을 밀어내는 것처럼 예린이의 손이 다가오면 모양을 바꿔가며 절대로 닿지 못하게 했다.

    “힝, 사신아. 얘네들이 나 미워해….”

    예린이의 슬픈 감정이 격리실을 퍼져나갔다.

    거의 폭탄 테러 현장에 모인 피해자 가족 백 명분의 슬픔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억울하면 이렇게나 슬픈 거지? 

    예린이 정도면 미니 사신 누구라도 좋아할 정도로 감정이 풍부한 인간인데, 왜 싫어하는 걸까?

    나는 검은 사신 하나를 들어 올려서, 의지를 전달했다.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검은 사신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의지를 전해왔다.

    ‘배신자!’

    해맑은 표정과 어울리지 않는 흉흉한 감정이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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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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