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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5

   그 뒤로 코를 흥하고 당겨 쉰 에벨아스크가 정신을 차렸다.

     

   현실을 부정당해 금방이라도 폭주할 거 같았던 그녀는 크라슈를 물끄러미 보곤 숨을 내쉬었다.

     

   “바보야? 네 옆에 있겠다고 해서 내가 안 외로울 거 같아.”

     

   기껏 위로해줬더니 하는 말이 저건가.

     

   크라슈는 얼탱이 없는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자 에벨아스크는 코를 팽하니 풀었다.

   그러고는 크라슈를 힐끗거리듯 보고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가 한 말들은 에벨아스크 또한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그래도 네가 외로우면 좀 붙어 있어 주긴 할게. 불사 같은 걸 얻으면 힘들 테니까!”

   “아, 그러셔.”

     

   크라슈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밑에부터 가리켰다.

     

   “그보다 일단 저거부터 좀 멈춰 주면 안 되냐.”

     

   아래에는 하링과 세나가 아직까지도 백골 군단을 뚫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는 좀 멈추라고 지시하자 에벨아스크가 뒤늦게 아차 하며 손을 들었다.

     

   “……근데 이러면 나는 익시온을 배신하게 되니까. 그놈들이 보복하려 들 텐데.”

     

   그러면서 에벨아스크가 살짝 걱정을 내비쳤다.

     

   세계 침식자 집단인 익시온은 세계 자체를 위협할만한 수준의 집단이다.

   그런 그들의 타겟이 될 거라 생각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보복 같은 게 두려우면 걱정하지 마라.”

     

   크라슈는 헛소리 말라며 그녀를 다그쳤다.

     

   “어차피 내 손에 다 뒈질 놈들이니까.”

     

   그리고 당당한 크라슈의 발언에 에벨아스크는 어이없는 눈으로 그를 보았다.

   하지만 그 말을 부정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가 얼마나 독종인지는 그녀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나는 왜 특별 취급인데?”

     

   에벨아스크가 크라슈의 온기가 남아 있던 머리카락을 살짝 매만지며 물어왔다.

     

   크라슈는 에벨아스크를 익시온에서 나오게 하고자 설득했다.

   그것도 눈 감을 때까지 외롭지 않게 있어 주겠다며 말이다.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에벨아스크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 지랄이 났군. ]

     

   그러자 크림슨가든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골 군단이 멈추자 산에 올라오는 세나와 하링을 보며 크라슈는 아직 사태 파악 못 하고 대답했다.

     

   “전생의 연이겠거니 생각해라.”

   “운명론자였어?”

   “부정론자지. 운명대로 흘러가면 이딴 세상 금방 망한다.”

     

   크라슈는 끔찍한 소리 말라며 에벨아스크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의아하게 보던 크라슈는 또다시 산 너머에서 쿠웅하는 거친 소음을 들었다.

     

   광도제와 라이의 전투가 고조 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세계 침식의 힘도 훨씬 강해졌을 터.

     

   더 상황이 악화하기 전에 막아야 했다.

     

   “그보다 에벨아스크, 너 혈천세계에 들어갈 방법 하나 만들어뒀지.”

     

   그 순간 에벨아스크가 움찔거렸다.

   그녀가 미묘한 반응을 보이자 크라슈가 설마 하는 눈을 했다.

     

   그러자 에벨아스크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그, 그게 원래는 해놨거든? 그런데 안쪽이 초토화되어서…….”

     

   그녀가 횡설수설하듯 대답했다.

   그러고는 볼 낯이 없다는 듯이 얼굴을 푹 숙였다.

     

   “소멸됐어…….”

     

   크라슈는 쓴 한숨을 삼켰다.

   그녀가 준비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휘말려서 시체가 소멸한 거라면 할 말이 없다.

     

   “그럼 그냥 뚫어야겠네.”

     

   가볍게 숨을 삼킨 크라슈가 결심한 눈을 했다.

   상황이란 게 늘 좋게 흘러갈 리 없기에 익숙했다.

     

   최악은 늘 최악을 낳는 법.

   아쉽지만 힘을 써서 뚫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내가 할게.”

     

   그러는 순간 에벨아스크 쪽에서 책임이 있다는 얼굴로 말했다.

     

   “할 수 있겠냐?”

     

   그녀가 등을 곧게 펴며 중력의 영향을 따라 올라간 상체와 함께 당당한 얼굴을 했다.

     

   “3호를 쓸 거야.”

     

   크라슈는 그녀가 말하는 3호가 무엇인지 알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부탁하자.”

     

   준비는 끝났다.

   이제 광도제 놈을 박살 낸다.

     

     

   * * *

     

     

   혈천세계 속.

   라이의 제왕섬멸검 수십 자루가 휘몰아치는 아래.

     

   광도제가 팔과 한 몸이 된 혈라사도를 휘두르며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의 눈에 팔짱을 낀 채 제왕섬멸검을 휘두르고 있는 라이가 비췄다.

   마치, 자신이 이곳에서 제왕이기라도 그는 팔짱을 낀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무척이나 오만함이 느껴지는 모습이었지만 그거야말로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 또한 제왕섬멸검을 휘두르는 데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라이의 모습을 포착하자마자 내려쳐진 제왕섬멸검이 라이와 광도제의 사이를 갈랐다.

     

   “다가갈 수가, 없구만!”

     

   광도제가 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동자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라이의 제왕섬멸검은 분명 터무니없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오죽하면 그와의 전투로 산 하나가 사실상 붕괴하다시피 했겠는가.

     

   혈천세계가 아니었다면 눈사태가 일어나 아래쪽이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다.

     

   ‘내 혈천세계를 눈치채고, 더 적극적으로 싸우고 있는 거겠지.’

     

   본의 아니게 저쪽이 마음껏 싸울 수 있는 전장을 제공한 셈이었다.

   그러나 광도제 입장에서도 나쁠 거 하나 없었다.

     

   저쪽은 모르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바깥에 있는 세계 침식의 힘은 커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세계 침식자들의 특성은 유명한 이들을 제외하곤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이 비밀스럽게 움직이기도 하고, 그들도 내로라하는 강자인 만큼 숨기려고 숨기면 못 숨길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광도제는 라그렌 가문 사건 이후 갑자기 종적을 감췄던 마당.

   당연히 정보가 무척이나 부족했다.

     

   ‘길게 싸우면 싸울수록 나야 좋기는 하지만.’

     

   그 순간 광도제의 두 다리에 피가 거세게 돌기 시작했다.

     

   ‘당하고만 있는 건 취향이 아니지.’

     

   그의 두 다리가 붉은색으로 물들자 광도제가 폭발적으로 도약했다.

   도약한 그의 앞에 무수히 많은 제왕섬멸검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눈앞에 제왕섬멸검이 내려쳐진 순간 그에 맞춰 혈라사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혈라사도에서 터져 나온 핏빛의 기운이 그의 방향을 공중에서 틀었다.

     

   광도제가 신묘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려쳐진 제왕섬멸검을 모조리 피하며 라이에게 빠른 속도로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팔짱을 끼고 있던 라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느샌가 라이와 가까워진 광도제의 몸이 다시금 새빨갛게 물들었다.

     

   “후욱!”

     

   당겨낸 숨과 함께 광도제의 몸이 거칠게 부풀었다.

     

   콰앙!

     

   그것을 끝으로 공중에서 들려온 폭음과 함께 광도제의 몸이 포탄처럼 쏘아졌다.

   한순간에 달라진 속도 탓에 제왕섬멸검조차 광도제를 막는 게 한 박자 늦었다.

     

   그리고 그 기회를 틈타 광도제는 혈라사도에 핏빛의 기운을 머금었다.

     

   꾸국!

     

   혈라사도에서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광도제의 피가 뭉텅이로 후욱 빨려 나갔다.

   하지만 그 덕에 혈라사도에서 솟아 나온 기운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거세졌다.

     

   피의 잔향이 흩뿌려졌다.

   혈라사도의 드러난 핏빛의 기운은 마치, 사신의 낫처럼 길게 늘어졌다.

     

   크게 한 방 먹인다.

     

   광도제의 눈이 희번덕거리며 번뜩임과 함께 혈라사도가 뻗어졌다.

     

   혈귀작도(血鬼斫刀)

   삼식(三式)

   혈귀대겸(血鬼大鎌)

     

   기이이이이익!

     

   기괴한 소리와 함께 새빨간 낫 형태의 혈라사도가 라이를 향해 덮쳤다.

     

   쿵!

     

   그 순간 순식간에 내려온 제왕섬멸검이 그 앞을 막았다.

   카강! 제왕섬멸검과 혈귀대겸이 부딪치며 소리가 공간 전체에 울려 퍼졌다.

     

   둘의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혈천세계가 뒤흔들릴 정도였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날아간 일대와 함께 제왕섬멸검 너머 광도제가 빠르게 몸을 빼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곧바로 제왕섬멸검들이 들이닥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이의 앞에 제왕섬멸검이 들어 올려지자 저 멀리 광기 섞인 웃음을 짓고 있는 광도제가 보였다.

   그는 혀로 자기 입술을 핥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움직임은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날래지고 있었다.

   전투가 진행될 때마다 피가 돌며 몸이 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피에 오러를 섞어 육체의 강도를 더더욱 높이는 혈귀작도를 사용한다.

   그러니 그는 전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피의 회전율을 따라 더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성질은 급하지만, 전투 스타일은 장기전에 최적화 되어 있는 것이다.

     

   라이는 광도제를 물끄러미 보았다.

     

   ‘거기에 익숙해지고 있군.’

     

   처음 제왕섬멸검을 당했을 때 광도제는 바닥을 거칠게 구르며 피하느라 고생했다.

   수십 자루나 되는 제왕섬멸검을 피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었다.

   아까 전 보여준 몸놀림은 제왕섬멸검의 검로를 명확하게 알아차린 모습이었다.

     

   ‘흐음, 어쩐다.’

     

   그러나 그럼에도 라이는 딱히 패배를 상정하지 않았다.

     

   ‘이자가 밤까마귀 단 수장은 아닐 테고.’

     

   같은 천하십강인 독왕이 세계 침식자에게 중상을 입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제국은 일단 그자를 밤까마귀 단 수장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들었던 신상과 광도제는 달랐다.

   밤까마귀 단 수장은 네크로맨서에 여성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독왕을 상처 입힌 인물이 누군지 정확히는 몰라도 한 명 더 있다는 건데.’

     

   라이는 팔짱 낀 손으로 자기 팔을 천천히 두드렸다.

     

   광도제는 시간 벌기 따위 할 생각 없다는 듯이 전력을 다해 부딪쳐 오고 있긴 하지만.

   그는 구태여 혈천세계로 자신을 가뒀다.

     

   그렇다면 자신을 이곳에 가둬두고 싶다는 소리일 것이다.

     

   ‘다른 세계 침식자와 함께 뭔가 꾸미고 있나.’

     

   정답은 아닐지라도 근접한 답에 도달한 라이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무래도.’

     

   빨리 끝내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광도제는 내려치는 제왕섬멸검을 피하며 라이와 눈이 마주쳤다.

   기색이 달라진 것을 보아하니 무언가 눈치챈 모양이었다.

     

   ‘눈치 한번 빠르네.’

     

   정답은 아닐지라도 근접한 답을 내놓은 거겠지.

     

   ‘이래서 전투에 눈 돌아 가게 하려고 더 적극적으로 움직인 거였는데.’

     

   아쉽게도 그의 이성을 끌어 올리지는 못한 모양이다.

     

   ‘하지만 눈치챈다 한들.’

     

   그러면서 광도제의 혈라사도가 또다시 핏빛의 기운을 머금기 시작했다.

     

   “그대로 놔줄 생각도 없지만 말이야!”

     

   웃음소리와 함께 광도제가 다시금 뛰쳐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쿠웅!

     

   어디선가 갑자기 진동과 함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왕섬멸검이 휘둘러지며 나온 진동은 아니었다.

     

   제왕섬멸검이 거대하긴 하지만 무언가 다른 느낌의 진동이었다.

     

   쿵!

     

   그 순간 또 한 번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언가 공간 전체가 울리는 감각에 광도제의 눈이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왜냐하면 그 소리가 하늘 위에서 들린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황색과는 다른 붉은 색으로 물든 하늘이 보였다.

   그가 발동한 혈천세계였다.

     

   쿵!

     

   그 순간 혈천세계가 또 한 번 흔들리기 시작했다.

   광도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되었다.

     

   쿵!

     

   그리고 다시금 혈천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한 순간.

     

   쩌적!

     

   혈천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광도제의 눈에 순간 당황이 서렸다.

   바깥에서도 외부에서도 출입을 막는 것이 바로 혈천세계다.

     

   그런 혈천세계에 대뜸 금이 간 것이다.

     

   “누가?!”

     

   육성으로 소리를 낸 그 순간이었다.

   갈라진 혈천세계의 틈으로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순간 광도제의 눈이 서서히 커져갔다.

     

   부서진 혈천세계의 틈.

   그 위, 머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괴물이 실밥이 이리저리 묶인 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 터무니없는 크기에 광도제가 다시금 당황했을 때.

   거인의 주먹이 이윽고, 또 한 번 혈천세계를 내려쳤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부서진 혈천세계의 천장과 함께 거인의 팔이 그대로 뚫고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이게 뭔!”

     

   떨어진 거인의 팔에 의해 생겨난 거센 폭풍이 광도제와 라이를 휩쓸고 지나갔다.

   라이조차 무슨 상황인지 몰라 잠자코 기다렸다.

     

   “콜록!”

     

   그러는 사이 흙먼지에 뒤덮인 광도제가 기침을 내뱉으며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방금까지 라이와의 전투로 끓어올랐던 고양감이 방해받아 꺼지는 느낌이었다.

     

   광도제의 얼굴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그럼과 함께 아까 전 내려친 거인의 팔이 제대로 보였다.

     

   핏기가 전혀 없던 팔과 중간중간 살을 잇고자 묶여 있는 실밥.

   그것을 본 순간 광도제의 머릿속에 스치는 인물이 있었다.

     

   “……에벨아스크?”

     

   혈천세계에 다른 이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그녀가 다루는 시체가 왜 여기 있는 걸까.

   순간 상황이 이해가 안 된 그가 멍하니 중얼거렸을 때였다.

     

   당혹스러운 상황에 의해 아주 잠시 이어진 방심의 틈이.

   누군가에게 선명히 이어지고 말았다.

     

   오싹!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듯한 감각을 받은 광도제가 정말 순전히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었을 때였다.

     

   화륵!

     

   화염이 일그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 그 순간 그의 눈앞에 새까만 흑염으로 물들었다.

     

   멸화침식(滅火浸蝕)

   사식(四式)

   멸화절야(滅火切夜)

     

   까가가가가각!

     

   왼쪽 팔이 흑염으로 덧칠된 검에 찢겨 나가며 하늘 위로 치솟아 올랐다.

   그 엄청난 기세에도 불구하고, 광도제의 왼팔은 잘리지는 않았다.

     

   대신 피부와 근육을 찢고, 뼈가 절반 이상 잘려 나가 팔이 너덜거리며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광도제의 새빨간 눈이 부릅떠졌다.

   혈귀작도 덕에 강화되어 침식종보다도 더한 그의 몸이다.

     

   당연히 웬만한 일격에는 상처도 입지 않을 텐데 팔이 이 꼴이 난 것이다.

     

   그의 앞에는 두 명의 인물이 있었다.

   무언가를 까득하고 깨물어 삼킨 듯한 표정의 소년은 흑염을 두른 검을 전력으로 내려친 자세였고, 그의 등 뒤에는 검은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단발 머리카락의 소녀가 그와 함께 있었다.

     

   휘날리고 있는 그들의 머리카락과 옷깃이 그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음을 알려 주었다.

     

   그 순간 소년이 쿠웅 발을 굴렀다.

   그럼과 함께 그가 한순간에 광도제도 순간 멈칫할 만큼 폭발적인 속도로 달려들었다.

     

   빠르다.

   그리고 위험하다.

     

   방금전 같은 일격을 언제든 휘두를 수 있다면 이 순간 가장 위험한 건 다름 아닌 저 소년이었다.

     

   놈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명백히 세계 침식자였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광도제의 살기가 그 순간 일제히 치솟았다.

     

   에벨아스크가 왜 갑자기 배신했는지 그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단지, 그의 온 신경이 한순간 소년에게로 쏠렸다.

     

   그리고 그 신경은 순간적으로 라이조차 잊을 정도였다.

     

   화아아악!

     

   광도제에게서 쏟아져 나온 분노와 살기가 크라슈의 얼굴 안면을 거세게 때렸다.

   크라슈는 집중을 몰아넣은 와중에도 그 살기를 저릿하게 느꼈다.

     

   ‘예나 지금이나 괴물이네.’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눈앞이 한순간 흔들릴 만큼 압도적인 살기였다.

     

   본능이 달려 나가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여기서 도망치라고 말하고 있었다.

     

   역시 강하다.

   멸천수라를 발동시켰음에도 아직 세계 침식자와 맞붙기에는 부족하다는 감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기에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크라슈의 목적은 이 순간 광도제의 모든 신경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것.

   그리고 그 목적은 팔이 찢긴 걸로 위협을 느낀 광도제 덕에 확실하게 이루었다.

     

   크라슈가 나아가는 속도보다도 한층 더 빠른 이가 어느새 광도제의 등에 들이닥쳤다.

     

   작게 줄여진 흰색의 날개가 휘날렸다.

   세나가 발동시킨 초속의 상태였다.

     

   이때의 세나는 크라슈의 벽력조차 쫓지 못할 만큼 빨랐다.

   그리고 날개 아래 휘날린 천들이 날카로운 송곳처럼 변하며 일제히 광도제를 꿰뚫고자 날아들었다.

     

   광도제가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늦었다.

   크라슈에게 한순간 집중력을 너무 쏟은 탓에 몸의 반응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었다.

     

   푸욱, 푹!

     

   “크학!?”

     

   그 상황에서도 간신히 몸을 뒤튼 광도제가 급소는 피하며 침음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의 등과 옆구리 여기저기를 천이 꿰뚫고 나오며 관통상을 만들었다.

     

   그것으로 움직임이 제약받은 순간.

   크라슈가 이미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의 우뢰성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동시에 크라슈의 몸속에 드리운 밤 위에 천살성의 일곱별들이 드리우며 일제히 빛을 토해내었다.

     

   빛을 받은 붉은색의 달이 떠오른 그때.

   크라슈의 정신에서 몰아친 흑염의 폭풍이 검에 깃들었다.

   

   멸화침식(滅火浸蝕)

   오식(五式)

   멸천월화(滅天月火)

     

   붉은 달 아래.

   

   

   

   

   

   흑염의 폭풍이 부서진 혈천세계를 휩쓸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제대로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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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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