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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6

       2주의 임시 계약 기간이 끝나기 하루 전, 월요일.

         

       드래프트로 선발되었던 인원들은 기적궁 앞 교정에 모여 인터뷰를 가졌다.

         

       30여 명의 곡예사가 기자들 앞에 일렬로 섰다.

       입학시험으로부터 2주가 지났고,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거취를 어디로 정할지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몇몇 곡예단에서는 서로 필요한 인재를 찾아 트레이드를 약속했음을 밝혔다.

         

       10대 곡예사들은 서커스단에 잔류하기로 한 쪽과 학교에 입학하기로 한 쪽으로 나뉘었다.

       많은 사람의 예상과 달리 양쪽의 수는 비등비등했다.

         

       하늘도시 히포드롬의 원더 스테이지라면 곡예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였다.

       명망 높은 곡예사들도 후원자를 구하지 못해 대형 서커스단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마당에 설마 어린 곡예사들이 이 기회를 거절하랴 싶었다.

         

       그러나 10대들이라도 그들은 그 험난한 입학시험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실력자들이었다.

       무작정 꿈만 꾸는 어린애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보기보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 줄 알았다.

         

       <크리스티앙 가이드>로부터 별을 수여 받은 상위권 팀에 들어간 쪽은 주로 서커스단에 잔류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하위권 팀에 들어간 쪽은 주로 학교에 입학하는 길을 택했다.

         

       본선에 오를 확률이 희박한 곳에서 2년 동안 우왕좌왕하며 고생을 할 바에 검증된 레카체프의 교육을 받는 것이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부 정직한 단장들은 아예 그들에게 대회 참가에 눈이 멀어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학교로 가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10대 곡예사들이 입단 대신 입학을 택했다.

         

       지몬 마기어는 그 인성이야 어떻게 됐든 자기 일에서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주기적으로 이목을 끌어달라는 후원자의 요구를 잊지 않았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슬라그보르트 공작과 오찬을 가지면서 그와 뭔가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눈 척 떠들어댔다.

         

       “공작님의 소장품은 소문대로 엄청 났습니다. 여러분이 상상도 못 할 물건들이 거기에 있었죠. 극작가 크리스티앙에 대해 그분보다 많이 아는 분은 없을 겁니다.”

         

       그때, 기자 한 명이 질문을 던졌다.

         

       “혹시 ‘환상의 13번’도 거기서 보셨습니까?”

         

       지몬은 잠시 멈칫했다.

         

       극작가 크리스티앙이 발표한 극본은 공식적으로 12개가 다였다.

       그러나 그에게 쓰다가 미처 발표하지 못한 13번이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매년 꼬박꼬박 극본을 발표했던 그였다.

       그런데 그가 사망한 때는 그해의 극본을 발표할 시기를 넘겨서였다.

         

       미발표 극본이 있다는 것은 완전히 근거 없는 소문이 아니었다.

         

       물론 지금까지 그것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극작가 크리스티앙에 대해서는 전문가로 알려진 슬라그보르트 공작이라면 그 행방에 대해 알지도 모른다는, 아니, 어쩌면 그것을 소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세간에 떠돌았다.

         

       지몬은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본 적이 있다고 말하면 그는 거짓말을 한 게 됐다.

       그의 말 때문에 공작 각하가 괜히 귀찮은 공세에 시달릴 수 있었다.

         

       그렇다고 없다고 순순히 인정한다면, 화젯거리를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는 길을 택했다.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는 괜히 뭔가 있는 척 정색을 하며 기자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고는 화제를 재빨리 돌렸다.

         

       그는 원더스타인 측과 트레이드에 대해 협상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 역시 기자들의 관심을 크게 끄는 소재였다.

         

       지난 대회에서 나란히 1위와 2위를 차지한 엘라와 레이나!

       둘의 행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나 그는 여기서도 핵심적인 질문은 교묘히 피해가며 소문을 자극할 떡밥만 던져댔다.

         

       “내일 있을 트레이드에서 엄청난 파장이 있을 겁니다. 아, 지금은 섣불리 말할 수 없지요.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 그러나 다들 깜짝 놀랄 거라 확신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인터뷰를 종료했다.

         

       그가 일부러 오해할 만한 단어들을 쓴 덕분에 기자들 사이에서는 여러 추측이 들끓었다.

         

       엘라와 레이나를 바꾼 현재의 상태를 유지한다거나, 레이나가 재입단을 하지 않고 입학을 선택한다거나, 혹은 황금 카니발 측이 레이나와 엘라, 두 사람 모두를 손에 넣는다거나.

         

       사람들은 3번째 추측의 근거로 두 서커스단의 수준 차이를 들었다.

         

       엘라 정도 되는 천재가 단원도 열댓 명밖에 없는 무명 서커스단에서 계속 구르기에 아깝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엘라를 자신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고 3류 서커스단과 계약을 한 세상 물정 모르는 촌뜨기로 생각했다.

         

       로드 판타스틱이 2주 동안 뒤에서 그런 소문을 퍼트린 덕분이었다.

       자신은 그런 그녀를 수렁에서 구해준 은인으로 포장한 건 덤이었다.

         

       엘라는 인터뷰에서 자신을 둘러싼 기류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그녀는 그제야 지몬이 뒷공작을 벌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장이라도 그의 멱살을 잡고 싶었던 엘라였으나 기자들 앞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의 콧수염을 확 쥐어 뽑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내일을 기다렸다.

         

       지몬은 인터뷰를 하면서도 원더스타인 진영을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특히 레이나의 상태를 유심히 살폈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심어준 코드대로 사람들 앞에서 ‘황금 천칭’ 연기를 하고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듯 마차에 틀어박혔다.

         

       예상대로 레이나는 자신이 가한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역시 그저께의 돌발행동은 단순한 충동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자신이 공들여 짠 15년의 암시와 세뇌가 그렇게 쉽게 풀릴 리 없었다.

         

       레이나는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엘라 역시 자신이 쥐게 될 것이다.

         

       이 시대 최고의 재능을 가친 패를 2개나 손에 넣는다는 생각에 지몬은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레이나의 인터뷰는 딱딱하고 밋밋하게 진행되었다.

       평소에는 로드 판타스틱이 옆에서 화려한 언변으로 그녀를 보조해줬지만, 지금은 그런 게 없었다.

         

       지금의 그녀는 훈련받은 얼음공주의 모습 그대로였다.

         

       고압적인 자세에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말투.

         

       그녀의 그런 태도에 기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로드 판타스틱이 자기 딸에게는 쩔쩔맨다는 이유가 있군.”

       “그래. 저렇게 따갑게 나와서야 어디 귀여운 맛이 있겠어?”

       “자꾸 저러니 로드 판타스틱이 이번엔 엄하게 나온 거지.”

         

       기자들의 빈정거림에도 그녀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차갑고 냉정한 태도를 고수했다.

         

       “더 질문이 없으면 그만 길을 비켜 주시죠. 숙소에 돌아가 쉬고 싶군요.”

         

       레이나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자 기자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긴 다리를 쭉쭉 뻗으며 거침없이 그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모델과 같은 큰 키에 성숙한 몸매.

       조각 같은 외모와 눈부신 금발.

       그리고 도도한 눈빛과 싸늘한 표정은 자연스럽게 위압감을 형성했다.

         

       누구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는 높이 수천 미터의 미답의 만년설을 보는 것 같았다.

         

       레이나는 마차에 올랐다.

       그곳에는 원더스타인이 먼저 타 있었다.

         

       그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으나, 그녀는 고개를 한 번 까딱이고 말았다.

       임시 계약이라고는 하나 단장에게 대하는 태도로는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계속 머무르기로 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행동이었다.

         

       “역시 그녀가 원더스타인 쪽을 떠나는 건 맞는 것 같군.”

       “당연하지. 저런 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잖아.”

       “트레이드에 대한 첫 번째 가설은 역시 폐기인가.”

         

       마차가 교정을 나와 광장을 향해 달렸다.

       레이나는 마차 창문 너머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덮개를 닫았다.

         

       그리고 원더스타인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아빠!”

         

       그녀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떨떠름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녀는 기자들이 봤다면 경악할 만큼 생글생글 미소 띤 얼굴로 그에게 어리광을 부려댔다.

         

       “아빠, 저 아까 어땠어요? 예뻤나요?”

       “그, 그럼 물론…….”

         

       그의 대답에 레이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천진한 아이의 것과 같았다.

         

       “헤헤, 발표도 잘했죠? 아빠가 시키는 대로 했어요! 머리 쓰다듬어주세요!”

       “네, 네? 그, 그러죠.”

         

       원더스타인은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웃던 레이나의 표정이 돌변했다.

       그녀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를 노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는 딸에게 반말해야죠. 연기 제대로 해주세요. 약속했잖아요?”

         

       정색하는 그녀의 태도에 그는 재빨리 말을 바꿨다.

         

       “아, 으, 응……. 자, 잘했어, 우리 딸.”

         

       그러자 그녀는 다시 활짝 웃으며 그의 무릎 위에 앉았다.

         

       “헤헤, 그렇죠? 자, 쓰담쓰담!”

       “그, 그래…….”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치렁치렁한 금발을 쓰다듬어주었다.

         

       그의 키는 187cm로 큰 편이었으나, 레이나의 키도 178cm였다.

       그 정도면 여자 중에서, 특히 17살 중에서는 비슷한 키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컸다.

         

       겉모습만 봤을 때는 성숙한 여인이나 다름없는 그녀가 어린애처럼 옹알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에게 엉겨 붙는 상황에 그는 그만 눈을 감고 마차 벽에 머리를 박아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이나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안겨들었다.

         

       “아빠, 레이나보고 착하다 착하다 해줘요!”

       “그래. 우리 레이나 참 착하구나…….”

         

       그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이후로도 그는 그녀가 원하는 요구를 들어주었다.

       별장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

         

         

       레이나는 이틀 전 내 방을 찾아와서는 잔류 의사를 밝혔다.

       머뭇거리는 나에게 그녀는 2주 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함께했던 추억을 늘어놓았다.

         

       “단원들을 가르치며, 단장님과 연습하며 저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전에는 절대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죠.”

         

       긍정적으로 변한 그녀의 태도에 나도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내게는 그녀를 뽑을 여유가 없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대회 규정상 레이나 양과는 함께할 수 없어요.”

         

       나는 눈앞에 떠오른 단원 퀘스트와 계속해서 떠들어대는 가스통의 투덜거림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다.

         

       레이나는 다행히 내 사정을 이해해주었다.

         

       “저도 단장님께 무리한 부탁을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단장님께 폐를 끼치면서까지 남고 싶지는 않아요.”

         

       말을 잇는 그녀의 낯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대로 다시 아버지에게 돌아간다면……저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말겠죠. 아버지의 눈빛을 보고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아버지의 지시에 따르다 보면 다시 저는 인형이 되고 말 것 같아요.”

         

       그녀는 무릎 위에 얹은 손가락들을 꼼지락거렸다.

       아무래도 여기가 그녀가 말하고 싶은 본론인 것 같았다.

         

       “처음 느껴봤어요. 아빠라고 부를 때의 느낌…….”

       “하하, 서로에게 조금 민망한 일이었죠.”

         

       나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뇨……. 저는 어떤 충족감을 느꼈어요.”

       “그랬나요? 후후, 다행이군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몬 마기어에 의해 강제적으로 유년 시절을 생략 당했으니.

         

       그러나 뒤이은 그녀의 요구는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럼……남은 이틀 동안만 제가 단장님을 아빠라고 불러도 괜찮을까요?”

         

       그녀의 말에 나는 속으로 크게 당황했다.

       뭐……라고?

         

       주저하던 용건을 꺼낸 그녀는 용기가 생겼는지 조금 더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말했다.

         

       “그러면 마음에 있는 응어리 하나는 털고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그녀의 요구는 특별한 게 아니었다.

       그저 남은 이틀 동안 가족 놀이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귀에 울리는 가스통의 저주 아닌 저주를 어서 진정시키고 싶었기에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그것이 레이나 양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다면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지나간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을 뒤늦게 충족시키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나 하는 것 아닌가.

         

       TV에서 봤던 하객 대행 알바 정도를 떠올렸다.

       그저 이틀 정도 그녀가 바라던 ‘아빠’의 모습을 연기해주면 되는 것이다.

         

       행동은 지몬의 반대로 하면 됐다.

       착하고 다정하고 그녀의 말이면 뭐든지 다 들어주고.

         

       하지만 그녀는 내 상상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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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비경단 님, 10코인 후원! 적은 돈이라뇨. 내 돈 남에게 선뜻 베풀기 쉽지 않다는 걸 압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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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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