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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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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포수처럼 흘러내린 새하얀 머리카락은 한겨울 밤하늘에 빛나는 달처럼 고귀해 보였고, 고요한 눈동자는 노을을 머금은 금빛 호수와 같아 아름다웠지만, 한편으론 깊이를 알 수 없어 오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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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지만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미모는 고혹적인 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따로 관리하지 않았음에도 매끄럽고 부드러운 피부나 긴 속눈썹, 부드러운 입술은 아이리스와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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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가 예쁜 이유가 다 여기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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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깨달음을 얻은 검사처럼 멍한 표정으로 공작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그녀의 손이 떨어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슬그머니 눈을 굴리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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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열은 없는 것 같은데 -…”
    “하,하하! 맞습니다! 열은커녕 힘만 넘치는걸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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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러운 접촉에 몸을 움츠리는 리안의 모습을 공작은 다른 의미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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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에게 걱정 받는게 익숙지 않나 보군. 그런 삶을 살아왔으면서 감사 인사는 꼬박꼬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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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은 동화나 가볍기 짝이 없는 개그 세계가 아니었다. 피폐한 사연이 흔하게 널려있는 다크 판타지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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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세계다 보니 어두운 과거를 가졌음에도 선한 사람은 굉장히 찾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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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모습이 거짓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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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이 돌연 쓰게 웃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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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용사가 나타난 걸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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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사의 딸인 아이리스가 다음 용사가 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용사는 핏줄을 타고 이어지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이는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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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사는 마왕을 토벌할 수 있는 힘을 가졌기에, 용사의 핏줄 또한 일반적인 사람보다 더 튼튼한 몸과 일정 이상의 신성력을 품고 태어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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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중한 능력을 갖춘 이를 가문으로 끌어들여 대를 이어온 귀족 핏줄들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조금 모자란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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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사의 자리는 핏줄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신의 선택으로 정해진다. 평민, 귀족, 신관 상관없이 막대한 양의 신성력을 품을 수 있는 그릇과 검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이가 선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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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라는 말을 뛰어넘은 실력, 공작의 상처를 단번에 치유해버린 신성력, 제 몸에 칼을 박았던 사람에게도 헤프게 웃는 모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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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이 리안을 새로운 용사라 오해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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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한 오해 덕분에 공작의 시선은 어느 때보다도 누그러져 있었다. 그녀를 오랜 시간 모셔 온 집사가 보았다면 까무러칠 정도였다. 물론 겉으론 티가 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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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흠, 그럼 다시 여기서 나갈 방법을 찾아보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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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과 (공작에겐 들리지 않는) 한 자루의 마검의 목소리가 탈출을 위한 여러 생각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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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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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그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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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의 최강자와 개그 세계의 주민을 전부 함정에 빠뜨린 희대의 행운아 네크로맨서는 초조하게 방안을 빙빙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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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지? 지금 갈까? 하지만 살아있으면? 그럼 지금까지의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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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울상을 지었다. 이내 흐아아앙! 하고 몇번째인지 모를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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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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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잡은 건데! 이런 게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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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그락, 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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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지 운이 좋다고 했더니! 으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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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그락, 달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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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울음소리 사이로 스켈레톤 메이저가 입을 벌렸다가 닫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묘하게 거슬리는 소리에 그녀가 메이저 쪽을 째릿하고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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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시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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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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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동상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했던 메이저가 검지를 들어 제 몸을 가리켰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행동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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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왜 멋대로 움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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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찔끔 흘러나온 눈물을 소매로 슥 닦은 후 메이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메이저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듯 손가락으로 제 몸과 수정구 쪽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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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네가 가서 확인하고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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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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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입을 헤 벌린 채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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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지? 분명 영혼을 수확하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이지를 가지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과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나 대신 언데드를 보내면 되잖아!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거니까!’이 치열하게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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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크로맨서의 호기심이 불쑥 치솟았지만, 꾹 억눌렀다. 그보다 중요한 건 제국의 제일 검이라 불리는 공작을 얻어내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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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 그럼 어서 가서 확인하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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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신난 얼굴로 메이저를 역 소환한 후 제 머리 위쪽 땅 위에 스켈레톤 메이저 세 개, 스켈레톤 기사를 열 개, 스켈레톤 레인저를 두 개 소환했다. 그녀 또한 리안과 공작처럼 땅속 공간에 숨어있는 상태였기에 필요한 절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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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에 몬스터를 만나도 이 정도 전력이면 가뿐하게 이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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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언데드들을 리안과 공작이 삼켜진 구멍 쪽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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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의 주인에게 명령하여 두더지처럼 땅속에서 이동하는 방법도 있지만 땅 위로 이동하는 것보다 마기가 10배 이상은 더 사용되어 숲에 내려앉은 안개가 사라져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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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후훗,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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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우는 소리를 냈냐는 듯 중고로 구매한 화려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앉았다. 새하얗고 매끈한 다리가 훤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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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르보안님 기다려주세요. 제가 금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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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또다시 망상 속에 빠져 에르보안에게 예쁨 받는 상상을 헤벌쭉한 얼굴로 머릿속에 그렸다. 애를 10명씩 낳는 상상을 하며 히죽히죽 거리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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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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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보낸 언데드 파티가 갑작스럽게 역 소환되기 시작했다. 거리가 일정 이상 떨어지면 간단한 정보 정도만 공유할 수 있었기에 곧바로 신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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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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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쓸려나갔는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게 전부였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입을 헤 벌린 채로 굳어있다가 이내 고개를 휙휙 저으며 정신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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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하… 강한 몬스터라도 만났나 보네. 다른 길로 우회해서 가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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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다시 언데드를 소환하여 조금 더 돌아가서 가는 길로 보냈다. 초조하게 멀어지는 언데드의 마기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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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보냈던 언데드 파티보다 목적지에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긴장이 사르르 풀어졌다. 다행히 붉은 짐승인가 뭔가 하는 건 영역 몬스터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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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후… 오늘 나 꽤 똑똑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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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굉장히 없어 보이는 말을 중얼거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다 언데드 파티가 목적지에 바짝 가까워진 걸 느끼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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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럴 때가 아니지. 곧바로 의식을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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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정도 준비를 끝내놓은 상태지만 한 번 더 체크할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흥분으로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한쪽 벽에 자리한 문을 열고 옆 방으로 이동했다. 창문 하나 없는 방 안은 음침한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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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귀한 약재와 몬스터 소재가 사용된 마법진이 검붉은색으로 바닥에 그려져 있었고 가운데엔 사람 한명이 누울 만한 크기의 재단 같은 것이 놓여있었다.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진 재단에는 불길한 기운이 물씬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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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재단을 상태를 확인한 후 의식을 진행할 동안 사용될 핏물이 부족하지 않은지 꼼꼼히 확인했다. 그와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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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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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언데드 파티와의 연결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곧바로 스켈레톤 레인저 셋에게 도망치라 명령했다. 아까처럼 멍청하게 가만히 있다간 순식간에 쓸려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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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러진 언데드들이야 다시 소환하면 그만이지만, 너무 빨리 쓸려나가면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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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레인저들이 보내오는 적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머릿속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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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머리의 인간 여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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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에 ‘붉은 짐승’이라 불릴 법한 몬스터를 열심히 떠올리던 중 전해진 정보에 그녀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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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지금… 기사단 수준의 파티를 쓸어버릴 수 있는 강자가 둘이나 있다는 거야? 그 중 한명은 인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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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숲의 주인을 사로잡은 후에도 안심하지 않고, 숲에 사는 몬스터 수준을 꼼꼼하게 확인한 상태였다. 뒤늦게 타락한 숲의 주인 때문에 괴이하게 힘이 강해지는 변이체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거의 제로에 가까운 확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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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확률이 뛰어넘어 ‘붉은 짐승’이라 표현되던 존재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머리 아픈 상황에 비슷한 수준에 인간까지 돌아다니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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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또다시 “흐에에엥!”하고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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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녀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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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켈레톤 레인저는 그 어떤 스켈레톤보다도 숲에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기에 그녀가 숨어있는 장소와 빠르게 가까워졌다. 언데드가 반경 10km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각을 훔쳐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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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바로 마법을 발동하자 텅 비어있던 두개골 안쪽, 눈이 있던 부분에 붉은 안광이 생겨났다. 네크로맨서가 언데드의 시야를 빌릴 때 나타나는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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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진짜 인간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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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하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엄청난 속도로 쫓아오는 아이리스의 모습에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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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저 인간 여자 어디서 많이 본거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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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의 도플갱어와 아이리스가 똑 닮았다는 걸 깨달으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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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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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인저의 옆쪽 나무 몇그루가 거대한 바위에 짓이겨지는 것처럼 뜯겨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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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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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이로 등장한 건 동물의 귀와 꼬리를 단 붉은 머리의 수인, 제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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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네크로맨서(히로인 아님/당분간 등장예정)
1. 친구가 없다.
2. 에르보안이 지나가다 한번 칭찬해준 걸로 쫓아다니고 있다.
3. 막상 앞에가선 한마디도 못하고 “토,토톳”같은 말만 반복한다.
4. 본인 외모에 자신감이 있다고 말은 하지만 내심 추하게 생겼다고 생각한다.
5. 혼자 놀기에 달인이다.
6. 누군가 친구가 돼준다고하면(햇살캐) 울어버릴 것이다.
7. 츤데레인척 하다가 부끄러워서 주저앉아 울것 같은 인간이다.
8. 장난 안받아주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쎈척하다가 울어버린다.
9. 어렸을 때부터 자낮 발언을 많이 듣고 자라서 자존감이 매우 낮다.
10. 밖에선 항상 온몸을 꽁꽁 싸매고 다닌다.

말랑샌드백(?) 네크로맨서 친구가 당분간 종종 나올 것 같아서 성격을 조금 적어봤습니다.
다른 의미로 엄청 괴롭히고 싶은 캐릭터네요.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폭포수처럼 흘러내린 새하얀 머리카락은 한겨울 밤하늘에 빛나는 달처럼 고귀해 보였고, 고요한 눈동자는 노을을 머금은 금빛 호수와 같아 아름다웠지만, 한편으론 깊이를 알 수 없어 오싹하기도 했다.

아름답지만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미모는 고혹적인 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따로 관리하지 않았음에도 매끄럽고 부드러운 피부나 긴 속눈썹, 부드러운 입술은 아이리스와 닮아 있었다.

‘아이리스가 예쁜 이유가 다 여기 있었구나.’

리안은 깨달음을 얻은 검사처럼 멍한 표정으로 공작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그녀의 손이 떨어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슬그머니 눈을 굴리며 입을 열었다.

“다행히 열은 없는 것 같은데 -…”

“하,하하! 맞습니다! 열은커녕 힘만 넘치는걸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몸을 움츠리는 리안의 모습을 공작은 다른 의미로 해석했다.

‘누군가에게 걱정 받는게 익숙지 않나 보군. 그런 삶을 살아왔으면서 감사 인사는 꼬박꼬박하고…’

이 세상은 동화나 가볍기 짝이 없는 개그 세계가 아니었다. 피폐한 사연이 흔하게 널려있는 다크 판타지 세계였다.

그런 세계다 보니 어두운 과거를 가졌음에도 선한 사람은 굉장히 찾기 어려웠다.

‘저 모습이 거짓이 아니라면…’

공작이 돌연 쓰게 웃으며 생각했다.

‘…새로운 용사가 나타난 걸지도 모르겠어.’

용사의 딸인 아이리스가 다음 용사가 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용사는 핏줄을 타고 이어지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이는 틀렸다.

용사는 마왕을 토벌할 수 있는 힘을 가졌기에, 용사의 핏줄 또한 일반적인 사람보다 더 튼튼한 몸과 일정 이상의 신성력을 품고 태어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출중한 능력을 갖춘 이를 가문으로 끌어들여 대를 이어온 귀족 핏줄들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조금 모자란 수준이었다.

용사의 자리는 핏줄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신의 선택으로 정해진다. 평민, 귀족, 신관 상관없이 막대한 양의 신성력을 품을 수 있는 그릇과 검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이가 선택된다.

천재라는 말을 뛰어넘은 실력, 공작의 상처를 단번에 치유해버린 신성력, 제 몸에 칼을 박았던 사람에게도 헤프게 웃는 모습까지.

공작이 리안을 새로운 용사라 오해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묘한 오해 덕분에 공작의 시선은 어느 때보다도 누그러져 있었다. 그녀를 오랜 시간 모셔 온 집사가 보았다면 까무러칠 정도였다. 물론 겉으론 티가 나지 않았지만.

“크흠, 그럼 다시 여기서 나갈 방법을 찾아보죠!”

“그래.”

두 사람과 (공작에겐 들리지 않는) 한 자루의 마검의 목소리가 탈출을 위한 여러 생각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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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 시각.

제국의 최강자와 개그 세계의 주민을 전부 함정에 빠뜨린 희대의 행운아 네크로맨서는 초조하게 방안을 빙빙 돌고 있었다.

“어쩌지? 지금 갈까? 하지만 살아있으면? 그럼 지금까지의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될 텐데?”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울상을 지었다. 이내 흐아아앙! 하고 몇번째인지 모를 울음을 터뜨렸다.

달그락.

“다 잡은 건데! 이런 게 어디 있어!”

달그락, 달칵.

“왠지 운이 좋다고 했더니! 으아아앙!”

달그락, 달그락.

그녀의 울음소리 사이로 스켈레톤 메이저가 입을 벌렸다가 닫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묘하게 거슬리는 소리에 그녀가 메이저 쪽을 째릿하고 노려봤다.

“이익!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시끄러워!”

달그락.

항상 동상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했던 메이저가 검지를 들어 제 몸을 가리켰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행동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왜 멋대로 움직이지..?”

그녀가 찔끔 흘러나온 눈물을 소매로 슥 닦은 후 메이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메이저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듯 손가락으로 제 몸과 수정구 쪽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네가 가서 확인하고 온다고?”

달그락.

메이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입을 헤 벌린 채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떠올렸다.

‘뭐지? 분명 영혼을 수확하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이지를 가지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과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나 대신 언데드를 보내면 되잖아!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거니까!’이 치열하게 부딪쳤다.

네크로맨서의 호기심이 불쑥 치솟았지만, 꾹 억눌렀다. 그보다 중요한 건 제국의 제일 검이라 불리는 공작을 얻어내는 거였다.

“좋아! 그럼 어서 가서 확인하고 와!”

그녀는 신난 얼굴로 메이저를 역 소환한 후 제 머리 위쪽 땅 위에 스켈레톤 메이저 세 개, 스켈레톤 기사를 열 개, 스켈레톤 레인저를 두 개 소환했다. 그녀 또한 리안과 공작처럼 땅속 공간에 숨어있는 상태였기에 필요한 절차였다.

‘중간에 몬스터를 만나도 이 정도 전력이면 가뿐하게 이기겠지.’

그녀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언데드들을 리안과 공작이 삼켜진 구멍 쪽으로 보냈다.

숲의 주인에게 명령하여 두더지처럼 땅속에서 이동하는 방법도 있지만 땅 위로 이동하는 것보다 마기가 10배 이상은 더 사용되어 숲에 내려앉은 안개가 사라져버릴 수 있었다.

“후후훗,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언제 우는 소리를 냈냐는 듯 중고로 구매한 화려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앉았다. 새하얗고 매끈한 다리가 훤히 드러났다.

“에르보안님 기다려주세요. 제가 금방 -…”

그녀는 또다시 망상 속에 빠져 에르보안에게 예쁨 받는 상상을 헤벌쭉한 얼굴로 머릿속에 그렸다. 애를 10명씩 낳는 상상을 하며 히죽히죽 거리고 있을 때.

“어…?”

그녀가 보낸 언데드 파티가 갑작스럽게 역 소환되기 시작했다. 거리가 일정 이상 떨어지면 간단한 정보 정도만 공유할 수 있었기에 곧바로 신호를 보냈다.

“붉은…짐승?”

순식간에 쓸려나갔는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게 전부였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입을 헤 벌린 채로 굳어있다가 이내 고개를 휙휙 저으며 정신을 다잡았다.

“하…하하… 강한 몬스터라도 만났나 보네. 다른 길로 우회해서 가라고 해야겠다.”

그녀는 다시 언데드를 소환하여 조금 더 돌아가서 가는 길로 보냈다. 초조하게 멀어지는 언데드의 마기를 느꼈다.

처음 보냈던 언데드 파티보다 목적지에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긴장이 사르르 풀어졌다. 다행히 붉은 짐승인가 뭔가 하는 건 영역 몬스터인 듯했다.

“후후… 오늘 나 꽤 똑똑할지도?”

굉장히 없어 보이는 말을 중얼거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다 언데드 파티가 목적지에 바짝 가까워진 걸 느끼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이럴 때가 아니지. 곧바로 의식을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지!”

어느 정도 준비를 끝내놓은 상태지만 한 번 더 체크할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흥분으로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한쪽 벽에 자리한 문을 열고 옆 방으로 이동했다. 창문 하나 없는 방 안은 음침한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온갖 귀한 약재와 몬스터 소재가 사용된 마법진이 검붉은색으로 바닥에 그려져 있었고 가운데엔 사람 한명이 누울 만한 크기의 재단 같은 것이 놓여있었다.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진 재단에는 불길한 기운이 물씬 풍겼다.

그녀는 재단을 상태를 확인한 후 의식을 진행할 동안 사용될 핏물이 부족하지 않은지 꼼꼼히 확인했다. 그와 동시에.

“엇? 또?!”

또다시 언데드 파티와의 연결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곧바로 스켈레톤 레인저 셋에게 도망치라 명령했다. 아까처럼 멍청하게 가만히 있다간 순식간에 쓸려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쓰러진 언데드들이야 다시 소환하면 그만이지만, 너무 빨리 쓸려나가면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할 터였다.

그녀는 레인저들이 보내오는 적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머릿속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하얀 머리의 인간 여자라고…?”

머릿속에 ‘붉은 짐승’이라 불릴 법한 몬스터를 열심히 떠올리던 중 전해진 정보에 그녀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지금… 기사단 수준의 파티를 쓸어버릴 수 있는 강자가 둘이나 있다는 거야? 그 중 한명은 인간이고?”

그녀는 숲의 주인을 사로잡은 후에도 안심하지 않고, 숲에 사는 몬스터 수준을 꼼꼼하게 확인한 상태였다. 뒤늦게 타락한 숲의 주인 때문에 괴이하게 힘이 강해지는 변이체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거의 제로에 가까운 확률이었다.

그런 확률이 뛰어넘어 ‘붉은 짐승’이라 표현되던 존재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머리 아픈 상황에 비슷한 수준에 인간까지 돌아다니고 있다니…

그녀는 또다시 “흐에에엥!”하고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스켈레톤 레인저는 그 어떤 스켈레톤보다도 숲에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기에 그녀가 숨어있는 장소와 빠르게 가까워졌다. 언데드가 반경 10km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각을 훔쳐볼 수 있었다.

곧바로 마법을 발동하자 텅 비어있던 두개골 안쪽, 눈이 있던 부분에 붉은 안광이 생겨났다. 네크로맨서가 언데드의 시야를 빌릴 때 나타나는 흔적이었다.

‘지, 진짜 인간이잖아?’

새하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엄청난 속도로 쫓아오는 아이리스의 모습에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잠깐 저 인간 여자 어디서 많이 본거 같은 -…’

공작의 도플갱어와 아이리스가 똑 닮았다는 걸 깨달으려는 순간.

콰드드득!

레인저의 옆쪽 나무 몇그루가 거대한 바위에 짓이겨지는 것처럼 뜯겨져 나갔다.

“크르릉…”

그 사이로 등장한 건 동물의 귀와 꼬리를 단 붉은 머리의 수인, 제스였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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