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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5

       진이 오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기대감으로 가득 찬 프란체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침실 테이블에 앉아 가벼운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공작님께서는 홍차를 참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이유가 있나요?”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던 헬레나가 말했다.

       

       “이유라고 할 것도 없어. 그냥 입에 맞을 뿐이지.”

       

       헬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디저트랑 같이 안 먹으면 쓰기만 한 차인데요?”

       

       모두 알다시피 홍차의 맛은 우유나 설탕을 넣지 않는 이상 쓰다. 심지어 프란체가 선호하는 홍차는 더욱더 쓰다.

       

       그래서 단 음식과 같이 먹으며 균형의 조화를 이루는데, 프란체는 단 음식을 먹지 않는다.

       

       어린 입맛의 헬레나는 이 점이 의문이었다.

       

       “단순히 어릴적부터 홍차를 좋아했어. 큰 이유는 없이 그랬을 뿐이란다.”

       

       문득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 프란체는 자신이 마시는 홍차의 맛처럼 씁쓸히 창밖을 바라봤다.

       

       프란체라고 처음부터 단 음식이 싫었던 건 아니었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남아 몸이 거부하는 것뿐.

       

       아무런 힘도 없고 모두에게 배척받던 어린 시절, 프란체가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곤 사용인들이 괴롭히려고 준 쓰디쓴 홍차밖에 없었다.

       

       가족 식사에 참여하면 사용인들은 프란체의 음식에만 장난을 쳐뒀고, 공작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두 명의 오빠는 더 괴롭혔으면 괴롭혔지, 도와주지 않았다.

       

       평범한 음식도 못 먹는데, 디저트라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이젠 그럴 일은 없지만…….’

       

       마음속 깊숙이 생긴 상처는 씻을 수 없다. 잊었다고 해도 그것은 착각일뿐 여전히 남아있다. 과거의 일이라며 넘어가면 넘겼을 뿐이지, 치유된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런가요…?”

       “그런 거야.”

       

       이 사실을 모르는 헬레나는 그저 프란체의 입맛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조용하구나.”

       “네. 항상 이 시간에는 조용해요.”

       

       현재 시각은 오전 7시. 프란체가 평소 일어나는 시각보다 2시간 빠르다.

       

       “그나저나 미안하구나. 아침 일찍부터 찾아오게 만들고.”

       

       헬레나는 손사레를 치며 고개를 연신 휘저었다.

       

       “아니에요! 공작님을 모시는 게 제 일인걸요. 그리고 사용인들이나 기사분들은 6시부터 일과를 시작하니 문제도 없었고요.”

       

       프란체는 “그러니? 다행이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쓴 홍차의 향을 맡으며 찻잔을 들이키려던 그때.

       

       덜컥! 별안간 침실의 문이 세게 열렸다.

       

       “공작님!”

       

       카자르였다. 시간이 시간인만큼 부스스한 머리와 잠이 덜 깬 눈. 상태를 보아하니 도중에 깨서 바로 달려온 거 같은데…….

       

       “무슨 일인데 그러니?”

       “이거, 이것 좀 보세요.”

       

       성큼성큼 걸어온 카자르는 프란체에게 신문 하나를 건넸다.

       

       “방금 공작령으로 배달 온 신문인데, 그 성녀가 사라졌대요.”

       

       일순 프란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라졌다니, 그게 무슨 소리니?”

       

       카자르는 떡진 앞머리를 쓸어내리며 눈썹을 좁혔다.

       

       “자세한 내용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구속되어 있던 성녀가 한순간에 사라졌는데, 수사단이랑 기사단도 못 찾고 있다네요. 정황상 그 초월 마법사가 도와준 거 아닌가 싶어요.”

       

       입술을 머금은 프란체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신문을 받아들었다.

       

       【한순간에 죄인이 된 제국의 성녀, 돌연 실종? 황실 기사단, 수사단도 알지 못해……】

       

       【‘궁내감’에 구속되어 있던 성녀가 사라졌다. 보초를 서고 있던 기사들은 마법에 당해 인지 능력과 기억에 문제가 생겨……】

       

       【궁정 마법사단도 그녀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마력의 흔적을 지울 수 있는 능력은 진짜였던 것인가? 그녀가 범인인 건 사실……】

       

       【성녀와 관계가 깊었던 새로운 황제, 레제프 페델리안이 구속되었다!】

       

       제국의 저널리스트들에 의해 신문에 도배된 성녀의 실종. 내용을 보아 단순히 사라진 게 아닌 탈옥이다.

       

       “…비상사태네.”

       

       이제 곧 진을 만날 거란 생각에 들떠있던 프란체의 어깨가 경직됐다. 성녀는 이대로 사라질 사람이 아니다. 분명 무언가 해올 터.

       

       “지금까지 도와주는 시늉만 했던 라드리엔이 나설 줄이야. 대체 무슨 목적이 있는 건지 모르겠네.”

       

       사라졌던 편두통이 몰려온다. 프란체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그 멍청한 황제는 구속돼서 못 움직이는 거 같고. 성녀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불안감에 손톱이 자연스레 입가로 향했다. 케일, 카자르, 라데아처럼 막강한 호위가 있는데도 ‘이면 결계’라는 걸 이용해서 암살을 시도했던 성녀다.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저번에 확실히 알았으니 공작저를 중심으로 역장을 펼칠 거예요.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바로 케일 씨나 라데아가 갈 수 있도록이요.”

       

       카자르의 손바닥 위에 새하얀 마력 구체가 만들어지더니, 이내 말뚝의 형태로 바뀌었다.

       

       “혹시 모르니 이걸 가지고 계세요.”

       “이건?”

       “해방의 술식을 담은 마력 무기예요.”

       

       프란체는 일단 카자르가 건넨 말뚝을 받았다. 단검만한 크기에 끝부분이 날카롭게 깎여져 있다.

       

       “만약을 대비해서 드리는 거예요. 그게 있다면 역장에 갇히셔도 상관없어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가는 카자르.

       

       “역장은 외부보다 내부에서 깨트리기 쉬워요. 그 해방의 술식이 담긴 마력 무기라면 초월 마법이라도 역장을 깨트리는 게 가능할 거예요.”

       

       이전의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만든 카자르의 고유 마법이다.

       

       “그래, 이게 있으면 안심이겠구나. 고마워.”

       

       프란체는 말뚝을 어루만지며 침을 삼켰다. 전처럼 쉽게 당하진 않을 거다.

       

       “이제 대비해야겠구나.”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프란체는 카자르를 지그시 바라보곤 말을 이었다.

       

       “일단 씻고 오렴. 다른 사람들도 만나야 하니.”

       

       그제야 카자르는 아, 하고 자신의 행태를 살폈다. 떡진 머리와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 구겨진 잠옷. 도저히 귀족 레이디라도 믿을 수 없었다.

       

       “크흠, 빨리 정리하고 갈게요.”

       

       

       * * *

       

       

       긴급 상황인지라 급히 소집된 데카르트의 모두들. 프란체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케일, 브리핑이 끝나면 기사단을 이끌고 직업 병사들을 소집시켜. 성녀는 초월 마법사랑 같이 있으니 공작령의 경계 상태를 전시 상황으로 바꾸고.”

       

       케일은 “알겠다.”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데아는 상시 내 옆에 붙어있어. 그 성녀가 언제 어디서 나올지 모르니까.”

       

       라데아도 “네.” 하며 해답했다. 카자르는 품을 주섬거리더니 푸른빛의 마석이 붙은 마법 공학 기계를 꺼냈다.

       

       “공작님, 여기 마탑으로 향하는 통신 마도구예요. 직접 연락하셔서 마법사들에게도 긴급 상황이라는 걸 알리시죠.”

       

       프란체는 고개를 끄덕이곤 통신 마도구를 받아들었다. 중앙에 있는 마법식을 활성화하니 뒤에 붙은 마석이 빛나며 반짝였다.

       

       치직- 치지직-

       

       [유플레인 수석교수님? 마탑의 그린에버 부교수입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마도구에서 청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도 혁명의 엄청난 발명품이었지만, 지금은 감상에 잠길 시간 따윈 없었다.

       

       “마탑주, 데카르트 공작이란다.”

       [앗, 마탑주님! 이런 실례를.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긴급 상황이야. 마탑의 마법사들을 전부 전시 상황으로 돌리렴.”

       [저번처럼요?! 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미안한데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해줄게. 마탑의 마법사들은 맡길게.”

       [네, 일단은 알겠습니다!]

       

       치직- 치지직. 마도구의 불빛이 꺼지며 통신이 끊겼다. 이것으로 할 수 있는 대처는 끝났다.

       

       “됐어. 이제 진도 곧 도착할 테니 라드리엔이 직접 쳐들어온다고 해도 문제는 없을 거야.”

       

       그제야 불안이 풀린 프란체는 집무실 의자에 등을 맡긴 채 고개를 젖혔다.

       

       “엑시드에서 연락이 왔었나요?”

       “어제 국경에 도착했대. 내일이면 올 거야.”

       “드디어 오나 보네요.”

       

       좋은 소식에 긴장이 사라지고 단숨에 얼굴이 밝아진 카자르. 강력한 초월 마법사라도 진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정강이는 못 차겠지만… 누구보다 든든한 아군이 오니 마음이 놓여요.”

       

       지금까지의 일을 보아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만, 만일 라드리엔의 마음이 바뀌어 소미레를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면 답이 없었을 거다.

       

       라드리엔은 인과율을 비틀어 인간의 금기를 어기고, 필멸을 뛰어넘은 초월자.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그녀를 상대로 숫자는 의미가 없다만.

       

       “진이 있다면 무서울 게 없지.”

       

       프란체의 말대로였다. 뒤에서 듣고만 있던 라데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기, 제가 잘 몰라서 그런데 진 오빠가 초월 마법사가 와도 두려울 게 없을 정도로 강한가요?”

       

       그 질문에 카자르와 프란체는 눈을 끔뻑이며 라데아에게 시선을 모았다.

       

       “…대륙제일검이라고 못 들어봤니?”

       “국가를 상대로 견제할 수 있는 괴물이야.”

       “당연히 그건 알고 있는데요…….”

       

       자세한 정치, 시사를 모르는 라데아도 진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거창한 소문과 바렌베르크 왕국의 전설적인 존재이잖나.

       

       다만 그의 힘을 본 건 재앙의 파도에서 보여준 학살뿐인지라 초월 마법사와 진 중 누가 더 강한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때 황궁의 탑에서 만났던 초월 마법사 할머니보다 강한가요?”

       

       라데아가 확실하게 체감한 강자는 초월 마법사, 라드리엔 폰 그라시아가 유일했다.

       

       “음, 제국이 바렌베르크 왕국과 전쟁한 건 알고 있지?”

       

       프란체의 말에 “네.”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라데아.

       

       “라드리엔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존재인지는 그때 탑에 같이 갔으니 알고 있을 거야. 그렇지?”

       

       계속해서 고개를 주억이는 라데아. 프란체는 설명을 이었다.

       

       “그 라드리엔도 전쟁에서 제국이 결착을 지을 때까지 진을 상대로 시간을 버는 게 전부였어. 이 정도면 설명이 됐니?”

       

       아, 하고 고개를 주억이는 라데아. 그런 마법사가 시간을 버는 게 전부라니, 진의 성격을 봤을 때 도저히 그런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둘이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당사자만 알겠지만, 전투가 벌어진 장소는 다시는 인간이 살 수 없는 황폐한 땅이 되었다더구나.”

       

       바렌베르크와 제국 사이에 있는 경계선. 그곳이 진과 라드리엔이 전투를 벌인 장소다.

       

       그 땅은 더 이상 생명이 태어나지 않게 되었고, 모래만이 휘날리는 불모지가 되었다.

       

       “…이름을 들어서 뭐하는 사람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사람이었네요.”

       

       시간과 공간을 마음껏 제어하는 마법사도 쩔쩔매는 소드 마스터라니. 그때 보여준 말도 안 되는 검기보다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걸까? 라데아는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아무튼, 그런 거야.”

       “진 씨에게 의지하는 이유가 있어.”

       

       프란체와 카자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라데아였다. 그러던 그 순간.

       

       “미안한디, 거기엔 살짝 틀린 정보가 있으.”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 모두가 황급히 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뭐야?!”

       “당신은…!”

       “갑자기 여길 어떻게…?”

         

       스릉! 케일과 라데아가 다급히 검을 뽑았고 카자르는 양손에 마법진을 펼쳤다. 프란체도 서둘러 손바닥 위에 흑마법을 전개했다.

       

       “킬킬,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계획의 마지막으로 향하자구.”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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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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