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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5

        

         전뇌화야 지금도 엘리시움 사에서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주제이니 제외하고.

         

         초고밀도 저장장치의 개발과 곳곳에 세워진 대규모 데이터 센터의 존재를 바탕으로 거의 모든 자료들이 완전 전산화가 이루어진 이 정보 범람의 시대는.

         맞는 자료를 찾아내고 취합할 능력만 있다면 앉은 자리에서도 옆 도시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사용자의 기량을 탔다.

         

         오죽하면 전문적으로 필요한 데이터 프로파일링(Data Profiling; 자료 수집 및 분류 그리고 추적)을 전담해주는 처리 기능사나 프로파일러가 올해의 인기 직종으로 소개될 정도로 말이다.

         

         하여간 돌무더기에서 옥석을 가려내고, 얼핏 연관성이 적어 보이는 단편적인 사실들을 이어 붙여서 보기 좋게 대령하는 건 어디까지나 실무자들의 책임이라 하더라도.

         

         최종 결정권자의 통찰력이 그에 뒤떨어져서야 일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만무했으니.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문제는 딱 맞아 떨어지는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데다가, 지나치게 단편적인 사실밖에 따로따로 존재하지 않기에… 상당히 골치 아팠다.

         

         차라리. 변덕스러운 상임 이사가 직접 판단하겠다고 못박아 둔 게 다행이리만큼.

         

         

         “에다마츠님, 연락이 닿았습니다. 지금 아나스타샤 연구원 분을 모셔오고 있다고 합……!?”

         

         잠깐 문밖에서 취조 절차랍시고 자리를 비운 카이쥰 사원을 재촉한 후, 이사실 안쪽으로 상반신을 넣어 간략한 보고만 전달하려던 카쿠바리 실장이 혀를 씹었다.

         

         비서실장이 저질렀다 하기엔 어리숙한 미스였지만 현재 이쪽 소속 직원들이라면 모두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벌써? 아니, 드디어. 라고 하는 게 맞겠군. …그래.”

         

         죽은 눈…이라 하나? 그것과는 조금 다르게 초점이 어긋난, 과중한 스트레스로 인해 어딘가 내면의 균형이 망가진 것 같은.

         위험한 정도로 동공-불길-이 일렁거리는 에다마츠의 두 눈을 마주한 그는 실수를 정정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고개를 숙여 보였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런 가벼운 결례에 트집을 잡을 마음이 없다는 걸 재차 확인했는데도 계속 신경 쓰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니까.

         

         ‘끄응…. 겨우 다시 만나보는 것 정도로 저 광증이 나으신다면 싸게 먹히는 장사긴 한데….’

         

         …즉흥적이고 때로는 난폭하며, 언제나 지긋지긋한 허무주의에 찌들어 있을지언정 저렇게 무너질 것 같은 태도를 견지한 남자는 아니었다.

         까칠한 태도를 내비치는 경우가 많아도 오히려 분위기 자체는 아마기 구성원 중에서도 가벼운 편에 속했지.

         

         그러나, 최근 업무 시찰에서 웬 여성 용병. 아나스타샤라는 인물에게 홀린 뒤로는 얘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아, 이제 와서는 웬 용병이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틀렸다. 대대적인 신원 조회가 다시 이루어진 결과, 웃기지도 않게 에나마 직원 명부에서 얼굴 조형이 일치하는 인명 데이터가 발견되었으니까.

         

         일 년 가까이 실종 처리되었던 인물이 실은 몰래 본사 근처에 숨어있었다. 그것도 근래 몇 달이나.

         이것만 해도 방심하고 있던 담당자들 사이에서 곡소리가 나오는 상황인데, 심지어 본인이 직접 소속되었던 연구소 DB를 만지는 업무까지 맡았다…?

         

         단순히 웃어넘길 게 아니라 여럿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따라서 본래라면 수상하기 그지없는 아나스타샤를 바로 안으로 들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똑바로 직시하겠다. 그대가 누구인지, 아니면 내가 마침내 미친 건지.”

         

         “…….”

         

         달려들기 직전의 짐승이나 낼 법한 으르렁거리는 소리. 거기에 더해진 낮은 신경성 이갈이까지.

         지금의 에다마츠를 억제할 인물은 없었다. 적어도 여기에는.

         

         그렇기에 카쿠바리는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가령 직원들의 입단속부터 걱정하며 몸을 빼냈고.

         부하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그 와중에도 방의 주인은 뒤틀린 사고를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주어진 정보, 근거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하나, 누군가 고의로 일부 내용을 누락했다고 의심되리만큼. 복구된 데이터에서 회장이 주목한 프로젝트의 최신 근황과 연관된 자료만 압도적으로 부족했고.

         둘, 기껏 살아 돌아온 연구원이 의미심장하게 숨어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셋, 다른 이들은 몰라도 에다마츠 자신은 지울 수 없는 기시감이 낙인처럼 찍혀버렸다는 것.

         

         억지를 부린다면 얼마든지 이런저런 가설을 가져다 붙이고 모함하는 걸로 설명할 길은 많았다.

         

         다른 기업이 보낸 첩자, 이중 스파이, 매수, 협박을 통한 인질극, 신원 위조.

         에나마 또한 무궁무진한 방식으로 음모를 꾸미는 측인 만큼, 적들이 심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는 왕왕 있었다.

         

         하지만 연구소가 초토화된 것까지는 넘어가도. 아나스타샤 개인의 일탈을 그렇게 몰아가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개운하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에다마츠에게 남았다.

         

         논리나 이성이 아닌, 온전히 직감에 의거한 억측과 의심.

         무엇보다도 그 시선, ‘마주치는 건 곤란하다. 예상 외다.’ 같은 당혹감이 가득 담겼던 태도. …그리고 다시는 느껴보지 못할 줄 알았던 미지의 향수.

         

         그간 자세한 뒷조사를 추가로 진행하고 얻어낸 자료들을 교차 검증하면서도 답을 얻는데 실패한 질문들이 튀어나갈 준비를 마쳤다.

         

         알려주세요. 당신은 나를 알고 있습니까?

         모두가 부러워하는 메가코프 소속 로열 블러드, 태어난 시점부터 모든 물질적 풍요와 최소한의 권력을 보장받은 인격 파탄자.

         

         어째서 당신은, 질투는커녕 일말의 부러움조차 없이 나를 동정하는 눈길로 바라보신 겁니까.

         …마치, 이 예민한 철부지 도련님의 답답함과 애증을 전부 이해해주는 것처럼.

         

         “실례하겠습니다 이사님. 아나스타샤 마카로비치 연구원을 대동하고 왔습니다. …카쿠바리 비서장께서 저는 입실하지 말고 기다리라 명하셨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되는대로 장비품은 압수했지만 신체 검사가 아직인데….”

         

         “…상관없어. 들여보내.”

         

         간혹 보고서를 들을 때 들어본 얄팍한 목소리다. 분명 비서실 소속 직속 직원 중 하나였는데…. 기색을 읽는 능력이 뛰어난지 원하는 바를 금방금방 알아듣고, 거슬리지 않아서 좋게 눈여겨보던 녀석.

         

         안타깝지만 지금 그의 모든 신경은 다른 곳에 쏠려 있었기에, 아무리 말단 직원이 세심하게 아첨하더라도 정당하게 평가받기는 힘들었다.

         

         문이 살짝 열렸다가 이내 닫힌다.

         엉거주춤하게 자세로 나타난 소녀만이 방 안에, 에다마츠의 눈앞에 남았다.

         

         “그으… 네, 어… 음. 안녕하십니까 이사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연구원님. 물론 저희가 완전 초면은 아닙니다만.”

         

         “…아하핫.”

         

         다른 사람이 지었다면 불쾌하게 여겼을 어색한 웃음마저 어딘가 간질거렸고.

         갈망하던 검은 소녀를 마주하자, 온갖 질척거리는 부의(Negative) 감정으로 응어리졌던 눈이. 더 나아가 얼굴 근육이 자연스레 풀어졌다.

         

         아니, 같은 공간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모되어가던 정신이 회복되는 것 같았다. 사는 게 어렵고 복잡한 문제의 연속이라는 걸 알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조금 더 가까이서 살펴야겠다. 눈에 남는 생김새, 사소한 버릇,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체취. 이런 것 하나하나가 모두 상대를 특정하는데 쓰일 수 있는 재료니까.

         

         돌연 솟아난 충동에, 그는 구태여 저항하지 않았다.

         

         덜컹! 앉아있던 의자를 밀어버리고, 상석에서 가볍게 일어난 에다마츠가 아나스타샤에게 다가갔다. 그의 기행에 놀란 듯 놀라 움츠러드는 소동물의 모습에 입꼬리가 승천했다.

         

         “앉으시지요. 에나마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느라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 그간 겪으셨던 일을 좀 들려 주시겠습니까?”

         

         “…카이쥰 씨에게 털어놨던 내용을 반복하는 걸로도 문제가 없다면요.”

         

         마주앉은 두 사람의 이야기가 길어진다. 막연하게 시간이 흐른다.

         

         한 쪽은… 혹시나 미래의 대악당과 맺은 비밀 협정이 들킬라 노심초사, 모순점이 나오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면서 단어를 골랐고.

         반대편은 필요한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그저 오래된 기억과 현재의 그녀를 비교하기만 했다.

         

         모든 아이에게는, 어린 생명에게는 부모가 세상의 전부인 시기가 있다.

         흔들리는 어른의 옷자락을 무의식적으로 쫓고, 꺼내지는 말을 의미없이 따라 해보고, 행동 하나하나를 동경하는 달콤한 유년기가.

         

         영원할 수 없기에 아름답다.

         허나 소중히 품고 살아가야 할 삶의 한 페이지를 잃어버렸을 때의 입을 상처는 개인마다 다른 법.

         

         단지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돌파구를 찾아 나선 아버지와 비틀린 성장 환경으로 인해, 에다마츠는 그 짧고도 애틋했던 나날과 아득한 추억에 아직까지 사로잡혀 있을 뿐이었다. …정말 끔찍한 집착이지만 죽은 사람을 살려낸다는 게 에나마에게는 아주 허황된 얘기도 아니었고 말이다.

         

         “…….”

         

         상념을 떨쳐내고, 다시금 집중력을 끌어올린 그가 건너편의 아나스타샤를 살폈다.

         

         외형이 닮았나? 약간은.

         윤기가 흐르는 흑발은 가슴을 아련하게 만들었다. 어머니, 스즈나시 아마기는 조금 얌전하고 나풀거리는 전통 의복을 더 선호하셨고. 나이가 있으셔서 성숙하고 인자한 이미지가 강했지만.

         

         분위기는 어떤가? 비슷하다.

         사람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천부적인 매력이 주변에 감돈다. 막연한 바램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시선을 빨아들이는 인력, 사랑받는 운명-별- 아래에서 태어난 아우라가 느껴진다.

         

         추가로 수상한 점이 있나? 너무 많았다.

         이쪽의 눈치를 보는 조심스러운 태도야 넘을 수 없는 입장 차가 있으니 그렇다 쳐도, 살금살금 까치발을 들고 사건의 주체에서 빠져나가려는 언사와 자신은 어디까지나 책임감을 가진 연구원에 불과하다~ 하고 내세우는 건 노골적이기까지 했으나.

         

         ‘…역시, 착각이었나.’

         

         바라만 보고 있어도 기쁘다. 호감 또한 있다. 하지만 그게 증명이 필요 없는 확신으로 이어졌냐 하면…… 글쎄.

         

         결정적인 무언가가 부족하다. 마음은 동했지만 아직은 최후의 일선을 넘게 할 원동력이 결여되어 있다.

         

         상임 이사와 연구원, 주인과 손님, 관련 없는 두 개인이 아닌 그 이상의 인연이 있지 않냐고 추궁할 핵심이 되는 근거가.

         

         “후우…. 뭐, 좋습니다. 꼭 오늘만이 얘기를 나눌 기회는 아니니까요.”

         “……네?”

         

         사람이 열심히 그럴싸한 알리바이를 주워섬기고 있거늘, 시큰둥하게 듣다가 마지못해 넘어가준다는 말투에 아나스타샤의 눈썹이 한차례 꿈틀거렸지만. 따로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녀로서는 적당히 넘어가준다면 더 바랄 게 없었으니까. …또 이런 식으로 신경전을 신청하는 건 곤란했지만.

         

         한편 에다마츠는… 터무니없는 가정에 매몰되어서 헛된 꿈을 꾼 기분이었다.

         

         이게 다 오츠게 회장이 궁극적인 부활이니, 인류를 위한 진보니 하면서 정신나간 가설을 지껄인 탓에 혹시나 하는 허황된 상상을 품어서 생긴 일이었다.

         

         해당 연구는 닥터 마카로비치 본인이 없으면 진행이 어려운 수준의 과업이라는 문제점도 있어서, 그가 살아있는 게 아닌 이상 재가동을 슬슬 포기해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던 참이었으니.

         

         원래라면 그녀의 신분의 진위 여부만 확인한 후, 죄를 묻거나 다른 업무에 배정하면 끝났을 간단한 면담이었거늘.

         

         대체 자신은 만나서 뭘 어찌 해보겠답시고, 무슨 기대를 하고 수면도 줄여가면서 밤을 지새웠던 걸까…?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미움 받을 각오조차 없으면서.

         

         결국 완전한 타인일 가능성이 있는 상대에게 다짜고짜 진짜 이름을 알려달라 하거나, 어머니라고 불러봐도 되냐고 매달릴 수 있을 만큼 그는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엄연히 말해서 미친 사람은 맞았다. 그저 만약에 완전히 엉뚱한 넘겨짚음이었을 경우 이 여인이 보일 거절이나 혐오가 더 두려웠을 뿐이지.

         

         가련한 짐승. 똑같이 어머니의 치맛자락에 사로잡힌 주제에 아버지만 증오하는 머저리.

         

         “흐음….”

         

         홀로 마른 세수와 자학을 거듭하는 에다마츠의 눈치를 보던 아나스타샤가 먼저 긴장을 풀었다.

         서로의 의중을 살피던 영양가 없는 대화가 끝났다고 생각했기에, 딱히 적의도 느껴지지 않는 만큼 목숨의 위협은 사라졌다고 믿었기에.

         

         …지나치게 섣부른 안심이었다. 소녀가 이 남자를 상대로 조심해야 할 건 절대 그런 종류의 위험이 아니었으니까.

         

         “……?”

         

         멍하니 이사실 내부를 구경하는 그 시선을 에다마츠가 손 틈 사이로 뒤쫓았다.

         별로 특별한 기대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관심을 가질 법한 물건이 있던가… 하는 느슨한 감상을 품고 지켜보고 있었던 뿐이다.

         

         눈이 어질러진 책상, 미처 정리하지 못한 서류 뭉치들, 무의미하게 켜져 있는 온갖 전자기기들을 지나쳐 사무용품 무더기에 섞인 오르골에 멈췄다. 그리고 수려한 동공이 커진다. 마치 그게 어떤 물건인지 아는 것처럼.

         

         ‘……설마.’

         

         잠깐, 그저 낡은 골동품이나 구시대의 산물이 신기해서 쳐다보는 거라면 몰라도. 저런 식으로 놀란 기색을 내비칠 이유가 있나? 젊은 연구원이 이런 골동품을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한데?

         

         저기에 얽힌 사연을. 유품을 알아볼 방법 따위는 없었다. 없어야 했다. 저건 회장조차 모르게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그의 작은 손에 직접 쥐어 주었던 장난감이니까.

         

         실망감에 젖어, 나른하게 풀어져 있던 몸이 예고없이 앞으로 기울어진다.

         팔은 이미 거칠게 움직여 오르골을 낚아챘다. 왜? 아나스타샤의 앞에 증거처럼 들이밀고, 반응을 살피기 위해.

         

         “당신. 이게 뭔지 압니까…!!”

         

         “!! 무, 뭐. 그 오르골. 이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막 다루다 부서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내 탓 아닙니다!?”

         

         기행에 놀란 그녀는 반대로 몸을 뺐다. 행여나 잘못 건드릴라 격렬한 손사래까지 치면서.

         이건 단순히 짐작가는 정도가 아니다. 분명, 틀림없이 낯이 익은 사물을 대하는 태도였다.

         

         막다른 길이라고 외면하려던 에다마츠의 머리속에서 뉴런의 방전이 일어난다.

         

         조각조각 끊어졌던 시냅스가 폭주하며 다시 이어지고, 미친듯이 불꽃이 튄다. 사고가 공회전하며 광견의 입마개를 풀어버리고 후각을 일깨웠다. 차갑게 식어가던 마음과 욕망이 재점화된다.

         

         생각, 생각해라. 죽어도 설명해내라. 이 자리가 파하기 전에, 어렵게 맞이한 손님이 떠나기 전에 진상에 도달해야 한다.

         

         왜 헤이롱 코퍼레이션은 하필 델타 연구소를 목표로 삼은 것일까. 겉으로는 변변한 결과도 못 낸 채 지원금만 소모하던, 에나마 내부에서는 악성 시설이나 미묘한 좌천지로 불리던 소문 무성한 유배지를.

         

         ……하, 왜냐니. 그야 이유는 한가지밖에 없지 않나?

         오랜 세월 곡괭이질을 거듭하던 허름한 광산에서 드디어 금맥이 발견되었으니까.

         보태 준 건 없어도 다른 메가코프가 선두로 치고 나가는 건 항상 경계해야 하니까.

         

         이건 직감의 영역조차 벗어났다. 설명할 마땅한 논리도 없었고.

         지나친 갈증으로 죽어가던 조난자가 물냄새를 맡은 것 마냥 근원지를 더듬는 건 순전히 본능의 힘이라 할 수 있었다.

         

         혹은… 원하는 결과를 얻고자 과정을 무시해버리는 폭거에 가깝기도 했고.

         

         ‘마카로비치 박사. 당신, 설마 기어이…? 그 허황되고,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 같은 연구를 완성했다고?’

         

         “저, 저기요…? 에다마츠 이사님…?”

         

         조용히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 거기에 더해 그제서야 뭔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아주 치명적인 말실수를 했음을 깨달은 아나스타샤의 목소리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렸지만… 이미 남자는 앞에 놓인 실낱 같은 확률을 뚫어낸 꿈의 실현에, 광휘에 눈이 멀어버린 지 오래였다.

         

         어색한 태도나 쭈뼛쭈뼛한 언동? 짐작가는 바가 있다.

         

         회장이 자꾸만 만들어내는 인조인간 또한 많은 개선점 중 하나로 기억과 경험의 부재, 불완전성이 항상 거론되었으니. 상당히… 젊어지신 만큼 그녀의 기억 또한 손상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자신이 본능적으로 첫만남에 직감했던 것처럼, 모든 관계를 잃어버린 어머니도 그저 본능을 따라 추억이 서린 애장품을 알아보고 그리운 가족을 찾아서 돌아오신 거라면….

         

         “아니…… 대체 왜 이러세요, 진짜.”

         “…….”

         

         감히 꿀 떨어진다고 표현하기도 실례인, 작열하는 관심을 받은 아나스타샤가 한탄해도 늦었다.

         집착은 쉽게 끊어지지 않기에 집착이라 불리는 법이다. 이제는 그녀가 다른 방법-탈출구-를 찾을 차례였다.

         

         

         

         아아, 어머님. 거기 안에 계셨습니까.

         돌아오셨으면 오셨다고 말을 해주시지. 아무리 짓궂은 장난을 쳐도, 여린 마음에 아이가 놀랄까 봐 함부로 화도 안 내시던 모습은 여전하시군요.

         

         혹시 이 지독한 가문에서 벗어나고 싶으셨습니까? 허면 아예 돌아오시면 안 됐습니다.

         비정하게. 작별 인사 같은 건 나눌 생각조차 하지 말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셨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외려 기쁩니다.

         이렇게 바뀌셨다면… 그것 또한 자연의 섭리라 소자는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윤리니 도덕이니 하는 복잡한 사연 없이, 바라건대 당신을 사랑할 기회를 제 손 안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허접 악당 때문에 오히려 경계심이 느슨해져버린 댓가. 굳세어라, 아나스타샤.

    오늘의 추천곡은 게임 림월드의 OST인 Rimworld – Trust Me 입니다.

    도저히 중간에 끊을 편이 아닌지라. 조금 무리해서 2일치를 써봤습니다.
    찾아오셨다가 이 인간, 또 오늘치 연재분 안 올렸다!! 하고 댓글 달아주신 분들 죄송합니다. 새벽 5시 30분에 이렇게 올립니다. 네. 에헤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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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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