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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5

       “…….”

        

       “…….”

        

       엄청나게 어색한 순간이었다.

        

       검은 츄리닝 바지에, 목 늘어난 티셔츠. 바로 조금 전까지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떡진 머리카락.

        

       누가 봐도 그냥 평범한 아저씨였다.

        

       사실 평범한 아저씨라고 해도, 소희네 아버지를 본 것이 처음이었지만.

        

       아무튼 이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소희네 아버지가 입고 있는 옷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아까 내가 집에 왔을 때는 몹시 딱딱해 보이는 쓰리 피스 정장에 넥타이까지 하고 있어서 위압감이 굉장히 강해 보였는데, 왠지 지금 이 복장의 수아 아버지는 수아랑 반말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목말라서 나왔냐?”

        

       한참을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아저씨가 그렇게 물었다.

        

       “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저씨는 말없이 찬장에서 컵을 하나 더 꺼내 내려놓고, 물을 따랐다.

        

       그리고 그 컵을 들어 말없이 내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나는 양손으로 그 컵을 받아들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어른에게 이런 말을 했던 적이 별로 없었다. 애초에 나와 사용인들은 대화라는 걸 거의 하지도 않았고, 나이 차가 얼마나 나건 굳이 존중해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상호존중이라는 것이 존재조차 하지 않는 사이였으니, 아무리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사람이 건넨 물건이라도 내가 한 손으로 받는 것은 이상한 것도 없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은 상황 파악을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겠지.

        

       그 사람이었다면 이런 고민은 하지도 않았겠지만.

        

       “…….”

        

       그런데, 어떻게 마셔야 할까.

        

       내가 평소에 텔레비전을 자주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쪽으로 상식을 얻을 기회는 있었다.

        

       그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에게 술을 받으면 몸을 돌려서 마셨으니까.

        

       “…….”

        

       잠시 고민하다가, 그 사람이 했던 것처럼 하기로 했다.

        

       상체를 살짝 옆으로 돌려, 양손으로 컵을 잡은 채로 물을 마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세가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친구 아버지 앞이다. 최소한의 예의는 차려야 했다.

        

       “…….”

        

       그리고, 수아 아버지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몇 번에 나눠서 물을 마시고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수아 아버지는 아직도 컵을 들고만 있었다. 마치 마시는 것을 깜빡했다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거기에 뭐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지금 내 손에 들린 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싱크대에 넣기에는 아저씨가 바로 그 앞에 서 있었고, 그렇다고 옆에 그냥 두고 가는 것은 너무 무례한 짓 같았다. 넣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더더욱 할 말이 아닌 것 같았고.

        

       “……이리 줘라.”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수아 아버지는 나에게 한쪽 손을 뻗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국 그 손에 내가 마신 컵을 내주었다.

        

       아저씨가 싱크대에 그 컵을 넣는 것을 보면서, 나는 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예절을 모른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일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예절을 차릴 필요가 없는 어른들만 만나와서 그런지, 막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어른’을 앞에 두고, 엄청나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소희네 아버지를 대할 때는 그래도 소희가 옆에 있었다. 소희는 자신의 아버지께 존댓말이 아닌 반말을 했고, 소희의 아버지도 자기 딸을 마치 오랜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허물없이 대했다.

        

       하지만 수아와 수아 아버지의 관계는 그런 종류의 친밀한 관계는 아닌 것 같았다.

        

       수아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분명 나름대로 모녀간에 친밀감은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 법이었으니까.

        

       “……수아가.”

        

       여전히 싱크대 쪽을 바라보고 서 있던 수아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먼저 말을 걸었다는 걸로 알고 있다.”

        

       순간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가, 그게 수아와 그 사람의 첫 만남을 이야기하는 거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물론 내가 그런 것으로 이야기를 바꾸긴 했다. 안 그래도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사람이었다. 거기 대고 ‘사실 제게는 인격이 두 개가 있는데, 그때 수아가 인사한 상대는 저는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하게 보일지 알고 있으니까.

        

       당장 조금 전에도 수아와 같은 침대에서 자고 있던 나였다.

        

       “수아와 아주 친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네,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고민 없이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실제로 친했으니까.

        

       사과받아주기 힘들다고 생각할 만큼.

        

       게다가 이건 대외적으로도 그랬다. 수아는 나와 친하게 지내다가 그때까지 만들어둔 지인들을 한 번에 다 잃었던 적이 있었고, 가출해서는 내가 사는 저택에서 지내기도 했다. 심지어 지금은 내가 가출해서 수아네 얹혀있는 셈이었고.

        

       그런데 이제 와서 ‘친하지 않다’라고 하는 것은, 수아의 뒤통수를 치는 일이겠지.

        

       이상할 정도로 착한 수아라면 그것조차도 ‘다 내 잘못이야’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려고 하겠지만.

        

       “……그렇구나.”

        

       수아의 아버지는 고개를 숙인 채로, 물컵이 들어간 싱크대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그렇게 드러난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달빛에 비친 희미한 시야 안에서도 그렇게 보일 정도였으니, 실제로는 얼마나 더 딱딱한 표정일지 알 것 같았다.

        

       “……혹시, 수아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나?”

        

       “……네?”

        

       다시, 나의 사고를 넘어선 주제가 나왔다.

        

       “만약 수아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다면, 거기에는 수아의 잘못이 없다. 전부 내 잘못이야.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다면, 수아가 아니라 나를 원망해다오.”

        

       “……네?”

        

       내 입이 살짝 벌어졌다.

        

       혹시, 우리가 자기 전에 나누던 대화를 들은 걸까?

        

       ……아니,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할 것 같은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사람은 첫 이미지로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지금 이렇게 딸을 걱정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를, 여쭈어봐도 될까요?”

        

       그래도 여전히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라, 나는 그렇게 물었다.

        

       “……수아가 중학생 때 너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 것은, 전부 내가 시킨 일 때문이었다.”

        

       “……네?”

        

       그리고, 나는 생각하지도 못한 말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

        

       결국, 우리는 어느새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다. 서로 거리를 최대한 벌리고 마주 본 상태이기는 했지만.

        

       사실,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누가 우리를 봤을 때 우리 둘 사이에 흐르는 불편한 기류만으로 절대로 밀회라는 판단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아버님께서는 수아를 걱정해서 그랬다는 건가요?”

        

       “정확히는, 이 회사를 걱정했지.”

        

       수아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는, 내가 다른 아이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와 같았다. 이런저런 안 좋은 소문이 돌았고, 그렇기에 그런 불이익을 자신의 회사가 당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수아가 나와 친해지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소문을 믿으셨다고요?”

        

       순간 예의를 잊고, 나는 그렇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물론, 나도 그 소문을 믿었다. 대부분의 아이도 믿었을 거다. 어쩌면 일부 어른도.

        

       하지만, 한 그룹의 회장이라는 사람이 그 소문을 믿었다는 것은 다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소문에 대한 진상 정도는 파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양행’이라는 뜻이 뭔지 알고 있나?”

        

       아마도 이원양행의 그 양행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

        

       “양행이라는 것은, 오래전, 아직 서양과 교류하는 것이 어렵던 시절 서양의 물건을 가지고 오는 것으로 돈을 벌던 회사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무역회사지.”

        

       수아 아버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구한 말에 이 회사가 생긴 이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해왔지만, 그래도 이 회사의 기본은 무역이야. 물론 시대가 바뀌면서 방향도 바뀌긴 했다. 해외에서 들여오는 것 보다는 국내에 있는 것을 파는 것이 더 많게 되었지. 한국은 이제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니까.”

        

       “…….”

        

       나는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수출, 수입하는 물건 중에는 유진 그룹의 물건도 있다.”

        

       “네?”

        

       “그래. 놀랍지? 그렇게 큰 회사가 지사가 없는 곳도 있다니. 하지만 아무리 큰 회사라도,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곳으로 일부러 걸어 들어갈 생각을 가진 경우는 별로 없어. 그건 유진전자도 마찬가지다. 특히 아프리카 같은 곳은 지사가 없는 곳도 흔하지.”

        

       “그런 곳에, 유진 그룹 대신 물건을 팔고 있는 건가요?”

        

       “그렇다.”

        

       “…….”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하지만 시장이 형성되지 못했을 만한 곳이라면…….”

        

       “굳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

        

       내가 입을 다물자, 수아 아버지는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유진 그룹이 ‘가장 큰’ 고객이지. 시장을 탐색하고 형성시키는 그 과정을 우리에게 맡긴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그 나라와 유진 그룹을 연결해주고 있는 거고. 유진 그룹이 하지 못하는 일을 우리의 지분과 능력으로 메꾸고 있는 거다. 일종의 동업자 관계지. 그리고, 그렇기에…….”

        

       그 소문의 일부만 사실이라도, 이원양행은 꽤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다른 어린아이 하나의 가치보다 훨씬 큰 것이다.

        

       “…….”

        

       나는 뭐라고 할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사과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낼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수아의 아버지가 말했다.

        

       “적어도 그 관계에서, 수아의 잘못은 없다. 수아는 오히려 그런 압박을 극복해내려고 했을 뿐이지…….”

        

       “……그런가요.”

        

       생각보다, 목소리는 제대로 나왔다.

        

       사실 그렇게까지 충격을 받지는 않았으니까.

        

       이유야 어쨌건, 결국 내가 예상하던 것과 비슷한 이유로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렇기에 수아를 원망할 이유는 없다.

        

       ……수아는, 이런 상황에서도 나에게 말을 걸 용기를 보인 거니까.

        

       자신의 아버지의 의견에 반해서.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수아의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음.”

        

       수아의 아버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내가 수아에게 어떤 복수를 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다. 수아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심지어 자신이 쌓아 올린 것을 포기하면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려고 했으니까.

        

       다만, 아무리 그래도 이 사람을 좋게 보기는 힘들겠지.

        

       ……딸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수아는 방치되어있었으니까.

        

       ……물론,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수아가 깨닫고 아버지에게 사과받을 수 있어야 하긴 하겠지만.

        

       그때가 되면, 나는 그저 수아를 뒤에서 지원해줄 생각이다.

        

       지금의 수아가 나에게 그렇게 해주었듯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헤엄치는새님, 후원 감사합니다!

    150화 축하 감사드립니다! 매일매일 꾸준히 소설을 연재하다보니 벌써 150화네요! 사실 전작 연재할때처럼 한 화에 6천자 분량이었다면 지금까지 이 절반정도밖에 쓰지 못했겠죠. 저에게 이런 아이디어를 주신 것도 독자 여러분이고, 제가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매일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추천해주시는 분들, 그리고 저의 글을 기다려주시는 분들 덕분에 이렇게 항상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분들이 글을 읽어주시고 좋아해주시는 것에, 하루하루 마음이 벅찹니다.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렇게 축하인사까지 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저의 글을 읽어주시며 쓰신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도록, 완결에 닿을 때까지 꾸준히 정진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후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뒤틀린황천의독자님, 후원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외전을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원작과 관련되었지만 본편의 주인공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은 외전으로 풀어나가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렇게 원작과 관련된 외전들은 게임 상의 스크립트에서 텍스트 부분만 옮겨놓은 것, 혹은 누군가가 게시글 형태로 써둔 것이나 나중에 원작자가 팬서비스로 쓴 단편같은 식으로 한 편 내에서 완결나는 형태가 될 것 같습니다! 만약 독자 여러분께서 좋아하실 것 같은 내용이 생각나면 본편에 해가 되지 않는 수준에서 써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이렇게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께서 좋아해주실 수 있는 글을 꾸준히 써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후원 감사드립니다! 이 소설이 완결나고, 제가 약속드린 외전을 전부 쓸 수 있을 때까지 쭉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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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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