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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6

    꽤 고난이었다.

     

    첫 여행으로 대흥분한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사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보육시설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디아나는 오늘따라 얌전해질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

    아이 하나를 보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11살짜리 아이들 수십명을 돌봐야하는 선생이라면 오죽할까, 다이튼은 절대 선생만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뭐……. 그건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일을 어렵게 만든 부분도 있기는 하겠지만.

     

    다이튼이 디아나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한숨을 내쉬자, 휴대폰을 보고있던 예르나가 다가왔다.

     

    “고마워. 이렇게 준비해줘서.”

    “아니, 뭘…….”

     

    다이튼은 예르나의 시선을 피하며 볼을 긁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정말 단순히 호의만 가지고 한 행동은 아니었으니까.

    예르나와 단 둘이……는 디아나 때문에 아무래도 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이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남들이 보기엔 가족처럼 보였는지, 택시기사에게 가족끼리 참 보기 좋네, 딸인가? 같은 소리를 듣기도 했고.

    예르나가 바로 얼굴을 붉히며 부정하는 모습도 나름 귀여웠다.

    물론 격한 부정에 마음에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예르나는 고통과 회복을 동시에 주는 여자야.

     

    “아, 오늘은 좀 늦었다. 나, 나는 이제 가볼게. 디아나를 잘 부탁해.”

     

    그래도 역시 숙소를 같은 방으로 잡는 것은 아직까지는 솔직히 부담스러운 사이가 아닌가 싶어서 방을 두개 잡았다.

    침대를 보니까 나와 디아나가 눕기엔 부족할 것 같아서 디아나와 예르나가 한 침대로 잠을 자고, 다이튼은 혼자서 방을 쓰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때. 예르나가 다이튼의 팔을 붙잡는다.

     

    “나, 할 말이 있는데.”

     

    “…….”

     

    이 순간, 다이튼의 머릿속은 잠깐 작동을 멈췄다.

    할 말? 대체 그게 뭘까?

    돌아가서 잔다는 남자의 팔을 붙잡고 해야 할 말이라는 것은 대체?

     

    설마, 아니겠지?

     

    다이튼은 쿵쾅대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뭔데?”

     

    “루크랑 관련된 얘기야.”

     

    “루, 루크랑?”

     

    아, 그래. 이제 슬슬 ‘진짜’ 보호자가 될 때도 됐지. 안그래?

    루크에게도 엄마와 아빠가 필요할 것 아니야?

     

    그렇게 다이튼이 마음껏 망상을 펼치고있던 순간, 예르나는 거듭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드래곤 하트와 프로이튼 가문에 관한 이야기야. 너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어?”

     

    ……그럼 그렇지.

    기대를 한 내가 바보다.

     

    ———

     

    운과 운명, 그리고 신의 존재…….

     

    쉽게 답이 나오지 않을 고민을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 시선을 발치에서 뗀 루크는 문득 식물원 자체의 시설에 뒤늦게 감탄했다.

     

    “오오, 이제보니 여기도 참으로 대단한 시설이로구나!”

     

    -대단한 시설이다!

     

    눈가에 내리쬐는 햇볕을 손을 들어 막는 루크와 그 옆에서 루크의 감탄사를 흉내내는 파이.

    확실히 시설의 수준은 매우 훌륭했다.

     

    평소 도시에서 자주 보던 건물 크기의 온실, 추가로 식물에게 완벽에 가깝게 조성된 환경…….

    게다가, 마력초와 식물의 배치도 깊게 고민한 느낌이 든다.

     

    온실 뿐 아니라 야외의 전경도 수준급이다.

     

    가꾸어진 산책로에 양 옆으로 늘어선 각양각색의 꽃과 더불어 거대한 연못에 커다랗고 동그란 잎을 띄운 채 유영하는 꽃, 나무를 타고 오르는 꽃, 벽면에 장식된 꽃…….

    시선과 발길이 닿는 모든 장소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었다.

     

    그렇게 가꾸어진 식물들은 다들 하나같이 깊은 관심과 정성을 받았는지, 찬란한 생기를 내뿜으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마법의 재료로 쓴다면 더할 나위 없는 최상급의 재료가 되리라.

     

    “정말 훌륭해.”

    -맞아, 훌륭해!

    “흐음, 그러고보니, 이런 인위적인 시설에서 가꾼 식물도 정령에겐 아름답게 느껴지는겐가? 문득 궁금해지는구나.”

    -응, 멋있어! 왜냐면, 인간도 자연의 일부니까.

    “그렇군, 마력 자체에 가해지는 인위적인 조작만 아니면 생물은 별로 상관이 없는 것인가?”

     

    생물자체에 인위적인 마력만 담기지 않는다면, 환경조성을 통한 간접적 조작쯤은 정령에게 별로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새로운 지식이 늘었군.

     

    “흐음.”

     

    지금 레니에가 있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흠, 그녀는 자신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몰래 꽃집을 하고 있었을런지.

    그녀가 자신의 시간을 오래 들였다면 이것보단 훨씬 커다란 정원을 가꿀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루크는 그제서야 굉장히 즐겁다는 듯 주변을 살피며 웃었다.

     

    만약 신이 아직 완전히 죽거나 자취를 감추지 않아서 레니에가 어딘가에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정말로 그렇다면 언젠가 그녀와 함께 이 산책로를 거닐고 싶다고 생각하며.

     

    ——

    그리고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는 시루드와 메리는 루크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기뻐하면서도 당황스러웠다.

     

    방금까지 굉장히 우울했던 루크가, 이제는 앞장서서 나아가며 웃고 있다니.

    심지어는 종종 즐거운 듯 노랫소리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평소의 루크는 저 정도로 감정의 변화가 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기에 상당히 낯선 기분이었다.

     

    “루크는 회복이 되게 빠르네. 어떻게 한 거야?”

     

    “음……. 아무것도 아냐.”

     

    “흐음, 그래?”

     

    대답을 피하자 시루드를 바라보는 메리의 시선이 살짝 미묘해졌다.

    저 눈, 저 표정.

    시루드에겐 상당히 익숙하다.

     

    “……진짜 아무것도 안 했다니까.”

     

    “흐응-.”

     

    메리는 여전히 묘한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시루드를 바라보았다.

    루크는 시루드에게 별 생각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런 시루드의 반응을 보면 시루드는 마음이 없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

    메리는 아직 재밌는 구경을 놓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

     

    시루드는 그런 메리의 시선을 피하며 생각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사실은 선물을 하나 주기는 했지만 그 얘기는 딱히 메리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꽃 브로치 선물이라니, 그건 그냥 루크의 관심사를 생각해서 최대한 떠올렸을 뿐이지, 별로 다른 의미가 담겨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장신구를 여자에게 선물해준다는 사실이 마냥 순수하게 받아들여질 행동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기는 하다.

     

    뭐, 받아서 기분이 좋아졌다면 자신의 노력이 보답받은 것이니 마냥 기분좋게 생각하면 될 일이기는 하지만, 그건 사실 루크가 선물을 받은 것으로 뒤로 저렇게 팔팔해진 거라고 보기엔 상당히 미묘한 부분이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루크에게 건넸던 브로치가 지금은 자신의 가슴께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려나.

     

    ——–

     

    루크는 그 디네키스로 만든 브로치를 보고는 생각했다.

     

    ‘디네키스, 벌레를 쫓는 풀이다. 꽃말은 ‘당신을 보호하겠습니다.’였던가?’

     

    벌레를 쫓아 주변을 벌레로부터 보호하는 풀이기에 그러한 꽃말은 딱히 이상한 부분은 아니다.

     

    ‘보호라…….’

     

    루크는 씁쓸하게 웃었다.

    시루드가 이 꽃의 꽃말을 알고 건네주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실제로 자신은 현재 예르나를 비롯한 타인에게 ‘보호’와 배려를 받으며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으니까.

    심지어는 여기에 이렇게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조차, 시루드가 자신의 비행기를 태워준 덕분이 아니던가.

     

    본래의 자신은 누군가의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되어버린 것인지, 이런 자신이 조금 처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래도.

     

    이 아이만큼은, 지금의 자신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루드, 내 첫 가르침을 받은 아이야.”

    “어?”

     

    시루드는 당황한 듯 목소리를 짜냈다.

     

    루크는 브로치를 쓰다듬으며 마력을 재배치하였다.

    순식간에 이뤄지는 인챈트.

    현대의 수많은 마도기기를 보며 생각하고 떠올린 실험적 노하우와 고민들이 녹아있는 고차원적인 인챈트였다.

     

    “선물은 정말 고맙다. 하지만…….”

     

    루크는 마지막으로 용언을 담아 숨을 불어넣어 브로치의 마법적 조치를 고정시켰다.

    디네키스의 ‘보호’는 이제 단순히 벌레만을 쫓지 않는다.

    이 브로치는 이제 감정적인 동요에서 서클을 보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루크 자신에겐 아무런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다.

     

    “자, 받거라.”

     

    “응?”

     

    여전히 당황한 표정의 시루드를 향해, 루크는 씨익 웃으며 시루드의 가슴께에 직접 브로치를 달아주며 말했다.

     

    “나는 네 그 마음만으로 충분하단다. 그러니, 이건 네가 꼭 간직하고 있었으면 좋겠구나.”

     

    “어? 왜? 선물이 맘에 안 들어?”

     

    “아니. 그렇지만, 이것은 나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란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

     

    루크는 그저 웃었다.

    마법은 신비.

     

    신비란, 직접 가르쳐주어서는 의미가 옅어지고 마는 것이니까.

     

    ———

     

    시루드는 브로치에서 눈을 떼며 짧은 회상을 끝냈다.

     

    루크는 브로치를 받고 어딘지 살짝 씁쓸해 보이게 웃으며 쓰다듬고는, 한숨을 쉬면서 자신에게 이 브로치를 다시 달아주었다.

     

    ‘혹시 선물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글쎄, 그런 것 치고는 선물을 받은 그 순간만은 되게 좋아했는 걸.

    즐거운 기억도 떠올랐다고 했고.

    그렇다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얘긴데…….

     

    ‘나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란다.’

     

    대체 그건 무슨 뜻인걸까?

     

    루크는 항상 수수께끼 같은 말을 좋아했다.

    자신에게 마법을 가르쳐주던 그 순간에도 루크는 자신의 말에 반박하고 따지지 않고, 또는 직접적으로 확실히 가르쳐주지 않고 생각할 거리만을 계속해서 던져주고는 했다.

     

    루크는 원래 그런 아이인걸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으니, 메리가 그제서야 꽃을 알아차린 듯 시루드의 가슴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꽃, 디네키스잖아? 혹시 이거 누구한테 받은거야?”

    “아니, 돈 주고 산건데.”

     

    그냥 마력이 담긴 물건중에 가장 싼 물건을 고른 거지만.

     

    “흐응, 그렇구나……? 설마, 벌레나 쫓으려고 산 거야?”

    “으음……? 무슨 소리야, 벌레나 쫓는다니.”

    “뭐야, 디네키스가 어떤 꽃인지도 모르고 샀어?”

     

    메리의 눈동자가 ‘또’ 가늘어졌다.

    이제 질릴 정도라, 시루드는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흐흠, 시루드. 너는 디네키스가 무슨 뜻인지 몰라? 원래 그건 혼자서 사는 꽃이 아니라구.”

    “그게 무슨 소리야?”

    “디네키스는 원래 프러포즈할 때 쓰는 꽃인걸? 그걸 그냥 벌레를 쫓으려고 사는 사람이 어디있어?”

     

    디네키스의 꽃말, ‘당신을 보호하겠습니다’는, 이성에게 선물할 경우 평생 곁에서 보호하겠다는 얘기가 되기도 한다.

    벌레를 쫓는다고?

    벌레 쫓는 데엔 더욱 싼 값에 성능도 확실한 벌레쫓기 포션이 있는데, 굳이 효과도 미묘하고 비싼 이 마력초 꽃을 사겠는가?

     

    평소 드라마를 자주 보던 메리에게는 상식이었지만, 시루드는 전혀 몰랐던 이야기.

     

    문득, 시루드는 어째서 루크가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깨달았다.

     

    ‘선물은 정말 고맙다. 하지만……. 나는 네 그 마음만으로 충분하단다. 그러니, 이건 네가 꼭 간직하고 있었으면 좋겠구나.’

     

    라던 루크의 말이, 시루드의 머릿속에서 변형되기 시작한다.

    어느새 시루드의 상상속 루크가 내뱉는 말은 다음과 같이 바뀌어있었다.

     

    ‘선물은 고마워, 시루드. 네 마음은 잘 알겠지만, 이건 받을 수 없어. 잘 가지고 있다가 다른 아이에게 선물해주길 바래.’

     

    “…….”

     

    시루드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채 황급히 루크의 위치를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으아! 야! 루크!! 난 그 뜻이 아니었어!”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 그런 뜻이 아니라니?”

     

     “그, 그러니까 그건……!”

    “…….”

     

    메리는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진짜 안 사귀는거 맞아?”

     

    루크도 시루드도, 그냥 인정하면 편해질텐데.

    이상한 애들이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이튼, 기대를 하니까 배신을 당하는 거야.

    0고백 1차임(?) 시루드와 딱히 찬 적이 없는 루크.
    이건 ㄹㅇ 러브코메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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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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