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56

        

         

       차도살인이란 말이 있다.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니, 곧 남의 힘을 빌려서 사악한 계책을 이룬다는 뜻이다.

         

       화로에 불 피우면 감시하던 나면파 무인들이 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노인이 뻔뻔하게도 콧방귀를 뀌었다.

         

       “흥. 어쩔 수 있겠나. 무공도 모르는 촌부가 저 개새끼들을 조질 방법이 있었을까.”

         

       “너무 당당하신 것 아닌가.”

         

       “칼을 빼 든 건 너희들이 아니냐. 굳이 피를 보지 않았더라도 상관없지 않았나.”

         

       죽여달라 부탁도 안 했는데 너네들이 알아서 죽이지 않았느냐고.

       청이 어이가 없어 말했다.

         

       “그야 우리가 고수, 아니 겸상하기에는 내가 너무 고수기는 한데, 어쨌거나 이쪽이 쎄니까 저 잡놈들이 주춤거렸지, 아니었으면 예쁜 여인들 보고 난리를 쳤을 놈들 아닌가?”

         

       “거한을 한 장사 한 명에 대단한 미인 둘, 그리고 떨거지 하나가 돌아다니는데 옷자락에 먼지 한 톨 없으면 대단한 실력 가진 연놈들이겠거니 했지.”

         

       노인이 제갈이현과 당난아, 그리고 견포희를 차례로 보며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시선이 청을 향했다.

         

       “오잉. 뭐야. 왜 내가 떨거지야?”

         

       “얼굴 가린 년이 괜히 가렸을까.”

         

       강호의 상식으로 얼굴을 가렸으면 남에게 못 보일 면상이라서 그렇다는 것이 당연했다.

       아니면 고귀한 신분의 여인이라 얼굴을 함부로 보일 수 없어서인데, 그런 귀부인들은 품위 떨어지게 칼을 차고 다니지 않았다.

         

       “어쨌거나 내 죽기 전에 통쾌한 광경을 보았으니 침은 잘 붙여 주지. 금방 될 테니 가지고 떠나게. 세 놈이나 죽었으니 독이 바짝 올라서 몰려올 것이야.”

         

       “그럼 노인네는?”

         

       “늙은 놈이 살아있어 봐야 못난 손자 놈한테 해코지나 해서 들이밀겠지. 그 꼴 안 보려면 목메고 죽어야지 별수가 있나. 그러고 보니 이 침이 내 유작이 되겠구만.”

         

       담담히 말하기에는 비참한 소리였다.

       청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동정심 유발?”

         

       “어차피 부탁할 생각일랑 없으니 남이사 목을 매건 쇳물을 들이마시건 상관하지 말게. 자네들 오기 전이라고 숨만 붙어있었으니, 기회를 노려 한 놈이나 잡고 떠나려 했지.”

         

       청이 철방에 들어 그늘 속에서 조용히 바라보던 노인의 서늘한 눈빛을 기억해냈다.

         

       독한 노인네가 한 놈 잡고 떠나려 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던 모양이지.

         

       “왜 도움을 안 청하고 죽을 생각이나 해요?”

         

       “흥. 누구한테? 다른 문파라고 해도 다 한통속이지, 관아도 돈 처먹고 편을 드는데 어디다 하소연해 도움을 청해.”

         

       “왜, 정파도 있잖아요. 바를 정 짜 쓰는데.”

         

       “흥. 정파고 사파고 어차피 무림인이라 하는 족속이 아니냐. 어차피 무기 든 살인귀들이지. 너희가 하는 일들이 그런 것 아니던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뺏고 협박하고 안 되면 분풀이를 하지. 그러니 어쩌나. 무공 모르고 힘이 약하면 그냥 죽어야지.”

         

       당난아가 그에 발끈했다.

         

       “뭐얏, 이 늙은이가……!”

         

       “됐어.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뭘.”

         

       청이 당난아를 만류하자, 반 노인이 삐뚜름히 웃었다.

         

       그래서 넌 뭐 다르냐는 그런 시선이었다.

         

       하기야 도시에 정파가 없었다니.

       일평생 마주한 무림인이 사파의 악인들뿐이면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사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하듯이, 말만 올바르니 어쩌니 하며 신경을 써 주지 않는 정파들이 더 미웠을 수도 있고.

         

       “도발 치곤 유치하긴 한데, 내 한 번 넘어가 준다. 손자놈 찾아볼 테니 죽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봐요.”

         

       “도와준다고? 흥. 선심 쓰듯이 은혜를 베풀어 봐야 검은 안 만들 것이다.”

         

       “누가 검 만들어 달랬어요? 웃기시네. 쓰다 헤지면 버리는 게 검이지 뭐 좋은 검 잡았다고 아껴서 칼질할 거야 뭐야.”

         

       청은 무기를 막 쓴다.

       이름 붙이는 것만 봐도 그랬다.

       그냥 검은 월광검, 반검은 지옥참마도다.

         

       복신적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만약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면 저승에서 참다 못한 반치가 피눈물 흘리며 강시-반치가 되어 복수하러 돌아올 수준으로 복신적을 학대하는 중이 아니었던가.

       이후에 단봉을 하나 더 얻으면 복신적(2호)가 되는 식이었다.

         

       “대신 나도 하다 안 되면 쨀 거니까, 만약에 누가 깽판치다 힘에 부쳐서 도망쳤다고 하면 그때 목을 매건 쇳물에 코 박고 죽건 해요.”

         

       청이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막 철방 앞마당을 가로지는데 시야 한 구석이 반짝반짝 임무창이 열어달라 아우성을 쳤다.

         

       쳥이 임무창을 띄웠다가 확인도 없이 그대로 치워버렸다.

         

       해봐야 돌발 임무고 내용도 뻔하지 않나.

       노인네 돕든가 강도질 하던가 아니면 천살성 다 죽여라 뭐 이런.

         

       “누님, 일단 진정하시지요.”

         

       그때 제갈이현이 청을 붙잡았다.

       청이 그제야 제 실수를 깨달았다.

       항상 이럴 때는 혼자서 깽판을 놓았으니 일행이 있는 것을 깜박하고 말았다.

         

       “맞다. 나는 가서 좀 놀다 올 테니까, 먼저들 개봉에 가 있어.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안 되면 도망치지 뭐.”

         

       “생각해보니 낙양에서도 그러셨지요. 다만, 누님. 그때 팽 형님이 얼마나 서운해하셨는지 아십니까?”

         

       “응? 왜?”

         

       “도와달라고 한 마디만 하셨으면, 팽 형님이나 저나 아니면 황보 형님이라도 그까짓 사파 하나 별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냥 훌쩍 떠나고 마셨지요.”

         

       에이, 하며 청이 손을 내저었다.

         

       “그야 너희는 너희 사정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땐 내 일이었고.”

         

       “저야 그때는 누님을 처음 봤을 때니 그런가 하고 넘어갔었습니다만, 팽 형님께서는 이를 부득부득 가셨지요. 왜 그러셨나 했더니, 이젠 이해가 됩니다. 누님, 동생이라 하시더니 정작 필요할 때는 남이라고 선을 그으시는군요.”

         

       “그야 남이지. 친하다고 해서 우리로 함부로 엮는 거 아니야. 내 결정엔 내가 책임을 지는 거고. 나야 뭐 엄밀히 따지자면 신녀문 소속이 아니기도 하고, 사부님께서는 당신 때문에 참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그러자 제갈이현이 눈에 띄게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친하다고 생각하시면 한 번은 권유해 주셔야지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우리 이만 헤어지자’ 하고 통보하실 것이 아니라.”

         

       음. 그게 그렇게 서운할 일인가?

       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난 도망치는 데는 이미 초초고수라서 사부님께서도 작정하고 튀면 천하에 잡을 사람이 없다고 하셨는걸. 그러니 나는 별 위험할 일이 없는데, 너희가 같이 가면 위험할 수도 있잖아.”

         

       “이번엔 누님의 책임이로군요?”

         

       “응?”

         

       “누님께서 권유하셔서 함께 하겠다고 결정하면 말씀대로 개인의 책임이 아닙니까. 그러면 누님이 그에 걱정하실 필요는 없잖습니까.”

         

       “그게 말이 돼? 나 때문에.”

         

       “하아. 됐습니다. 저는 제멋대로 누님 뒤를 따라갈 터이니, 어찌 되더라도 전부 제 결정입니다.”

         

       “아니, 왜.”

         

       청이 떫은 표정을 짓는 차에 당난아도 이때다 하고 끼어들었다.

         

       “맞아. 청아 가면 나도 갈 거야. 여차하면 이것도 있고.”

         

       당난아가 어디선가 주먹만 한 둥근 것을 꺼내 자랑스레 들어 보였다.

       제갈이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독탄을, 항상 들고 다니십니까?”

         

       “아. 괜찮으니까 걱정마. 그냥은 안 터져.”

         

       참고로, 폭발물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유언 중 절대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대사와 같았다.

       ‘괜찮아, 안 터져.’ 그리고, 빵!

         

         

       —-

         

         

       일행이 당당하게 주마점을 가로질렀다.

       제갈이현이 있어서 좋은 점은, 길을 한 번만 물어봐도 척척 경로가 잡힌다는 것이었다.

         

       “이 앞에서 좌측이로군요. 그리고 나서는 큰 광장에서 우측 첫 번째 대로입니다.”

         

       “음. 혹시 과속 단속은 안 해?”

         

       “예?”

         

       “그냥 해 본 소리야. 신경 쓰지 말고.”

         

       제갈이현에게는 영문 모를 소리였다.

       농담은 농담이고, 청의 자신감이 워낙 위풍당당 자연스럽게 쳐들어가는 중이였다.

         

       “그런데, 달리 계획이 있으십니까?”

         

       “그야 물론이지. 난 항상 계획이 있어.”

         

       “고견을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음. 가서 반 노인 아들을 내놓으라고 한다?”

         

       “……? 순순히 내어주겠습니까? 그리고 아들이 아니라 손자였습니다.”

         

       “아들이나 손자나 거기서 거기지 뭐. 그리고 안 주면 일단 공격한다. 정문을 막고 내가 앞, 너희가 뒤, 적이 안 오면 난아가 비겁하게 암기를 던지면서 달려들게 유도한다.”

         

       “……?”

         

       “초절정 고수가 나오면 절정 초월 서문청님이 승부한다. 끝.”

         

       “과연.”

         

       제갈이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에 말했다.

         

       “지금이라도 빠질 수 있겠습니까?”

         

       “나는 가는 사람 안 붙잡아.”

         

       “붙잡는 척이라도 어찌 안 되겠습니까……”

         

       평소의 제갈이현이라면 여기서 만류해 되돌아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서문청이라는 인간을 겪었으니, 좀 더 세세한 습격 계획이니 하는 소리를 해 봐야 그럼 나 혼자 간다며 뛰어들 위인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게다가 기세등등 자신감 가득이니 달리 어떤 수를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기대도 있고.

         

       당난아는 별 생각이 없다.

       나쁜 놈 무찌르러 간다 정도.

       강호초출 나온 병아리가 흔히 할 생각이었다.

         

       이쯤 되면 청에게서 멍청해지는 기운이 뿜어지지 않나 의심을 해야 할 정도이리라.

         

       다만, 견포희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원래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면파 현판 걸린 대문이 저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청이 그에 멈추지 않고 쭉쭉 나아갔다.

       정문을 껄렁하게 지키고 있던 위사들이 일행을 발견하고, 그리고 또 특히 당난아의 얼굴을 보고 헤벌쭉 입이 벌어졌다.

         

       저어하는 느낌 없이 당당히 다가오니 어디서 온 손님쯤인가 하고.

         

       청이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하기로는, 왜 사파 놈들은 문지기부터 삐딱하니 못된 티를 내지 못해서 안달인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용무이십니까?”

         

       “반가 철방의 반 노인네 아들? 손주? 찾으러 왔는데? 순순히 내어놓는다면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지만.”

         

       “네?”

         

       “가서 전하라고. 기분이다, 내가 보내준다.”

         

       청이 오른발을 꽝 밟으니 월녀산보의 묘리로 대포알처럼 발사되었다.

       나면파 무인 앞에서 오른발을 꽝 밟아 우뚝 멈춰서니 개중에 왼팔만 그대로 나아가 멱살을 쥐고 휘두른다.

       사내의 몸이 둥실 떠올라 담벼락을 넘, 지는 못하고 상단에 부딪혀 기와만 와장창 쓸어내리며 떨어져 꼬꾸라졌다.

         

       청이 떫은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 힘이 모자랐네. 양손이면 넘겼는데.”

       

       

    다음화 보기


           


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