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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6

       *

         

         

         상황의 엄중함을 고려할 때, 정보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수많은 ‘진솔해지기’ 방법을 동원해야 했으나, 이반은 뻗던 손을 꾹 눌러 삼켰다.

         

         이건 너무 감정적인 행동이다.

         

         눈 앞의 이 사내는, 목숨을 바쳐 질 베르의 곁에서 용과 맞서 싸운 군인이다. 정보의 민감도를 고려했을 때, 이 사내는 지금 이 말을 꺼내며 죽음마저 각오했다고 봐도 좋았다.

         

         용사가 호국경을 살해했다.

         

         이 문장은,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피바람을 불러올 정보였으므로.

         

         이반은 가빠지는 호흡을 정리했다. 주위를 살폈다. 이미 주위에 사람들을 모두 물린 이후였고, 한참 더 시간을 들여 기척을 감지해봐도 주위는 숨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아무리 전투 피로와 부상으로 컨디션이 엉망이라 하더라도, 훈련 받은 초인은 지나가는 들쥐의 숨결조차 감지하는 법이다.

         

         이 근처엔 아무도 없다. 이반은 고개를 끄덕이며 침착하게 말했다.

         

         

         “처음부터.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줄 수 있나.”

         “예, 경께서 하산하신 뒤의 일부터 다시 설명 드리겠습니다.”

         

         

         병사는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보름 전의 일이다.

         

         

        *

         

         

         이 사내의 이름은 앙리였다. 성은 없는, 평민 출신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수도방위군까지 올랐던 사내다.

         

         이는 실력과 충성심의 증명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이 사내는, 보통의 징집병 수준 이상의 군기를 지니고 있다 보아도 무방했으리라.

         

         

        -콰아아아아앙—!!

         

         “막아! 막아, 제기랄! 마틴! 안돼!!”

         “미셸, 물러나야 합니다!! 물러나야—!!”

         

         

         그런 것들은 그 날, 베르니니 산맥의 정상에선 어떤 의미도 갖지 못했다.

         

         귀족 출신도, 부유한 지주의 자식도, 기사들마저도 공평하게 불타오르고 있었으므로.

         

         

         “으아—. 아아—!!”

         

         

         용이 그의 분대장을 집어 삼켰을 때, 그리고 그의 전우 대부분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 잿더미가 되었을 때, 이 평범한 사내는 무기를 놓치고 말았다.

         

         공황에 빠진 시야는 온통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계급과 작위에 무관하게, 눈에 보이는 모두는 땔감이 되어 시신조차 남기지 못했다.

         

         

         “물러서지 마라!! 방패 들어어어!!”

         

         

         그렇게 외치던, 화려한 갑주를 차려입고 달려나간 기사는 용 하나의 머리를 베어낸 뒤 그 날개 뒤에 도사리던 다음 용의 아가리에 물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비명이 하늘 위에서 길게 이어지다가 툭, 끊겼다. 비명의 끝과 거의 동시에, 굵은 팔뚝 하나가 앙리의 눈 앞에 떨어졌다.

         

         건틀릿을 끼고 있는, 아직까지 핏물이 스며 나오는 팔뚝이었다. 방금 전 기사의 것이다.

         

         

         “도망, 도망쳐— 다들 도망쳐어어억!!”

         

         

         앙리의 마지막 의지는 전우를 살리기 위한 외침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더 이상 전투를 이어갈 의지를 상실했다.

         

         전선에서 벗어났다. 주위에서 들리는 소음을 모두 무시한 채 정신없이.

         

         용들은 굳이 그를 노리지 않았다. 어둠 속에 숨어들어 바닥을 기는 인간 하나보다 더 많은 먹잇감들이 먹기 좋게 뭉쳐서 그들에게 대항하고 있었던 탓이다.

         

         불길을 등지고 무작정 아래로. 머릿속에 새하얗게 물든 채로 아래로.

         

         

         “헉, 허억— 헉!!”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바닥을 뒹굴며 지면에 처박혀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비명도, 화염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의 왼팔이 팔뚝 아래로부터 사라져 있음을 깨달았다. 불길에 그을려 지혈까지 끝난 상태였다.

         

         용의 입김이 전우만을 앗아간 것이 아니었다.

         

         

         “흐으으—. 흐윽—!!”

         

         

         거품을 물고 다시 몸을 일으켜 내려갔다. 산맥 너머로, 동쪽인지 서쪽인지 모를 방향으로. 숲이 이어지고 더 이상 산의 사면을 밟고 있지 않을 때에.

         

         그 때, 그는 마침내 베르니니 산맥 동부 평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가 중천에 뜬 동부 평야는, 농번기를 맞은 밀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아… 아아….”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용이 저 산맥을 집어 삼켰다. 호국경께선 무사하실까. 병력의 태반을 잃고 급습을 받은 상황에서, 과연 그 분이라고 한들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단 말인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만일, 만약에….

         

         그 한 사람의 부재로 인해 패배했다면, 끝내 베르니니 산맥의 용들이 풀려난다면.

         

         

         “장, 필립, 시몽, 티보….”

         

         

         그가 두고 간 전우들의 이름을 곱씹으며 앙리는 발을 뻗었다. 길이 펼쳐져 있다. 저 앞,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다.

         

         작은 화전민촌이다. 지도상에 이름도 없을, 산간 지역에 깊게 붙어 땅을 일구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귀관은 틸레스를 위해 살지어다.

        -귀관의 죽음은 틸레스의 초석이 되리라.

         

         

         입대에 으레 했던 선서가 떠올랐다. 군문에 들어섰을 때, 저 문장을 외치며 얼마나 감격했던가. 가난한 촌부의 아들이 수도방위에 멋진 정복을 입고 다닐 수 있게 된 상황에.

         

         그가 나고 자란 마을 전체를 통틀어도 유례없는 성공이라 하겠다. 그의 급여만으로도 그의 가족 전체를 먹여 살릴 수도 있을 정도였으니.

         

         그처럼 가난한 화전민촌 출신이었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저 마을처럼.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저 밀밭의 풍경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모였던 이들이.

         

         저 풍경을 지키고자 앞으로 나아서서, 이름 없이 죽었다.

         

         

         만일 그 하나의 부재가 패전을 불러왔다면. 그리하여서 베르니니 산맥의 용들을 막아낼 수 없게 된다면. 이 나라 전체가 저 산맥의 정상과 같이 불타오르게 된다면.

         

         그때,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정신을 차렸을 때, 앙리는 산의 사면을 타고 오르고 있었다. 무기도, 갑주도 잃어버린 평범한 사내는 흙바닥을 구르며 헐떡이고 있었다.

         

         얼마나 더 나아갔을까. 이미 사위는 어둠에 잠겼다. 짐승의 울음소리가 먼 거리에서 들릴 때마다 겁에 질리면서도 한발자국 씩 더 내딛어서, 마침내.

         

         마침내 그는 정상에 도달했다.

         

         

         “아—.”

         

         

         전투는 끝나 있었다.

         

         

         “대공… 전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당신께서, 당, 당신께서 해내셨나이다….”

         

         

         용의 시체가, 무너진 협곡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용들이 쏟아져 나왔던 그 저주 받을 계곡은, 그 악마들의 시체로 매립되어 있었다. 비늘 덮인 시체로 만들어진 언덕이 정상 위에 서 있었다.

         

         그 위로, 달빛을 온전히 받으며. 반쯤 그을린 거대한 군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사슴뿔이 검과 방패를 얽고 있는, 에타크리히의 군기가.

         

         움직이는 다른 존재는 없었다. 전투는 끝났다. 모든 병력이 소사했고, 모든 적군은 절멸했다. 전설로 남을 공멸이다.

         

         삼천여 명의 보병, 이백여 명의 기사, 그리고 한 사람의 영웅.

         

         그 한줌의 병력이 틸레스를 지켰다.

         

         군기가 흔들린다. 그을려 헤진 채로도 달빛을 받으며. 꺾이지 않고, 용들의 시체 위에서.

         

         앙리는 울먹이며 달려다가 바닥을 굴렀다. 그는 흙을 움켜쥐며 기어서 용의 시체들을 향해 뛰었다.

         

         그 위에 한 사내가 검을 거꾸로 꽂은 채 앉아 있었다.

         

         

         “누구냐.”

         “앙리… 앙리입니다….”

         “아, 근위사단 7보병대였던가. 롤렌의 앙리. 훌륭하구나. 살아 남았더냐.”

         “저, 저를 알고 계셨습니까?”

         “근위보병대와… 쿨럭! 동방기사단은 모두 내가 직접 가려 뽑았다. 쿨럭!”

         

         

         질 베르는 거칠게 기침하며 주저 앉았다.

         

         군기가 바람이 흔들리며 달빛이 그의 몸에 떨어졌다. 비로소 그의 상태가 보였다.

         

         

         “대공 전하…!!”

         

         

         한 팔을 잃고, 내장이 드러날 정도로 깊은 부상이다. 투구는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고, 타들어간 한쪽 머리칼 아래로 깊은 화상이 목 아래까지 보였다.

         

         갑옷 이곳저곳이 불길에 녹아내려 있었다.

         

         질 베르는 울먹이는 앙리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시끄럽다. 이보다 험한 상황도 흔했으니. 자네도 손 하나를 어디 던져 준 모양인데.”

         

         

         이리 가까이 와보라. 질 베르의 손짓에 앙리는 덜덜 떨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는 대공 전하를 배신했습니다…. 저는 살아남은 것이 아니오라… 전장을 등진 채 도망쳤습니다. 저를, 저를 용서치 마시옵소서.”

         “허나 돌아오지 않았더냐.”

         “…예?”

         “무장도, 갑옷도 다 흘린 채로도 돌아오지 않았더냐. 맨손으로라도 용과 대적할 생각으로. 자네와 같은 병사가 이 나라에 있으니, 아직 이 나라가 이토록 굳건히 버티는 것이렷다.”

         

         

         질 베르는 검을 들어 달빛에 비추었다. 검끝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검이 천천히 내려간다. 칼등이 앙리의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 서늘한 날이 앙리의 목 근처에서 섬칫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궤적은 너무나 조심스러워서, 두려움보단 슬픔이 먼저 떠올랐다.

         

         

         “약자를 보호하고, 주군에게 충성하고, 국가에 헌신하며, 정의를… 오직 정의만을 숭앙하라.”

         “예…?”

         “전시승작이다. 롤렌의 앙리. 최후까지 살아남았으니, 자네가 이 잡것들보다 강하다 하겠다. 동방기사단은 예로부터 가장 강한 기사들의 집회였으니, 그대. 앙리는 서약하겠는가?”

         “…대공 전하…. 저, 저는 그럴… 그럴 수 없습니다…. 제겐 자격이 없습니다….”

         “내게도 있었던 것이 자네에게 없겠는가. 이 세상엔, 용사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강자를 자부할 자격이 없다. 다만 믿는 것뿐.”

         

         

         진정코 강자임을 자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강인하다 그저 믿는 것.

         

         그러니 그 강인함으로, 약자의 시선에 서서 약자를 위해 헌신하는 것.

         

         언제나 정의를, 오직 정의만을 숭앙하며. 공포와 절망, 죽음의 계곡에서도 오직 자신만의 의로움만을 등불 삼아 나아가는 것.

         

         그것이 기사다. 서훈하겠느냐.

         

         질 베르의 말을 듣던 앙리는 흐느껴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질 베르는 웃으며 검신으로 그의 정수리를 툭, 쳤다.

         

         

         “이제 그대의 이름은 기사로다. 나의 검을 쥐고….”

         

         

        -후욱….

         

         

         바람이 불었다. 군기가 팽팽하게 흔들리며 다시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달빛이 가리워진다. 구름이 밀려들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질 베르는 말을 멈추고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검을 거꾸로 쥐고 앙리의 손에 쥐어주었다.

         

         잠시 눈을 꾹 감고,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고.

         

         

         “도망쳐라.”

         

         

         다시 눈을 떴을 때, 호국경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숲의 저 너머 어딘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살을 저미는 듯한 압박감 속에서 앙리는 헐떡이며 일어서서, 기어가다시피 도망치고 말았다.

         

         

         “대공… 전하…..”

         

         

         그가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숲의 한켠에서 걸어온 사내가 질 베르의 위에 몸을 숙이는 것.

         

         잠시 중얼거린 뒤 검을 들어 내려 찍는 모습과.

         

         다시 비추어진 달빛 사이에서 찬란히 빛나는 금발, 틸레스 곳곳에 남아있는 석상에서 보아왔던, 세월을 전혀 맞이하지 않은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막시밀리앙 드 이투알레, 이 나라와 연합 왕국, 그리고 인류의 희망이었던 사내가 서 있었다.

         

         

        *

         

         

         “잘 들었다. 고맙군.”

         “저,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누구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말아라. 질 베르는 이 나라를 마족과 용들의 손아귀에서 구한 뒤 산화한 것이 되어야 한다.”

         

         

         용사가 호국경을 죽였다는 말이 퍼지고 난 뒤에라면, 그것이 뜬소문에 불과하더라도 이 나라엔 미래가 없다.

         

         지금도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글쎄, 하지만 그 경우 정말 이 나라는 끝이다.

         

         어딘가에 은거한 용사가, 여전히 이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믿음만이 지금의 허물어져가는 틸레스를 버티게 하는 힘일 테니.

         

         왕이 제 자식들을 직접 베어내고, 1왕자에게 왕위를 이양한 지금 이 시점. 틸레스의 대백작들이 모두 처형되고, 남작령들이 혼란에 들끓는 이 시기에.

         

         에타크리히가 전설이 되어 간신히 왕권을 유지시키는 지금 이 순간에, 용사의 행보는 자칫 독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이 나라엔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식의 독소가.

         

         지금 이 사내를 죽이는 것이 그 결말을 피할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 사내는, 질 베르가 최후의 순간 살린 마지막 군인이다. 이반은 결코 자신의 손으로 이 사내를 벨 수 없었다.

         

         

         “질 베르의 마지막 유지를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귀관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귀관의 충성이 틸레스에 남아 있는 이상, 귀관은 결코 심판 받지 않을 것이다.”

         “예레모프 경… 감사, 감사합니다….”

         

         

         흐느끼는 앙리를 둔 채로, 이반은 등을 돌려 병실을 떠났다.

         

         퀘스트가 이르길, 보조 목표로 주어진 것 중 중요한 것은 두 가지.

         

         질 베르의 ‘생존’, 그리고 막시밀리앙과의 ‘조우’.

         

         이것은 아마도, 두 사내를 한 자리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는 뜻이겠다. 그렇다면 질 베르와 함께 막시밀리앙을 마주하는 것이 퀘스트의 진정한 목표였다고 한다면….

         

         

         ‘틸레스의 왕가를 어떻게 구한다는….’

         

         

         그 순간, 이반은 눈가를 꿈틀거렸다. 그는 곧 주먹을 꾹 쥐고 잘게 떨었다.

         

         그렇군. 틸레스의 왕이 아니라, 왕가를 지키라고 했던 이유가.

         

         누가 왕위를 잇든, 틸레스의 왕혈만 이어진다면 상관없다는 이유였다면—

         

         

         ‘오델리아는 왕실의 핏줄을 잇고 있었으니.’

         

         

         질 베르와 함께 막시밀리앙과 맞서 살아남고, 불타오른 틸레스를 질 베르의 이름으로 재건해서 새로운 왕가를… 그러나 여전히 틸레스 왕혈을 잇고 있는 왕가를 재건하라는 의미였나.

         

         그것이 연합 왕국의 존치를 10년간 연장 시킬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하지만, 너무 악의적이지 않은가. 질 베르는 결코 스스로 왕위를 자청할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 외골수는 결코 명예를 위해 움직이지 않으니.

         

         이 세상은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인간 개인의 의지, 의사와는 별개로 어떤 거대한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처럼.

         

         

         ‘돌아가야겠군.’

         

         

         틸레스의 이야기가 반쪽 뿐인 승리로 끝났다지만, 아직 그의 페이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준비를 해두어야겠다.

         

         결코 다신, 틸레스에서의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리라.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세상이 호의적이지 않다면, 이 빌어먹을 전근대 판타지 세상의 적의를 내 손으로 허물어서라도.

         

         질 베르. 네 뜻을 반드시 이어주겠다.

         

         용사 파티의 앞길을 열어주마. 반드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반은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크라실로프로 돌아갈 때였다.

         

         

       

       

       Ep25. 장송.

       

       

       

       *

       

       

       Epilogue. 희망.

       

       

       

         

         

         질 베르는 떠나는 앙리의 뒷모습을 일별하고 시선을 돌렸다.

         

         숲의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절그럭, 하는 소리와 함께 쇠사슬이 보였다. 툭, 툭 바닥을 치는 지팡이도. 그리고 두 눈을 가린 안대도.

         

         그 아래로 그림처럼 그려진 미소까지도.

         

         그는 허름한 넝마를 걸치고 웃으며 다가오는 사내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저 사내를, 그가 아는 그 시절의 이름으로 불러도 좋을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막스.”

         “베르.”

         

         

         사내는 가볍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먹구름 아래에서, 사내는 처연히 웃고 있었다.

         

         

         “신이 되었느냐?”

         “참고 있지.”

         “얼마나 남았지?”

         “글쎄, 몇 년일까. 아니면 몇 달일까. 나도 확신하긴 어렵군.”

         “최대한 버텨보게. 당대가 충분히 준비될 때까지만.”

         

         

         사내는 천천히 다가와 질 베르의 앞에 섰다. 그는 안대 낀 얼굴을 가만히 숙여 쓰러진 질 베르를 바라보았다.

         

         

         “베르, 움직일 수 있겠나.”

         “어렵겠지.”

         

         

         질 베르는 피를 쿨럭거리며 웃었다. 그를 바라보던 막시밀리앙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나라가 한 차례 불타오르고, 남은 잔해 속에서 피어오른 희망이 자네였어야 했어. 이 자리에서 죽을 사람은 자네가 아니었다.”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늙은 이들이 먼저 떠나야지.”

         “자네의 고집이 운명을 바꾸었네. 그것이 옳은 길이길 바랄 뿐.”

         

         

         막시밀리앙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보던 질 베르가 문득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묻지. 칠용장은 알겠는데 마왕은 도저히 모르겠더군. 그 놈을 죽이고 무엇을 잃었나?”

         “희망.”

         “하…. 그랬나. 놈이 절망이었나. 어울리기도 하지.”

         

         

         질 베르는 쿨럭거리며 피를 토했다. 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편하게 해주게. 마지막이 자네여서 다행이군.”

         “유언은?”

         “틸레스… 오델리아…. 그리고, 희망. 우리가 잃은, 그러나 분명히 남겨두었던.”

         “기억하겠네, 편히 쉬게나. 내 오랜 친구여.”

         

         

        -스걱.

         

         친구의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감각은 둔중한 절삭의 충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제 어떤 감정도 손아귀를 울리지 못하게 되었으니.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1부 (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내일은 휴재입니다!
    사유 : 이삿날
    금요일 분은 주말간에 보충하겠습니다!
    *
    일러 주문은 제가 한달 전에 했는데 사소한 문제가 있어서 아직 러프도 다 안나왔어요!
    완성되는 대로 완성본으로 바꿔 두겠습니다!!
    캬 넘무 멋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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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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