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55

   EP.155

     

   비릿한 웃음이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오만한 미소.

   그리고 그런 시건방진 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놈의 입꼬리보다 훨씬 더 가관이었다.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이런 짓을 벌이는가?”

     

   놈은 자신의 곁을 지키던 모든 인간들이 다 따귀 한 방에 나가떨어졌음에도 전혀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바닥에 흩뿌려진 화려한 보석들, 그리고 아직 골통이 흔들리는지 몸을 가누지 못 하는 귀족 놈들을 보면서도 정신이 차려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 번 더 손을 들었다.

     

   씨익.

     

   “웃어? 이 상황에?”

     

   하지만 나에게 멱살이 잡힌 상태에서도 놈은 웃고 있었다.

   뭔가 뒷배가 있는 인간들이 주로 보이는 양상.

   그리고 이어진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너는 나를 건드릴 수 없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나는 이 나라의 왕이다. 가장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자이며 동시에 모든 자들의 존경을 받을 권리가 있는 자. 그리고……”

     

   놈의 말이 이어질수록 나는 어이가 사라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놈의 멱살을 잡고 있는 것은 바로 나였고 놈이 뭐라고 떠들든 이 대화에서 칼은 내가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넌 뺨이 만년한철이라도 돼? 처 맞으면 아픈 건 매한가지 일 텐데 매를 버는 재주가 있네.”

   “크큭… 때릴 수 있다면 어디 한 번 때려보아라. 너 따위가 감히?”

     

   이상하게 자신만만하다.

   그리고 그 자신감의 원천을 나는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츠츠츠…

     

   놈의 몸에서 조금 전에는 느끼지 못한 어두운 마력이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멱살을 잡은 나의 손을 감싸기 시작하는 기운.

   붉었다. 보랏빛이 살짝 섞인 듯하지만 전체적인 색감은 검붉은색에 조금 더 가깝지 않나 싶다.

     

   그리고 잠시 후 내가 그 마력을 인지하는 그 순간, 나는 나의 얼굴을 덮쳐 오는 날카로운 마력의 가시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피피핏!

     

   “읏.”

     

   나는 잡고 있던 왕의 멱살을 놓으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너무 직선적인 공격이라 파훼가 어렵지는 않았지만 눈 같은 급소에 직격 당하면 아무리 나라도 충분히 중상을 입을 수 있는 범주의 공격이었다.

     

   “이거 때문에 아주 기세가 등등했구나?”

   “운이 좋았구나 우매하고 무지몽매한 자여. 그래, 너 따위 평민이라면 마력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지. 이런 강대한 힘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조금 전 얼굴로 날아온 가시 때문인지 뺨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가시를 손으로 튕겨 내려 했지만 실패한 상황. 확실히 평범한 공격이라고 하기에는 격이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뺨을 타고 흐르는 피를 슬쩍 닦으며 놈을 위아래로 훑었다.

     

   [‘꿰뚫어 보는 눈(EX)’를 사용합니다.]

   [대상의 정보를 확인합니다.]

     

   삐빅!

     

   [정보를 파악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호라?”

     

   정보를 알 수 없는 존재. 이런 경우가 이전에도 몇 번 있었다.

   처음 내가 6층에 올라와서 만났던 반쪽짜리 성좌인 ‘종자를 판별하는 자’가 그랬고 남문 너머의 몬스터의 숲에서 살고 있던 레드 드래곤 이그니스가 그랬다.

     

   그 말인 즉, 놈은 내가 화신으로 만들고 싶어도 시스템상 불가능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했고 다른 뜻으로는 그만큼 놈이 강한 적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은 신의 마력이다. 감히 인간 따위가 넘볼 수 없는 차원의 영역이지. 네놈은 왕의 옥체를 상하게 한 죄로 사형으로 다스려질 것이다.”

     

   아슬아슬한 모양으로 공격을 피한 내가 잠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자, 놈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한껏 기고만장해지기 시작했다.

     

   “아, 허나 너 정도의 실력자라면 나의 힘에 속하게 될 것이니 너무 심려치는 말거라. 한낮 필멸자 따위가 위대한 존재의 힘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함께하는 것도 썩 나쁜 경험은 아니지 않겠느냐?”

     

   나의 손이 저 마력을 튕겨 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놈에게는 정말 큰 용기를 심어 준 듯했다.

   하지만 공격을 해본 내가 알고 있다시피 저 마력은 위험한 것이기는 해도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무언가는 아니었다.

     

   저벅.

     

   “누구나 다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

     

   나는 놈의 눈을 바라보며 똑바로 전진했다.

   식상할 정도로 유명한 복싱 선수의 한마디를 마음에 품은 채.

     

   “대충 이 다음 말은 알지?”

   “후후… 두려움에 정신이 나갔나 보구나! 오냐, 죽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주지!”

     

   놈의 손이 나에게 뻗어지자 그와 동시에 조금 전에 나를 노리고 날아들었던 검붉은 가시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와, 왕이시……여……”

   “끄으으윽……”

     

   그가 손을 뻗는 순간,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귀족들이 신음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몸에서 빠져나오는 가시와 흡사한 검은 기운들.

     

   싸아아-

     

   그리고 그 힘을 회수당한 놈들은 얼굴이 서서히 말라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바짝 마른 몰골이 되어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왕이 가지고 있는 힘의 원천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저 힘이 인간이 다뤄서는 안 되는 위험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게 악마와 계약을 해서 얻은 힘이냐?”

   “오오? 이 힘을 아는가? 마냥 아둔한 자는 아닌 모양이로구나.”

   “역겹군. 남의 생명력을 담보로 힘을 끌어내다니.”

     

   부정적인 나의 반응에 놈이 기분 나쁜 웃음으로 응답했다.

   악마와의 계약을 한 왕. 지금까지 모아온 정보들이 사실이라는 것에 기뻐해야 할지, 저 힘을 얻기 위해 희생된 자들을 위해 분노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저 왕이라는 이름을 쓴 미치광이는 더 이상 사정을 봐줄 필요가 없는 쓰레기라는 사실 하나였다.

     

   “이만 죽어라. 그리고 내 힘의 양분이 되어라.”

     

   놈이 씨익 웃었고 나를 향해 수십 갈래의 가시가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공격은 도중에 사라지는 결말을 맞이했다.

     

   퍼엉!

     

   “뭣…?”

     

   촉수인지 가시인지 모를 마력 덩어리를 손으로 쳐냈다.

   물론 놈이 보기에는 자신의 공격이 허공에서 펑 하고 터진 것으로 보였을 테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무, 무슨 수를 쓴 거지?”

     

   나는 가볍게 제압만 하려고 했던 이전의 상태를 벗어나 진심으로 마력을 담아 놈을 죽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이것은 평균 레벨이 100에 육박하는 능력치와 감히 비교도 하지 못할 경험의 차이였다.

   이제껏 남들 뒤에 숨어 악마 따위와 계약을 하고 힘을 받아먹던 겁쟁이는 이해할 수 없는 목숨을 건 노력들 말이다.

     

   “네놈도 계약자였나?! 이제 보니 그분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는구… 허억!”

     

   놈이 나의 시간을 매도하려 했지만 나는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놈이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속도로 다가가 다시 한 번 멱살을 잡았을 뿐.

     

   “어, 어떻게?! 내 몸은 신의 힘으로 보호받고 있을 터인데?”

   “그 신이 나보다 약한가 보지.”

     

   다시 한 번 내게 멱살을 잡힌 놈의 동공이 지진이 난 것처럼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짜증이 나던 차였다.

   처음 놈을 발견했을 때는 진 하트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손을 대지 않으려 했었지만 이젠 양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바로 죽지는 마라.”

     

   쐐애액!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처럼 나는 손을 들었다.

   날붙이를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왕이 나의 손에 죽게 된다면 그간 진 하트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했던 빌드업이 살짝 꼬인다.

     

   그리고 자신은 절대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듯 웃음을 잃지 않는 저 면상도 재수가 없었고 말이다.

     

   “네놈의 공격은 나에게 통하지 않……”

     

   쩌어어억!!!

     

   나의 손이 뺨에 닿는 순간 놈의 입에서 멱따는 소리가 터져 나오며 고개가 시원하게 돌아갔다.

     

   한 번의 공격으로 저만치 날아가며 벽에 처박히는 놈의 신형.

   몸에 주렁주렁 두르고 있던 금화와 보석들 따위가 공중에 흩뿌려지니 참 장관이 아닐 수가 없었다.

     

   “소닉이냐? 동전을 뿌리네 새끼가.”

     

   한 번으로 끝나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는 놈에게 다가가 다시 한 번 멱살을 잡았다.

     

   “꺼……어어……”

   “어금니 깨물어. 다 터지기 싫으면.”

     

   그리고 이번에는 멱살을 잡은 왼손을 놓지 않은 채, 있는 힘껏 오른손을 휘둘렀다.

     

   쩌억!

   쩌어억!!

   쩌어어억!!!

     

   수차례의 굉음이 넓은 동공을 기원하게 울려 퍼졌다.

   멱살이 잡힌 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나에게 주구장창 얻어터지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

     

   피난민들이 잔뜩 몰려 있는 북문 대피소 앞.

   남문에 침공한 몬스터를 모두 토벌했다는 소식이 들린 이후로 피난민에서 구경꾼이 된 그들은 벙커에서 나올 영웅을 구경하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생각보다 늦으시는군요……”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요?”

     

   그리고 그 자리에 모여 잡담을 하고 있던 길드원들.

   마지막에 툭 하고 내뱉어진 누군가의 말에 그들의 시선이 교차했다.

     

   “무슨 일이라니……?”

   “지난번에 왕이 악마와 계약을 했다고 했잖아요. 어릴 때 동화에서만 듣긴 했지만 악마의 힘은 사람을 쉽게 홀리고 그 위험성도 대단하다고……”

     

   아주 불가능한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김시인이 강하다고 한들 그 또한 결국 사람.

   만약 왕이 정말 악마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신적인 존재를 홀로 감당한다는 어쩌면 위험한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길드원들의 대화를 들으며 콧방귀를 뀌는 한 존재가 있었으니.

     

   “참 신선한 헛소리네. 그 인간이 위험? 홀려? 씨바, 차라리 오늘 만난 고블린이 소드 마스터였다고 해라.”

     

   그 정체는 김시인이 흑영 길드를 처음 찾아왔을 때 함께 있었던 어린 꼬마 아이였다.

     

   이름이 종판이라고 했었던가?

   발음도 어렵고 본인이 자신을 그렇게 소개한 것은 아니었지만 김시인이 그를 계속해서 종판이라고 불렀으니 이곳의 모두는 그를 종판이라 부르고 있었다.

     

   “종판님은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뭔 초딩 수학 익힘책도 아니고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가 왜 나와? 딱 보면 몰라? 그냥 그 인간은 인간이 아니야.”

     

   그의 말에 함께 모여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인간이 아니면 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물론 함께 있으면 좀 이상한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그들과 다를 것이 없는 인간이었다.

     

   “아아 예, 뭐 제가 헛소리를 했네요.”

   “뭐 피곤하면 그럴 수 있지.”

   “이 새끼들이 안 믿네? 그리고 무슨 일이라면 생긴다면 그 쓰레기 귀족들한테 큰일이 생기는 게 문제야. 너희들은 정식적인 절차로 진 하트 공녀를 왕으로 만들 거라며?”

     

   종판의 말에 옆에 있던 로그 브리트만이 다가와 대화를 거든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반란이 아닌 혁명.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왕을 몰아내고 올바른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 겉으로 드러난 그들의 목적이었기에 힘으로 왕위를 빼앗는 것은 기대하고 있던 방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에이, 설마 그 똑똑한 분이 그런 걸 모르시겠습니까.”

   “그쵸, 여기까지 계획을 세운 것도 다 그분이 하신 건데.”

   “솔직히 그분이 없었으면 우리끼리는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죠.”

     

   사람들은 김시인을 신뢰했다.

     

   지금까지 만난 존재들 중에 가장 강한 자.

   그리고 가장 지혜로운 자이며, 사람을 보고 세상을 대하는 안목이 가장 뛰어난 자.

     

   그랬기에 그가 왕을 힘으로 제압해서 나올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고 피난민들을 굳이 이곳에서 물리지 않고 통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쿠구궁…!

     

   마법 벙커의 입구 부근에서 묵직한 철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김시인이 들어갔을 때 짧게 들렸던 것과 비슷한 소음.

   하지만 그 순간 길드원들은 마주할 수 있었다.

     

   “……”

   “……”

     

   벙커를 빠져나오는 한 사람과 그의 손에 목덜미가 잡힌 채, 질질 끌려 나오는 인영 하나.

     

   “미안하다. 오래 기다렸지? 자 여기.”

     

   피떡이 된 왕을 바닥에 툭 던진 남자가 어설프게 웃으며 그들의 왕이 될지도 모를 공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화 보기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