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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6

        

       “부정이라….”

         

       부정.

       올바르지 않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

         

       하지만 진성이 말하는 부정은 그런 사전적 의미와는 조금 달랐다.

         

       “부정이라는 것은 좋지 않은 것입니다.”

         

       부정이라는 것은 해를 끼치는 것이다.

       부정이라는 것은 이롭지 않은 것이다.

       부정이라는 것은 사람이 피하는 것이다.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에 사람들이 함부로 다가가지 않고.

       버려지고 관리가 되지 않은 곳을 꺼림칙하게 여기며.

       어둡고 습한 골목길에 있는 가게에 사람들이 쉬이 찾아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

         

       수천, 수만의 생명이 죽었던 곳이 아무리 깨끗하게 청소된다고 한들 사람의 본능이 꺼림칙함을 느끼는 것은 그들의 단말마에서 비롯된 부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며, 대를 이어서 악행을 저지르는 혈족에게 저주가 깃드는 것도 이러한 부정이 겹겹이 쌓여 실체화하였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부정이라는 것은 얼핏 액(厄)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실체를 쉬이 찾아볼 수 없으며, 오랫동안 쌓이지 않으면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부정함이 쌓이면 악랄하기 짝이 없는 힘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진성의 방에 고이 봉인해놓은 주물처럼 말이다.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물건을 망가뜨리고 곰팡이가 슬게 만들며, 살아있는 것조차도 썩어가게 만들고, 온갖 해충을 들끓게 만드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부정이 겹겹이 쌓이면 그 자체로 운기에 영향을 줄 수 있게 되지요. 자연에 깃들어 재액이 되고, 사물에 깃들어 저주를 품은 주물이 되며, 사람에게 깃들면 그 사람의 운기를 흐트러뜨리고 정신을 망가뜨리는 악몽이 됩니다. 그러하니 이것으로 피해를 주는 그 자체가 악업(惡業)에 속하는바, 사람이 살 일도 사람에게 쓰일 일도 없게 된 땅에서 행하는 것이 옳은 일일 것입니다.”

       “아니,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양훈은 진성의 설명을 듣고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네가 주술을 모으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으니 그러한 주술을 손에 넣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후. 꼭 그걸 해야만 하나?”

       “해야 합니다.”

       “왜?”

       “그래야 저에게 상징이 깃들고, 주술의 힘을 크게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주술의 위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그런다는 말이다.

         

       이양훈은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이마를 짚었다.

       그리곤 한숨을 쉬고는 물었다.

         

       “성인식이라면 내년에 하면 되는 것 아니냐?”

       “안 됩니다. 최대한 빠르게 해야 합니다.”

       “거 얼마나 기다린다고….”

         

       이양훈은 진성에게 기다리는 게 어떠냐고 설득했다.

       하지만 진성의 고집은 쉽게 꺾이지 않았고, 결국 그는 진성의 고집에 못 이겨 그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알겠다. 부득부득 우기며 지금 해야 한다고 하니 어쩔 수 없겠지. 그래, 네 부탁을 들어주마. 그러니까, 북한에 가야 하니까 도움을 좀 달라?”

       “그러합니다.”

         

       이양훈은 정말 들어주기 싫다는 얼굴로, 걱정된다는 얼굴로 말했다.

         

       “알겠다. 내 아는 장성에게 연락해서 어떻게 자리를 마련해보마. DMZ 견학, 아니면 안전지대 견학이라면 가능할 테니….”

       “감사합니다.”

         

         

         

         

        * * *

         

         

         

       진성의 부탁은 금방 이루어졌다.

         

       이양훈은 인맥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진성을 DMZ 너머로 갈 수 있게 해주었다.

         

       군 인권 센터를 끼워 ‘최전방 지역 군인들의 실태 확인’을 목적으로 하는 그룹을 만들곤 진성을 적당한 구실로 끼워 넣어준 것이다.

         

       그 덕분에 진성은 삼엄하기 짝이 없는 경계를 뚫고 북쪽으로 가지 않아도 되었다.

         

       축지를 연달아 사용하거나 몸을 숨기는 주술을 사용하지 않아도, 지뢰와 주물이 가득한 DMZ를 거닐지 않아도 되었다. 그 대신 편안하게 버스에 앉아있기만 하면 되었다.

         

       아주 편안하게 말이다.

         

       “큼, 저 청년은 대체….”

       “신경 쓰지 마세요. 무슨 대기업 자제라고 하던데….”

       “아니 무슨 관광 가려는 것도 아니고….”

       “관광이라고 하기에는 옷이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아니 옷도 옷인데 들고 온 게 너무….”

         

       진성은 버스의 가장 뒷좌석에 자신이 가져온 짐을 놓고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편안한 자세라는 것이 팔로 머리를 받치고 몸을 편안하게 뉜, 어디 불상에서나 볼법한 자세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자리를 한두 개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뒷좌석을 통으로, 그것도 눕기 위해 차지하고 있었다.

         

       당연히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말이라도 섞어서 친밀감이 들거나, 양해라도 구했으면 모른다.

         

       하지만 진성은 군 인권 센터에서 온 사람들과 말도 섞지 않은 채 대뜸 그러고 있었다.

         

       당연히 어이없을 수밖에.

         

       하지만 군 인권 센터에서 온 사람들은 진성에게 직접적으로 쓴소리를 내뱉지 못했다.

         

       대기업이 힘을 써서 꽂아준 낙하산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함께할 사람도 아니고, 고작 며칠 보고 말 사람인데다가 살면서 여러 번 마주칠 일도 없을 사람이다. 그런데 굳이 원한을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 행색 역시 기괴하기 짝이 없었으니.

         

       몸에 쫙 달라붙는 가죽옷에 누더기 같은 천 쪼가리를 걸치고, 쇠로 만든 지게 위에는 황금 피라미드까지 있다. 게다가 어디 무당짓이라도 하는 것인지 오방색의 천들이 지게를 휘감고 있기까지 하다.

         

       그뿐이랴?

       캠핑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장작을 버스의 짐칸에 가득 싣기도 했으며, 소금을 한 가마니를 가져오기까지 했다.

         

       대체 왜?

       대체 왜 그런 게 필요하단 말인가?

         

       장작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어디 으슥한 곳에서 캠프파이어라도 하면서 분위기를 즐기려나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소금에, 지게에, 피라미드는 대체 뭐란 말인가?

         

       기괴하기 짝이 없는 조합이다.

         

       이상한 컨셉으로 방송이라도 하나 싶으면 그것도 아니다.

         

       그럼 대체 왜 저런 것을 들고, 저런 이상한 차림을 하고 북쪽으로 간단 말인가?

         

       기이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행태였다.

         

       기이한 짓을 일삼는.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인.

         

       그렇기에 사람들은 진성에 대해 쑥덕거릴지언정 결코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고, 진성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면서도 관여하려 하지 않았다. 아니, 그의 행동을 추리할지언정 절대로 직접 가서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얽히고 싶지 않았으니까.

         

       덕분에 진성은 사람들과 말을 섞는 귀찮은 일 없이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버스가 ‘통일문’을 지나자 사람 머리통만 한 나방이 날아다니고 고라니와 멧돼지가 살아 숨 쉬는 활엽수림의 땅에 들어설 수 있었다. 제대로 닦이지도 않은 도로의 양옆에는 철책이 벽을 세우고 있었고, 그 위에 녹이 슬어있는 철조망이 얹어져 있었다. 그리고 철책은 전부 금줄이 쳐져 있었으며, 일정 간격으로 종교의 상징이 동상으로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철책의 바깥에는 넓고 깊은 콘크리트 해자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안에는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물이 찰랑이고 있었다.

       그리고 철책의 안쪽에는 냇가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물길을 따라 흐르고 있었는데, 그 물이 전부 축성 받은 성수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곳곳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악귀나 악령이 나타난다면 저기서 성수를 뿜어내게 될 것이다.

         

       덜컹.

         

       진성은 버스의 덜컹거림을 즐기며 계속해서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가 주술로 눈을 강화하자 저 멀리에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볼 수 있었다.

         

       옛날에는 GP로 사용되었을 건물.

         

       하지만 이제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고, 악령과 악귀를 요격하기 위한 기계장치만이 들어있는 건물이었다.

         

       아마 저 건물 근처에 악령과 악귀가 출몰한다면 즉시 폭죽을 터뜨려 타격을 입히거나, 성수를 담은 물세례를 사방으로 뿜어낼 것이다. 그리고 강력한 자기장을 뿜거나, 사방에 그물처럼 퍼뜨린 전선을 이용해 고압 전기를 뿜어 악령을 제압하겠지.

         

       ‘삼엄하군.’

         

       대한민국은 주술의 불모지로 불린다.

       그렇기에 주술에 의존하지 않고 악령과 악귀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리라.

         

       전기.

       자기장.

       화약.

       성수.

       마력장.

       진법.

         

       그리고 이것만으로 끝이 아니라, 퇴마(退魔)나 파사(破邪)의 능력을 갖춘 소환수를 사용하는 소환사도 근처에 대기하고 있으며, 무당 같은 영능력자들 역시 언제든 DMZ로 올 수 있도록 고성이나 파주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요격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해 언제든 자주포가 DMZ에 포탄을 쏟아부을 준비도 되어있을 것이며, 대악령이나 대악귀가 출몰하는 최악의 상황이 왔을 때 아예 DMZ와 안전지대 일대를 날려버릴 위성 무기와 마도 과학 병기도 대기하고 있으리라.

         

       그 때문일까?

       진성의 눈에는 악귀와 악령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숲속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고라니와 진흙에서 이리저리 뒹굴면서 노는 멧돼지, 그리고 일가족을 이끌고 돌아다니는 담비들이나 볼 수 있었다.

         

       그렇게 DMZ 구경이 끝나고 ‘탈환문’을 넘어 버스가 옛 북한의 땅에 도달하였다.

         

       ‘호오.’

         

       진성은 문을 넘자마자 느껴지는 느낌에 몸을 바로하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저 철책을 경계로 삼는 문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아예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풍경 역시도 진성의 말이 옳다고 말하는 것처럼 아까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황량한 공간.

       나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민둥산에, 푸석푸석한데 물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쓰레기 같은 흙, 그리고 폭탄에 맞아 부서져 버린 건물의 잔해들. 그리고 곳곳에 자리 잡은 기독교 계열의 상징들과 금속으로 만든 불상들까지.

         

       문명이라는 것이 망하면 자신과 같은 모습이 된다고 힘없이 중얼거리는 듯한 풍경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황량한 땅을 한참이나 지나자 목적지인 ‘안전지대’가 보였다.

         

       종교 시설이 절반, 아니 70%는 될 것 같은 자그마한 지역.

       그곳에서 군복을 입은 군종장교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고, 그 안에서는 군인들이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버스는 소금기 가득한 도로를 거침없이 달리며 안전지대를 가르는 문 앞에 섰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이 나서서 호스로 버스에 성수를 뿌리고, 이상하게 생긴 장비를 이용해 버스 전체를 스캔했다. 그리고 이상이 없음을 몇 번이고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열 수 있게 해주었고, 내리는 사람들마다 이상한 장비로 스캔했다.

         

       그리고 마침내 진성의 차례가 되었을 때.

         

       “이상 없습니다.”

         

       장비를 들고 있던 병사는 진성이 가지고 온 물건들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검사하고는 이상이 없다고 판단하였고, 그대로 진성을 안전지대 안으로 들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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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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