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56

       “잠깐 휴식합시다.”

       

        블랜튼의 그 선언과 함께 회의장은 조용함을 잃었다.

       

        귀족 총회의는 한번 시작하면 몇 시간이고 열린다. 그런데 벌써 휴식한다는 것은, 그만큼 블랜튼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대체….’

       

        좌중에서 가상 팝콘을 만들어 뜯고 있었던 로즈마리는 인상을 팍 구겼다.

       

        조만간 그녀의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로즈마리는 해쓱해진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곧 그녀의 시선이 어느 한 곳을 향했다. 

       

        ‘대체 언니가 왜….’

       

        기계처럼 고개를 돌려 시선을 쫓은 곳에는 에테르가 있었다.

       

        지금 언니에게 다가가는 건 상책이 아니다. 언니는 조금, 아니. 많이 화가 나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살기를 온몸으로 내뿜고 있다. 다만, 그 살기가 인간을 향하고 있지는 않았다.

       

        로즈마리는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내가 연구를 방해했나?’

       

        온화한 언니가 화를 내는 경우는 단 하나. 연구를 방해받았을 때.

       

        플레어를 금지했을 때 언니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는 로베스피에르가 언니의 연구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님을 의미했다. 적어도 로즈마리는 그런 추리에 도달했다.

       

        ‘설마….’

       

        살리에르 백작인가?

       

        로즈마리는 고개를 돌려 블렌튼에게 눈짓했다. 두 마수는 인파를 방패 삼아 에테르 몰래 대기방으로 들어왔다. 때마침 에테르도 어딘가로 가 버리고 없었다.

       

        로즈마리와 블랜튼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시녀는 또 어디로 갔어?”

        “찾으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됐어. 쓸데없는 일에 힘 빼지 마.”

       

        로즈마리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언니를 감시하라고 배치해 둔 시녀가 어디 갔는가,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계획을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게 다 황제 때문이야.”

       

        황제가 쓰러지지만 않았어도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을 터였다. 로즈마리는 씩씩거리며 방 안을 요리조리 돌아다녔다. 또각거리는 구둣발 소리가 은은히 울려퍼졌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뭘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너 그 수신호 못 봤어?”

       

        마왕군이 사용하는 수신호.

       

        마왕군의 수신호는 오른손이나 왼손을 들어 표현한다. 오른손은 긍정, 왼손은 부정을 의미한다.

       

        에테르는 왼손을 들어 1과 2를 표현했다. 이는 조금 전 블랜튼이 했던 말이 1석과 2석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것을 표현한 수화였다.

       

        “여기서 살리에르 건드리면 우리 둘 다 끝이야.”

        “하지만 그러면 로드스톤은….”

       

        살리에르령을 장악하면 로드스톤을 영구히 손에 넣을 수 있다. 공동 2석인 아카샤로부터의 정보였다.

       

        “뭐 어쩌겠어. 겨울방학 전에 끝장을 봐야지.”

        “그러면 일단 여기선 일을 물리겠습니다.”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로즈마리는 답답하다는 듯 가볍게 가슴팍을 두들겼다. 어찌나 세게 두들겼는지 텅, 텅, 하고 속이 빈 깡통 소리가 났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다음에도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블랜튼의 걱정은 합당했다. 

       

        앞으로 언니와 마찰을 빚을 일이 많을 듯하다. 불행하게도, 그때마다 로즈마리가 물러서야만 했다.

       

        계획이 실패하는 건 잠깐이다. 그러나 언니를 잃는 건 영원하다. 로즈마리는 에테르가 인간 쪽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것을, 알루미늄 피자에 납 토핑을 올려놓는 것보다도 싫어했다.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어쩔 수 없지.”

        “무얼 하시려고요.”

        “뭘 어떻게 해.”

       

        로즈마리는 침대에 대자로 뻗으며 중얼거렸다.

       

        “다음엔 방해받기 전에 후딱 끝내버려야지.”

       

        머릿속에는 이미 이번 계획이 안중에도 없었다. 살리에르? 수인족? 마음대로 하라 그래.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으니 지난 실패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입학식 때 훼방 놓은 거 막혀. 황자 시켜서 언니 빼오려던 거 실패해. 엘프 녀석 죽이려던 것도 못 하고 있어. 엔테로, 그 새끼는 흑사병 하나 제대로 못 퍼뜨렸지….’

       

        심지어 이번에 로베스피에르와 살리에르를 담그려고 한 계획까지 실패했다.

       

        “아니, 생각해 보니까 얼탱이가 없네?”

        “또 뭐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최근 몇 개월 동안 제국에서 짰던 계획이 다 에테르 언니 때문에 실패했잖아.”

       

        그라데이션으로 분노하기 시작한 로즈마리가 거북이 인형을 끼고 침대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나 진짜 억울해!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그 용대가리 새끼랑 큰 언니는 내 말을 안 들어! 다들 지금 내가 4석 따리라고 무시하는 거지? 응? 그렇지? 이게 다 서열이 낮아서 그래!!”

        “…….”

        “특히 큰 언니는 그래. 내가 뭘, 뭘 내가 잘못했는데? 언니 실망하지 말라고 일부러 가만히 놔두고 있어. 배려 충분히 해 줬잖아. 이제 집에 좀 돌아올 때도 됐잖아!”

        “…흐음.”

        “야, 너도 뭐라고 말 좀 해봐!”

        “이거 내리갈굼입니다.”

        “이 개새끼가아아악!!”

       

        침대 위에서 스프링처럼 낭창거리던 로즈마리는 곧 관성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

       

       

        보는 눈이 많다.

       

        나는 귀족들에게 둘러싸이지 않도록 재빨리 본관을 빠져나왔다. 지금은 밀린 연구를 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잠깐 시간 되니?”

       

        눈앞에는 헤를라인 선생님이 와 있었다. 선생님은 쇄골이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 계셨는데, 이 세계 기준으로는 꽤 파격적이라고 생각해서 놀라고 있던 참이었다.

       

        “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내가 있었다.

       

        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날 노예 신분에서 꺼내준 은사님이니까. 로테나 프레이처럼 연구에 앞서 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거기에, 헤를라인은 이사장과 같은 편이었다.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고 연구에 큰 지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다행이다. 그러면 이쪽으로 와 볼래?”

       

        선생님을 따라 본관을 빠져나왔다. 헤를라인의 뒤를 따라 걷자 웬 유리로 둘러싸인 정원이 나타났다.

       

        “여기라면 지금 오는 사람 없을 거야.”

       

        우리는 정원 구석에 나란히 앉았다. 여기서 헤를라인이 민감한 주제를 얘기할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나는 만반의 준비를 한 채 선생님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선생님은 간단한 인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가 여기 와 있을 줄은 몰랐어.”

        “그게, 일이 있어서요.”

       

        나는 적잖은 시간을 들여 경위를 설명했다. 그간 카이뤼삭 교수와 나눴던 교류와 연구, 플레어 대신 새로운 마도를 개발해서 조달할 것이라는 말, 거기에 레너윌 하스펠트와 논검을 벌인 경위까지.

       

        이야기를 전부 들은 헤를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 열심히 하는구나.”

        “아뇨. 아직 부족할 따름이에요.”

        “선생님 앞에서 너무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어. 난 네 담임이잖니.”

        “그냥…. 이렇게 말하는 게 훨씬 편해서 그래요.”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슬슬 본론을 꺼낼 차례임을 이해하는 웃음이었다.

       

        “하스펠트 공작님과 그런 일을 벌였을 때 선생님은 많이 놀랐어.”

        “저도 그래요.”

       

        설마 그 사람이 나한테 그런 일을 요청할 것이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플레어 때문이었지?”

        “네.”

       

        헤를라인은 한숨을 쉬었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내색하려 하고 있지 않았지만, 나는 선생님의 감정을 추측할 수 있었다. 우중충한 그녀의 얼굴에는 일말의 후회와 죄책감이 포말처럼 부상하고 있었다.

       

        레너윌 하스펠트는 클라이스의 부친. 틀림없이 이 선생님을 가지고 신경전을 벌였을 것이다.

       

        하스펠트 공작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 헤를라인은 심성이 고운 사람이다. 그녀는 학생을 사랑하고, 사사로운 일보다는 인의를 중요시한다.

       

        이러나저러나 클라이스 하스펠트와는 대척점에 있는 인물. 그런 그녀가 어떻게 클라이스와 친한 친구로서 지낼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겠지. 내가 상념을 떨쳐버리는 사이에, 헤를라인은 토로하듯 내게 말했다.

       

        “사실 나 말이야, 여기 오는 게 그렇게 달갑진 않았어. 클라이스 아버지가 오셨으니까. 왜인지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 그래도 귀족은 다들 참석해야 해서….”

        “…선생님.”

        “솔직히, 네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가슴이 철렁했어. 나도 벅찬데 넌 어떨까. 아버지를 만나면 네가 또 안 좋은 표정을 지을까….”

       

        어찌 되었든 헤를라인은 친한 친구를 배신했다. 그리고 비록 간접적이지만, 전장에서 죽게 만들었다.

       

        …뭐, 실제로 죽은 건 아니지만.

       

        여하튼 그 점이 헤를라인의 고개를 푹 숙이도록 만들었다.

       

        이 점이 특히나 안타까웠다. 처음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나를 감싸주던 이가 되려 고뇌하는 꼴이라니.

       

        바싹 마른 입술을 우물거리고 있는 헤를라인을 보며,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은사님.”

       

        그 말 한마디에는 그녀의 고개를 들게 하는 힘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헤를라인의 눈이 크게 떠졌다. 평소 실눈으로 다니던 그녀의 눈동자가 헤이즐넛 색이라는 걸 오늘 알았다.

       

        왜? 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헤를라인. 나는 그녀를 향해 말을 이었다.

       

        “은사님의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은사님이 절 그날 구해주지 않으셨더라면 전 험한 꼴을 당했겠죠.”

       

        갑작스러우면서도 낯뜨거운 말이었다. 그러나 이런 말을 제때 해주지 않으면 나중에 안 좋은 일이 생길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타인에게 진심을 쏟아낸 적이 얼마 만이더라? 기억도 안 나는 때를 머릿속에서 휘적거린다.

       

        역시 기억이 안 난다. 태어난 이후로 몇 번 없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 횟수를 늘려나가기로 했다.

       

        “선생님 덕분에 좋은 친구들을 만났어요. 늘 공부하고 싶었던 곳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어요. 비로소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에테르.”

        “그러니까, 적어도 제게 있어서 선생님의 결정은 틀리지 않은 거예요.”

         

        나는 바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헤를라인의 시선이 점점 위를 쫓아 올라왔다.

       

        잠시 멀뚱거리던 헤를라인이 뒤이어 일어났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오늘 연구는 조금 늦게 끝날 듯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연재 공지가 있어 미리 말씀드립니다.

    화요일 연재분은 전날 기말고사 공부로 인해 연재시각이 오전 7시에서 조금 더 뒤로 늦춰지거나, 혹은 휴재일 수 있습니다.
    설령 휴재더라도 하루뿐인 휴재가 될 터이니 저번처럼 장기휴재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떻게든 기말고사 기간은 넘어가고 있습니다…
    살려줘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