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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6

       9월 말이 될 때까지, 나는 그냥 평범하게 지냈다.

        

       원작에서 느꼈던 소피아에 대한 혐오감은 많이 사라진 뒤였다.

        

       내가 싫어하던 존재는 그저 캐릭터였을 뿐이고, 내 눈앞에 있는 존재는…… 그 존재랑은 다른 소피아였으니까.

        

       클레어의 경우와 비슷했다. 물론 클레어는 캐릭터였을 때도 내가 좋아하긴 했지만, 아무튼 지금 내 근처에 있는 클레어와 그 캐릭터가 동일 인물이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을 거다.

        

       그 직후에도 시간을 돌려가며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네? 제가요? 저는 아직 진짜로 사람을 베어본 적은 없는데요?”

        

       “법국에서 기사가 되어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기쁘긴 했지만, 그건 제가 지금까지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예요. 사람을 베고 싶어서 기사가 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라고, 소피아는 기겁해서 대답했다.

        

       원작에서는 캐릭터의 뒷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고 그냥 ‘나는 사람 죽이는 게 좋아서 성당 기사가 되었다’라고 하긴 했지만…… 어쩌면 여기에도 어떤 뒷이야기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원작에서는 성당 기사가 되는 것이 더 나중이기라도 한 걸까? 나라는 존재 때문에 급하게 성당 기사가 되었나?

        

       적어도 세탁 방식은 ‘그래도 진짜 아무나 막 베고 다니지는 않았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본인한테 물어도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었는지라, 일단 더 물어보는 것은 포기했다. 차라리 베라티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쪽이 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아니면 내가 직접 법국에 쳐들어가서 교황 멱살 잡고 물어보는 방법도 있겠지.

        

       어쩌면 후속작에서 풀어낼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뒤편 나오기도 전에 이쪽으로 넘어와 버리는 바람에 의도된 내용을 모르게 되어버렸을지도?

        

       ……참, 다시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네.

        

       사람을 이런 곳에 보내려면 적어도 뒷이야기는 다 보고 오도록 하는 게 더 맞는 거 아닌가? 그래야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대비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

        

       이런 식으로 다짜고짜 보내면 내가 잡아야 할 목표가 뭔지도 모르겠잖아. 기껏해야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 살리기’라는, 굉장히 어중간하고 두루뭉술한 계획 정도밖에는 세우지 못한다.

        

       어쩌면 그런 상황을 유도하는 것 자체가 그 존재의 목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뭐 지금 당장이야 확인할 수가 없는 일이니, 당장은 눈앞에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밀레니엄 사의 RPG 시리즈, 특히 아제르나 전기 시리즈의 경우, 세계관이 바뀔 때마다 1편은 거의 그 세계관의 배경이 되는 지역과 캐릭터, 사회상을 소개하는 쪽에 초점을 둔다. 스토리 후반부에 갑자기 사고가 크게 터지고, 1편 내내 소개되며 인연을 만들었던 캐릭터들이 2편에서 끈끈하게 다시 뭉쳐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방식을 취한다.

        

       1편은 1학년 2학기가 끝나는 시점까지의 내용. 2편은 1편 직후부터 그 해 연말까지. 3편은 2편 직후부터 6개월간의 이야기로, 후속작이 될수록 시간적인 배경은 짧아지는데 스토리의 밀도는 더 높아져서 플레이타임은 뒤로 갈수록 길어진다.

        

       3편에서 죽는 히로인이 정해지고.

        

       물론 게임이야 세이브 파일을 하나하나 연동하게 만들기 어려우니 대충 3편에서 모든 사건이 몰아서 터지게 만들어진 거고, 이곳은 현실이었으니 지금부터도 뒷일을 전부 생각하면서 움직이는 편이 좋겠지.

        

       그래서 나는 전투 교본을 만들지 않았다.

        

       내가 그런 것을 만들면 황제가 요긴하게 써먹을 테니까. 제니퍼도 굳이 나한테 그런 것을 만들자고 제안한 적도 없고.

        

       오히려 레나가 자치국에 가서 그런 것을 만들어버릴 가능성은 있지만…… 그건 괜찮다. 자치국에게 제국군을 어느 정도 방해할 역량이 생기거나, 아니면 국경지대의 군벌을 자력으로 해결할 능력이 생기면 황제는 생각을 달리 하게 될 테니까.

        

       이미 원작에서보다 훨씬 유하게 제국을 통치하고 있는 황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전적으로 내 존재 때문이었고.

        

       국경지대에 포격을 날렸다는 모니터함의 존재가 변수이긴 했지만, 그건 원작에서도 나오긴 했으니까.

        

       지금까지는 오히려 이야기가 긍정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봐도 괜찮겠지.

        

       지금까지는.

        

       *

        

       나한테 말없이 고개를 조아리는 상대는 나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날씨가 추워지고 있었기에, 나는 슬슬 코트를 다시 어깨에 걸치고 다니기 시작했다. 종종 내 뒤를 따라다니는 레나도 어째서인지 어깨에 코트를 걸치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뭐, 적어도 내 패션이 완전히 이상한 것은 아닌 것 같다. 하긴, 제니퍼도 코트를 어깨에 걸치고 다니니까.

        

       하지만 상대는 달랐다. 셔츠의 단추도, 코트의 단추도 끝까지 다 채우고, 그 옷에는 주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정갈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그 모습은, 얼핏 보면 군인의 몸가짐을 떠오르게 했지만, 그렇다고 레나의 단정함과는 어딘가 달랐다.

        

       묘한 위화감을 따라가다가, 내 머릿속에 떠오른 존재는 다름 아닌 황실의 메이드였다.

        

       아, 그렇지, 참. 로티는 일단은 제이크의 메이드 신분이었으니까.

        

       “로티, 라고 했던가요.”

        

       그냥 메이드였다면 나도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지나갔겠지만, 상대는 원작의 레귤러 캐릭터였다. 공략할 수 있는 히로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순정남 제이크와의 관계로 꽤 인기 있던 캐릭터.

        

       “미천한 저의 이름을 황녀님께서 기억해주시니 영광입니다.”

        

       현대인인 내 기준으로 들으면 이 말은 조금 비꼬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아니다. 여기서 로티의 출신성분이 ‘미천하다’라는 것이 상식이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여기에 대고 뭐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제이크의 친우였지요.”

        

       “메이드입니다.”

        

       나의 질문에 로티는 철벽을 치듯 그렇게 대답했다.

        

       “음.”

        

       왠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약간 도전정신이 생겼다.

        

       식민지인과 혼혈이라는 것을 나타내듯, 피부색은 어두웠다. 제국의 가장 큰 모티브가 한때의 대영제국이었으니, 로티의 고향의 모티브는 식민시대의 인도였다.

        

       로티가 아제르나 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건, 식민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건, 로티의 머리 깊은 곳에 신분제가 뿌리 깊게 박혀있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제이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내가 그렇게 말하자, 로티의 눈썹이 움찔 떨렸다.

        

       “제이크 님은 그저 오랜 시간 알고 지내온 저를 편하게 대하시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친우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황녀님.”

        

       나는 로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선을 아래로 깔고 있는 로티라서 표정이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내가 제이크를 깎아내리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음.

        

       그렇다고 나도 황제의 피 한 방울 안 섞였는데 황녀 신분이라는 말을 할 수는 없지.

        

       신분제 국가에서 그 정점에 있는 황제가 그렇게 하겠다면 그런 것이다. 괜히 말을 꺼내 봐야 약만 올리는 이야기였다.

        

       “오, 실비아.”

        

       내가 다음 말을 꺼내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마침 제이크가 나타났다. 잠깐 뭐라도 하고 있었던 걸까.

        

       “둘이 친근하게 지내는 걸 보니까 좋네.”

        

       “……제이크 님.”

        

       전혀 친근하게 보이지 않는 우리 둘을 보고 참 넉살 좋게도 그렇게 말하는 제이크를 향해 로티가 경고하듯 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이크는 그 날카로운 말을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흘려버렸다.

        

       “둘은 우연히 마주친 건가?”

        

       “그렇습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내가 그렇게 말하자, 제이크는 재미있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혹시 다음 파견 실습이 우리 영지라서 말이라도 건 거야? 정보라도 빼내겠다고?”

        

       딱히 그런 생각은 없었는데.

        

       린드버러 영지의 성이 어떤 구조인지는 대충 파악하고 있었다. 전체가 구현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읽어야 할 책이나 확인할 아이템이 있는 곳이 어느 곳인지 정도는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으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굳이 다른 이유를 생각하기도 귀찮아서 그렇다고 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한테 살갑게 말을 안 거는 것으로 유명한 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말을 걸었다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의심받을 일이니까.

        

       특히 로티는 아까부터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황실의 ‘그’ 아이였으니까. 혹시라도 린드버러 영지에서 뭔가 저지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그리고 아마, 나를 경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제이크 린드버러 때문이리라.

        

       거 훈훈하기도 하지.

        

       내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로티의 어깨에 슬쩍 손을 얹으려다가 로티가 손으로 탁 쳐내자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손을 내리는 것을 보며, 나는 조금 더 곤란하게 만들어볼까 고민하다가 말았다.

        

       “정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내가 알려줄 수도 있는데?”

        

       “그렇습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로티를 슬쩍 보았다.

        

       제이크도 로티를 슬쩍 보는 걸 보면, 아주 잠깐 우리 마음이 맞았던 것 같다. 뭐, 제이크나 로티나 내가 로티를 약 올리고 싶다고 생각한다고까지는 추측하지 못했겠지만.

        

       “그러면, 잠깐 대화라도 나누시겠습니까?”

        

       “그래? 그러면 단둘이서—”

        

       “도련님.”

        

       로티가 제이크의 말을 끊는 것을 보고, 제이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이쿠, 내 소꿉친구가 싫다네. 그럼 어쩔 수 없지.”

        

       아마 내가 앞에 없었다면 로티는 눈이라도 굴리지 않았을까.

        

       직접 볼 일이 없다는 게 조금 아쉽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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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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