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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5

        

         

       청이 면사를 좌우로 흔들며 손님을 맞이했다.

         

       “아니, 이거이거. 우리 친구들 아냐?”

         

       “……?”

         

       “그래, 여기까진 어쩐 일이야? 다 쓰러져가는 철방에 무슨 용건이 있어서?”

         

       깡패들이 주춤거렸다.

         

       뭐지? 아는 사람인가? 왜 친한 척이지?

       우리 쪽 사람인가? 혹시 사도련에서 나왔나?

         

       “그, 누구신지…….”

         

       “내가 누구라고 하면 알아? 자자. 그래서. 왜 왔어? 이 동네 온 지가 얼마 안 돼서 무슨 일인지 모른단 말야.”

         

       사실, 깡패들도 상대가 강경하게 나올 때를 대비한 일련의 대사집 비슷한 것들이 있다.

       청이 만약 ‘이 잡것들, 선량한 양민에게 무슨 짓이냐!’ 따위의 정파 무인이 할 법한 호통을 질렀다면 깡패들도 대응할 교범이 있었다.

         

       우리는 나면파의 유협들이다!

       우리를 건드리면 나면파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나면파가 가만히 있지 않으면 도시의 사파가 죄다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도시의 사파가 죄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우리의 뒷돈 처먹은 관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대충 이러한 내용을 욕설 섞어 거친 억양으로 줄줄 읊을 준비가 되어있던 것이다.

         

       하지만 건들건들 당당하게 친한 척을 한다?

       이는 보통 악명 높은 마두들이 귀여운 사파 꿈나무들에게 보이는 태도이기도 했다.

       물론, 마두들이 후배들이 귀여워서 친근하게 굴지는 않는다.

       보통은 뜯어먹기 위해서다.

       사파놈들 선후배들이란 본래 이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깡패들이 오히려 긴장했다.

         

       “그, 저희는 나면파 무인들입니다만.”

         

       “나면? 라면? 동생, 해설 좀 해 줄래?”

         

       “나면파, 최근 십 년 전쯤 성세한 놈들로, 그 두목 되는 놈이 문둥병자라 하더군요. 경지는 초절정이라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 그 나면이야? 아, 라면 먹고 싶다.”

         

       제갈이현이 턱을 긁적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라면이라는 요리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어서.

       그러나 본래 중원이 넓고 향토 음식을 세자고 하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입에 담아도 전부 말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리고 제갈이현도 궁금하면 참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궁금한 것을 참지 못했다.

         

       “누님, 우제가 라면이란 요리는 듣지 못했습니다만, 어느 지역의 음식입니까?”

         

       “음. 이쪽에서는 납면이라고 하더라.”

         

       “아, 방언이로군요. 이해했습니다.”

         

       나면파 무인들이 제갈이현을 보고는 더욱더 바짝 얼어붙었다.

       본래 실력이 모자란 무인일수록 상대의 외공 수준에 연연하는 법이었다.

       물론, 안목 없는 하류 무인들이 외공을 판단하는 기준이 덩치와 근육이니, 거대 근육남은 자체로도 이미 초고수나 다름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초고수의 누님이라니!

         

       “자. 그래서 무슨 일이야?”

         

       “그것이, 저 노인네가 감히 나면파의 명령을 거스르는 바람에 혼쭐을 내 주려고……”

         

       “혼쭐을 내줘? 좀 더 자세히 말해줄래?”

         

       제갈이현에게 압도당한 나면파 무인들이 순순히 저들의 목적을 털어놓았다.

       청이 친근 비슷한 태도로 군 까닭도 있었다.

         

       반 노인은 주마점 최고의 장인이다.

       사실, 주마점 최고라고 하기도 애매한 것이, 그 범위를 하남성 전체로 키우더라도 손에 꼽을 정도의 명장이었던 것.

       다만, 그 명장의 전문 분야가 농기구 따위에 한정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철장이라도 분야가 다르다면 명품은 만들 수 없다.

       만약 검술의 고수가 반검을 들면 대충 휘두를 수는 있겠지만, 반검의 고수라곤 할 수 없지 않겠는가.

         

       문제는, 반 노인이 젊을 적에 만든 검이 발견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명검이라 할 것이었으니.

       즉, 반 노인은 검을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안 만드는 것이었다!

         

       실력 있는 검장은 문파들이 앞다투어 모시는 귀인들이다.

         

       완벽하게 같은 실력의 무인이라면, 승패를 가르는 차이가 병기의 우위가 될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보다 좋은 병기에 대한 무인의 관심이란 심지어 권장의 고수들마저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주마점의 뛰어난 검장은, 마땅히 도시의 사파 대장인 나면파가 데려가야 한다.

         

       “그래서 반 노인을 모셔가야겠다?”

         

       “아뇨, 그건 진작에 포기했습니다. 저 노인네가 얼마나 독한 노인네인지……”

         

       반 노인은 병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능력이 있음에도 병기를 만들지 않는 장인은 생각보다 중원에 흔히 널렸다.

       길거리 매담자(이야기꾼)에게 은자 한 개만 던져주면 그에 대한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종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어르고 달래고 협박하고 온갖 수단을 써 보아도 반 노인은 요지부동, 검을 만드느니 차라리 죽겠다며 버텼다.

       심지어 손자놈 납치해다 협박해도 안 들었다.

         

       그리하여 나면파 두목이 생각했다.

         

       내가 가지지 못하면 부숴버리겠다.

       어떻게 하면 본보기를 보일 수 있을까?

       그래, 말려 죽이자.

       감히 나면파에 거역한 새끼가 굶어 죽는 꼴을 보면 다른 놈들도 딴 생각은 못 할 것이다.

         

       “아아. 그래서 손님이 올 때마다 이렇게 쫒아내러 온다 이거네?”

         

       “예, 뭐, 그렇게 됐습니다……”

         

       나면파 무인들이 불안함 반으로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그러나 이어진 청의 말에 한결 편한 표정이 되었다.

         

       “이야, 고생이 많다. 고생이 많아. 그럼 하루 종일 철방 들여다보며 불피우나 안피우나 감시하고 있던 거 아냐?”

         

       “맞습니다. 다들 돌아가면서 노인네한테 누가 먹을 거라도 주지 않나 봐야 하니. 그런데 또 어떤 개 같은 새끼가 몰래 음식을 넣는 바람에 노인네는 뒈지지도 않고. 위에선 제대로 안 막냐면서 쪼기만 하는데……”

         

       말단 무인의 삶이 이러했다.

       특히나 사파 놈들인데 오죽할까.

         

       “사는 게 팍팍해 보이네. 내가 좀 도와줄까?”

         

       “그으, 위에 말씀을 좀 해주시려는 거라면, 저희는 괜찮으니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아니.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야지.”

         

       “예?”

         

       “사는 게 힘들어? 그럼 안 살면 되지. 굳이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인생, 더 살아 뭐해?”

         

       “……?”

         

       청이 왼손을 척 내밀었다.

       그러나 손에 들리는 촉감이 없으니 청이 인상을 팍 쓰며 제갈이현을 바라보았다.

         

       “제갈이, 척하면 척이지. 이러면 복신적을 탁! 아까 의매 하는 거 못 봤어?”

         

       “아, 이런. 누님. 실례했습니다.”

         

       청이 복신적을 손에 쥐었다.

       뒤이어 만년한철 단봉에서 무식한 출력의 기가 뿜어져나왔다.

         

       어느새 후방에 철방 입구를 등지고 당난아가 독편을 들었으며, 견포희도 그 옆에서 세 손가락을 세운 주먹을 앙증맞게 어깨높이로 들어 올린 상태였다.

         

       앞뒤로 막힌 나면파 무인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어, 혹시 서운한 것이 있으시다면 대화로 푸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사파의 버러지들 상대로 무슨 대화야? 나, 신녀문. 얘는 제갈씨. 저기 못된 얼굴은 당가. 그 옆에는……, 음……, 설가 상회?”

         

       그에 견포희가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환희궁이나 마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청이 잠깐 고민 후에 말을 바꿨다.

         

       “쟤는 설가 상회 취소고 내 의매야.”

         

       견포희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반면, 나면파 무인들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설가 상회 하나만 빼면 온 천하의 무림인이 다 아는 이름들이었으니까.

         

       “이런 젠장! 쳐라!”

         

       말단에도 위아래가 있으니, 개중에 높은 놈이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저는 곧장 옆으로 뛰쳐나갔다.

       한 놈은 명령에 따라 청에게 달려들고, 한 놈은 뒤로 뛰어 입구를 향해 돌파를 시도했다.

         

       청이 태연하게 제게 달려드는 나면파 무인을 바라보았다.

       검을 머리 위로 번쩍 치들어 달려드니 저게 무림인인지 사무라이인지, 어쨌든 몸통이 훤히 비었다.

       완전, ‘제발 몸통을 찔러주세요’ 하고 정중히 부탁하는 수준의 빈틈이었다.

       그래서 청이 그저 복신적을 앞으로 뻗었다.

         

       우악스러운 힘이 담긴 단봉이 윗배로 들어가 비스듬히 위로 향했으니 심장까지 한 방에 닿았다.

         

       “억.”

         

       사악한 사파 놈이 머리 위로 치든 칼을 내리쳐 보지도 못한 채 땡그렁 떨궈버리고 말았다.

         

       “어, 어……”

         

       중원에는 혈추라고 하는 병기가 있어 구멍이 뚫려 속이 빈 송곳을 말했다.

       여기에 심장을 찔리면 구멍 따라 피가 들어와 밖으로 콸콸 새어 나오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지금 청의 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복신적의 바람구멍마다 피가 찍, 찍, 박동에 맞춰 규칙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손을 적셔오는 끈적함이 너무 오랜만이다.

       마공으로 항상 차가운 손아귀에 닿는 피가 너무 뜨거워서 데일 것만 같다.

       청의 표정 관리도 못 하고 입꼬리를 귀까지 끌어올린 살벌한 미소를 머금었다.

       면사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겠다.

         

       제갈이현이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윽, 누님. 피리에 피가 들어가면 찝찝하지 않으십니까?”

         

       “까짓것 잘 씻으면 되지. 뭐. 무인이 병기를 가릴까.”

         

       “그렇게 멋진 말로 넘어가려 하셔도, 애초에 복신적은 병기가 아니지 말입니다. 하지만!”

         

       제갈이현이 돌연 침을 튀겼다.

         

       “역시 그 화려하고 요사스러운 언변은 여전하시군요! 어떠한 종류의 고문과 회유도 없이 적에게 정보를 줄줄 털어놓게 만드시다니! 이 아둔한 동생은 감동! 또 감동했습니다! 요즘 들어 슬슬 실은 그냥 멍청한 여인이 아닌가 의심이 들던 차였습니다만, 우제의 어리석은 생각을 그대로 깨부숴 주시는군요!”

         

       “뭐지? 어째서 칭찬을 듣는 것 같은데 기분이 이상하지?”

         

       어쨌거나 오랜만에 찐하게 손맛을 본 청이 대만족했다.

       여린 가죽 뚫고 단단한 심근을 뚫으니 약하고 거친 두 손맛을 동시에 맛보고 만 것이다.

       거기에 복신적으로 찔렀더니 피가 콸콸 새는 것이, 오 완전 피리의 재발견인걸.

         

       반치가 저승에서 피눈물을 흘릴 발견이었다.

         

       겨우 동네 사파 찌끄레기를 상대하기엔 일행의 무력 수준이 너무 과도했다.

         

       문으로 뛴 놈은 견포희의 손가락질에 머리에 구멍이 뻥 뚤려 내용물이 조금 새어나왔다.

       그나마 혼자 도망치려던 놈의 상태가 조금 나았는데, 당난아의 채찍을 목에다 두른 채로 눈을 까뒤집고 거품을 문 상태였다.

         

       “걔는 왜 기절했데?”

         

       “불개미 독이 동맥에 들었거든. 아마 전신이 불타는 기분이었을 테야.”

         

       “음.”

         

       아니면 제일 불쌍할 수도 있고.

         

       그때였다.

         

       “이 빌어먹을 노옴!”

         

       반 노인이 갑자기 벌건 눈을 하고 달려드니,청이 방금 전에 보았던 익숙한 자세로 거대한 망치를 번쩍 치든 채였다.

         

       그 방향에 거품 문 무인이 채찍을 목도리로 감은 채로 누운 상태였다.

       청이 월녀산보의 극의, 초공간 도약으로 사뿐히 날아 노인네의 앞을 막았다.

         

       “잠깐, 할아버지.”

         

       “비켜, 내 저놈의 골통을 아주 박살을 내 버릴 것이야! 저 빌어먹을 새끼!”

         

       “마음은 알겠지만, 검을 안 만드신다는 분이 망치로 사람 죽여서 쓰겠어요?”

         

       “하지만 저놈이, 저놈이……!”

         

       “아아. 어쩔 수 없네. 이걸로 만족하세요.”

         

       청이 신발 바닥을 쓰러진 사파 무인의 머리 위에 척 올려놓았다.

       무릎이 잠시 덜덜 떨리며 힘을 주는 모양이다가 마침내, 와작.

         

       사실, 청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사실 면사 너머 표정은 싱글벙글 웃음꽃이 핀 상태었다.

         

       청이 그에 잠깐 중심을 잃은 듯 휘청거렸다.

       일행이 보기엔 그 촉감에 충격을 받기라도 한 모습이었다.

       

       물론, 충격을 받기는 받았다.

         

       와……. 진짜 끝내준다. 이게 얼마 만이야.

         

       음, 너무 오랜만이라 너무 자극적이었나 봐.

       예비 속옷을 얼마나 챙겼더라.

        

       면사를 준비한 최리옹의 혜안이 반짝반짝 빛나다 못해 태양과 같은 눈부신 광채를 뿜는 중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좋은 건 좋은 거고, 신발 바닥이 끈적하니 두 배로 찝찝하다.

       

       청이 멀쩡한 바닥 골라 신발 바닥을 죽죽 그었다.

          

       나면파 무인의 처참한 죽음을 본 반 노인이 감상 대신 그 시체를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카악 가래를 끌어올려 부서진 잔해 사이에 퉤 하고 뱉어놓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청이 다시 말문을 텄다.

         

       “할아버지, 그런데 우리도 할 이야기가 있지 않아요?”

         

       그에 반 노인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청이 삐딱한 자세가 되어 마저 추궁을 이어갔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면서요? 불 때면 이놈들 밀어닥칠 거 뻔히 알고 계셨을 텐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퇴고중인데 왜 댓글이..? 하고 보니 왜 예약이 안 걸리고 바로 올라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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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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