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56

        우리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남아 있다.

       

        하나는 가르진의 도움을 받아 물자를 보충하고, 그대로 떠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패밀리인가 뭔가 하는 이들을 처리한 후 여유롭게 쉬다가 떠나는 것.

       

        “난 전자를 추천하고 싶다.”

       

        가르진이 술을 마시며 말했다.

        그런 가르진의 말에, 크쉬타르가 얼굴을 구기며 답했다.

       

        “반대다. 네가 위험해진다.”

       

        “크하! 그깟 놈들이 날 어찌할 수 있겠나?!”

       

        자신만만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는 가르진.

        하지만 크쉬타르는 그의 텅 빈 오른팔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붉은 오른팔이 있던 너라면 모르겠지만, 오른팔이 없는 지금의 너는 안 된다.”

       

        “……할 말이 없군.”

       

        뭐라고 하려고 했으나, 차마 거짓말은 할 수 없었는지 입맛을 다시는 가르진.

        나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

       

        “아, 너는 모르겠군.”

       

        술을 들이켠 크쉬타르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루쉬를 통해 선령과 교감한 글리톤들은 강대한 힘을 얻는다.”

       

        “음.”

       

        글리톤은 ‘이 능력자’를 뜻하는 단어니, 문맥상 ‘모루쉬’는 저들의 몸에 그려진 문신 자체를 지칭하는 단어로 보였다.

        선령은 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딱히 중요해 보이지 않으니 넘어가자.

       

        “하지만 신체 일부가 손상된 이들은, 모루쉬가 손상되기에 선령으로부터 온전한 힘을 끌어올 수 없다.”

       

        “특히, 나 같은 경우에는 ‘아모루쉬’가 오른팔에 있었지.”

       

        “아모루쉬?”

       

        “이거다.”

       

        크쉬타르가 겉옷을 벗고, 자기 상체를 보여 주었다.

        그의 전신에는 ‘붉은색’의 염료로 그려진 문신이 존재했지만, 특이하게도 그의 심장 부위에 그려진 문신만큼은 ‘황금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형태도 조금 달랐고 말이다.

       

        “그, 황금색으로 그려진 문신이 ‘아모루쉬’라는 것이냐?”

       

        “그렇다.”

       

        나는 아바타에 내장된 천룡안을 떴다.

        그리고 천룡안을 통해, 크쉬타르의 전신에 그려진 문신…… 그러니까 ‘모루쉬’라는 이름의 문신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렇군.’

       

        쉽게 말해서, 저들이 ‘모루쉬’라 부르는 문신은 일종의 인공 마나 회로인 것이다.

        전신에 그려진 회로를 따라 마나가 순환, 흡수, 증폭한다.

       

        그리고 저들이 ‘아모루쉬’라고 부르는 ‘황금색으로 그려진 부분’은 일종의 ‘마법진’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전신에 그려진 모루쉬에서 마나를 모으고 증폭해서 아모루쉬로 보내면, 아모루쉬에서는 그렇게 모인 마나를 이용해 특정한 이능을 발생시킨다.

       

        ‘크쉬타르의 경우엔, 심장에 강화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보이는군.’

       

        그가 일순간이지만,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던 비결이 그것이었던 모양이다.

        혈액순환 속도를 상승시키고, 혈관계를 강화하고, 발열을 잡는 등의 술식이 새겨져 있는 것이 보인다.

       

        ‘반대로, 크쉬타르와 싸웠던 그 오크의 경우에는 근육과 골격 강화계의 술식이려나?’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 오크의 몸에는 노란색 문신 이외에도 검은색으로 그려진 문신이 신체 곳곳에 존재했다.

        아마도 그것이 그의 아모루쉬였겠지.

       

        ‘가르진의 경우에는 알 수가 없군.’

       

        왜냐하면 그의 몸 어디에도 아모루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그의 아모루쉬는 그의 잘려 나간 오른팔에 위치해 있었으리라.

        텅 비어 버린 그의 팔꿈치에 조금 남아 있는 붉은색의 문신 흔적이 보였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네가 우리를 도와줬다는 것을 저들이 영영 모를 리는 없다.”

       

        “…….”

       

        크쉬타르의 말에 가르진이 무언으로 긍정했다.

        하긴…….

        아무리 우리가 흔적을 지웠다고 하더라도, 흔적이라는 것은 완전히 지울 수 없다.

        특히 가르진이 우리의 물자를 대신 구매해 줄 때 그 흔적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크쉬타르는 굳은 얼굴로 크게 소리쳤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친다!”

       

       

        *            *            *

       

       

        – 와씨. 상남자여.

        – ㅋㅋㅋㅋㅋ

        – ㅋㅋㅋ

        – 상남자 포스 지린다.

        – 캬~!

        – 아, 잠만요. 치킨 옴

        – 피자 왔다.

        – 옴뇸뇸.

        – 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우리는 패밀리라는 무리를 공격하기로 했단다.”

       

        사실 가만히 따져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개인과 집단의 힘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정도로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법이니까.

       

        “그 개인이 집단을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을 정도로 현격한 차이가 있지 않은 한…… 너희 말로 표현하자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불과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크쉬타르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었다.

        그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다.

       

        – 라나님이요?

        – 란~가!

        – 란가! 도와줘!

        – 도와줘요 란가에몽!!

       

        “음.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니었더구나.”

       

        – 아니었어?!

        – 헐?

        – ????

        – 헐퀴?

       

        사실 그때의 나도 크쉬타르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믿었던 구석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            *            *

       

       

        나는 크쉬타르와 함께 부르투름에 숨어들어 갔다.

        가죽으로 온몸을 꽁꽁 싸맨 채 도착한 곳은, 어딘가 이상한 활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오빠! 한잔해!”

       

        “놀다가 오빠!”

       

        “오홍홍~!”

       

        “…….”

       

        “…….”

       

        그래.

        암수가 존재하고, 교미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지성체들이라면 빠질 수 없는 장소.

        이곳은 부르투름에 존재하는 ‘환락가’였다.

       

        “움직이지.”

       

        “그래.”

       

        나는 앞장서는 크쉬타르를 새삼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보통 다른 지성체들은 이런 장소에 도착하면 얼굴이 붉어지든지, 그게 아니더라도 뭔가 반응을 보이고는 했다.

        하지만 크쉬타르는 일체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긴장하고 있다는 것은 느껴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적들의 습격을 대비한 긴장이었지, 이 장소에 대한 긴장감은 아니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애초에 이런 것으로 얼굴이 붉어질 나이가 아니었으니 상관이 없었고.

       

        ‘혹시…… 불구……?’

       

        “이상한 생각 하는 거 아닌가?”

       

        “이상한 생각 안 했다.”

       

        그래.

        이상한 생각은 안 했다.

       

        “그저 네가 성적 불구자인가 하는 고민을 잠깐 했…….”

       

        “그게 이상한 생각이다!”

       

        쾅!

       

        크쉬타르의 꿀밤이 내 정수리를 가격했다.

        ……두개골이 움푹 파인 것 같은데?

       

        박살 난 머리를 재빨리 수복하며, 나는 어이없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은 채 크쉬타르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 내가 이 육체는 오크들보다 연약한 육체라고 분명히 말해 뒀는데, 방금 그 일격은 그걸 신경 쓴 위력이 아니었다.

        내 머리가 진짜로 박살 나라고 때린 일격이었다.

       

        “좀 더 살살 하라고 하지 않았었나?”

       

        “어차피 죽지도 않지 않는가.”

       

        “…….”

       

        ……일리가 있어.

        생각해 보니, 어차피 내 아바타는 죽지 않는다.

        심장이 날아가도, 머리가 날아가도, 언제든 용금을 조작해 재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용금을 대량으로 소실하게 된다면 재생할 수 없게 되겠지만, 애초에 그렇게 되도록 내가 두고 보지 않겠지.

        즉, 크쉬타르가 힘 조절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소리다.

       

        “그래도 조심하거라.”

       

        “그래.”

       

        대충 대답한 크쉬타르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는 한 건물을 확인하더니, 그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머~!”

       

        “잘생긴 오빠!”

       

        “어서 와요~!”

       

        크쉬타르를 향해, 업소에 속한 암컷들…… 아니, 여인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곤 크쉬타르를 향해 구애의 춤을…… 아니, 춤은 제외하고… 구애하기 시작한다.

        후손을 보기 위한 구애가 아닌, 그저 쾌락을 하나의 상품으로써 판매하기 위해서.

       

        “대모(大母)를 보러왔다.”

       

        우뚝!

       

        하지만 그런 여인들도, 크쉬타르의 한마디에 움직임을 멈췄다.

        눈치를 보는 여인들을 향해, 크쉬타르가 품속에서 뼈로 만들어진 목걸이를 꺼내 보여줬다.

       

        “……따라오세요.”

       

        “그러지.”

       

        목걸이를 확인한 한 여인이 우리를 이끌고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후 뒷문으로 나온 우리는 골목길을 이리저리 이동하기 시작했고, 조금 시간이 지난 이후엔 골목길 깊숙한 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런 우리의 앞에는, 조금 전에 나왔던 환락가의 건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낡은 건물이 있었다.

       

        “음? 뭐냐?”

       

        낡은 건물의 문을 지키고 있었던 듯, 온몸에 흉터가 나 있는 두 명의 오크 중 하나가 우리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우리를 안내해 준 여인이 말했다.

       

        “대모님의 알현자들입니다.”

       

        “알현자?”

       

        흉터투성이의 오크가 고개를 들어 나와 크쉬타르를 바라본다.

        그 시선에, 크쉬타르는 다시 한번 목걸이를 꺼내 오크에게 보여 주었다.

       

        “킁! 들어가라.”

       

        드르륵!

       

        돌 긁는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가장 먼저 우리를 안내해 준 여자가 앞장서고, 그 뒤를 나와 크쉬타르가 따랐다.

        그렇게 건물 안으로 들어간 우리를 맞이해 준 것은…….

       

        “홀홀홀……. 손님인가?”

       

        의자에 앉은 채, 식물 섬유를 이용해 뜨개질 비슷한 것을 하는 늙은 여자 오크의 모습이었다.

       

        “대모님.”

       

        척!

       

        우리를 안내해 준 여자가 머리를 바닥에 대며, 대모라 불린 늙은 오크 여인에게 공경의 뜻을 내비친다.

        그 후 대모의 곁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았고, 크쉬타르는 목걸이를 보여 주며 물었다.

       

        “당신이 ‘바바라 패밀리’의 대모인가?”

       

        “홀홀홀……. 그렇다면?”

       

        대모의 주름살 너머에서 날카로운 눈빛이 우리를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단순히 늙은 오크가 아닌, 한 무리의 우두머리로서의 기세가 느껴졌다.

       

        크쉬타르의 팔을 툭툭 치며, 눈앞의 상대가 ‘대모가 맞다’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그런 나의 판단을 확인한 크쉬타르가 말했다.

       

        “우리는 ‘호푸니 패밀리’를 무너뜨릴 거다. 협조해라.”

       

        “……??”

       

        “???”

       

        크쉬타르의 말에, 대모와 여인 둘의 얼굴에 황당함이 어렸다.

        ……뭐가 이상했나?

       

       

        *            *            *

       

       

        – 엌ㅋㅋㅋ

        – 아닠ㅋㅋㅋㅋ

        – 무슨 설득을 그렇게 햌ㅋㅋㅋㅋ

        – 앜ㅋㅋㅋㅋ

        – 아닠ㅋㅋㅋㅋ

       

        채팅창도 ‘ㅋㅋㅋ’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 아이들은 왜 또 웃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설득’이 익숙하지 않으신 주인공님.

    애초에 본체 자체가 ‘설득 덩어리’인 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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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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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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