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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5

       그는 그녀의 고백을 담담히 듣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겉으로 보기에 원더스타인은 매력적인 남자였다.

       조각 같은 얼굴에 큰 키, 완벽한 몸매와 사람 좋은 미소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살 만한 것이었다.

         

       게임에서는 순전히 악당으로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팬이 많았다.

       

       그가 누구에게 고백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엘라라는 것이 문제였다.

         

       차라리 랫맨 수컷에게 고백받는 게 더 현실성 있는 일 같았다.

         

       한 달 전에 모두의 앞에서 말했던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때는 그녀가 자신의 기억이 왜곡되어있다는 것을 모르니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 대한 감정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으로 각오를 밝혔다.

       기억이 돌아온 뒤에도 여전히 그를 좋아하겠다고.

         

       그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봤다.

       새까맣고 반짝이는 보석을 담은 커다란 눈이 자신을 보며 깜빡였다.

         

       “좋아한다고 정말…….”

         

       엘라의 두 팔이 그의 목을 감쌌다.

       그녀가 까치발을 들고 섰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의 숨결이 그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그는 알아차렸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그렇게 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콕 하고 밀었다.

       그를 향해 다가오던 그녀가 “악!” 하고 소리치며 뒤로 물러났다.

         

       “무, 무슨 짓이야?”

         

       그녀는 이마를 쓰다듬으며 그를 노려봤다.

         

       그는 아차 싶었다.

       그의 근육 강도가 호랑이 이상이라는 것을 잊고 미처 힘 조절을 하지 못했다.

         

       원더스타인은 마치 딱밤을 맞은 것처럼 부어오른 그녀의 이마를 보며 혀를 찼다.

         

       “엘라 양.”

         

       그는 그녀의 이마 부위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후회할 짓은 하지 맙시다.”

         

       엘라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더니 곧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에 내 기억이 문제란 거야? 내가 괜찮다고 말했잖아 노력할게! 기억을 되찾아도 절대 당신을 미워하지 않도록.”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100% 땅을 치고 후회할 겁니다.”

       “확신해?”

       “네. 물론이죠. 자려고 누울 때마다 이불을 뻥뻥 찰걸요?”

         

       그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가득 담겨있었다.

         

       웃는 남자의 강제력은 강력했다.

       아무리 속으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도 웃음은 억제되지 않았다.

         

       그는 루즈의 무대를 거치면서 이 난감함을 해결할 실마리를 얻었다.

         

       미소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는 그의 과장된 웃음을 보고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괜한 오해를 사는 것보다농담을 입에 담고 다니는 실없는 사람으로 비치는 게 나았다.

         

       애초에 원래의 원더스타인은 그런 사람이었다.

       트릴 트릴로 시리즈 내내 그는 광대 악마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떤 상황에서건 웃으면서 농담을 던졌다.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면서도.

         

       엘라는 장난기 가득한 그의 미소를 보며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었다.

         

       하여간 이 인간은 늘 이렇다니까.

         

       “사람이 진지하게 고백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기야?”

         

       그는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걸 좋다고 받아들였다가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요? 나중에 엘라 양이 단검을 들고 저를 찌르려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걸요?”

         

       엘라는 히죽대는 그를 흘겨보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적어도 지금 찌르고 싶은 이유 하나는 확실히 생기는걸.”

       “후후훗, 조금만 참아주세요. 어쨌든 엘라 양의 정신상태가 불안정하다는 건 사실이잖아요. 엘라 양이라면 그런 사람의 고백을 받아들일 건가요?”

         

       그의 말에 엘라는 한풀 기세가 꺾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그렇긴 하지만…….”

       “이건 장담할 수 있어요. 아마 기억을 되찾은 엘라 양은 저를 보고 ‘좋아한다’라고 말한 수만큼 저를 찌르려 할걸요?”

       “아, 그래? 그럼 더 말할래.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그녀는 그렇게 한바탕 말을 쏟아내고는 씩씩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간 사과처럼 보기 좋게 익었다.

         

       원더스타인은 그 모습을 보며 크게 웃고는 여전히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여기저기가 아픈걸요? 이러다 저 죽겠어요.”

         

       정말로 칼을 맞은 사람처럼 엄살을 떠는 그의 모습에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엘라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의 이런 모습도 그녀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번은 좀 너무했다.

       큰마음 먹고 털어놓은 건데.

         

       그녀는 그의 가슴을 밀어내고는 그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그녀는 토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질투가 나네.”

       “누가요?”

       “‘미래의 나’가.”

         

       그녀의 진지한 목소리에 원더스타인의 억지웃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 엘라’를 배려해서 지금의 내 마음을 무시하겠다는 거잖아.”

       “그건…….”

         

       그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그녀가 손을 내저어 그의 말을 끊었다.

         

       “됐어. 됐다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런 남자인 걸 어쩌겠어.”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다시 웃음을 흘렸다.

         

       “이번 일로 조금 싫어지지 않았나요?”

         

       저딴 질문이나 해대는 그의 모습에 엘라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종종 스벤의 두개골을 부수고 싶다는 유라 언니의 심정에 크게 공감이 갔다.

         

       망할 광대들.

       일상이 장난이지.

         

       그녀는 그를 향해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그 반대야.”

       “네?”

       “더 좋아졌어.”

         

       그녀는 창문을 기대고 섰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미소지으며 말했다.

         

       “나를 소중히 여겨준다는 거잖아?”

         

       그녀의 말에 그는 등에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꼈다.

       중증이다.

         

       그녀는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난간에 기대어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래도 다 밝히니까 속 시원하긴 하네. 그래서 말인데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안 될까? 고백을 거절한 대가……라고 하면 좀 너무하려나?”

       “뭔가요?”

         

       그녀는 고개를 한 번 털고 말했다.

         

       “기억을 되찾는 치료 말이야. 안 하면 안 돼? 가스통 영감탱이도 그랬잖아. 지금 상태로는 자연스럽게 있다 보면 서서히 돌아올 거라고. 굳이 서두를 필요 없지 않아, 응? 나에게 시간을 좀 줘. 나중의 내가 당신을 좋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게는 해줘.”

         

       그녀의 부탁에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라면 나중의 그녀도 납득할 것이다.

       그녀 자신이 내린 결정이니까.

         

       무엇보다 그녀의 시도가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그의 개인적인 바람도 한몫했다.

         

       “좋습니다. 영감님께 말해서 치료를 중단하기로 하지요.”

       “고마워. 이해해줘서! 어, 잠시만! 내 안에서 무슨 부정적인 목소리가 들리는걸? 이걸로 3번 찌르기 추가라는데?”

         

       두 사람이 터뜨린 웃음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둘은 나란히 걸으며 오찬이 열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그녀는 지몬 마기어가 자신에게 걸던 수작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런 식으로 레이나를 15년 동안 정신적으로 옭아맸던 거지! 그애도 참 힘들었을 거야. 욕심도 많아라. 나와 레이나 둘 다 손에 넣으려 하다니.”

       “그럼 대가로 한 명을 우리에게 줘야 할 텐데요?”

       “레이나랑 친한 단원 중에 절름발이인 사람이 있는데 로드 판타스틱의 의견에 번번이 딴지를 걸더라고. 아마 그 사람을 내보내려고 했을걸?”

         

       두 사람은 공장 안에 난 지름길을 걸었다.

       원더스타인이 이곳의 구조를 전부 파악하고 있은 덕분에 그들은 늦지 않고 오찬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녀는 건물에 들어가기 전에 지금까지 계속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레이나를 나 대신 부단장으로 앉히겠다는 생각……정말 한 번도 한 적 없어?”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질문이 반가웠다.

       머리 굴리는 것 없이 정말 솔직하게 대답하면 되는 것이었다.

         

       “네. 물론이죠. 제 부단장은 당신뿐이니까요.”

         

       엘라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그거면 됐어.”

       

       그녀는 다시 그와 헤어질 준비를 했다.

       일단 서류상 다음 주 화요일까지 그녀는 황금 카니발의 임시 단원이었다.

       서로 테이블을 나눠서 앉아야 했다.

         

       원더스타인은 떠나려는 그녀에게 말했다.

         

       “엘라 양은 어때요? 황금 카니발에서 계속 머무르고 싶지 않았나요?”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고민됐다.

       그를 놀려야 하나 아니면 솔직히 대답해야 하나.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후자의 마음이 바로 튀어 나왔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었어. 내 단장은 당신뿐이니까.”

       “그거면 됐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아까 엘라가 한 말을 따라 했다.

         

       “좋아. 그럼 화요일에 보자고. 아, 맞다. 식당 안에서는 풀죽은 척할게. 로드 판타스틱이 여전히 자기 책략이 먹혀간 줄 아는 꼴을 보고 싶거든.”

       “그러시죠.”

         

       그러나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장난을 수락한 것을 후회했다.

         

       지몬과 원더스타인은 공작 바로 앞에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그는 식사 내내 울적한 얼굴을 한 엘라를 옆에서 달랬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의 암시에 걸려든 척 그의 감언이설에 넘어가는 연기를 했다.

         

       -질투 나지? 응? 질투 나지?

         

       엘라가 음향실을 통해 깔깔거렸다.

         

       솔직히 불쾌하긴 했다.

       자신을 바라보며 의기양양한 눈빛을 던지는 지몬의 얼굴도.

       다른 사람을 반한 듯 멍하니 바라보는 엘라의 눈빛도.

         

       로드 판타스틱이 아까 레이나를 보며 느낀 심정이 무엇이었는지 이제야 조금 짐작이 갔다.

         

       그래도 이걸로 모든 게 해결됐다고 여겼다.

       이번 드래프트의 규칙상 선발 단원은 임시 계약 기간이 끝나면 자신의 거취를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엘라는 다시 그가 있는 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위의 규칙이 다음과 같은 말도 내포함을 그는 잠시 간과했다.

         

       임시 단원이 남고자 한다면 그것 역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돌아가기 싫습니다.”

       “네?”

         

       공장 견학을 마치고 돌아온 원더스타인은 ‘음향실’ 능력을 사용해 가스통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엘라의 치료를 중단하는 것 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갑자기 레이나가 그와 면담을 요청했다.

         

       그와 마주 앉은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위와 같은 말을 내뱉었다.

         

       “대우는 상관없습니다. 더 많은 일을 시켜도 좋습니다. 여기 있고 싶군요.”

         

       그녀는 잔뜩 긴장한 표정을 한 채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원더스타인은 이걸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만 한 인재가 입단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규칙상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추가 선발 인원을 뽑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엘라를 되찾아오는 대신 저쪽에 한 명을 넘길 사람이 없게 됐다.

         

       곰곰이 생각하던 원더스타인은 중얼거렸다.

         

       역시 가스통을 넘겨야 하나?

         

       -제자야, 나와 통화 중인 걸 잊었구나…….

         

       …….

         

         

       [‘단원 퀘스트-지게에는 타기 싫어!’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온갖 성가신 실패 페널티로 무장한 단원 퀘스트였다.

       이후로 원더스타인은 밤새 투덜거리는 노인의 투정을 들어주어야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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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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